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나름의 농담 같은 거죠.”
지난주 열렸던 플레이엑스포 현장에서 픽셀아트 게임을 만드는 인디 개발사 ‘안티앨리어싱’을 만났습니다. 주력 장르에 안 맞는 회사 이름을 정한 연유를 물으니, ‘농담’이라고 답했습니다. 사실 조금 더 철학적인 함의도 있다고 합니다. 기자가 이해를 못 해서 안 적은 건 비밀입니다.
그런데 ‘제목 어그로’(?)에만 홀려 안티앨리어싱 부스를 찾았던 것은 아닙니다. 이들이 출품한 어드벤처 게임 <카인드>는 짧은 플레이 영상만으로 눈길을 끌었습니다. 다양하게 펼쳐지는 게임플레이와 잘 만든 픽셀아트가 호기심을 자극했습니다.
더 자세히 살펴보고 싶어 온라인에 공개된 약 1시간 분량 데모를 플레이 해봤습니다. 기대만큼 촘촘한 콘텐츠와 잘 짜인 퍼즐 메카닉 덕에 플레이는 즐거웠습니다. 물론 아쉬운 점도 없지 않았습니다. 짧은 체험기를 공유해보겠습니다.
<카인드>는 주인공의 이름을 정하면서 시작됩니다. 이때 “몰입감을 위해 본명 사용을 추천합니다”라는 메시지가 함께 출력되는데, 분명한 연출 의도가 있는 것 같아 기대감을 줍니다. 그 의도가 무엇일지 아직은 알 수 없지만 말입니다.
그런데 주인공이 '남자 어린이'로 고정됐다는 사실은 유저 감정 이입을 유도하겠다는 이러한 취지에 어긋나는 것이어서 다소 의아합니다. 온전한 이입을 원한다면 외형과 기타 설정에도 다양한 옵션을 주는 방향을 고려해볼 만합니다.
이어지는 오프닝 컷씬에 제작진은 꽤 공을 들인 것 같습니다. 오프닝 영상은 사실 게임 완성도를 대변하는 요소는 아닙니다. 하지만 픽셀 아트를 향한 제작진의 애정을 잘 보여주고 있어 재미있게 다가왔습니다.
주인공은 개교기념일을 맞아 할머니가 계신 ‘구지마을’을 방문했습니다. ‘구지마을’의 모습은 80~90년대 한국 시골을 참고해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화물트럭, 슈퍼마켓, 주민 회관 등의 모습이 정말 어디서 본 듯 친숙합니다.
반면 간혹 보이는 스프라이트 중복은 꽤 아쉬운 지점입니다. 몇 세대 되지 않는 주택들에 서로 똑같은 시계나 테이블 등이 놓인 모습은 몰입을 해쳤습니다.
이렇듯 인공적 사물 표현에서 리얼리티가 돋보이는 데 반해, 자연물 표현은 상대적 디테일이 떨어집니다. 하지만 그 명료함은 높이 살 만합니다. 어떤 상황에서든 그 표현 대상이 명확하지 않거나, 플레이에 시각적 혼란을 주는 오브젝트를 볼 일이 거의 없었습니다.
퍼즐은 <카인드>의 메인 피쳐입니다. 공간과 스토리에 어울리는 여러 퍼즐이 자연스럽게 꼬리를 물고 이어지면서 다양한 재미를 줍니다.
짧은 데모플레이 동안에도 여러 가지 퍼즐 포맷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박스 밀기’ 등 익숙한 퍼즐 형식을 구간별로 적절히 변주해놓았기 때문에 금방 원리를 파악하고 해결에 집중할 수 있습니다. 도전정신을 적당히 불러일으키면서도 비합리적으로 느껴지지 않는 난이도 역시 적절합니다.
여기에 동료 시스템이 더해져 본편에 대한 기대감을 키웁니다. 게임 제목이기도 한 ‘카인드’는 주인공이 방문한 지역에 사는 신비한 생물 종을 말하는데, 주인공은 이러한 카인드들을 동료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카인드는 독특한 외형에 더불어 고유 스킬을 가지고 있습니다. 스킬들은 퍼즐 풀이와 게임플레이에 유의미한 변화를 줍니다. 본편에서 어떤 카인드를 만나게 될지 기대되는 이유입니다. 귀엽고 매력적인 겉모습도 긍정적 요소입니다.
동료와 흩어져 따로 행동할 수 있는 ‘분리’ 기능을 통해 퍼즐 푸는 재미를 강화한 점도 영리하게 느껴집니다. 각 캐릭터가 해낼 수 있는 역할이 다르기 때문에 상황을 조금 더 다층적으로 분석할 필요가 생깁니다. 이를 이용한 ‘시간차’ 퍼즐도 등장합니다.
분리 시스템은 <카인드>의 또 다른 메인 피쳐인 실시간 액션에도 재미를 더합니다. 동료와 주인공이 각자 위치에서 능력을 사용해야 하는 잠입 구간, 분리/합류를 재빠르게 수행해야 통과할 수 있는 추격 구간은 타이트한 긴장감을 안겨줬습니다.
<카인드>는 이처럼 게임플레이 메카닉 측면에서 상당히 매끄러운 완성도를 보여줍니다. 반면 스토리에서는 여러 뚜렷한 장점에도 불구하고 아쉬움이 적잖이 남습니다.
가장 눈에 띄는 단점은 대사의 퀄리티입니다. 인물들이 부자연스러운 문어체를 빈번하게 사용하는 모습이 어쩔 수 없이 신경 쓰입니다. 초등학교 저학년 정도로 보이는 어린이들이 어른 같은 말투로 한자 어휘를 쓰는 점은 특히 보완이 필요해 보입니다.
두 번째 아쉬운 점은 두서없이 전개되는 사건들입니다. ‘카인드’라는 미지의 존재와 조우하는 놀라운 사건도, 마을 주변의 기후가 갑자기 변하면서 다리가 파괴되는 미스터리하고 으스스한 사건도 아무런 전조 없이 갑자기 돌출합니다. 게다가 주인공은 여기에 어울리는 감정적/행동적 리액션을 거의 보이지 않아 사건이 개연성 없이 진행된다는 인상을 강화합니다.
‘복선’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마을 곳곳에 놓인 책장을 일일이 뒤져보면, 구지마을과 인근 지역에 얽힌 신비한 비밀과 역사 등을 알아낼 수 있고, 이는 각 사건에 대한 나름의 암시가 됩니다. 그러나 이렇듯 간접적인 스토리텔링은 몰입감 조성에 있어 한계가 뚜렷한 편입니다. 게다가 플레이어 성향에 따라서는 해당 정보를 전혀 접하지 못한 채 메인 스토리를 진행하게 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이때 문제는 그저 ‘초반 스토리’에 대한 몰입과 이해가 어려워진다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전체 이야기를 관통하는 테마와 이후의 이야기 역시 효과적으로 예고하지 못하기 때문에, 스토리 콘텐츠 전반에 대한 유저의 궁금증이나 기대감을 잘 끌어올리지 못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제작진에 따르면 <카인드>는 약 12시간 분량의 적지 않은 스토리 콘텐츠를 가지고 있습니다. 공개된 트레일러 등을 볼 때, 신선한 상상력으로 무장한 흥미로운 이야기가 펼쳐질 것으로 보입니다. 흡인력 높은 스토리텔링을 통해 더 많은 유저를 사로잡을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