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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뷰/리뷰

"원조 맛집은 비법을 알아도 못 따라간다" 엘든 링 최종 리뷰

선택과 집중, 그리고 고집이 만들어낸 '엘든 링'의 세계 (2)

에 유통된 기사입니다.
김승주(4랑해요) 2022-03-07 17:15:24

 

[리뷰 1부] : 엘든 링이 거품? "NO!" 그러나...

 

주의 :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엘든 링>의 오픈 필드는 왜 매력적인가?

 

<엘든 링>의 세계에 대해 더 이야기해 보자. 아무리 넓고 할 게 많더라도, <엘든 링>은 플레이어에게 "어디로 가라"고 대놓고 말하는 게임이 아니다. 말하지 않아도 가고 싶도록 만들어야 한다. 특히 <엘든 링>의 필드는 맵을 탐사하며 다양한 던전, 이벤트를 진행하고 보상을 얻어 충분히 강해진 다음 지역 최종 보스에 도전하도록 만들어졌다. 그렇기에 더욱 탐험이 중요하다.

탐험에 대한 동기를 끌어내기 위해 <엘든 링>이 교묘하게 준비한 장치는 꽤 많다. 예를 하나 들자면, 전작의 '미믹'을 대체한 <엘든 링>의 '전송 함정'이다. 초반 지역인 림그레이브에 위치한 전송 함정에 빠지면 갑작스레 케일리드 지역으로 이동하고, 케일리드에는 중후반 지역인 '도읍 로데일' 한가운데로 보내는 전송 함정이 있다. 전송 함정으로 맵을 이동하면 축복에 닿기 전까지 빠른 이동이 제한된다.

여긴 어디인가. 그리고 나는 누구인가

단순한 프롬 소프트웨어의 악취미로 여길 수 있지만, 사실 전송 함정을 빠져나가기란 어렵지 않다. 전투를 피하고, 열심히 달리면 몇 분이 지나지 않아 축복에 도달할 수 있다. 축복까지 도달하면 플레이어의 앞에 새로운 광경이 펼쳐진다. 케일리드에서는 빨간 색감으로 가득한 을씨년스러운 독늪이, 도읍 로데일에서는 수도의 넓은 풍경을 잠시나마 흝어볼 수 있다.

핵심은, 함정에 빠진 것 하나로 플레이어가 보는 풍경이 완전히 뒤바뀐다는 것이다. 맵을 펼쳐 봐도 아직 지도를 얻지 못해 허허벌판에 플레이어의 아이콘이 위치한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엘든 링>은 시작부터 전체 맵 크기를 보여주지 않는다. 플레이어가 게임을 진행할수록 맵이 커지는 식이며, 전송 함정으로 아예 처음 진입하는 장소에 진입할 경우에도 전체 맵 크기가 확장된다. 나중에 갈 지역을 '예고편' 형식으로 깜짝 등장시키는 셈이다.


여기서 플레이어는 탐험에 대한 동기를 얻는다. 현재 진행하는 구역이 지루해질 찰나, 앞으로 진행할 수 있는 후반 지역에 대한 정보와 모습을 엿보고 진행 의욕을 올리는 식이다. <엘든 링>은 외에도 다양한 장치를 통해 플레이어의 탐험 욕구를 자극한다. 맵 지도를 얻고 이를 살펴보면 별도의 '마커'가 없음에도 어떤 장소를 찾을 수 있을지 약간이나마 추측할 수 있다. 

빨간 구멍이 있으면, 거기에는 무기 강화 자원을 얻을 수 있는 갱도가 있다. 폐허에는 미니 보스와 보상이 기다리고 있다. 성이 그려진 곳으로 가면 레거시 던전이 등장한다. 망원경이 표시된 지역으로 가면 구역 전체를 위에서 내려다볼 수 있다. 별도 설명이 없어 간과하기 쉽지만, 직관적이면서 치밀한 구성이다.

성이 그려진 곳에 가면 성이 있고, 폐허에는 중간 보스와 던전이 있다. 별도 마커가 없어도 목표를 정할 수 있다

새의 망원경을 통해 지역 일부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도 있다

맵을 꼼꼼히 탐사하고, 아이템 설명까지 차근차근 읽지 않는다면 놓치기 쉽지만, 대사나 설명을 통해 진행과 스토리 힌트를 곳곳에 넣어 놨다는 점도 호평 요소다. 아이템 설명에 적힌 한 줄이 후반부 이벤트와 연결되는 등의 요소는 탐험에 대한 즐거움을 더해준다.

 

군데군데마다 진행 힌트를 넣어 놨다

영해파리 설명에 적혀 있던 단 두 줄이, 후반부 이벤트와 연결될 줄이야

 

# '잿빛 호수'에서 이루지 못했던 꿈, <엘든 링>에서 비로소 펼쳐지다.

 

어찌 보면, <엘든 링>의 오픈 필드는 이전 작품에서 이루지 못했던 프롬 소프트웨어의 꿈을 성취했다고 볼 수도 있다.

먼저, <다크 소울>을 살펴보자. 지역 중 하나인 '잿빛 호수'는 미완성 지역이었다. 출시를 앞두고 미완성 콘텐츠를 잘라내다 보니, 맵이 주는 공허한 느낌과 아름다운 OST에도 불구하고 별 볼일 없는 지역이 됐다. 아쉬웠던 부분. 그리고 후속작 <다크 소울 2>가 받은 비판 중 하나는 "맵 디자인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않는다"였다. 

대표적인 구간은 '흙의 탑'과 '녹아내린 철성'이 이어지는 구조다. 허허벌판에 있는 탑을 등반하고 승강기를 타니 뜬금없이 용암 지대가 나온다. 덕분에 여러 가지 이야기가 나왔지만, 유력해 보이는 주장은 "개발 난항"이었다. <다크 소울 2>는 개발 중간 디렉터가 교체됐고, 공식 인터뷰에서도 "폐기하고 처음부터 다시 만든 것이 있다"라는 언급이 나왔으니 말이다.

<다크 소울>의 잿빛 호수 (출처 : 다크 소울 위키)

그러나 시간과 공을 들인 <엘든 링>에는 허투루 만들어진 지역이 없다. 각자가 명확한 콘셉트와 유기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갈 수 없어 보이는 먼 풍경에도 게임 후반부가 되면 어느새인가 진입해 있다. 길이 아닌 것 같아 보이는 곳에서 길이 이어지며, 구불구불 이어진 길을 따라가다 보면 새로운 풍경이 나타난다. 어색함이 없다.

유기적으로 연결된 진입 방법 또한 무릎을 탁 치게 만든다. 가령 라단의 성채는 기자가 확인한 진입 방법만 약 세 가지다. 말을 타고 달려 정면으로 진입하는 방법, 정면으로 진입하다가 포탈을 타는 방법, 그리고 근처에 위치한 성채에서 이어지는 포탈을 통해 성 정면에 있는 수비군을 우회하는 방법이 있다. 마지막 방법은 이미 라단을 처치한 후 맵을 탐사하다 얻은 정보이기에, 이를 깨달았을 때는 꽤 놀랐다.

 

 

소울라이크와 오픈 필드의 조합은 '성공적'이라 하고 싶다. 탐험의 재미가 더욱 살아난다

 

 

# 악의적인 기믹이 주는 고통, 하지만 좋다

 

보스의 난이도도 한몫하지만, <엘든 링>의 맵 난이도도 참 쉽지 않다. 솔직히 말해 "악의적"이다.

이번 작에서 특히나 많이 등장하는 기믹은 사각지대에서의 기습이다. 외길을 올라가다가, 갑자기 사각 지대에서 거대한 해골이 플레이어를 뻥 차 떨어트리며 "이게 <다크 소울>이다"라고 보여주던 GIF  짤방을 기억하는가? <엘든 링>에서는 일상이다. 잊을 만하면 나오고, 심지어 후반부에는 플레이어가 안심했을 때 추가로 기습 공격이 들어오며 절벽 아래로 밀어버린다.

이 사진 기억하시나요?

<엘든 링>에서는 일상입니다
사진은 먹이를 노리는 매의 눈빛

점프 시스템이 추가되면서 따라온 '점프 맵'도 참 골치가 아프다. "점프를 추가했으니, 점프 맵도 만들었다. 자, 고통받아 봐라!" 하는 걸 보면 참 프롬 소프트웨어 답다고 느껴진다. 점프 맵에서 수없이 낙사를 하다 보면 자연스레 미야자키 히데타카 공동 디렉터의 미소가 보이는 듯하다.

하지만, 아무리 악랄해 보이는 진행 방식이더라도 시행착오를 반복하며 끈기 있게 진행하다 보면 방법이 보인다. 우회로를 사용하면 이외로 빠르게 넘어갈 수 있는 구간도 있다. 가령, 사진의 점프 맵은 '긴 꼬리 고양이 탈리스만'을 사용하면 보다 쉽게 진행할 수 있다.

왜 이런 짓을...

이런 기믹들은 플레이어가 새로운 던전에 진입할 때마다 긴장을 놓지 않도록 해 준다. 특히 던전마다 있는 기믹이 그렇다. 또 지하 묘지야? 싶더라도, 들어가 보면 예상을 깨는 기믹이 나온다. 혹자는 "프롬 소프트웨어에 입사한 직원이 만들었던 맵 포트폴리오를 전부 집어넣은 것 같다"고 했는데, 공감이 간다.

특히 동일한 맵 구조를 반복해 플레이어가 혼란에 빠지도록 했다가, 결국에 약간 다른 부분을 찾아내 보스에게 진입하도록 만든 지하 던전은 플레이하며 상당히 놀랐다. 아무리 앞으로 가도 동일한 맵 구조이기에 도저히 진행할 수가 없어 화도 났고, 석상 앞에 기도까지 하며 온갖 방법을 시도했지만 끝내 기믹을 알아내 던전을 클리어한 후에는 치밀한 구성에 혀를 내두르게 됐다. 

던전마다 다양한 진행 기믹이 있다

 

 

처음에는 악랄함에 혀를 내두르다가도, 파훼법을 알아갈수록 클리어가 보이는 보스 디자인도 있다. 이번 시리즈에서는 더욱 강력해지고 멋이 살아난 전기와 영체, 맵 별 기믹을 통해 보스를 공략하도록 만들어진 느낌이다. 

 

보스 연출은 한단계 더 발전했다

 


 

# 선택과 집중이 만들어낸 <엘든 링>의 끝없는 오픈 필드

 

이런 거대한 세계가 만들어질 수 있었던 프롬 소프트웨어의 "선택과 집중"도 무시할 순 없다.

<엘든 링>의 플레이 동영상이 처음 공개됐을 때, 그리고 발매 후에 너무 <소울> 시리즈에서 보여 준 것을 반복한다는 이야기가 많았다. 가령 <다크 소울> 부터 개근한 '바실리스크'나 무기군 별 공격 모션 등 많은 부분에서 이전 시리즈의 요소가 재활용됐다.

그러나, 그만큼 <엘든 링>은 다른 부분에서 보답한다. 앞서 말했듯 긴장을 놓지 않도록 구성된 악랄한 기믹과 혀를 내두르게 하는 디자인과 아트워크는 게임 종반부까지 힘을 빼지 않고 이어진다. 다소 '우려먹기'로 보일 수 있더라도 오픈 필드와 탐험이라는 <엘든 링>의 핵심에 집중한 것이다. 


프롬 소프트웨어도 이 부분을 사전 인터뷰에서 짚은 적이 있다. 미야자키 공동 디렉터는 "새로운 형태의 게임을 만드는 것은 큰 도전이며, 마을을 추가하면 너무 지나칠 수 있어 우리가 잘하는 것을 중점으로 오픈 월드 스타일을 만들기로 결정했다"고 언급했다. 즉, 지금까지 잘 해왔던 요소를 기반으로 새로운 시스템을 쌓아나가겠다는 의미다.

특히 극후반 지역까지 진입했을 때는 "이 쯤 되면 슬슬 힘빠지지 않았을까?" 싶었지만, 마지막 지역 '성수 버팀목 에브레펠'이나 '무너지는 파름 아즈라'까지 악의적 기믹과 복잡한 맵 구조를 유지하는 것을 보면 참 프롬 소프트웨어 답다고 느껴진다. 기나긴 개발 기간 동안 '탐험'에 집중한 선택은 절대 낭비되지 않았으며, 기다린 값을 해 준다는 이야기다.

평화로워 보이지만, 지옥 같은 곳이다

그래도 좀 아쉬운 점도 있다. 

'프롬 소프트웨어식 캐릭터 스토리텔링'이 오픈 필드와 연결되는 구조다. NPC들의 이야기를 진행하려면 맵 여러 곳을 오가야 하는데, 이를 하나하나 신경 쓰기도 어렵거니와 개발사가 생각한 경로를 지나쳐 NPC 이벤트를 보지 못하고 지역을 통과하는 경우도 있다. 특정 NPC는 중요도에도 불구, 불친절한 안내 속에서 온 맵을 오가야 하는데 공략이 없었다면 아예 모르고 넘겨 버릴 수도 있다.

엉뚱한 실수로 이벤트가 실패할 수도 있다. 기자는 밀리센트 이벤트를 마지막에 '점프 실수'로 NPC를 죽인 덕택에 결국 마지막 보상을 받지 못했다. 행여나 아직 이벤트를 진행 중인 독자가 있다면, 점프로 NPC를 밟지 않도록 주의하시길.

 

 

 

 

# 아쉬우면서도, 이외로 신규 유저 배려한 멀티플레이 시스템

프롬 소프트웨어의 "선택"은 멀티플레이에도 도입됐다.

프롬 소프트웨어의 소울라이크 게임이 가진 특징 중 하나는, 백령과 암령, 청령으로 대표되는 시스템이다. 플레이어는 협력자를 불러 스테이지를 진행할 수 있으며, 이 와중 '암령'이라 불리는 플레이어가 칩입해 훼방을 놓을 수 있다. 암령이 들어오면 이를 막는 청령이 난입해 플레이어를 돕기도 한다.

믿음직한 협력자(?)

 

 

자비 없는 난이도를 가지고 불리는 <엘든 링>이지만, 이 부분에서는 이외로 초심자를 배려해 놓았다. 협력자를 부르지 않은 솔로 플레이에서 암령은 침입하지 않는다. 암령은 협력자와 특정 지역을 진행하고 있는 플레이어에게만 침입할 수 있으며, 백령이나 암령이 들어올 수 있는 구역도 제한되어 있다. 

<다크 소울 3>는 플레이어에게 큰 버프를 주는 '잔불'을 사용하면 암령이 어느 때나 들어올 수 있어 온라인 플레이 시 초심자가 곤혹을 겪는 경우가 있었는데, 이를 신경써준 것으로 보인다. 협력자와 오픈 월드를 누빌 수 없다는 것이 아쉽긴 하다.

하지만, 멀티플레이가 낳을 수 있는 부작용들을 생각해 보면 어쩔 수 없는 결과일 수도 있다. 열심히 필드를 모험하고 있는데 갑자기 암령이 들어오고, 이를 처치해야 하는데 서로 위치를 몰라 헤매는 그림이 나온다면(혹은 암령이 의도적으로 숨는다면) 불쾌한 경험이 발생했을 확률이 있다. 백령과 같이 오픈 월드를 돌아다니다 발생할 수 있는 예상치 못한 버그도 무시할 순 없곤 말이다.

그렇기에 <엘든 링>에서는 전작처럼 침입 플레이가 활성화되지 않아 아쉽기도 하지만, 이유를 살펴보면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이번 <엘든 링>의 핵심은 오픈 월드 속에서의 탐험이다 보니 과감히 이를 방해할 수 있는 멀티 플레이를 제약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 작품은 침입 승리가 좀 어렵다. 필연적으로 2 vs 1을 해야 하기 때문

외에도 많아진 축복 포인트, 보스방 전마다 존재하는 마리카의 석상과 사인 저장소를 보면 난이도에 대한 배려도 느껴진다

 

# 볼수록 깊다. <엘든 링>은 파고들수록 명작이다.

 

<엘든 링>은 소울라이크와 오픈 필드의 배합, 그리고 선택과 집중을 통해 추구한 목표를 훌륭히 이뤄냈다. <엘든 링>은 플레이어가 끝없이 죽음 속에서 세계를 탐험하길 유도하며, 만약 탐험 속에서 "이 지역은 왜 이런 모습이지?"라는 의문까지 들어 아이템 설명까지 읽기 시작했다면 이미 훌륭한 망자(프롬 소프트웨어의 팬들 지칭하는 용어 중 하나)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보다 로어를 맛깔나게 쓰는 개발사가 있을까

파면 파고들수록 빛이 나는 게임이다. 게임 초반 아직 <엘든 링>의 구조를 이해하지 못해 발생했던 문제는, 이내 게임이 추구한 방향성에 자연스레 맞춰 나가기 시작하면서 어느 샌가 잊혔다. 물론, 새로운 시도 속에서 발생한 문제도 분명 있다. 

NPC 퀘스트 동선 문제나 전기 간 밸런스, 최적화 이슈, 후반 보스의 난이도 곡선 부분 등의 문제다. 그러나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있을 뿐인 법, 단점이나 시행착오가 <엘든 링>의 장점을 모두 가리지는 못한다. 결국 치밀하게 설계된 모험의 재미가 모든 것을 압도한다.

기자 개인으로는 "<엘든 링>을 뛰어넘는 게임이 근시일 내 나올 수 있을까?"라는 의문도 든다. <엘든 링>이 보여준 결과물은 쉬이 따라 할 수 없다. 뼈를 깎는 노력과 장인 정신, 그리고 수없는 세월 속에서 쌓아 낸 노하우가 있어야 비로소 탄생한다. <다크 소울> 시리즈를 통해 게임계에 '소울라이크' 장르 유행을 이끈 프롬 소프트웨어는 <엘든 링>을 통해 다시 한번 장르를 발전시켜 냈다. 원조 맛집은 비법을 알아도 못 따라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