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실물 게임 CD를 구매하는 사람이 이전과 비교해 부쩍 줄어든 것은 사실이다. 단어의 사용에서도 엿볼 수 있는데, 이전에 우리는 보통 '사서 하는 게임'을 '패키지 게임'이라고 불렀지만 지금은 '콘솔 게임' 혹은 '스팀 게임'이라고 부르고 있다. 각종 통계 자료에서도 디지털 다운로드 게임의 비중은 실물 패키지 판매를 앞지르는 추세다.
이전에는 박스형 형태의 포장에 설명서와 같은 다양한 구성 물품이 으레 따라오곤 했지만, 기본 게임 패키지가 플라스틱 DVD 케이스로 통일된 이후에는 CD 한 장에 코드가 적혀 있는 전단지 하나가 붙어 있는 정도가 끝이라는 점도 마니아들을 서글프게 한다. 이처럼 패키지라는 단어는 주류 게이머의 머리 속에서는 점점 희미해져 가는 모양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출간된 <우리가 사랑한 한국 PC 게임 94>은 1992년부터 2004년까지 최대한 당시 출시됐던 국산 패키지 게임의 실물 사진과 정보를 모아 정리한 책이다.
당시의 시장 상황에 대한 간략한 글이나 <마비노기>의 김동건 개발자, '시프트업'의 김형태 대표와 같은 인물들과의 인터뷰도 수록되어 있다. 이처럼 패키지의 로망이 사라져 가는 시대상 속에서, 패키지 게임이 전성기를 누리던 시절의 자료와 인터뷰를 모아 정리했다는 점에서 가치를 지닌 책이다.
책이 쓰여지기까지 과정도 다사다난했다. 첫 출발은 2019년 오픈마켓 옥션 중고장터에서 화제가 됐던 “한국 PC 패키지 게임의 역사를 구매해 주세요”라는 글이었다. 당시 게임 개발사 비트메이지의 장세용 대표는 새 게임 개발을 위해 자금이 필요했고, 업체를 대상으로 1억 원에 자신이 가지고 있던 국산 게임 267개를 판매하려 했다.
결국 게임 패키지는 판매되지 않고 국내 수집가들에게 개별로 양도됐는데, 양도 1주일 전 장세용 대표가 자료 정리의 필요성을 느끼며 아이디어가 출발했다. 그리고 제안을 받아 합류한 게임 개발자 오영욱과 '월간 게이머즈' 조기현 수석기자와 같이 패키지가 떠나기 전 빠르게 사진 기록을 남긴 후, 여러 국내 게임 전문가 및 수집가의 도움을 받아 1990년~2000년대에 출시된 94개의 게임을 선정해 출간한 책이 <우리가 사랑한 한국 PC 게임 94>다.
보통 이런 책에 대한 서평에는 '추억'이란 단어가 으레 따르지만, 아쉽게도 기자가 이 책에 대한 서평을 남기며 '추억'을 이야기하면 거짓말이다. 책에 있는 대다수의 게임은 기자가 태어나기도 전에 출시된 것이 대다수다.
그러나 90년대생이라면 알 만한 게임도 수록되어 있다. 가령 PS2가 국내 시장에서 전성기를 누리던 시절 유행해 나중에 나이를 먹고 한국 게임이라는 사실을 알고 놀랐던 <컴온 베이비>(당시 어렸던 기자는 이 게임이 일본 게임인 줄 알았다)나 국산 호러 어드벤처 <제피>가 있다.
이 당시의 게임들에 대한 추억이나 기억이 없더라도 '게임에 관한 읽을 거리'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흥미롭게 볼 만한 내용도 많다. 가령 "이런 게임도 있었어?"라는 말이 절로 나오게 하는 '서태지와 아이들'을 주인공으로 삼은 액션 아케이드 게임 <컴백 태지 보이스>나, 1998년 출시됐음에도 높은 퀄리티를 자랑하는 <에일리언 슬레이어>가 있다.
미래의 누군가가 한국 패키지 게임의 역사를 알아보고자 하면 이 책이 가장 먼저 찾아봐야 자료가 될 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정보의 바다인 인터넷이라 하더라도, 결국에는 수고스러운 과정을 거쳐 당시의 자료를 아카이빙한 믿을 만한 출처가 필요한 법이니까.
인터넷이 지금처럼 발달하지 않았던 90년대의 게임의 정보를 모아 정리한다는 것은 절대 쉽지 않은 일이다. 사라져 가는 자료들을 최대한 모아 책을 편찬한 지은이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