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니지> 이후 수많은 만화들이 온라인게임으로 다시 태어났다. 온라인게임과 만화의 소비층이 겹치는 데다, 온라인게임은 원작 만화의 이름에 기댈 수 있고, 만화는 수명이 끝난 콘텐츠를 다시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이다.
다만, 그 많은 온라인게임 중 ‘원작의 맛을 제대로 살린 온라인게임’을 찾아 보기기는 어렵다. <리니지>나 <열혈강호> 등의 흥행작 역시 원작 설정의 극히 일부를 가져오는 데 그쳤다. 원작의 제한된 세계관이나 설정을 유지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드래곤볼 온라인>은 달랐다. 게임 곳곳에서는 <드래곤볼> 특유의 개그와 설정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원작에는 없었던 다양한 설정도 이질감 없이 녹아들어 있었다. 원작자인 토리야마 아키라 작가가 게임의 모든 콘텐츠를 감수했다는 말도 과장이 아니었던 셈이다.
하지만 세계관에만 너무 치중한 탓일까? 게임 속에는 유저를 불편하게 만드는 각종 제한이 가득했고 풍부하게 마련된 콘텐츠 역시 제 몫을 해내지 못했다. <드래곤볼 온라인>을 디스이즈게임에서 살펴봤다. /디스이즈게임 안정빈 기자
■ 뼈대만 있던 원작에 살을 붙인 세계관
만화를 원작으로 한 온라인게임이 가장 먼저 직면하는 문제는 세계관이다. 만화는 등장인물을 중심으로 제한된 지역만 그리고 보여준다. 하지만 온라인게임은 만화에서는 보여주지 않았던 하나의 ‘완성된 세계’를 보여줘야 한다.
이런 점에서 <드래곤볼 온라인>의 세계관은 매우 뛰어나다. <드래곤볼 온라인>에는 원작 특유의 세계관이 그대로 묻어난다. 필드를 돌아다니는 각종 몬스터들은 원작에서 나왔던 재배맨이 분화한 것이며, 카린 숲이나 인조인간 등 원작에 나왔던 장소나 설정도 한층 상세하게 구현됐다.
원작과 비교해도 어색함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자웅동체인 부우족(?)이나 용족의 힘에 눈 뜬 나메크인 등 새롭게 추가된 설정도 자연스럽다. 나메크인의 소년병 육성 계획인 ‘개구쟁이 프로젝트’나 세계평화를 위협하는 집단 레드리본의 뒤를 이은 ‘레드팬츠단’, ‘삽겹살 특공대’ 등의 고유명사에서도 원작 특유의 아기자기한 개그 센스가 그대로 느껴진다.
스카우터를 활용한 퀘스트 탐색과 7개를 모아 소원을 비는 드래곤볼, 호이포이 캡슐을 이용한 각종 아이템 드랍과 탈것의 소환 방식도 원작의 느낌을 그대로 살렸다.
오브젝트나 지형, 캐릭터, 몬스터 등의 생김새도 원작과 비교해 전혀 어색하지 않다. 굳이 원작의 이야기에 끼어드는 타임머신 퀘스트나 인스턴스 던전이 아니더라도 드래곤볼을 소재로 한 게임이라는 걸 쉽게 알아볼 수 있다.
설정이 약간 억지스러운 것만 빼면 100점 만점이다.
■ 단순하지만 몰입하게 되는 조작과 전투
원작의 느낌을 살리는 데는 만화 같은 연출도 한몫을 거든다. <드래곤볼 온라인>에서는 적을 때리거나 스킬을 사용할 때마다 ‘퍽’, ‘콰앙’, ‘펑’ 등의 의성어가 그대로 노출된다. 같은 일반 공격이라도 2~4타로 나뉜 여러 가지 패턴이 있기 때문에 쉽사리 질리지 않는다.
실제로 전투를 벌일 때는 일반공격만 걸어 놔도 화면을 가득 메운 숫자와 의성어를 볼 수 있다. 전투 자체는 30초 ~ 1분 정도로 약간 긴 편이지만 캐릭터도 공격에 맞춰 분주하게 움직이기 때문에 보는 재미는 확실하다. 이렇게 전투는 자연스럽게 게임에 몰입하게 만든다.
조작이나 시스템도 간편하고 인터페이스도 깔끔하다. 원작 자체도 워낙 유명한 만큼 접근성, 즉 대중성에 신경을 쓴 티가 팍팍 난다.
가드나 대시, 카운터, 넉다운, 강화스킬 등을 이용해 전투가 지나치게 단순해지는 것도 막았다. <드래곤볼 온라인>에서는 적이 기술을 쓸 타이밍에 가드로 공격을 막거나, 도망가는 적을 대시로 추격할 수 있다.
또, 기를 모아서 스킬의 공격력을 높이거나 넉다운, 가드파괴 등의 부가효과를 내는 것도 가능하다. 전투의 템포가 빠르지 않기 때문에 충분히 ‘생각하면서’ 싸울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레벨 1의 전투장면. 한 유저는 이를 두고 ‘대미지는 허접한데 폼은 만렙’이라는 명언을 남겼다.
■ 재미는 있지만 너무 아끼는 타임머신 던전
<드래곤볼 온라인>에서 간판으로 내세우는 타임머신 던전도 만족스럽다.
이 게임에서는 타임머신 던전을 통해 과거의 특정 시간대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첫 타임머신 던전은 레벨 21부터 경험할 수 있고, 이후 10 레벨 단위로 한 개씩 타임머신 던전이 추가된다.
타임머신 던전의 구성은 매우 독특하다. 유저는 파티를 맺고 입장과 동시에 제한시간 안에 주어지는 목적을 달성해야 한다. 각 던전은 약 3~4개의 스테이지로 구성돼 있고, 마지막 보스를 처치하고 나면 많은 경험치와 제니(게임머니), 전설급 아이템 등을 제공한다.
타임머신 던전은 스테이지 클리어 방식이 독특하고 팀워크도 잘 맞아야 하는 대신 클리어 보상이 좋아서 사실 상 <드래곤볼 온라인>의 주력 콘텐츠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플레이 시간은 약 15분 정도로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수준이다.
원작을 보는 즐거움과 쏠쏠한 보상을 한 번에 얻을 수 있다.
다만, 타임머신 던전이 10 레벨 단위로 1개씩만 배치돼 있는 탓에 레벨을 10 단위로 올리기 전에는 같은 던전만 돌아야 한다는 것이 아쉬웠다. 퀘스트가 줄어드는 레벨 30 이후에는 5 단위로 새로운 던전이 나오거나 4~5 개의 던전 중 하나를 골라서 진행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 제한과 불편함으로 가득 찬 세계
문제는 게임 밸런스다. <드래곤볼 온라인>의 콘텐츠나 시스템 곳곳에는 게임의 자연스러운 진행을 막는 각종 제한과 불편함이 놓여 있다. 지나치게 후반 밸런스에만 치중하거나 편의성을 고려하지 않고 콘텐츠를 만든 탓이다.
첫 번째가 게임 머니다. <드래곤볼 온라인>에서 몬스터가 주는 제니는 스킬을 배우는 비용을 충당하기에도 부족할 만큼 적다. 아이템을 하나도 사지 않고 모아도 그렇다.
30 레벨의 몬스터가 주는 제니는 300 내외, 제니를 주지 않는 경우도 많다. 반면 30 레벨의 스킬을 배우는 데 드는 비용은 3~4만 제니를 웃돈다. 퀘스트를 다 깨더라도 사용할 스킬을 배울 수 있을지 불안할 정도다.
여기에 길드의 역할을 하는 유파라도 만들려면 20만 제니가, 유파 인원을 10명 늘리는 데 50만 제니가, 도장을 얻기 위해서는 약 1천만 제니가 들어간다. 캐릭터가 죽을 때마다 수 천에서 수 만 제니씩 청구되는 수리비는 보너스(?)다.
돈이 없어서 스킬 못 배우는 게임은 정말 오랜만이다.
몬스터의 체감 난이도 역시 높다. <드래곤볼 온라인>에서 유저가 한 번에 상대할 수 있는 몬스터는 2~3 마리가 고작이다. 반면 대부분의 몬스터는 체력이 떨어지면 주변의 동료들을 호출한다. 몬스터의 밀집도가 높고 아예 2~3 마리가 파티로 돌아다니는 경우도 많다.
덕분에 10 레벨 이후에는 플레이어의 사소한 실수 하나가 죽음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가뜩이나 부족한 게임머니가 수리비로 또 지출되는 것이다.
실력이 좋아 연속으로 한 마리씩 불러내더라도 3마리 정도 사냥하면 쉬어야 한다. 몬스터와 플레이어의 능력치가 거의 같은 수준이기 때문이다. 아이템을 갖추고 스킬을 사용하는 플레이어가 약간 더 강한 셈이다.
몬스터의 능력치가 높으니 그만큼 체력회복을 위한 휴식시간도 늘어나고, 이는 지루함으로 이어진다. 심지어 ‘전직 이후에도 2~3 마리 사냥 후 휴식이라는 기본 패턴’은 변하지 않는다.
파티 사냥을 하면 상황이 한결 나아지지만 퀘스트 중심 게임에서 매번 파티를 구하는 것도 쉽지 않다. 나중에 다시 설명하겠지만 퀘스트 동선도 깔끔한 편이 아니기 때문이다.
몬스터가 애드됐다는 소리가 들리면 뒤도 안 보고 도망가야 한다.
차라리 빠른 반응속도나 치밀한 전략을 요구하는 난이도라면 이해하겠는데 <드래곤볼 온라인>의 난이도는 단순히 사람을 괴롭히는 ‘숫자’에 불과하다. 간단한 조작과 원작의 친숙함으로 문턱을 낮춘 접근성이 빛을 잃는 순간이다.
■ 양도 많고 질도 좋지만 불편한 퀘스트
불편함은 퀘스트에서도 이어진다. <드래곤볼 온라인>은 퀘스트 중심의 게임이다. 레벨마다 적게는 20개, 많게는 50개 이상의 퀘스트가 쏟아진다. 레벨 30 이전에는 퀘스트만 따라다녀도 모든 퀘스트를 끝내기 전에 레벨이 오를 정도.
문제는 불편한 퀘스트 동선과 진행 방식이다. <드래곤볼 온라인>의 퀘스트 동선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꼬여 있다. 같은 장소를 몇 번씩 오가는 것은 기본. 같은 레벨 퀘스트가 맵 끝과 끝에 1개씩 위치한 경우도 있다. 동선이 복잡하다 보니 레벨이 오른 직후가 아니라면 파티를 맺고 퀘스트를 진행하기도 어렵다.
레벨이 오를 때마다 맵 전체를 2~3번 훑는다고 생각하면 된다.
진행 방식에서도 불편함은 이어진다. <드래곤볼 온라인>의 퀘스트 중에는 NPC가 소환한 특정 몬스터를 처치하는 퀘스트가 있다. 문제는 소환된 몬스터의 숫자와 플레이어가 처치해야 하는 몬스터의 숫자가 같다는 것이다.
소환된 몬스터는 주변의 누구라도 처치할 수 있으며 대부분 ‘선제공격’을 가한다. 지나가던 유저 한 명이 자신의 몸을 지키기 위해 달려드는 몬스터를 처치하기만 해도 퀘스트를 처음부터 다시 진행해야 하는 것이다. 심지어는 이런 소환 퀘스트가 마을 바로 옆에서 진행되는 경우도 있다.
■ 동기 부여와 성장의 재미가 필요하다
<드래곤볼 온라인>은 스킬 포인트가 빠듯하고 스킬의 입수에 비용이 많이 든다. 배울 수 있는 스킬이 한정돼 있다는 뜻이다.
반면, 배우는 스킬의 절반 가량이 버프인 관계로 실제로 전투에서 활용하는 스킬은 레벨 30까지 3~4개에 그친다. 마음껏 스킬을 찍기 어렵다 보니 포인트를 최대한 아끼게 되고, 레벨이 올라도 같은 스킬만 사용하다 보니 캐릭터의 성장을 느끼기도 어렵다. 심지어는 레벨 10을 올리는 동안 전투 패턴이 똑같은 경우도 있었다.
전직 이후에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는다. <드래곤볼 온라인>은 레벨 30에서 성인식을 거치면 2차 직업을 고르고, 키가 커진 성인 캐릭터로 변한다. 성인은 직업별 특화 스킬과 보조무기를 착용할 수 있다.
하지만 당장 전직 이후에 배울 수 있는 스킬은 직업당 두 가지, 그것도 하나는 버프다. 도끼나 클로, 검 등의 보조무기도 전직 후 스킬을 사용할 때만 꺼내서 쓰기 때문에 전투 패턴은 거의 변하지 않는다.
칼을 등에 매고 주먹으로 싸운다. 도끼와 클로도 마찬가지.
아이템을 통한 강화도 느끼기 어렵다. <드래곤볼 온라인>은 레벨 20이 되면 초보자용 드래곤볼을 통해 누구나 용신으로부터 아이템을 얻을 수 있다. 아이템은 해당 레벨에서 가장 좋은 방어구다. 문제는 이 방어구가 레벨 30까지 사용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아이템이라는 것이다.
레벨 30 이후에는 타임머신 던전을 통해 또 다시 레벨 40까지 사용할 최고급 아이템을 제공한다. 레벨 40에도 마찬가지다. 결국 유저는 퀘스트 보상과 몬스터 드랍 아이템 중 대부분을 상점에 판매하거나 버리게 된다. 아이템을 교체하며 강해지는 즐거움을 느끼기 어려운 이유다.
레벨 20 아이템이 레벨 30제보다 훨씬 좋은 경우도 많다. 옵션 좋은 아이템은 교체할 일이 거의 없다.
그렇다고 원작에 나오는 적들을 차례로 쓰러트리는 즐거움이 큰 것도 아니다. 레벨 30까지 유저가 만날 수 있는 원작의 적은 라데츠와 타오파이파이X 정도다. 그나마도 라데츠는 구경만 하다가 사라지고, 타오파이파이X는 퀘스트를 위해 거쳐가는 던전에 나오는 수준이다. 이후 라데츠는 레벨 30 중반에 쓰러트릴 수 있고, 레벨 40 초반에는 손오반과 싸울 수 있다.
■ 유저는 7전8기의 카카로트가 아니다
전투와 그래픽, 세계관 등의 겉모습만 봤을 때 <드래곤볼 온라인>은 뛰어나다. 전투는 박력 있고 세계관은 알찼다. 원작 만화 속 세상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그래픽도 인상적이다. 만약 내부 시스템을 제외하고 게임에 점수를 준다면 10점 만점에 9점 정도는 아깝지 않게 줄 수 있다.
하지만 <드래곤볼 온라인>의 밸런스는 지나치게 ‘먼 곳’에만 눈길을 두고 있다. 레벨 업 속도는 느린데 콘텐츠는 단조롭다. 캐릭터 레벨을 올려도 달라지는 것은 체력과 대미지 정도다. 진행도 더뎌서 오픈 베타테스트를 시작한 지 한 달이 되었지만 유저들이 싸운 상대는 라데츠와 손오반 정도가 고작이다.
영화로 비유하자면 10분이면 끝날 단편영화를 억지로 1시간으로 늘린 기분이랄까? 초반에는 새로운 시스템을 통해 약간의 흥미를 느낄 수 있을 지 몰라도 어느 정도 게임을 경험한 중반이 넘어가면 흥미가 급격히 떨어진다.
후반 인플레이션을 우려한 (것이라 추측하는) 짜디짠 게임머니 제공도 지금은 ‘독’일 뿐이다.
PvP인 랭크배틀은 특정 직업이 지나치게 강한 탓에 이용하는 유저의 수가 적었다.
유저는 몇 번씩 쓰러져도 다시 일어나는 노력파 손오공이 아니다. 그런데 <드래곤볼 온라인>은 당연하게도 게임을 하기 위해 높은 난이도와 불편함을 견뎌낼 것을 요구하고 있다. 테스트 기간 중에 한 번만 캐릭터를 키워 봤더라도 충분히 보완할 수 있었던 퀘스트 진행방식이나 용신을 통한 아이템 제공 등도 너무나 아쉽다.
다행히 최근 상용화와 더불어 레벨 31 이후의 경험치를 대폭 줄였지만 여전히 목적성은 부족하다. 레벨 30에 포기할 것이 레벨 40으로 달라진 것 뿐이다. 떠나는 유저들의 발길을 붙잡기 위해서는 대대적인 수정과 보완이 필요하다.
콘텐츠를 아낌없이 풀거나 게임의 밸런스를 전면적으로 수정할 필요가 있다. 지금의 콘텐츠 아끼기와 후반을 걱정하는 짜디짠 시스템은 유저들을 지치게 만들 뿐이다.
이런 추세라면 셀이 나올 때쯤에는 장수 온라인게임이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