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윈도우 기본 게임으로 깔려 있던 <프리셀>, <스파이더 카드놀이> 같은 종류의 '솔리테어' 게임들을 기억하시는가? (최근에는 무료 게임을 따로 받는 형태의 번거로움이 생겼지만, 여전히 추억의 게임이다.) 영어 어원을 보면 쉽게 알 수 있지만, 솔리테어(Solitaire)는 '혼자서 하는 카드놀이'를 포괄적으로 지칭한다. 주로 내림차순, 오름차순으로 묶음을 만들고 정렬하는 게 목표인 게임이 많다.
게임 좀 해봤다-하는 사람들이라면, '기본 게임' 수준의 로직이나 난이도엔 큰 흥미를 느끼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뇌세포들이 살려달라고 비명을 지를 정도로 '솔리테어'를 극한까지 비틀어본다면 어떨까? 게이머들의 심박수가 조금은 더 올라가지 않을까? <바바 이즈 유> 개발자 헴풀리(Hempuli)가 이런 마음으로 신작 <솔리테어 미스터리>를 내놓았다.
'솔리테어'가 달라져 봐야 뭐 얼마나 재밌겠나-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이게 내가 알던 솔리테어가 맞나 싶을 정도로, 괴상한 아이디어들이 한 곳에 모였다. 하나도 둘도 아닌, 무려 23개의 '솔리테어' 게임이 <솔리테어 미스터리> 안에 들어 있다. 미리 예고하지만, 전혀 평범하지 않았으며, 기상천외한 게임들도 많았고, 로직도 매우 정교해서 각기 다른 룰만 파악하면 정말 재밌게 즐길 수 있었다.
갑자기 카드를 찢어서(?) 활용한다거나, 0과 1 카드를 2진법으로 나열하는 방식, 심지어 시간 여행을 하는 카드도 있고, 몬스터를 무찌르거나, 카드의 정체들을 밝혀내거나, 농사를 짓는 게임도 있다. 이게 다 트럼프 카드로 가능하냐 싶겠지만, 기자도 놀랐다, 가능하더라. 게임을 잘 디자인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새삼 눈이 트이는 순간이었다.
게임명: <솔리테어 미스터리>
출시일 및 플랫폼: 2024년 4월 9일 / 잇치 아이오
개발자: 헴풀리, 헤이즐스톰, 넥사토르, 칼덴 등
가격: 3달러 (약 4,100 원)
한국어 지원: X
※ 23종의 게임 모두 인상적이었지만, 그 중에서도 더욱 기발한 게임들을 몇 개 선별해 소개합니다.
안 그래도 어려운 카드게임을 말로만 이해하는 건 쉽지 않으니, 이미지를 먼저 보여주고 설명을 이어가는 방식으로 진행하겠다. 23개의 게임 중 가장 먼저 소개하고 싶은 건, 카드를 찢어서 새로운 용도로 활용하는 <테어(Tear) 솔리테어>다.
▲ 게임을 고르는 화면이다. 각각의 게임에 대한 간략한 설명과 난이도, 성공한 횟수 등이 표시된다.
교차(서로 다른, alternating), 그림 카드(K, Q, J) 정도만 아셔도 충분하다.
이 게임의 기본 로직은 윈도우 기본 게임으로 익숙한 '카드놀이'와 유사하다. 우측에 보이는 문양이 표시된 슬롯에 카드를 오름차순으로 쌓는 게 승리 목표다.
중앙에 쌓인 카드 더미들에서는, 연결되는 숫자로 내림차순 묶음을 만들 수 있다. 다만, 서로 문양이 달라야 연결할 수 있다. (예시: 하트 7, 클로버 6, 하트 5, 다이아 4) 여기까진 익숙한 룰이다.
이제 우클릭으로 카드를 찢는 기믹이 등장한다. 찢어진 반쪽짜리 카드는 일종의 '풀(접착제)'처럼 활용할 수 있다. 이어질 수 없는 카드 묶음 사이에 반쪽짜리 카드를 놓으면, 그 아래로 새로운 묶음을 다시 이어갈 수 있다.
제약 조건은 크게 세 가지다. 숫자 연결을 무시하고 '풀'처럼 사용되는 반쪽짜리 카드도 '문양'은 달라야 원하는 위치에 놓을 수 있다. 찢어진 직후를 제외하고, 중앙 슬롯에서는 반쪽짜리 카드는 한 자리에 겹쳐지게 놓일 수 없다. 가장 결정적으로, 우측 슬롯에서 카드를 오름차순으로 쌓아올리는 과정에서는, 찢어진 반쪽 두 장 모두 놓아야 한 장을 놓은 것으로 간주된다.
<바이너리 솔리테어>는 보자마자 실소가 터졌던 게임이다. 시각적 편의성 따윈 버리고, 머리 쓰는 재미는 극대화한 게임이다.
7~1까지 내림차순으로 3개의 슬롯에 쌓으면 승리다.
이게 뭐야? 싶다면 정상이다. 기자도 그랬으니까. 1 카드 36장, 0 카드 16장으로 쌓인 더미를, 이진법으로 7~1까지 내림차순으로 3개의 슬롯에서 쌓으면 승리다. 우측에 있는 빈 슬롯 한 칸은 카드를 둘 수 있는 여분의 공간이다.
이진법 묶음으로 표시하면 1=1, 2=10, 3=11, 4=100, 5=101, 6=110, 7=111이다.
완성해야 할 슬롯도 3개인데, 옮길 수 있는 공간도 적다. 이런 제약이 많은 게임들에선 숫자를 연결하는 방식을 조금 달리한 것이 눈에 띈다. 하나의 스택 안에서도 숫자만 인접하면 오름, 내림차순이 바뀌어도 괜찮다. 예를 들어, 4-3-2-3의 연결도 가능하다는 뜻이다. 자, 이제 머리를 써볼 시간이다. 참고로, 기자는 공책과 펜까지 활용하며 플레이했다.
자, 이번엔 카드로 전투를 해보자. 물론 '솔리테어'라는 콘셉트에 걸맞게 여전히 싱글 플레이다. <엘드리치 인베이젼>에서 당신의 상대는 강력한 몬스터들이다.
우측에 로마 숫자로 11, 12, 10 카드가 세로로 3장 놓인 슬롯들이 보일 것이다. 이 자리가 몬스터 카드가 등장하는 자리다. 중앙 카드 더미에서 몬스터 카드가 맨 아래 카드로 드러나게 됐을 때, 자동으로 몬스터 카드 존에 뛰어든다.
몬스터를 쓰러트리는 방식은 간단하다. 몬스터 카드의 숫자와 동일한 '합'을 만들면 된다. 우측에 두 장의 카드를 겹쳐둘 수 있는 자리에서 '합' 연산이 진행된다. 위의 스크린샷은 합을 맞춰 카드를 내려 놓기 직전의 모습이다. 총 16마리의 몬스터를 쓰러트려야 승리한다.
몬스터는 등장하면 빠르게 처리해야 한다. 몬스터 존이 꽉 찼을 때, 몬스터가 한 번 더 더미의 마지막 카드로 드러나게 되면 패배하는 조건이 있기 때문이다.
죽은 몬스터와 전투에 사용된 카드들은 가장 왼쪽의 한 칸 짜리 슬롯에 뒷면으로 쌓인다.
눈치가 빠른 분들이라면 이번 게임에서도 카드를 옮길 수 있는 자리가 부족하다는 것을 금방 알았을 것이다. 그래서 다른 '솔리테어' 게임들처럼 내림차순으로 카드 묶음을 옮기고 연결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하나의 재밌는 변수가 있다. 에이스 카드는 일반적으로 1로 처리되지만, 이 게임에서는 몬스터와 같은 문양의 에이스 카드를 뒀을 때 7로 연산된다. '합'이 중요한 게임에서 '문양'을 이런 식으로 영리하게 활용하다니.
'불스 앤 아웃'이라 불리는 스트라이크 게임을 해보신 적이 있는가? 상대가 081을 예상했을 때, 내가 963을 제시하면 아웃. 012를 제시하면 0은 자리까지 같아서 원 스트라이크, 1은 숫자의 존재 여부를 맞춰서 원 볼이다. 082를 제시하면 투 스트라이크가 되고 081이라는 정답을 맞추면 이기는 방식의 게임이었다.
이번에 소개하는 <카운실 오브 시크릿>은 이와 유사한 방식을 가지고 있다. 12장의 그림 카드(4가지 문양의 J, Q, K)의 정체를 밝혀내는 일종의 스파이 찾기 게임이라고 보면 된다.
왼쪽은 아무 카드도 옮기지 않은 상태. 오른쪽은 우측 슬롯에 오름차순으로 카드를 쌓기 위해 하트 A를 옮긴 상태다.
잘 보면 로마 숫자로 1~12까지 표시된 12장의 회색 카드들의 위치가 조금씩 바뀐 것이 눈에 띈다. 이 12장의 카드들은 자신의 아래에 위치한 슬롯에 놓인 숫자 카드의 문양 종류와 개수에 따라, 조건에 맞춰 자리를 옮긴다.
룰이 꽤 복잡하지만 최대한 쉽게 설명하면 이렇다.
잭은 아래 슬롯에 자신과 같은 문양의 카드가 없는 자리가 있다면 그 슬롯 위로 이동한다. 클로버 잭은 아래 슬롯에 클로버가 없는 자리로 가는 방식이다.
퀸은 자신과 같은 문양의 카드가 동일한 숫자만큼 있을 때 그 슬롯 위로 이동한다. 3개, 2개, 1개의 클로버가 있던 슬롯들에서 2개, 2개, 2개가 됐다면 그 자리로 퀸 클로버가 이동하는 식이다. 다만, 0장이 놓이는 경우는 제외다.
킹은 자신과 같은 문양의 카드가 1장 이상 있으면 그 슬롯 위로 이동한다.
▲ 12장의 카드의 정체를 맞춰야 한다.
▲ 이런 식으로 회색 카드의 정체를 맞춰가며 게임을 진행한다. 모두 맞춰야 승리다.
<가든 솔리테어>는 더욱 골 때리는 룰을 가지고 있다. 문양도 우리에게 익숙한 스페이드, 클로버, 하트, 다이아도 아니다. 갑자기 농작물이 등장한다. 그렇다, 이 게임의 목표는 작물 수확이다.
이번 게임에는 호박, 옥수수, 가지, 블루베리가 등장한다. 오른쪽의 텃밭에서 작물을 모두 수확하는 것이 게임의 목표. 그런데 수확하는 조건이 진짜 독특하다. 카드 그룹의 '평균'이 4가 되어야 한다. '합'도 아니고 이젠 '평균'이라니...
위의 스크린샷에서 가지를 '니은' 모양으로 3장 배치한 것이 눈에 띌 것이다. 1, 5, 6의 3장의 평균은 4로 수확 직전의 장면이다. 이번 게임에서 중요한 건 농장물의 배치 방식이다.
가지는 기역, 니은처럼 꺾인 모양으로 3장의 카드를 평균 4로 맞춰야 수확된다. 호박은 4장의 카드를 정사각형으로 평균 4로 배치했을 때. 블루베리는 대각선으로 2~3장을 평균 4로 배치했을 때. 옥수수는 세로로 2~3장을 평균 4로 배치했을 때 수확된다.(가로로 길게 배치하는 건 안 된다)
말로만 들으면 쉬워 보일 수도 있겠으나, 평균 4의 조합을 원하는 순간에 놓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작물마다 배치 방식이 다르니 9개의 칸은 금세 뒤엉킨다. 그런데, 묘한 중독성이 있는 게임이었다. 이상하게 계속 도전하게 됐던 독특한 게임이랄까.
마지막으로 가장 '헴풀리'스러운 게임을 소개하려 한다. 그 이름은 <바바 이즈 솔리테어>. 영어 문법에 맞춰 단어를 배치하면, 게임 로직을 새롭게 형성하던 <바바 이즈 유>를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이 게임의 룰도 친숙할 것이다.
우측의 4개 슬롯에 오름차순으로 카드를 쌓는 게 승리 조건인 게임이다. 다만, 여기에 <바바 이즈 유>에서도 활용된 "OO is @@"이라는 문장 구조가 활용된다.
상단의 4개 슬롯에 놓인 바바, 포포, 지지, 케케는 이 게임에서의 문양에 해당한다. 중앙의 카드가 많은 슬롯에서는 일반적인 솔리테어 게임과 비슷하게, 문양이 다른 카드에, 연결된 숫자로 카드 묶음을 이을 수 있다. 문양이 다른 연결 묶음은 한 번에 한 장씩 끊어 옮겨야 하고, (차후 설명할 카드 효과로 만들 수 있는) 문양이 같은 연결 묶음은 한 번에 한 묶음 단위로 옮길 수 있다.
카드 머리 부분에 'is' 나 'On Same', 'Opposite' 등의 단어가 있는 카드들도 보일 것이다. 이를 꺼내 연결하면 문장을 만들고 새로운 조건을 부여할 수 있다.
상단 첫 번째 슬롯에 "바바 이즈 온 세임" 문장이 만들어진 게 보일 것이다. '주어'에 해당하는 문양은 아래의 '보어'를 만났을 때 이런 효과를 얻는다.
같은 문양(On Same): 인접한 숫자가 아니어도, 같은 문양의 카드 위에 카드를 이어 붙일 수 있다.
아무 문양(Any Suit): 다른 수트와 동일하게 취급된다.
반대(Opposite): 숫자가 뒤집힌다. (10이 1이 되는 방식)
+5: 숫자가 5 늘어난다. (10 이상의 수가 되면 1의 자리만 남기는 방식)
재밌는 점은 "바바 이즈 케케" 처럼 "명사 이즈 명사" 구조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경우엔 두 문양이 같은 문양 취급을 받게 된다.(보어 자리의 카드 문양으로 일시적으로 변한다)
<바바 이즈 유>에서도 그랬듯, 이 문장들을 계속 바꿔가며 활용한다. "바바 이즈 케케"로 한 묶음을 옮기고, "케케 이즈 반대"로 숫자를 뒤집어 새로운 연결을 만드는 식으로, 매번 옮길 자리가 막힐 때마다 문장을 교체해 카드를 옮길 새로운 방법을 찾는 구조다.
<바바 이즈 유> 개발자 '헴풀리'가 주도해 만든 신작 <솔리테어 미스터리>는 잇치 아이오에서 3달러에 구매할 수 있다. 23개의 게임이나 들었는데, 말도 안 되게 싼 가격이다. 취향에만 맞는다면, 파고들 요소가 정말 많은 게임들로 구성되어 있었고, 각각의 게임들의 개성도 뚜렷했다.
'헴풀리'는 유저와 주고 받은 댓글에서 "스팀 출시 또한 고려 중"이라고 밝혔다. 다만, 1.0 버전을 잇치 아이오에 출시했으나, 아직은 버그 수정을 더 하고 싶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자, 다시 한번 추억의 윈도우 기본 게임들을 떠올려 보자. '솔리테어'는 쉬운 게임인가? '솔리테어'의 끝은 과연 어디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