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앰비션 앰비션 내 동맥에 흐르는 피의 성분"
밤 11시. 나는 롤렉스 시계를 풀며 펜트하우스로 돌아온다.
실크 넥타이를 느슨하게 만들고, 은은한 조명 속에서 음악을 재생한다.3월의 밤에 어울리는 따뜻한 재즈가 좋겠다.
이내 천천히 발걸음을 술 진열장으로 옮긴다.
숙성연도가 30년은 족히 넘어가는 위스키를 온더록 글라스에 거칠게 따른다.
우아한 향을 즐기면서 내려보는 한강은 고요하다.
반짝거리는 스카이라인의 끝에는 남산타워가 솟아있다. ― 여러분 이거 다 거짓말인 거 아시죠?
인간에게는 성공하고픈 욕망이 있다. 배우 류승수는 방송에 나와 "아무도 나를 모르고 돈이 많았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무릎을 치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것이야말로 시대정신 아닐까? 기자도 미쳐가는 외식 물가에 연연하지 않을 만큼 돈이 많으면 좋겠다. 오늘 점심으로 김밥을 먹을까, 참치김밥을 먹을까 고민하는 대신, 오도로와 주도로가 기름진 자태를 뽐내는 참치를 먹고 싶다. 이는 곧 참치든 참치김밥이든 부담 없이 구매할 수 있을 만큼 사정이 여유롭다는 말이다.
그러나 성공의 과실은 소수에게만 허락된다. 기자가 이야기하는 자본주의적 성공은 비교우위 개념이다. 모두가 점심시간에 참치정식을 원 없이 즐기는 지상낙원이 펼쳐진다면, 돈 많은 사람들은 '프리미엄 오마카세'처럼 더 희소한 지경을 찾아 올라갈 것이다. 그리고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올릴 것이다. 그 돈을 어디서 어떻게 났는지 물어볼 즈음, 그들은 다음 포스트를 게시한다. 잔디밭에서 골프를 치거나, 인피니티 풀에서 헤엄치겠지.
기자 같은 사람은 침대가 너무 아늑해서, 또는 물려받은 게 많지 않아서 그런 성공을 하기 어렵다. 그래서 남의 성공담을 보고 듣는 것으로 대리만족한다. 정말이지 우리는 성공담을 사랑한다. <재벌집 막내아들>의 진양철 회장은 밑바닥부터 시작해 재계 1위의 대기업을 일궈냈다. <카지노>의 차무식은 뜨거운 의리와 두둑한 배짱으로 필리핀 카지노의 왕이 됐다. (두 드라마의 결말에 대해서는 함구하는 것으로.)
오늘 소개할 게임 <빅 앰비션즈>도 성공의 욕망을 프로그램을 통해서 채워주는 시뮬레이션 게임이다. '앰비션즈'라니 문득 생각나는 사람이 있지 않은가? "여러분 이거 다 거짓말인 거 아시죠?"의 주인공도 이른바 '성공신화'의 주인공이었다.
# "임자, 해봤어?"
주인공은 고작 열여덟 살에 할머니를 잃고 혼자가 됐다.
의지할 곳이 없어서 두려웠던 주인공에게 삼촌이 다가온다. 사업가로 성공한 프레드는 주인공에게 집과 차를 빌려주고, 사업을 가르친다. 주인공은 삼촌의 가르침에 따라서 뉴욕 최고의 경영인이 되기 위해 분투한다. 플레이어는 주인공을 조작해 그의 사업체를 일으키기 위해서 다양한 행동을 벌이게 된다. 게임적으로 프레드 삼촌은 사실상 게임의 튜토리얼을 제공한다.
커스터마이징은 다소 심심한 편
다른 경영 시뮬레이션과 다르게 <더 앰비션즈>는 주인공의 '상태' 게이지를 잘 관리해줘야 한다. 간소화된 <심즈> 같은 집에서 인테리어를 꾸미고 음식을 먹이고 재워야 정상적인 게임 플레이가 가능하다. 여기서 재밌는 지점은 '행복도'다. 게임 초반에는 매장을 열었거나, 수익을 올렸다는 것만으로도 높은 행복도를 유지하지만, 게임을 플레이하면 할수록 행복도는 보수적으로 올라가고, 쉽게 떨어진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방구석에서 비디오게임을 하는 것으로는 행복도를 채울 수 없다. 카지노 유람선을 타고 중립해역에서 카드게임을 즐기거나, '자동 주차' 기능이 있는 슈퍼카를 뽑아야 한다. 게임의 제시하는 가장 정석적인 행복도 상승은 주인공의 인생목표를 이루는 것이다. <심즈>와 유사한 주인공의 인생 목표는 90여 개로 이루어져 있는데, 더 많은 업장과 직원, 잔고 등 직관적인 목표로 채워졌다.
사업체를 꾸며나가는 게 중요하다. 기자의 업장은 차마 못 봐줄 지경이기 때문에 공식 사진으로 대체.
경영학적 '밸류체인'이 수립되기 전까지 주인공은 발로 뛰어다녀야 한다. 슈퍼마켓 점원으로 시작해 동네에 조그만 선물가게를 여는데, 삼촌은 그 옛날 정주영 회장 같은 실행정신으로 (자기 돈 아니라고) 패스트푸드점의 오픈을 지시한다. 기본적으로 샌드박스 형식의 게임이지만, 게임의 스토리모드에서는 삼촌의 말을 듣는 것이 효율적이다. 삼촌이 시키는 대로 은행에 빚을 지고, 직접 수레를 끌고 도매상에 가서 물건을 사고, 차를 타고 돌아와서 납품해야 한다.
이렇게 발로 뛰는 과정은 대단히 귀찮다. <빅 앰비션즈>에는 자동차가 있는데 실제 뉴욕이 그러하듯 주차가 심각하게 어렵다. 빈자리도 많지 않고, 잘못 주차하면 벌금을 물기도 한다. 포인트앤클릭에 WASD를 합친 게임의 조작성은 심히 낮아서 주차하다가 차를 고장 내기 십상이다. 그렇지만 사장이 부지런히 움직이면서 사업장의 그래프를 살필수록 돈은 빨리 모인다. 참고로 게임에서 주인공은 택시를 타고 다닐 수 있는데, 짐을 싣고도 택시를 탈 수 있어서 번거로운 시간을 크게 줄일 수 있다.
현실의 나는 씻지도 않고 쪽잠 자면서 사업만 할 수 없다. 도대체 성공하려면 얼마나 독해져야 하는 걸까?
게임의 뉴욕도 어딜 가나 차가 많다.
사업체를 키우면서도 주인공의 의식주를 두루 챙겨줘야 한다. 주인공의 행복도는 일부 직원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 "사람을 남기는 장사?"
<더 앰비션즈>에는 사업이 이루어지는 과정이 꽤 밀도 있게 설계되어있다. 직접 물품 수입 계약을 맺고, 물건을 선적할 창고를 임대하고, 팔레트 선반을 세워놓고, 그곳으로 물건을 넣고, 거기서 받은 물건들을 플레이어의 매장에 배달시킬 수 있다. 이 정도로 자동화가 이루어졌을 때부터 게임은 모바일 MMORPG의 자동 사냥처럼 편하다. 특별한 행동을 하지 않고 발주와 배송 일정만 관리하면 돈이 벌리기 때문이다.
프레드 삼촌은 이럴 때마다 수백만 달러, 수만 달러씩 모아오라고 부추긴다. 수백만 달러를 모으면, 펀드 투자를 가르쳐주고, 수천만 달러를 모으면 부동산 투자를 가르친다. 게임은 경영에 대해서 아주 좋은 메시지를 준다. '추월차선'을 밟기 위해 그간 지켜오던 '정도경영'의 가치를 버리고 싶을지도 모른다. 더 많은 자산을 빨리 모으고 싶은 플레이어에게 주어지는 선택지는 4가지 정도로 요약할 수 있다.
① 새로운 사업을 연다.
플레이어는 간단한 상점뿐 아니라 주류 판매점과 옷 가게, 로펌이나 웹 개발 에이전시를 열 수 있다. 뉴욕 중심가에 깔끔한 인테리어의 옷 가게를 연다면,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다. 그러나 의류는 항구에서 들여올 때 최소물량은 꽤 많기 때문에 성급하게 물량을 배정했다가 게임 시간으로 며칠 동안 유동성이 떨어질 수 있으니 천천히 사업을 확장하는 게 좋다.
로펌이나 개발사는 원자재 수입과 유통에 대해서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사람을 굴려서 고수익을 올릴 수 있기 때문에 돈을 모으기 좋다. 그러나 능력 있는 변호사와 개발자를 모집하고 키우기 위해서는 헤드헌팅과 교육에 자본을 계속 들여야 한다. 그들의 까다로운 요구를 들어줘야 하는 것도 문제다. 결국 사업을 확대하기 위해 은행의 손을 벌릴 수도 있다.
② 기존 사업장의 수익성을 극대화한다.
기존 사업장에 너무 많은 인건비나 유지비가 들고 있는지 봐야 한다. "돈이 아니라 사람을 남기는 장사" 같은 건 이 게임에서 권장되지 않는다. 가르쳐도 능률이 오를 것 같지 않은 저성과자는 애초에 뽑지 않는 게 좋다. 그런 직원을 뽑았다면, 후딱 자르는 게 좋다.
<더 앰비션즈>에서 플레이어는 철저하게 '사용자' 입장에서 세상을 경험한다. 매일 수천, 수만 달러를 벌고 있지만, 직원들이 시원찮으면 빨리 잘라야 한다. "사람을 남기는 장사"가 되게끔 능률이 좋은 직원들이 있다면, 그들이 그만두지 않도록 근무 스케줄을 잘 짜줘야 한다. '풀타임' 근무를 원한다고 뽑아놨더니만, 주당 근로 시간이 50시간만 넘어가도 불만을 표시한다.
동아시아의 작은 반도 국가에서 일주일에 69시간 정도는 일을 해야지 정신을 차리려나 보다.
'풀타임'이 최대 50시간?!
앞으로 절대로 사용자가 되지 말아야겠다.
좋은 직원들을 뽑아 잘 훈련시키는 게 중요하다.
# '"제가 사려구요, 뉴욕"
③ 매주 금요일 항구에 정박하는 카지노 유람선에 탑승해 한 방을 노린다.
돌려 말하지 말자. 쉽게 말해 도박을 하는 것이다. 크게 따고 크게 잃는다. 그러나 주인공은 허드슨강에 몸을 던지지 않아도 좋다. 사업체에서 이미 매일 수천 달러씩 벌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허공에 날려버린 돈은 꽤 속이 쓰리겠지만, 다음에 따면 그만 아니겠나?
이 배 안에서는 각종 카지노 게임을 할 수 있다.
④ 펀드에 투자한다.
게임 스토리대로 우리의 주인공이 1번부터 3번까지의 방법으로 200만 달러를 모으면, 이제 삼촌과 비슷한 백만장자의 반열에 올라서게 된다. 여기서 삼촌은 자본가의 고충을 털어놓는다. 그는 조카에게 "마이너스 금리라는 말을 들어 봤니? 은행에 돈을 맡기는 데 보관료를 지불해야 한다는 소리다"라고 불만을 표출하면서 투자 펀드에 돈을 넣으라고 지시한다.
살면서 꼭 한 번 해보고 싶은 걱정이다. 아무튼 얼리억세스 단계에서는 (뉴스 없이) 그래프 동향만 살피고, 위험도에 따라 투자하는 수준이지만, 이쯤 되면 돈이 돈을 버는 경지에 이르렀다. 패스트푸드점에서 적자 좀 나고, 직원들이 전부 그만둬서 장사 며칠 못 하면 어떤가? 이렇게 쉽게 거금을 벌 수 있는데.
대략 안전, 중간, 위험 순으로 분류가 되어있다.
<빅 앰비션즈>의 엔드 콘텐츠는 부동산 투자다. 수천만 달러짜리 빌딩에 투자해서 수익을 얻는 것이다. 최종 목표는 '뉴욕의 왕'이다. 여기까지 올라선 게임 주인공은 아마 동명의 닉네임을 가진 노토리어스 B.I.G.나 동명의 영화를 찍은 찰리 채플린보다 돈이 많을 것이다. 개발사도 스팀 페이지에 "야금야금 도시를 내 것으로 만드세요"라고 소개하고 있다.
게임 세계에서는 연방준비은행의 금리 조정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같은 뉴스도 들려오지 않는다. 주인공은 자고 싶은 만큼 자고 아침에 일어나서, 센트럴파크 한 바퀴 돌고, 커피와 크루아상을 먹고, 뉴욕시로부터 날아온 불법 주차에 따른 벌금 125달러를 쿨하게 내고 다음에 사냥할 부동산을 검토한다.
직접 지게차를 운전하며 차량에 물건을 싣던 시절이 그립다.
여러분도 게임에서 뉴욕이 왕이 될 수 있다.
# "돈의 자유를 얻으면 그 앞에 심연이 펼쳐지지."
<빅 앰비션즈>에서 부동산 부자가 되면, 게임이 재미가 없다.
돈 많고 이룰 것 다 이룬 사람들이 어째서 익스트림 스포츠나 중독성 물질 같은 극단적인 쾌락을 추구하는지 알 것만 같다. 손수레를 끌고 다니며 창고에 햄버거와 탄산음료를 채워 넣고, 직원 한 명 한 명이 아깝던 시절이 그립게 느껴진다. 비록 게임이지만 부의 끝이 이 정도로 허무하다니 생각나는 이야기가 있다.
<올 더 머니>는 우리에게 '게티'이미지로 유명한 게티 가문에 실제로 일어났던 납치극을 바탕으로 하는 영화다. 존 폴 게티는 사우디아라비아 석유 시추로 세계 제일의 부자가 된 인물이다. 1976년, 마피아 조직은 이탈리아에서 게티의 손자를 납치했다. 게티 가문의 돈을 노렸던 것이다. 범죄자 일당은 할아버지 게티에게 1,700만 달러를 몸값으로 요구했으나, 집에 손님용 공중전화를 놓을 만큼 구두쇠였던 그는 단 한 푼도 줄 수 없다고 잘라 말한다.
게티의 단언에 사건이 예상보다 늘어지자 납치범은 손자의 귀를 잘라 보내면서 몸값을 깎았지만, 게티는 협상에 응하는 대신, 아끼던 손자의 몸값에 흥정을 붙인다. 끝내 게티는 당시 소득공제 한도였던 220만 달러를 지급하고 나머지 80만 달러는 아들에게 빌려주는 방식으로 몸값을 치렀다. 영화에는 돈 때문에 혈육을 사지에 내몰았다는 여론의 비판과, 파탄지경에 이른 게티 가문의 모습이 비춰진다.
사실 게티는 쉽사리 돈을 내주었다가는 집안에 유괴가 끊이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에서 돈을 주지 않았다. 이뿐 아니라 사춘기 손자가 자작 납치극을 벌여 할아버지에게 거금을 뜯어내려 했다는 정황까지 있었다. 이렇듯 모두가 자신을 돈주머니로만 보기에, 게티는 혈육 대신 거짓말하지 않는 고미술품에 수백만 달러씩 투자했다. 그는 미술품 곁에서 이렇게 고백한다. "(돈으로) 원하는 모든 선택이 가능하게 되면, 그 순간 심연이 펼쳐지지."
진양철 회장도, 무식이 형님도 막대한 성공 뒤에 괴로운 사건을 겪는다. 같은 반열에 올리기 부끄럽지만 '뉴욕의 왕'이 된 게임 속 나도 더는 행복하지 않다. 게티처럼 후대에 남길 유산도 전혀 없고 말이다. 이렇게 보면, 모두가 선망하는 점심에 참치 사 먹을 '경제적 자유'는 꽤 텁텁하고 우울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올 더 머니> (출처: 트라이스타 픽처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