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넓고 게임은 많습니다.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 18년 역사의 게임 전문지 디스이즈게임에서 어떤 게임이 맛있는지, 맛없는지 대신 찍어먹어드립니다. 밥먹고 게임만 하는 TIG 기자들이 짧고 굵고 쉽게 여러분께 전해드립니다. TIG 퍼스트룩!
갑자기 영하로 뚝 떨어진 기온 때문에 출퇴근 지하철은 롱패딩 밭이 되어버렸다.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느라 다들 얼굴 높이에 손을 들고 있는데, 손목에 깁스를 한 사람들이 심심치 않게 눈에 들어온다. 살얼음에 미끄러졌겠지-라는 생각보다 게임하다 열 받아서 샷건이라도 치셨나-라는 생각이 먼저 드는 우리는 밥먹고 게임만 하는 TIG 기자들이다.
도전 욕구를 자극하는 적절한 난이도는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반가워할 요소다. 한 판만 더. 진짜로 마지막 한 판만 더! 손목 깁스와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절묘한 난이도의 게임. <쉽 오브 풀스(Ship of Fools)>를 소개한다.
<쉽 오브 풀스>는 항해 로그라이트 협동 게임이다. 최대 2인까지 동승한 배 위에서 갑판 위의 적들은 노로 때리고, 바다 위의 적들은 대포로 공격하며 스테이지를 진행해 나간다. 물론 싱글 플레이도 지원한다.
"너희도 바다를 건너려는 바보들이냐?"
게임 내에서 플레이어에게 직접적으로 물어보는 대사다. 바다 곳곳에서 튀어나오는 괴물들과 끊임없이 싸워야 하는 해양 아포칼립스를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내 정체를 드러낸 진짜 바보는 험한 바다에 겁 없이 뛰어든 심장보다는 내 둔한 손이었다. 대포의 위치를 적이 많은 방향으로 옮기고 탄환도 직접 추가하면서, 갑판 위의 적들도 해치우고, 바다 위에 떠있는 아이템은 작살로 건져야 한다. 샷건에 의한 손목 부상보다 건초염이 먼저 걱정될 수준의 빠른 손놀림이 요구된다. 게임의 볼륨이 그리 크지 않아서 부상 위험도가 낮아진 것은 그나마 고무적이다.
<쉽 오브 풀스>의 첫인상은 귀여운 애니메이션 한 편을 보는 듯한 깔끔한 그래픽에서부터 시작된다. 인디 개발사인 피카 프로덕션(Fika Productions)의 첫 번째 게임 타이틀이지만, 캐릭터 디자인이나 인터페이스는 기대 이상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피카 프로덕션의 게임 개발 이전 주요 커리어는 아트 디자인이었기 때문이다.
바다 위에서의 모험이라는 콘셉트에 잘 어울리는 배경 음악과 사운드 이펙트도 큰 몫을 하고 있다. 사운드트랙의 수가 많지 않은 것은 아쉬웠지만, 하나하나의 음향 요소는 완성도가 높았다. 배의 체력이 떨어지면 음향이 먹먹해지면서 긴장감을 키워주는 연출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개발사는 캐나다 퀘벡에 있지만, <쉽 오브 풀스>는 북미 애니메이션 특유의 산만하고 과장된 연출은 최대한 지양하고 있다. 절제미가 돋보이는 데뷔작이라니 신기하지 않은가.
"폭풍에 휩쓸려 해변으로 돌아갔습니다"
배의 체력이 떨어져 사망하면 반복적으로 보게 되는 화면이다. <쉽 오브 풀스>는 다른 해상 서바이벌 게임들과는 다르게 배에만 체력이 존재하고 캐릭터에는 체력이 없다. 일시적 기절 정도의 상태 이상만 있기 때문에 플레이어는 배의 체력을 지키는 것에만 집중하면 된다. 배에 부서진 곳이 생기면 널빤지를 활용해 수리하고, 전리품으로 얻는 방패로 배의 체력을 보강한다. 하지만 널빤지와 방패를 포함해 게임 안에서 아이템을 얻을 기회가 많지 않다는 게 문제다.
로그라이트 게임답게 아이템을 얻는 거의 모든 상황에 랜덤 요소가 있다. 대포의 특수 탄환을 얻는 장소, 연잎성게를 지불하고 상자를 열어볼 수 있는 장소 등 주요 포인트들은 매 판마다 육각 격자의 맵 위에 무작위로 배치된다. 그래서 전투에 유리한 아이템을 모험 초반에 얻는 경우도 있고, 후반까지 생존해야 얻는 경우도 있다.
아이템과 아티팩트의 종류도 100가지가 넘어 조합도 다양하다. 많은 반복 플레이 안에서도 매번 새로운 아이템들을 만날 수 있었고, 그중에는 독특한 효과와 사용 방식을 가진 것들도 있어 호기심을 끊임없이 자극했다. 독특한 점은 일명 사기템이라 불릴만한 오버 밸런스는 거의 없다는 것이다. 아이템의 종류보다는 컨트롤의 비중이 커서, 대포를 쏘는 최적의 동선과 적들의 공격 패턴에 익숙해져 가는 것에만 온전히 집중하게 된다.
누적 성장을 위한 재화 텐드릴은 모험 중에 습득하거나, 점수를 합산해 보상으로 얻을 수 있다. 대포의 레벨을 올리거나, 배의 최대 체력을 올리는 등 텐드릴을 지불해 얻은 능력은 영구적으로 유지된다. 두세 판 정도 플레이하면 한 번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정도의 비용을 벌 수 있는 감질나는 밸런스를 보여준다.
11월 23일 출시한 <쉽 오브 풀스>의 699개 스팀 리뷰 중 85%가 긍정으로 12월 2일 기준 '매우 긍정적' 평가를 유지하고 있다. 2인 협동 플레이에 대한 호응이 특히 좋았고, 배 크기를 키워서 4인 협동 모드까지 출시되면 좋겠다는 의견이 많이 보인다.
로그라이트 장르에 익숙하고 손이 빠른 유저라면 4시간 정도면 마지막 보스까지 클리어할 수 있다. 아직은 최종 보스를 잡는 것 이상의 콘텐츠가 많이 준비되어 있진 않지만, 게임 내 시스템을 보면 차후 업데이트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15%의 부정 평가의 내용들은 17,400원이라는 정가에 비해 플레이타임이 짧다는 의견이 대다수였다.
몇몇 아쉬운 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쉽 오브 풀스>에는 장점이 훨씬 더 많았다. 바다 위에서 긴장감 있는 모험을 하고 싶다면, 게임은 역시 컨트롤이라고 생각한다면 주저하지 말고 이 독특한 로그라이트에 도전해보시길 추천한다.
▶ 추천 포인트
1. 만족스러웠던 그래픽과 사운드
2. 타격감, 캐릭터 모션, UI 모두 깔끔하다
3. 적절한 난이도에서 오는 긴장감과 손맛!
4. 해양 아포칼립스라는 독특한 설정
▶ 비추 포인트
1. 가격에 비해 플레이타임이 길지는 않다.
2. 손에 익는 데 시간이 좀 걸린다.
▶ 정보
장르: 로그라이트, 협동
가격: 17,400원
한국어 지원: O
플랫폼: PC(Steam), PS5, Xbox, 닌텐도 스위치
▶ 한 줄 평
잊지 못할 손맛의 항해 로그라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