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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뷰/리뷰

스토리 어드벤처와 탄막 슈팅의 만남, ‘다이 크리쳐’

스토리 게임 개발사 ‘자라나는 씨앗’ 신작

에 유통된 기사입니다.
방승언(톤톤) 2022-02-23 10:32:48

‘프랑켄슈타인’은 오해를 많이 받는 캐릭터다. 세간에 알려진 명칭부터 이미 오해의 산물인데, ‘프랑켄슈타인’은 사실 괴물의 이름이 아니다. 그를 창조해낸 박사의 이름 ‘빅터 프랑켄슈타인’이 괴물의 것처럼 와전됐다. 정작 괴물에게는 이름이 없다. 메리 셸리의 1831년 원작 소설에서는 창조물, 괴물이라는 의미의 ‘크리처’(creature)로 지칭하고 있다.

 

대중에 알려진 외모 역시 원작에서의 묘사와는 상이하다. 목에 볼트가 박혀있고 체격이 큰 특유의 외형은 제임스 웨일의 영화(1931년 작)에서 정립된 것이다. 아둔한 성격 또한 해당 영화로 인해 덧씌워진 특성이다. 원작에선 깊이 있는 대화가 가능할 정도의 지성을 갖춘 존재로 그려진다.

 

즉 오늘날 ‘프랑켄슈타인’의 보편적 이미지는 여러 원형이 누더기처럼 기워져 가공된 결과인 셈이다. 이는 원작에 대한 기묘한 알레고리가 된다. 소설에서 ‘크리처’는 여러 사람의 신체를 하나로 엮어 만들어진 기괴한 모습 때문에 사람들에게서 억울한 오해를 산다. 이것이 그가 잔학한 면모를 드러내는 계기로 작용하면서 비극이 펼쳐진다.

 

<MazM: 지킬 앤 하이드>, <MazM: 오페라의 유령> 등 고전 소설에 기초한 스토리텔링 게임으로 잘 알려진 개발사 ‘자라나는 씨앗’이 이번에는 <프랑켄슈타인>을 각색한 신작 <다이 크리쳐>를 선보인다. 소설 원작을 재창작한 어드벤처/액션 장르 게임으로서 스팀에서 얼리액세스로 만나볼 수 있다.

 

 

 

# 자라나는 씨앗의 새로운 도전

 

<다이 크리쳐>의 주인공 ‘이름 없는 괴물’은 훤칠한 체격의 장발 인간 모습을 하고 있다. 영화보다는 원작 소설을 참고한 모습이다. 스토리상으로도 원작의 주요 설정을 빌려온 뒤 판타지 세계관으로 재창작했다. 이는 이야기 얼개​에서도 원전을 많이 참고했던 개발사의 기존 작품들과 구분되는 지점이다.

 

<다이 크리쳐>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창조 당한' 쪽의 이야기에 주로 초점을 맞춘다. 원래 실낙원의 한 구절로 <프랑켄슈타인> 서장에 재인용된 문구 - 신이여, 제가 애원했습니까? 어둠에서 절 끌어내 달라고? - 는 <다이 크리쳐>에 다시 등장하며 게임의 주요한 정서를 함축적으로 전한다.

 


게임플레이 메카닉에서도 제작진은 새로운 도전을 했다. 기존 타이틀은 포인트 앤 클릭 어드벤처의 정적인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반면 이번에는 ‘탄막 피하기’라는 조금 더 능동적 게임 요소가 도입됐다.

 

주인공이 마을 사람들의 박해를 피해 자신의 ‘출생지’인 성 안에 들어서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모종의 이유로 성 내부의 특정 장소로 향해야 하는 주인공은 길목마다 위치한 ‘네페’를 처치하며 길을 열어 나간다. 그때마다 네페가 강탈한 ‘기억 조각’들을 회수하면서 자기 자신, 혹은 주변 캐릭터들의 기억을 되찾는다.

 


 

# 디테일이 살아있는 연출

 

자신들만의 아트 스타일과 BGM으로 인기를 끌어온 ‘자라나는 씨앗’의 게임답게, <다이 크리쳐> 역시 스타일리시한 연출기법을 보여준다. 뚜렷한 필치로 그린 기괴하고 비현실적인 인테리어와 기타 환경 묘사의 미려한 디테일들은 줄곧 유저의 시선을 빼앗는다. 극 전개와 인물의 상황에 맞춘 음산한 BGM도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킨다.

 

게임은 이야기를 여러 토막으로 나눠 조금씩 던져 주며 흥미를 유도한다. 다만 세세한 설정과 이야기가 많아 맥락 파악의 피로감이 큰 편이다. 스토리를 따라가다 보면 기존의 수수께끼가 해소되는 속도보다 새로운 의문이 누적되는 속도가 더 빠른 탓에, 핵심 줄거리를 향한 집중력과 흥미가 저해되는 현상이 조금 아쉽게 다가온다.

 

기괴함과 귀여움이 공존
종종 멈춰서 아트를 감상하게 된다

이렇듯 다소 산만한 전개방식의 단점을 완충하는 것이 생동감 넘치는 장면 묘사다. 풍부한 인물 표정과 음향 효과, 비주얼 효과를 총동원한 하나의 애니메이션 같은 매 장면의 연출들은 당면한 상황과 인물 심리에 대한 직관적 이해를 돕는다.

 

마지막으로, 귀여움과 오싹함을 교차 혹은 혼합시킴으로써 그 대비를 극대화하는 아트 디렉션도 인상적이다. 데포르메 스타일의 캐릭터 조형은 친근하게 느껴지는 반면 기괴한 적의 모습과 주변 환경, 그리고 이따금 등장하는 공포 장면들은 긴장감을 빚어내며 몰입감을 높인다.

 

간혹 등장하는 공포 연출
인물들은 표정이 생생하다

 

 

# 스토리와 전투, 퍼즐의 합

 

<다이 크리쳐>의 퍼즐은 숨겨진 상호작용 요소를 찾거나 오브젝트를 정해진 위치에 배치해 장애물을 제거하는 등 직관적인 형태다. 구간에 따라 약간의 고민이 필요할 때도 있으나 대부분은 한 눈에 해법을 파악할 수 있도록 친절하게 구성되어 있다.

 

주요한 길목을 막고 서있는 '네페' 근처에 접근하면 별도의 '필드'​로 넘어가며 전투 페이즈가 시작된다. 필드에는 장애물이 배치되어 있고, 네페는 그 사이를 돌아다니며 사방으로 투사체를 날린다. 주인공은 이를 피해가며 필드에 배치된 '조각'들을 수집해야 한다. 주인공은 투사체에 맞을 때, 네페는 조각이 수집될 때 피해를 입는다. 쓰러지지 않고 조각을 충분히 모으면 승리할 수 있다. 승리할 때마다 기억의 편린을 컷씬으로 확인하게 되며, 이는 스토리 진행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다이 크리쳐>의 핵심은 개발사의 기존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스토리에 있다. 퍼즐과 전투는 장기인 스토리텔링을 보조하기 위한 수단이자 장치로서 기능한다. 이는 긍정적 의미와 부정적 의미 양쪽에서 모두 그렇다.

 

길찾기 퍼즐에서의 기믹이
전투에 등장하기도 한다

 

퍼즐과 전투는 모두 난이도가 매우 ‘유저 친화적’이다. 각 장르에 숙련된 게이머라면 아무런 걸림돌 없이 클리어할 수 있는 수준이다. 반대로 말하면 고수 유저들은 공략에서 별다른 재미를 느끼기 힘들다는 의미도 된다.

 

그러나 비주얼 노벨 특유의 단방향성 스토리텔링 구조에서 오는 지루함을 덜어 주는 보조적 역할은 충분히 수행한다. 절대적인 난도는 낮지만, 점진적으로 난도를 상승시키면서 동률 반복적 느낌을 최대한 피하고 있기 때문이다. 꾸준히 퍼즐과 전투의 패턴이 변화하거나 새 기믹이 추가되기 때문에, 게임에 주의력을 붙들어 두기에는 충분하다는 인상이다.

 

더 나아가 이런 애매한 난이도는 해당 장르들에 익숙하지 않은 유저에게는 반대로 큰 장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 난도가 지나치면 자칫 이야기의 흐름을 끊는 ‘장애물’로 인식될 수 있기 때문. 다만 난이도 구분 옵션을 따로 두었다면, 더 폭넓은 유저에게 만족감을 줄 수 있었으리란 아쉬움은 남는다.

 

스토리 부분을 떼어서 보면 인물의 입체적 묘사, 분명한 주제의식, 촘촘한 설정이 이야기에 밀도를 부여한다. 그런데 이야기는 수평 방향으로도 길게 뻗는다. 그 결과 소화해야 하는 콘텐츠의 전체 질량이 크다. 이는 난이도와 마찬가지로 구체적 유저 성향에 따라 장점 혹은 단점이 될 수 있다.

 

이야기는 명확히 드러난 부분보다 그렇지 않은 부분이 더 많은 채로 모호하게 전개되면서 몽환적이고 추상적인 느낌을 준다. 그런 와중에도 핵심 사건들과 뚜렷한 테마를 성공적으로 전한다. 특히 괴로움을 무릅쓰고 기억을 되찾고자 하는 주역들의 모습은, 정신적 외상에 대한 반복적 노출을 수반하는 트라우마 치료 방식인 노출치료를 연상시킨다. 이는 자아의 회복이라는 주제와도 맥이 닿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