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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뷰/리뷰

[리뷰] 이삿짐 풀다 끝나는 게임 '언패킹'

디테일에 대한 감탄. 게임 진행에 대한 아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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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주(4랑해요) 2021-11-04 16:03:48
<언패킹>(Unpacking). 제목 그대로 이삿짐을 푸는 게임이다.

주인공은 갓 성장해 드디어 자신만의 방을 가지게 된 한 소녀다. 나이가 들고 성장하며 소녀는 이곳저곳으로 이사를 하는데, 방 곳곳에 쌓인 이삿짐에서 물건을 꺼내 적절한 위치에 배치하는 것이 <언패킹>의 목표다.

내 방 정리도 제대로 안 하는데 이삿짐을 정리하는 게임이라니, 리뷰 아이템을 선정했을 때 약간 위화감이 들었다. 다행히 <언패킹>은 이런 걱정이 생각나지 않을 만큼 꽤 흥미롭게 만들어진 게임이었다. 다만 디테일 있는 게임 플레이에도 불구, 한계도 명확하게 느껴져 아쉬움이 있었다. ​/디스이즈게임 김승주 기자

 


 

# "보여주되, 말하지 않는다"

 

<언패킹>의 게임 플레이는 정말 간단하다. 시작하면 물건을 정리해야 하는 방, 그리고 이삿짐으로 가득 찬 상자가 주어진다. 상자에서 이삿짐을 꺼내 적절한 위치에 배치하면 된다.

대신 이삿짐을 풀고, 배치하며 집을 꾸미는 것 하나에 집중한 게임답게 세부적인 시스템에도 공을 들였다. 가령 속옷은 옷장의 수납 공간에 딱 맞는 개수가 나오며, 책들을 마구 책장에 꽂아둘 수도 있지만 종류와 높이에 맞게 가지런하게 꽂아둘 수도 있다. "오와 열"에 집착하는 게이머라면 자신도 모르게 이삿짐 정리에 몰입하게 된다.

 

말 그대로 이삿짐을 상자에서 꺼내서, 적절한 위치에 배치하면 끝나는 게임이다

 

으악! 불편해!
아주 마음에 들어요~

마치 ASMR을 생각나게 하는 게임 사운드도 주목할 만한 요소다. 책을 책꽂이에 꽃는 소리, 피규어를 나무판자 위에 올려놓는 소리, 이삿짐을 모두 풀면 상자를 접어 정리하는 소리까지. 이삿짐 풀기에 집중한 게임인 만큼 소소한 디테일까지 꽤 공을 들였다는 것이 느껴진다.

그리고 게임을 진행할수록 플레이어가 이삿짐을 정리해야 할 방 개수도 늘어난다. 첫 스테이지에는 방 하나가 전부지만, 두 번째, 세 번째 스테이지에는 주방, 거실, 화장실까지 추가된다. 

모든 물건을 플레이어가 일일이 정리해야 하기에, 실제로 혼자 이삿짐을 정리해 본 플레이어라면 스테이지 도입부마다 "이사의 막막함"(?)도 느낄 수 있다. 만약 개발자가 의도했던 바라면, 꽤 훌륭하게 "이사"라는 주제를 게임 내에 풀어냈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이삿짐 정리의 막막함이 느껴진다. 이걸 언제 정리하지...

  

마음을 비우고 물건을 하나하나 배치하다 보면 어느샌가 물건이 전부 정리되어 있다. 실제 이사와 정말 비슷한 느낌

 

이에 맞추어 플레이어가 정리해야 할 이삿짐도 스테이지가 진행될 수록 늘어난다. 가령 시작 부분에서는 조그마한 게임보이 하나가 전부지만, 나중에는 닌텐도와 Xbox로 추측되는 이삿짐도 등장한다. 같이 사는 사람이 생기면서 가지고 다니는 게임 패드의 개수도 늘어난다.

이런 과정을 통해 플레이어는 한 소녀가 이사를 거듭하며 어떻게 성장해 나가는지 추측할 수 있다. 직업을 구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며 버려지는 물건도 있고, 바뀌는 물건도 있다. 가령 봉제 닭 인형은 처음에는 어미 닭 하나만 있지만, 시간이 지나며 병아리 인형이 추가된다. 이런 과정을 통해 한 소녀의 성장을 체감할 수 있다.​

마지막 스테이지까지 버려지지 않는 물건도 존재한다. 게임 타이틀에도 등장하는 돼지 인형은 게임 끝까지 등장한다. 주인공의 추억이 담긴 가장 소중한 물건인 셈이다. 이를 통해 <언패킹>은 "보여주되, 설명하지 않는다"라는 은유적 스토리의 공식을 충실하게 따르고 있다.

스테이지를 클리어하면 리플레이를 통해 어떤 과정으로 물건을 정리했는지 다시 되살필 수도 있어 소소한 재미를 더해준다 이삿짐을 푼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았다면 다시 스테이지에 진입해 물건의 배치를 바꿀 수도 있다. 사진을 찍어 플레이어가 직접 정리한 방을 촬영하고, 스티커를 붙여 SNS에 공유하는 기능도 제공한다.

 

핑크색 돼지 인형은 게임 마지막까지 등장한다

리플레이를 통해 자신이 어떤 과정을 통해 정리했는지 되짚어 볼 수도 있다

 

 

# 이삿짐 푸는 게임이라더니... 정말로 이삿짐만 푸네


다만 처음부터 끝까지 이삿짐 풀기 하나에 집중한 게임답게 아쉬운 요소도 일부 존재한다.

 

먼저 설명이 부족하기에 따르는 불편함이다. 플레이어 자유롭게 물건을 배치할 수 있다고 해서, 모든 물건을 아무 데나 둬도 되는 것은 아니다. 칫솔과 치약은 화장실에, 책은 책장에 끼워 두어야 한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상자에서 꺼낸 이삿짐을 땅바닥에 어질러 놓고 "다했다! 이사 끝!"이라고 할 수는 없으니까. 

 

모든 물건이 배치되면 게임은 다음 스테이지로 넘어가기 전에 잘못 배치된 물건을 빨간색 표시선을 통해 알려 준다. 그러나 "왜" 배치가 잘못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플레이어 이리저리 물건을 두며 해당 위치가 적절한지 일일이 체크해야 한다. 

 

물건이 잘못된 위치에 있으면 빨간색 외각선으로 표시해 준다

 

기자가 막혔던 부분은 화이트보드의 배치 문제였다. 물론 기자의 실수에 가깝긴 하지만, 처음 화이트보드를 상자에서 꺼냈을 때 "새로운 태블릿인가?"라고 생각했고, 책상에 화이트보드를 배치했지만, 게임은 계속해서 잘못을 지적하며 다음 스테이지로 기자를 보내주지 않았다. 

결국 수 없는 시행착오 끝에 해당 물건이 화이트보드란 것을 알아내는 데 성공했고, 냉장고에 화이트보드를 붙여 둠으로써 스테이지는 일단락됐다. 간단한 텍스트로 해당 이삿짐이 무엇인지 알려 줬다면 방지할 수 있는 문제점이었기에 약간 아쉬움이 남는다. 

이렇게 게임적 재미를 더하기 위해 주방에 있어야 할 물건이 화장실에 있는 이삿짐 상자에서 나오는 등, 다소 생뚱맞은 상자에서 나올 때도 있는데, 이 경우마다 플레이어가 물건 용도를 오해한다면 혼선이 생길 수 있어 약간의 설명을 곁들여 줬으면 하는 바램이 남는다.

 

기자는 저 소파에 있는 화이트보드가 새로운 타블렛인 줄 알았다(...)

이거 알아내는 데 수십 분 걸렸습니다 (자랑은 아닙니다)

 

 

"보여주되, 말하지 않는다"는 은유적인 스토리텔링이 가진 한계점도 존재한다. 상상력과 감수성이 풍부하다면 물건을 이곳저곳에 넣으며 소녀의 성장기를 상상할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게이머라면 답답함을 느낄 수 있다.

 

인위적으로 감성을 자극하거나, 주인공의 독백을 통해 이야기를 설명해 주는 구간은 게임 내에 전혀 없다. 스테이지가 끝나면 일기장에 적히는 주인공의 한 마디 정도가 전부다. 스토리에 대한 플레이어의 흥미를 돋우기 위한 장치가 조금 더 필요하지 않았나 한다.

정리하자면 <언패킹>은 보여주고자 한 목표에 충실한 게임이다. 잔잔한 음악 속에서 물건을 정리하는 '힐링 게임'을 원하는 게이머, 혹은 RPG나 루트 슈터 장르 게임을 즐기면서 "창고 정리"에 즐거움을 느낀 게이머라면 <언패킹>은 추천할 만하다. 대신 명확한 "스토리"를 원하는 게이머라면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순간까지 당황스러울 수 있다. 덜컥 구매했다가는 호불호가 갈릴 만한 게임이다.

 

스토리에 대한 설명이라고 해 봐야, 스테이지 클리어때마다 나오는 한 마디 정도가 전부다

 

<언패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