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지금 미국은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무비>(이하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가 열풍이다. 90년대를 닌텐도와 함께 보낸 '비디오 게임 키드'들은 어느새 구매력을 갖춘 성인이 되어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에 열광하고 있다.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는 북미에서 2,700억 원, 전 세계 통합 4,900억 원이 넘는 수익을 올리며 역대 최대 수익을 올린 애니메이션 영화라는 영예를 거머쥐었다.
열광적인 반응과 달리 평단에서는 영화의 줄거리가 단조롭다거나, 광고 영상 같다는 일부 비판을 내놓고 있는 상황. 팬층과 평론가의 의견이 다소 엇갈린 가운데, 개봉이 북미보다 늦는 한국에서는 영화에 대한 궁금증이 모이고 있다. 영화 개봉을 보름 앞둔 15일, 배급사 측은 용산 CGV에서 미디어를 대상으로 시사회를 진행했다. 기자는 겜잘알도 영화평론가도 못 되지만, 요행히 숟가락을 얹었다.
그리하여 얼리어답터의 심정으로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의 감상기를 정리해본다. '슈퍼 마리오'야말로 붙잡힌 히로인을 구출하는 이야기의 대명사 격이다. 그래서 스포일러 주의를 해야 하는지 의문이 들지만, 기자는 욕 먹기 싫으므로 이렇게 일러두는 게 좋겠다.
정보가 필요하거나 스크롤을 끝까지 내리기 귀찮은 여러분을 위해서 이쪽에 남겨둔다. 이 영화, <미니언즈> 급으로 귀엽다, 정말 귀여워서 옆자리 선배 기자(남자임) 손이라도 잡을 뻔했다.
참, 쿠키 영상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 미담만 적기엔 아쉬운 부분이 크다.
# 닌텐도와 일루미네이션의 '공업적 귀여움'
93분이라는 길지도 짧지도 않은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를 보면서 가장 많이 느낀 점은 영화가 대단히 귀엽다는 것이다. 제작사의 전작인 <미니언즈> 시리즈를 보고 행복했던 관객이라면,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를 보고도 비슷한 감정을 느낄 것으로 본다. <슈퍼 마리오>를 해보지 않았다고? 문제없다. '슈퍼 마리오' 이야기를 모른다고? 원래 별 이야기 없었다. 그러니까 걱정 마시라.
영화는 거의 모든 장면을 마리오 세계의 '귀여움'을 뽐내는 데 할애하고 있다. 김용하 PD의 '모에론'에서 설명하는 '모에' 없는, 섹시한 포인트라고는 특별히 없지만 크고 둥근 눈동자의 캐릭터들이 거의 모든 씬에 배치되어있다. 봉제인형 같은 마리오와 루이지가 뒤뚱뒤뚱 걷는 모습부터, 철저한 엑스트라인 쿠파군단의 졸병들, 키노피오와 버섯 친구들, 피치공주를 향해서 처량한 순애보를 노래하는 쿠파까지 귀엽다.
닌텐도와 일루미네이션은 이 영화에서 전력을 다해 귀여움을 뽑아내고 있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가 북산 5인조가 화면 가까이 걸어 들어오는 연필 스케치로 시작한다면, 오리지날 게임 시리즈를 처음으로 장편 영화로 선보인 닌텐도는 이제는 추억이 된 마리오와 루이지의 픽셀 이미지로 보여주는 크레딧부터 시작한다. 닌텐도는 영화 안에 30년 넘는 세월 동안 축적한 '슈퍼 마리오'의 IP 구성요소를 유감없이 녹여냈다. 무지개 로드라던가 미스터리 박스 같은 것들 말이다!
'슈퍼 마리오'의 팬이라면 충분히 투자할 가치가 있다. 자녀와 같이 보기에도 좋을 것이다. '꼬리 마리오'와 '고양이 마리오'가 나오는데, 참을 수 있나? 일루미네이션은 가히 공업적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큼 충실하게 소비자의 욕구에 응하고 있다. 이 귀여움에는 대책이 없다. 속수무책이다. 눈을 동그랗게 뜬 조그만 것들이 계속 나온다. 그것들이 뭔가 하고 싶은데 잘 안되는 <미니언즈>식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계속 나오고, 그 모습에 웃음을 짓게 된다.
이 영화는 언리얼엔진으로 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가지고 싶은 봉제인형 같은 느낌
# 영화로 해낸 슈퍼 마리오의 집대성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는 마리오 형제가 배수관 고장으로 위기에 놓인 브루클린을 구하러 도시의 지하로 들어갔다가 불가사의한 '초록색 파이프'를 발견해 다른 차원으로 이동한다는 이야기다. 마리오는 피치공주가 다스리는 버섯왕국에, 루이지는 쿠파가 지배하는 다크랜드에 떨어져 운명이 엇갈리고, 마리오가 피치공주와 함께 루이지를 구하는 동시에 환상의 세계 전역을 차지하려는 쿠파의 음모에 맞선다.
물론 긍정적으로 보자면,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는 이 과정에서 대단한 영화적 성취를 이루어냈다. 바로 핵심 소구층인 팬들을 만족시킬 만큼 '슈퍼 마리오' IP를 집대성했다는 것이다. 마리오가 '점프맨'이었던 시절부터 마리오의 맞수였던 동키콩이 핵심 조력자로 등장한다. 영화가 진행됨에 따라서 횡스크롤, 3D, 대전게임에 자동차 추격 씬까지 나오는데, 이는 닌텐도의 '슈퍼 마리오' 발전사에 대한 은유로 다가온다. 대전에서는 <대난투>가, 추격 씬에서는 <마리오카트>가 오마주됐다.
이렇게 그간의 '슈퍼 마리오'를 집대성하는 과정에서 설정이 조금 바뀐 부분도 있다. 원작에서 마리오는 버섯을 대단히 즐기는 캐릭터로 나오지만,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에서 마리오는 버섯을 싫어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소소한 재미를 준다. 크랭키콩이 동키콩의 할아버지가 아니라 아버지로 나오거나, 마리오의 목소리를 맡은 배우 크리스 프랫이 어색한 '맘마미아'를 할 때 어색하긴 하지만, 크게 거슬리지 않는다.
마리오가 피치공주를 구한다는 수십 년짜리 클리셰는 마리오는 동생 루이지를, 피치공주는 자신이 다스리는 왕국을 구한다는 형태로 뒤집혔다. 피치공주가 주도적이고 당당한 캐릭터로 비치는 대신에, 마리오의 오랜 파트너이자 감초 역할을 수행해온 루이지의 분량은 대단히 적어졌다.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가 채택한 가장 모험적인 요소일 텐데, 기존 세계관을 붕괴한 결정이라기보다는 새로운 가능성을 열은 쪽으로 해석하고 싶다.
피치공주는 상당히 주도적인 캐릭터로 나온다.
2인조 버디무비였다가
3인조가 된다.
# 필터를 벗기고 나면 보이는 것들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는 멈출 수 없는 귀여움으로 가득하다. 그리고 팬들을 만족시킬 만큼 40년에 가까운 IP의 역사를 한 데 묶었다. 문제는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가 93분짜리 영화라는 데 있다. 이야기의 발단부터 결말까지 그 구성이 흘러가는 과정이 설득력 있게 제시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 영화는 개연성 측면에서 아쉬운 부분이 크다. 어느 외신에서는 '슈퍼 닌텐도 월드 광고 필름 같다'는 혹평을 내놓았는데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영화 초반부 마리오와 루이지 형제에게는 3가지 과제가 주어진다. ⓐ형제의 비즈니스를 성공시키기, ⓑ 배관공 일을 우습게 보는 아버지를 설득하기, ⓒ 도시에 발생한 정체불명의 하수 역류를 해결하기. 그런데 영화의 위상은 버섯왕국과 다크랜드로 갑작스럽게 옮겨간다. 마리오와 루이지는 불현듯 빨려 들어가고, 3가지 과제에 ⓓ 형제의 상봉과 루이지의 구출, ⓔ 쿠파군단 저지가 추가된다. 이때부터 극은 루이지가 겪은 것과 유사한 마경에 빠진다.
위상 이동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홍수는 왜 발생했는지, 뉴욕의 지하에 왜 초록색 파이프가 있었던 것인지 끝까지 설득력 있게 설명되지 않는다. 가족 간의 갈등은 두 아들이 슈퍼히어로로 변신한 모습을 아버지가 자랑스럽게 여기면서 급히 마무리된다. 마리오 형제의 가족은 이번 영화에 처음으로 등장하는데 이렇게 얼렁뚱땅 존재감을 보였다가 사라진다.
초반부의 대형 사고인 하수 역류도 마찬가지로 형제의 모험 이후 저절로 해결된 것처럼 나온다. 한 번은 서로를 의심할 만한 두 형제는 전혀 갈등하지 않고, 거의 절대적으로 서로를 믿고 의지한다. 영화 종반부의 배관공 일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버섯왕국으로 옮겨진다. 귀여움은 불가해할 수 있지만, 극의 구성은 이해가 가능해야 한다. 이 점에서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는 치명적인 결함을 노출하고 있다.
거의 모든 갈등이 봉합되거나 마무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제시되는 배경음악은 주의력을 더 분산시킨다. 이 영화에는 AC/DC의 <Thunderstruck>과 보니 타일러의 <Holding Out For A Hero> 같은 8090 유행가가 계속 흘러나온다. 여기에 쿠파를 연기한 잭 블랙은 특유의 과장된 톤으로 (또 다른 서브플롯인) 피치공주를 향한 사랑까지 노래한다.
주요 관람층의 취향을 '저격'한 BGM 선정일 것이다. 그렇지만 AC/DC는 <아이언맨>과 MCU가 선점했고, 피치공주는 "나는 영웅이 필요해"라는 보니 타일러의 노랫말보다 주도적인 캐릭터다.
루이지의 분량은 크게 줄었다
쿠파는 여기서도 메인 빌런이다.
동키콩도 마리오의 조력자로 등장.
# 닌텐도, 1절은 괜찮아
게임으로 비유하자면,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는 메인퀘스트를 하지 않아도 깨지는 RPG다. 초반부의 설정은 분주하게 제시되고, 귀여움과 추억으로 기대를 끌어올리지만 퀘스트가 해결되는 과정은 (팬심을 걷어내고 보면) 만족하기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슈퍼 닌텐도 월드를 닮은 버섯왕국 스케치에 굉장히 많은 컷을 소모했다. '광고 같다'는 비판이 설득력 있게 다가오는 것이다.
닌텐도의 후루카와 슌타로는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의 성패를 살핀 뒤, 또 다른 닌텐도 IP의 애니메이션 영화화를 결정할 것이라고 시사한 바 있다. 아마 북미에서의 파괴력을 본 닌텐도는 다음 타자 출격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을 것이다. 첫 영화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는 (포켓몬스터를 제외한) 닌텐도의 데뷔이자, 팬을 향한 트리뷰트로 이해할 수 있지만, 이런 느슨한 시도가 계속된다면 '비디오 게임 키드'들도 냉정한 평가를 내릴 것이다.
그것을 어떻게 확신하냐고? 요즘 MCU를 보면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