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즈 베타 테스트를 마친 지 채 한 달도 지나지 않은 <하데스 2>가 얼리엑세스로 스팀, 에픽게임즈 스토어 등 PC 플랫폼에 출시됐다. 지난해 대략적 출시 시기를 예고했다지만, 흔한 ‘기대감 부풀리기’ 마케팅 없이 시장에 바로 뛰어드는 자신감이 여상하지 않다.
이미 게임에는 만 개 넘는 리뷰가 쌓인 상태다. 96%에 달하는 리뷰어들은 얼리엑세스 상태임에도 1편보다 이미 더 풍성한 여러 성장 메카닉, 전편처럼 미려한 아트와 화려한 액션 등을 들어 게임에 찬사를 남기고 있다.
실제로 <하데스 2> 얼리엑세스는 이미 정식 출시작 수준의 볼륨과 퀄리티를 자랑하고 있다. 그러나 전작 <하데스>의 최종 버전과 비교해 동일한 수준의 재미를 주는 상태인지 묻는다면 자신 있게 답변하기 어려운 지점도 있다. 다행히 1편 역시 얼리엑세스 기간을 지나서 비로소 재미를 완성했던 바 있다. 따라서 게임의 잠재력까지 예단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현재 있는 그대로의 <하데스 2>를 살펴봤다.
<하데스 2>는 전편과 마찬가지로 그리스 신화를 토대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명계의 왕 하데스와 그 가족들은 티탄 크로노스에게 억압되어 있고, 그 결과 지옥의 질서는 어질러졌다. 본 작품의 주적인 ‘크로노스’는 시간의 신이자 티탄(Titan)인데, 발음이 서로 같은 시간의 신 크로노스(Χρόνος)와 농경의 티탄 신 크로노스(Κρόνος)의 설정이 한 데 섞여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야기를 이끄는 것은 크로노스 암살을 통한 하데스의 복권을 도모하는 주인공 멜리노에와 그의 스승 헤카테다. 헤카테에게 마녀로 길러진 멜리노에는 1편의 자그레우스처럼 지하 세계의 여러 구역을 통과하며 지상으로 향하게 된다. 여정 중에 올림포스 신들의 ‘은혜’를 습득, 능력을 강화/변형시켜 나가는 로그라이크 메카닉도 똑같이 따른다.
하데스 등 명계 신들과 천상의 올림포스까지 티탄 군대에게 위협받는 작중 상황은 사실상 자그레우스의 ‘가출 연대기’였던 1편에 비해 훨씬 비장한 맛이 있다. 한편 표면적 갈등구조 밑에 도사린 비밀들을 의도적으로 노출해 궁금증을 자아내는 스토리텔링 기법도 그대로다.
1편 팬이라면 사망 때마다 새 인물/이야기/메커니즘이 해금되는 콘텐츠 사이클에 쉽게 적응할 수 있다. 사망 스트레스 최소화와 플레이 동기부여의 두 마리 토끼를 잡았던 1편의 장점을 그대로 계승한 셈이다. 전작의 등장인물과 지역 일부를 크고 작은 이벤트로 다시 만나보는 경험 또한 즐겁다. 사랑받던 메인 BGM을 교체하지 않고 변주해 다시 사용한 센스도 돋보인다.
한편 1편 유저들이 흥미롭게 느낄 변경/추가 사항 또한 많다. 이전의 코어 메카닉을 유지하면서 조금씩 변주를 가했는데, 대부분은 선택의 폭 확장에 초점을 맞췄다.
대표적인 것은 핵심 성장 메카닉 ‘아르카나’다. 전편의 ‘밤의 거울’ 역시 총 13개 항목에서 두 가지 버프 선택지 중 하나를 골라 영구 적용하는 방식이어서 상당한 다양성을 추구할 수 있었다. 한편 이번 게임에서의 ‘아르카나’는 격자로 배치된 버프 카드들을 언락한 뒤, 이 중 몇 장을 골라 활성화하는 방식이다.
카드마다 활성화에 필요한 ‘이해도’ 점수가 모두 다르며, 그 총합은 멜리노에의 이해도 한계치를 넘어설 수 없다. 13개 항목이 모두 적용되던 밤의 거울 메커니즘에 비교하면 선택의 까다로움이 커졌다. 카드 조합에 따라 캐릭터 성능이나 플레이스타일은 눈에 띄게 달라질 수 있다. 대신 이해도 상한은 게임 진행에 따라 획득되는 별도 자원을 들여 높일 수 있다.
아르카나 시스템
이외에도 선택의 재미를 추가한 메카닉은 몇 가지 더 있다. 일례로 두 번째 스테이지부터는 다음 방으로 향하는 통로 일부가 잠겨 있으며, 해당 방의 클리어 보상도 알 수 없다. 잠금을 해제하면 약간의 전투를 거친 뒤 해당 경로가 열리면서 클리어 보상이 확인된다. 만약 다음 방 보상이 현재의 내 상황에 전혀 유용하지 않다면 생각해 볼 수 있는 선택지다.
캐릭터 성능에 직접적으로 관여하는 선택 메커니즘도 있다. 달의 여신 ‘셀레나’의 은혜로 습득할 수 있는 ‘비술’이다. 일종의 궁극기로 각 탈출 시도에서 셀레나를 처음 조우하면 해당 런에서 사용할 비술 유형을 정할 수 있다. 그다음 다시 셀레나를 만나면 이번에는 유형별 ‘강화 트리’가 열리고, 포인트를 투자해 궁극기를 자신의 마음대로 세팅하게 된다.
선택의 메커니즘은 플레이를 이어나감에 따라 점차 더해지는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스토리를 진행하다 보면 동물 동료인 ‘패밀리어’를 부릴 수 있게 되는데, 선택하는 동물에 따라 서로 다른 보너스를 얻을 수 있다.
비술 강화 트리
<하데스 2>의 주인공 멜리노에는 전투 스타일에서 자그레우스와 많은 차이를 보인다. 전투 위주 게임인 만큼, 1편과 구분되는 2편 정체성의 핵심이기도 하다. 게임을 향한 (많지 않은) 부정 의견의 상당수도 여기 얽혀 있다. 자그레우스와 멜리노에의 가장 명확한 차이는 전투의 거리 감각과 속도감이다.
‘대시’ 회피를 신속하게 여러 번 사용할 수 있었던 자그레우스와 달리 멜리노에는 (적어도 게임 초반 기준) 연속 회피를 할 수 없다. 더욱 치명적으로는 회피 동작에 상당한 ‘선딜레이’(동작 입력 후 실제 수행까지의 지연 시간)가 존재한다.
다만 이것은 다분히 의도된 지점이다. 자그레우스와 멜리노에는 각기 다른 직업적 전형을 참고하고 있는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자그레우스가 ‘마검사’에 비유될 수 있다면, 멜리노에는 ‘배틀메이지’에 견주는 것이 가장 적합하다.
실제로 멜리노에의 작중 직업은 ‘마녀’이며, 최초 무기 역시 마법 지팡이다. 또한 전편에 없던 ‘마력 게이지’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으며, 이를 소모해 특수 공격을 가할 수 있다. 마력 게이지는 매 장소(방)를 방문할 때마다 회복되지만, 전투 도중에는 회복 방법이 제한되는 편이어서(빌드에 따라 차이는 존재한다) 전략적 활용이 요구된다.
자그레우스가 마검사라면 멜리노에는 배틀메이지다. 여기서 발생하는 차이는 크다.
자그레우스의 생존은 빠른 기동과 신속한 적 섬멸에 달려 있었다. ‘대시’로 적 사이를 누비면서 위험요소를 최대한 빨리 일소하는 1편의 게임플레이와 달리, 본 작품은 적과 적정 거리를 유지하며 패턴을 침착하게 회피, 지속적 공격을 가하는 것을 주요 메커니즘으로 삼는다.
이러한 전투 디자인 지향점을 대변하는 대표적 요소는 밀레노어의 ‘마법’이다. Xbox 패드 기준 B를 눌러 발동하는 마법은 바닥에 마법진을 펼쳐 그 안에 들어오는 적을 묶어 두는 기능을 한다.
적의 이동을 봉쇄하는 기술은 대다수 게임에서 전투 난도를 크게 낮추는 요소로 여겨져 사용이 제약되거나 그 위력이 제한적이다. 이것을 기본 능력으로 부여했다는 사실에서 제작진이 바라는 <하데스 2>의 전투 방향성이 무엇인지 짐작할 만하다. 기본 공격만으로 적을 수 초간 얼릴 수 있는 ‘데메테르’ 계열 은혜들이 추가된 점도 같은 맥락이다.
적 디자인에서도 동일한 의도가 엿보인다. 초반부터 적 상당수는 플레이어에게 순간적으로 접근하며 근접 범위공격을 펼치는 패턴을 보인다. 연속 대시가 어려운 이번 작품에서는 이런 적들에게 접근할 경우 상당한 리스크를 떠안아야 한다. 결과적으로 ‘도망 다니는’ 플레이가 자연스레 펼쳐진다.
거리 유지가 필요할 때가 많다.
근접무기를 사용할 경우 전투의 다이내믹이 이전보다는 강화되지만, 이와 별개로 주인공의 회피 성능이 강하지 않은 만큼 안전하게 치고 빠지거나 긴 리치를 이용하는 전략을 취하게 된다. 그런데 자그레우스의 ‘인파이트’ 스타일과 비교해 이런 플레이방식은 지루함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있다.
제작진이 선택한 보완책은 한 번에 등장하는 적의 수를 늘리고, 주인공의 기본 딜링 능력을 낮추는 것이다. 이로써 전투 난도와 긴장감이 함께 높아지는 효과가 발생한다. 대신 전투 지속시간이 늘어나면서 체력 소진의 가능성이 월등히 커졌는데, 이 스트레스 또한 고려한 듯 1편에 비교해 체력 회복 수단이 월등히 다양해진 점이 눈에 띈다.
긴 전투 시간의 또 다른 문제점은 유저의 피로감 상승이다. 이를 해결할 방안으로는 ‘강력한 한방’을 날릴 수단을 다양하게 마련해 뒀다. 멜리노에는 기본적으로 공격/기술/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데, 이들 각각은 오래 눌렀을 경우 더 강력한 형태로 발동된다.
한 번에 등장하는 적의 개체수, 적의 증원 횟수 모두 1편보다 많다.
강화된 전투 행동에는 ‘오메가’라는 접두어가 붙는다. 오메가 행동에는 마력이 일정량 소모되지만, 훨씬 높은 피해량으로 적을 빠르게 제압하기에 수월하며, 스킬 비헤이비어(작동 방식) 또한 기본 행동과 달라 재미를 더한다.
‘궁극기’의 변화도 ‘한 방’의 재미를 심화하는 시도의 일환으로 보인다. 2편의 궁극기 ‘비술’은 1편의 ‘호출’과 비교해 그 복잡성, 다양성, 위력이 늘어났다. 무엇보다 ‘방’마다 한 번씩 사용 가능했던 호출과 달리, 일정 수치의 마력을 소모할 때마다 재사용 가능하기 때문에 사용 빈도 역시 월등히 높아질 수 있다.
이렇듯 <하데스 2>의 전투는 1편과는 다른 경험을 주축으로 삼는다. 1편의 속도감과 박진감을 포기하는 대신, 느린 호흡의 전투에서 오는 압박감, 그리고 신중히 ‘물량’을 쓸어 담을 때의 쾌감에 집중하고 있다. 원거리와 근접무기 모두 광역 딜링이 가능하다는 점에서도 이를 알아챌 수 있다.
1편보다 전투 공간이 넓은 편인데, 이 또한 도망다니며 광범위한 공격을 가하는 콘셉트에 어울린다.
지금까지 살펴본 멜리노에와 자그레우스의 차이만을 두고 <하데스 2>가 전편보다 현저한 약점을 지닌다 말하기는 어렵다. 전투 메커니즘은 아무래도 우열보다는 선호의 영역이다. 그러나 여전히 <하데스 2>의 코어 메카닉에는 전편 대비 빈약한 지점이 있다.
<하데스>가 시장의 숱한 액션 로그라이크들을 제치고 명작 반열에 오를 수 있던 비결은 수려한 액션에만 있지 않다. 매 플레이마다 확연히 다른 빌드 구축의 다양성과 만족감은 <하데스>의 인기를 견인한 주요 동력 중 하나다. 그리고 <하데스 2>는 바로 이 지점에서 ‘아직은’ 형보다 못한 동생으로 남아있다.
사실 버튼 홀드로 발동하는 ‘오메가’ 메커니즘 덕분에 <하데스 2>에서 유저가 취할 수 있는 기본 전투 행동의 종류는 <하데스>보다 많다. 그런데도 반복 플레이에서 느껴지는 전투의 다양성은 더 부족한 느낌을 준다. 이는 무엇보다도 ‘은혜’의 개성 부족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
메카닉적 변화보다는 수치적 보너스에 더 집중한 은혜가 많다.
1편에서 ‘은혜’는 신들의 개성을 잘 반영할 뿐 아니라 작동 방식, 발현 조건, 장단점 등에서 독창성을 공고히 하면서 빌드의 방향성과 플레이스타일을 유의미하게 좌우했다.
특히 다른 게임에서 흔하게 찾아보기 힘든 몇몇 독특한 은혜들이 조합과 빌드 연구의 재미를 심화했다. 예컨대 시간차를 두고 강력한 대미지를 주거나(아레스), 적 타격 시 연쇄 번개를 방출하거나(제우스), 빔 발사 터렛을 설치하는(데메테르) 등의 여러 은혜가 다양한 콘셉트 플레이를 가능하게 했다.
이와 비교했을 때 현재 <하데스 2>의 빌드 구축 경험은 아직 1편만큼의 다양성과 만족감을 주지는 못하는 인상이다. 이를테면 일부 은혜들은 단순히 공격력 강화, 범위 확대 등 정량적 측면에 주로 변화를 줄 뿐 타격 방식이나 기타 작동 매커니즘엔 변화를 주지 못해 상호 콘셉트 차별성이 크지 않다.
이에 따라 매 회차의 게임플레이가 대동소이하게 느껴지는 현상을 종종 경험하게 된다. 이때 전편에 비해 ‘얌전해진’ 전투 스타일이 문제를 한층 더 심화한다. 가령 주인공의 공격이 전격 혹은 화염 등으로 바뀐다 한들, 전투 방식이 ‘거리를 벌린 채 공격 난사’로 통일되어 있다면 게임플레이 변화를 체감하기란 힘들다.
보너스와 방어력을 동시에 더해주는 '의상' 시스템도 새로운 층위를 더한다.
다만 이 모든 맹점을 고려하더라도 게임의 전반적 잠재력을 판단하기엔 이른 시점이다. 우선 전편과 전혀 달라진 무기 구성, 무기에 추가 위력을 부여하는 ‘헤파이스토스’ 계열 은혜, 비술 테크트리, 패밀리어, 은혜별 ‘속성’ 등 신규 시스템들은 연구하기에 따라 전편과는 다른 감각과 호흡으로 전투 다양성을 심화해줄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게임은 현재 얼리엑세스 상태다. <하데스> 1편 역시 얼리엑세스 초기에는 불완전한 밸런싱과 게임플레이를 보여줬으며 최종 완성까지 2년의 적잖은 세월이 소요됐다. 이미 좋은 만듦새를 자랑하고 있는 <하데스 2>도 숙성의 시간을 거친다면, 1편에 견줄 만한 작품으로 성장하는 것도 무리가 아닐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