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온라인 게이머들, 특히 MMOG의 열광적 지지자들은 그들이 사랑하는 게임의 가장 큰 장점으로 게이머들 사이의 ‘교류’를 내세웁니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은 끊임없는 이야기를 만들어내기 마련이며 이것은 때때로 개발자가 게임에 집어 넣은 퀘스트의 길다란 지문보다 더 재미있습니다.
지금부터 제가 다룰 <R2> 라는 온라인 게임은 바로 게이머들이 만들어내는 이야기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과연 어떤 방식으로 그것을 만들어내고 있는지 한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R2>는 자기 색깔을 가지고 있는 게임입니다. 색깔이란 말은 게임의 목적이란 말로 바꿀 수 있습니다. <R2>의 목적은 바로 ‘힘’입니다. 보다 강한 힘을 얻기 위해 게이머들은 뭉쳐야 하며 이들 집단 사이의 패권다툼이 바로 게임의 진정한 재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근래 선보인 게임들의 경우는 이러한 색깔을 갖추지 못했습니다. 게임의 목적을 아예 제시하지 못했거나 그것을 지원하기 위한 시스템을 아직 만들지도 못했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R2>는 이미 공성전을 상당부분 구현해 놓았으며 이 때문에 충분히 점수를 줄만한 게임입니다.
이 글은 <R2>의 2차 클로즈 베타테스트를 경험하고 적은 체험리뷰입니다. 이제 2차 클베가 끝났을 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대로 오픈 베타테스트를 한다면 걱정되는 부분도 적지 않습니다. 좀더 좋은 게임을 기대하는 마음에서 쓴 소리 위주로 적어보겠습니다. /디스이즈게임 필진 shiraz
█ 고질적인 문제점, 커스터마이징의 부재
그러나 <R2> 역시 한국게임들의 고질적인 문제점들은 여전히 극복하지는 못했습니다. 캐릭터들은 서로 구별될만한 특별함을 갖추지 못하였습니다. 이 때문에 예를 들어 공성전을 할 경우, 아군과 적군의 식별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여기에서 누군가를 콕! 찍어서 찾아내기란 힘듭니다.
게임에는 나이트와 레인저, 엘프의 세가지 직업만 있을 뿐이지만 각 직업의 성별은 모두 하나로 제한되어 있습니다. 나이트와 레인저는 남성, 엘프는 모두 여성 캐릭터이기 때문에 만약 ‘레골라스’를 만들고 싶은 게이머가 있다면 미리 단념해야 합니다.
가까이서 봐야 어느 정도 알아볼 수 있습니다.
또한 아이템의 종류도 다양하지 못하여 이 같은 문제점을 심화시키고 있습니다. 이른바 국민아이템이 존재하며 이것에 ‘+1, +2, +3, …’식으로 강화 한다는 보편적인 방식을 따르지만, 대다수 게이머들은 외관상 확연히 구별될 차이점을 원합니다. 그 능력치에는 차이가 있겠지만 같은 아이템을 착용한 같은 직업의 캐릭터들이 우르르 모여있을 경우, 여지없이 ‘클론의 습격’이 벌어집니다.
█ 게임을 겉도는 배경음악
일본 KOEI 사의 <노부나가의 야망>으로 잘 알려진 야마시타 코우스케가 <R2>의 게임 음악을 맡았습니다. 처음 인트로 화면에서 들리는 음악은 동양적인 선율이 인상적이며 상당히 고급스럽다는 느낌을 줍니다. 하지만 게임 중에 배경 음악이 들렸나요? 기억이 나지 않는 걸 보니 없었던 듯 합니다.
영화음악을 만들 때 영화를 미리 보지 않는 작곡가는 없을 것입니다. 감독과 영화의 컨셉트에 대한 조율을 마치고 영상에서 받은 그 느낌을 음악에 담아내는데 이렇게 함으로써 영화음악과 영화는 서로 완전히 결합하게 됩니다.
<R2>는 이미 20여개의 음악을 준비해두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은 게임의 음악을 이미 만들어 놓았다면 제작자의 ‘선곡능력’이 필수적일 것 같군요. : )
█ 준비된 인터페이스, 그러나 2% 아쉽다
<R2>는 대견하게도 클로즈 베타 단계에서 필수적인 인터페이스의 대부분을 구현해내었습니다. 대화 채널은 세분화 되어 있으며 다른 게임들이 거들떠보지도 않는 필터링 또한 완벽하게 만들어놓았습니다. 또 <WoW>와 같이 여러 대화창을 띄우는 것도 가능하여 게이머들이 각자의 입맛에 맞는 설정을 할 수 있게 하였습니다.
인터페이스는 상당히 세분화된 기능을 제공합니다.
그러나 아직은 부족합니다. 폰트는 상당히 촌스러워 보이며, 상당히 공을 들여 만들어 놓은 인터페이스 설정은 로그아웃과 동시에 허공으로 날아가버립니다. 분명 기능적으로는 잘 구현해 놓았지만 외관상이나 편의적인 측면에서는 아직 보완할 점이 많습니다.
█ 예쁘지만 어울리지 않는 그래픽, 낮은 퍼포먼스
일부에서는 <R2>의 그래픽이 세밀하고 아름답다라고 말하지만 저는 그 의견에 동의하지는 못하겠습니다. <R2>의 그래픽은 최근 선보인 게임들 가운데에서 뒤떨어지는 수준이라고 봅니다.
얼핏 보기에는 깔끔한 것 같아 보입니다.
전체적으로 투박하고 거칠다는 느낌이 강합니다. 앤티앨리어싱(Anti-Aliasing)을 적용하지 않는다면 대패로 모두 다 밀어버리고 싶다는 충동을 느낄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무, 바위, 건물 등등의 배경묘사는 괜찮은 수준으로 구현되었습니다. 그러나 캐릭터나 몬스터들은 여기에 전혀 조화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캐릭터 치장을 중시한 나머지 전체적인 조화가 부족하며 거친 면이 있습니다.
각각을 두고 볼 때에는 분명 예쁘장하게 잘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이들 배경과 캐릭터들 사이의 색감과 질감의 차이가 상당하므로 마치 붕 떠 있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캐릭터에 공을 너무 많이 들였기 때문일까요? 캐릭터에 집중적으로 사용된 일명 ‘뽀샤시’ 효과는 이러한 부조화를 보다 심화시킵니다.
오히려 NPC가 게임의 배경과 더 잘 어울립니다.
하지만 이러한 외관상의 비판은 그다지 문제삼지 않아도 됩니다. 왜냐하면 뒤에 더 큰 문제점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죠. <R2>는 아시다시피 대규모 공성전을 내세우는 게임입니다. 이러한 대규모 전투에서 가장 중요시되는 것은 바로 많은 캐릭터들이 한 곳에 몰려있을 때 얼마나 높은 ‘프레임 레이트’(Frame Rate)를 유지하느냐입니다.
<R2>와 같이 대규모 전투를 추구하는 게임들에서는 이러한 퍼포먼스의 향상을 위해서 상당한 노력을 들이고 있습니다. <쉐도우베인>에서는 아예 캐릭터 몸통만 둥둥 떠다니게 할 수도 있으며 <플래닛사이드>에서는 일정 프레임 이하에서는 모두 젓가락 인형으로 변신합니다. 하지만 <R2>에서는 그러한 노력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저사양의 PC에서는 버벅임과 동시에 눕게됩니다.
고사양의 PC(Intel 3.4 / GeForce 6800 / 2GB MEMORY)에서도 모든 옵션을 켜고 하는 것은 눈에 띌 만큼의 ‘버벅거림’을 가져왔습니다. 1024x768 의 최저 해상도에서도 이런 현상은 여전했으며 공성전에서도 불편함이 있을 정도였습니다. 너무 예쁘장한 캐릭터들을 만들려고 한 나머지 전체적인 조화나 퍼포먼스의 희생을 불러온 것 같기도 합니다.
█ 공성전에 올인한 <R2>, 하지만…
<R2>의 꽃은 공성전입니다. 이것이 바로 <R2>의 목적이며 이것을 제외한다면 <R2>는 즐길 가치가 없는 게임일 뿐입니다. 이것을 위해 현재의 <R2>는 거의 대부분의 컨텐츠를 희생했습니다. 완전히 ‘올인’(All-in)한 것이죠.
<R2>에는 제대로 된 퀘스트도 없으며, 사냥은 단조롭다 못해 오토마우스의 유혹을 불러옵니다. 몬스터들은 필드에 아무렇게나 흩뿌려져 있으며 다른 게임들이 자랑하는 대규모 레이드나 에픽 아이템, 체계적인 아이템 제작 시스템 등은 눈뜨고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만약 그러한 즐길 거리를 기대한다면 <R2>는 ‘우리는 그런 거 안 팔아요’라고 말할 것입니다. 혹시, 여러 가지 즐길 거리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공성전을 하지 않는 동안 돈을 벌고 시간을 때울 소일거리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R2>의 모든 것은 오직 공성전만을 위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X'로 표시된 스팟과 노란색 성을 차지하기 위한 전투가 치열합니다.
그렇다면 그 공성전이라는 것은 얼마나 잘 만들었는가를 살펴봐야겠죠. <R2> 공성전의 핵심은 성과 그 주변에 있는 스팟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소유한 길드는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스킬 트리 이외의 유용한 스팟 스킬 뿐만 아니라 그 지역의 세금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방식으로 게임은 자연스럽게 각 길드를 패권다툼으로 유도하며, 이 과정에서 재미있는 즐길 거리들이 수없이 만들어지게 됩니다.
이를 좀 ‘좀 있어 보이는 말’로 ‘유저 내러티브’(User Narrative)나 ‘유저 제너레이티드 컨텐트’(User Generated Content)라고 지칭하기도 합니다. 각 길드 사이에 벌어지는 협력과 반목, 전투는 흥미진진하며 대다수 게이머들은 은근히 <리니지>의 그것과 같은 재미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거창하고 낭만적인 외관과는 달리 실제 속내를 살펴보면 그다지 잘 만들었다는 느낌을 주지는 않습니다.
먼저, 공성전에서는 수성이나 공성 측을 구분할 방법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성문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수성 측이 굳게 성문을 닫아 걸면 공성 측이 성문을 부수거나 성벽을 타고 올라간다는 등의 상식적인 플레이 대신 미리 가서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는 것이 중요한 전략이 됩니다.
또, 공성 시작 이후에는 게이머들이 수성이나 공성 어느 한쪽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보물을 향해 달려가는 해적무리처럼 서로 죽고 죽이는 아비규환만이 있을 뿐입니다. 게다가 카오틱 성향치와 거의 관계 없어 보이는 사망시 아이템 드랍확률은 공성전의 재미를 심각하게 떨어뜨립니다. 공성전 한번 뛰고 나면 잃어버린 장비를 회복해야 하는 후유증이 꽤 심각합니다.
공성전 현장, 길목막기가 최선의 전략입니다.
또한 공성 진행 도중에도 세련된 전술적인 묘미는 기대하기 어려우며 이른바 ‘쪽수’로 미는 플레이가 주효합니다. 캐릭터끼리 겹침이 허용되지 않으므로 성문을 막는 인간방패들과 그 너머에 레인저, 엘프들이 포진하는 단순한 진형이 주로 사용되는데 공성을 하다 보면 캐릭터들 사이에 끼어서 움직이지도 못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저 앞의 캐릭터들은 어느 편일까요? 몰라서 그냥 때릴 때가 많았습니다.
캐릭터 사이의 전투는 한마디로 ‘가만히 서서 물약 빨며 칼질하기’입니다. 그러므로 <WoW> 등의 게임에서와 같은 컨트롤의 묘미란 존재하지 않으며 누가 얼마나 많은 물약을 가지고 있으며 얼마나 ‘몸빵’이 되는지를 겨뤄보는 것이 <R2>의 PvP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R2>의 공성전을 두고 결코 잘 만들었다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헬름 협곡’에서의 전투나 <DAoC>의 실제적인 공성무기, 펄펄 끓는 기름 등이 공성전의 재미라고 생각하시나요? 그렇다면 여러분에게 제시할 <R2>의 대답은 이것입니다.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하를 보게 될 것이다.’
█ 언론 플레이로 얼룩진 커뮤니티
과거 국내에서 서비스 되었던 <쉐도우베인>은 게임의 목적인 치열한 공성전을 제대로 즐기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각 길드 사이에 벌어졌던 추잡한 언론 플레이가 누군가를 공격하는 행위 자체를 비도덕적이라고 여기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게이머들은 서비스 종료일까지 <심시티>의 온라인 버전만을 즐겨야 했습니다.
<R2>의 상황도 그다지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비록 공성전은 활발하지만 관련 커뮤니티를 살펴보는 게이머라면 누구나 눈살을 찌푸리게 될 것입니다. 대형 길드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욕설과 비아냥 섞인 언론 플레이는 게임의 품질을 상당히 훼손하고 있습니다.
게시판에 난무하는 언론플레이는 눈살을 찌푸리게 합니다.
길드간의 대립은 게임의 시스템이 제공하는 성이나 스팟 때문에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필드에서 누가 나쁜 짓을 했다든지 어느 길드의 우두머리가 나쁜 사람이라는 등의 루머에서 시작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게이머들의 감정은 서로 격화되며 앞에서 말한 유저 내러티브는 게임 외적인 요소에 의해 쓰여지게 됩니다.
만약 <R2>가 이러한 게임 외적인 요소에 의해서 좌우되지 않게 하려면 게이머들에게 <R2>의 슬로건을 확실히 주입시켜야 합니다. 도덕과 비도덕을 가르는 요소는 무엇인지, <R2> 안에서의 역할놀이(Role-Playing)란 무엇인지 아래의 슬로건으로 다시 한번 상기시켜야 합니다.
“No Rules, Just Power!”
█ 총평 : <R2>, 자기 색깔을 좀더 분명히 해야한다
여러 가지 단점에도 불구하고 <R2>는 최근 선보인 국내 게임들 가운데에서는 충분히 점수를 줄만한 게임입니다. 대다수 국내게임들이 기획만 해놓고 과대광고를 하는 동안 <R2>는 게임의 목적을 확실히 하고 그것에 올인 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무엇인가 2% 부족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세련된 맛이 없다고나 할까요? 분명 괜찮게 보이지만 ‘잘’ 만들었다고 하기는 힘듭니다. 비슷한 목적을 추구하는 게임들, 그것도 수년 전에 만들어진 게임들조차 <R2>보다 더 잘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쉐도우베인>은 아예 스스로 성을 만들고 부술 수 있습니다. <이브 온라인>은 <R2>와는 비교 자체를 불허하는 방대한 스케일을 자랑합니다.
<R2>는 이들 게임과 비교해 봤을 때 분명하게 내세울 차이점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물론 많은 국내 게이머들의 이목을 잡아당길 요소를 포함하고 있지만 그뿐입니다. 과거의 <리니지>와 그다지 차별성이 없는 공성전은 <R2>의 색깔을 희미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만약 <R2>가 몇 년 전에 나왔다면 분명 게임계의 핫 이슈가 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세상이 변했습니다. 많은 것을 포기하면서까지 공성전에 올인을 했다면 보다 확실한 자기 색깔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리니지>의 아류’라는 이름으로 지금에 머물러 있는다면 시간이 지난 후 <R2>는 ‘그저 그런 게임’들 중 하나로 기억될지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