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게임에서 ‘신선하다’와 ‘익숙하다’는 말은 양날의 검과 같습니다. 잘 쓰면 좋지만, 조금만 지나쳤다가는 게임의 재미에 상처를 입히기 십상이죠. 신선하긴 한데 너무 어색해서, 익숙하긴 한데 특별할 게 없어서 유저들의 관심을 받지 못한 게임은 따로 예를 들 필요도 없을 만큼 많습니다.
그런 면에서 <길드워 2>는 신선함과 익숙함. 두 자루의 검을 능수능란하게 다뤘습니다. 월드 이벤트와 서버 단위의 공성전, 지도의 각 포인트를 찾아가며 경험치를 얻는 탐험 등 어디서 본 듯한 시스템들이 <길드워 2>만의 방식으로 ‘뻔하지 않게’ 녹아들어 있고, 작은 차이들을 모아 게임의 플레이 방식을 바꿨습니다.
퀘스트를 따르는 의무감에 넘치던 일자진행은 사라졌고 굳이 레이드에 참가하지 않더라도 PvP, 월드 이벤트, 던전, 제작 등 어디서든 최고 수준의 아이템을 얻을 수 있습니다. 선택의 폭도 그만큼 늘어났습니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WoW)가 구축해 놓은 틀에서 벗어난 느낌이랄까요.
(패키지게임처럼 한 번 사면 월정액이 필요없는 방식에도 불구하고) 콘텐츠의 양이 많다는 점도 매력적입니다. 다만 ‘아이템의 끝’이 빨리 찾아오는 만큼 최고레벨 도달 이후 스스로 놀거리를 찾지 못한다면 질리게 됩니다. ‘비슷해 보이지만 크게 다른 게임’ <길드워 2>를 리뷰했습니다. /디스이즈게임 안정빈 기자
■ 게임에 대한 설명은 <길드워 2> 초보자용 가이드를 참고하세요
■ <WoW>의 틀에서 벗어나 유유자적한 플레이
2004년 <WoW>가 나온 이후 MMORPG에서는 이른바 ‘WoW식 레벨업’이 공식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하나의 퀘스트를 깨면 다시 하나의 (혹은 두세 개의) 퀘스트가 이어지는 ‘WoW식 레벨업’은 유저들에게 끊이지 않는 목적을 제공하고 게임의 몰입도를 높인다는 점에서 큰 인기를 얻었죠.
<길드워 2>는 이런 ‘WoW식 레벨업’에서 과감하게 벗어났습니다. <길드워 2>에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퀘스트가 없습니다. 의무적으로 진행해야 하는 던전이나 레이드도 없죠. 대신 입맛에 맞춰 즐기는 다양한 즐길거리(콘텐츠)들이 준비돼 있습니다.
스토리를 원하는 유저는 자신이 설정한 배경에 따라 진행되는 퍼스널 스토리를 통해 이야기를 진행해 나가면 됩니다. 일반적인 MMORPG 같은 퀘스트를 원하는 유저는 맵 곳곳에 위치한 하트 퀘스트를 클리어해 나가면 됩니다.
맵 곳곳에서 시간에 맞춰 열리는 월드 이벤트에 참가하거나 채집과 제작, 전투, PvP에 참여해도 경험치를 얻을 수 있습니다. 심지어 새로운 지역이나 각종 풍경 포인트(vista)만 찾아다녀도 쏠쏠한 경험치와 보상을 받습니다.
유저들은 다양한 콘텐츠 속에서 자신의 입맛에 맞는 콘텐츠를 골라서 즐기면 됩니다. 모든 콘텐츠가 경험치를 주기 때문에 레벨은 ‘알아서’ 오르게 되죠.
여기에는 <길드워 2>의 레벨 보정이 한몫하는데요, 이 게임에서는 지역마다 레벨 보정을 받습니다. 예를 들어 레벨 20 유저가 레벨 10 지역에 간다면 해당 유저의 능력치와 장비 수준도 레벨 10으로 줄어들죠.
대신 몬스터는 레벨 20에 맞춘 아이템을 떨어트립니다. (한계는 있지만) 경험치도 레벨 20에 가깝게 보정되죠. 레벨과 상관 없이 원하는 지역에서 콘텐츠를 즐길 수 있다는 뜻입니다. 퀘스트가 이전 지역과 이어지지 않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나 이야기를 이어 가도 됩니다.
절반도 안 되는 콘텐츠만 갖고도 최고 레벨을 달성하고 남을 만큼 즐길거리의 종류와 양도 풍부합니다. 실제로 리뷰를 위해 최고레벨을 달성했을 때 맵 완성도는 34%였습니다. 그나마 채집과 제작은 거의 손대지도 않았죠.
반드시 깨야 하는 콘텐츠나 시기를 놓치면 후회하는 콘텐츠도 없습니다. 심지어 몬스터에게 일정 대미지만 주면 모두가 경험치와 아이템을 얻을 수 있어서 몬스터 부족이나 다른 유저와의 경쟁을 고민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래서 <길드워 2>에서는 정말 유유자적하게 ‘하고 싶은 일만 하며’ 레벨을 올릴 수 있습니다. 하나의 퀘스트를 마치면 두 개의 퀘스트를 주는 퀘스트의 무한 증식이나, 퀘스트 구간을 맞추기 위한 의미없는 사냥 등에 질린 유저라면 큰 차이를 느낄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길드워 2>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이기도 하고요.
최고레벨(이하 만렙) 이후에도 자유로운 선택은 이어집니다. <길드워 2>에서 만렙을 달성한 유저들은 대부분 최고의 성능을 가진 엑조틱(Exotic) 등급의 장비 입수에 도전하게 되는데요, 엑조틱 장비를 얻을 수 있는 입수경로가 다양하기 때문에 세세한 성능 혹은 취향에 따라 플레이 방향을 고를 수 있습니다.
월드 VS. 월드에 참가하거나 월드 이벤트, 못 다 채운 하트 이벤트를 해결하며 얻은 카르마 포인트로 상인을 만나 교환할 수도 있고, 제작을 통해 직접 만들거나 돈으로 구입할 수도 있습니다. 월드 이벤트보다 더 큰 규모인 메타 이벤트에 참가해서 한 방 보상을 노릴 수도 있죠.
던전에서도 최고급 장비를 얻을 수 있는데요, <길드워 2>에서는 독특하게 저레벨 던전에서도 토큰을 모아 최고 레벨 장비를 획득할 수 있습니다. 물론 해당 던전에 입장하는 순간 레벨이 낮아지는 만큼 난이도에는 큰 차이가 없습니다. 게다가 던전마다 3~4개의 루트를 제공하는 만큼 선택의 폭은 더욱 넓어집니다.
엑조틱 장비의 외형과 세세한 능력치가 다를 뿐 어떤 경로로 얻은 아이템이라도 기본적인 성능은 같기 때문에 만렙 이후에도 취향에 맞는 플레이를 즐길 수 있습니다. 혹은 원하는 아이템을 위해 특정 콘텐츠를 몰아서 즐기는 일도 가능하죠.
맵마다 탐험 완료 보상이 크기 때문에 아직 탐험하지 못한 지역을 돌거나 외모(룩) 변환을 위해 다양한 디자인의 아이템을 모으는 등 장비 맞추기 이외에도 할 수 있는 일은 많습니다. 일종의 토너먼트인 sPvP에 참가해서 PvP 랭크를 올릴 수도 있죠.
최근 북미의 한 커뮤니티에서는 만렙 이후 <길드워 2>에서 할 수 있는 일이 79개라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물론 과장 및 중복이 좀 많지만 그만큼 할 수 있는 일이 많습니다. 실제로 많은 유저들이 만렙을 달성한 후 어떤 콘텐츠를 먼저 해결할지 고민하는 일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일종의 메인 미션인 퍼스널 스토리 역시 선택의 연속입니다. 퍼스널 스토리는 캐릭터의 종족과 캐릭터를 만들 때 선택한 출생과 목적, 신앙 등의 설정에 따라 달라집니다. 그 밖에도 진행 도중 자잘한 선택지를 계속 만나게 됩니다. 크게는 3개의 세력 중 어느 곳에 소속될지부터 작게는 쓰러트린 적을 죽일지 살릴지, 적의 본진과 보급기지 중 어디를 먼저 공격할지 등 선택이 꾸준히 이어지죠.
선택에 따라 스토리나 캐릭터의 성격, 대화 등이 달라지지만 여기서도 큰 흐름은 바뀌지 않습니다. 보상도 그대로인 만큼 이야기 속의 주인공이 된 것처럼 자신의 마음에 드는 선택지를 고르면 되죠. 스토리 초반에는 자잘한 선택지를 통해 캐릭터의 성격을 정하고, 후반으로 갈수록 보다 큰 선택지를 고르는 방식도 인상적입니다.
작은 분쟁에서 시작해서 세계의 위협에 맞서는 전형적인 영웅담이지만 이야기 전개는 나쁘지 않습니다. 성격에 따라 소소하게 달라지는 대화도 (영어를 이해할 수만 있다면) 좋은 볼거리죠. 어설픈 영어실력으로도 몰입도는 나쁘지 않은 편입니다.
다만 동네 학예회 수준의 발연기를 보여주는 일부 컷신이나 약간은 허무한 결말, 뒤에 다시 이야기 하겠지만 엉망진창인 난이도 등은 많이 아쉽습니다.
■ 고정된 역할은 없다! 강력한 캐릭터 세팅
<길드워 2>는 전투에서도 변화를 추구했습니다. 탱커·딜러·힐러로 구분되는 직업 구분을 파괴하고 ‘무기에 맞춘 스킬 변화’와 ‘다양한 부가효과를 가진 스킬들’, 그리고 높은 난이도 통해 전략적인 전투를 강요하고 있죠.
<길드워 2>에서는 무기에 따라 5개의 웨폰 스킬이 바뀝니다. 오른손에 든 무기에 따라 3개의 스킬이 정해지고, 왼손에 든 무기에 따라 나머지 2개 스킬이 정해지는 방식이죠. 양손무기는 당연히 5개의 스킬을 갖고 있습니다.
여기에 1개의 힐과 3개의 슬롯 스킬, 1개의 엘리트 스킬을 장착할 수 있습니다. 힐과 슬롯, 엘리트 스킬은 스킬 포인트를 투자해 배울 수 있으며 무기와 상관없이 장착할 수 있습니다. 웨폰 스킬을 주력으로 사용하면서 슬롯 스킬로 다양한 부가적인 효과를 누리는 방식이죠.
특성에서는 5개의 특성에 포인트를 나눠서 투자할 수 있으며 투자한 포인트에 따라 능력치가 오르고 5포인트마다 자동으로 효과를 발휘하는 패시브 스킬을 얻습니다. 패시브스킬 중에는 선택 가능한 패시브 스킬과 특성에 따라 고정된 패시브 스킬이 있죠.
예를 들어 만렙 워리어의 기본 능력치는 파워와 정밀도, 터프니스, 바이탈리티가 각각 916입니다. 여기서 특성을 통해 700 포인트의 능력치를, 엑조틱 아이템 기준으로 옵션을 통해 2,000 포인트 가량의 능력치를 직접 선택해 올릴 수 있습니다.
같은 워리어라도 파워와 정밀도에 능력치를 쏟아부었느냐, 터프니스와 바이탈리티에 쏟았느냐에 따라 성향이 180도 달라지죠. 조절 가능한 능력치의 범위가 굉장히 큰 편이기 때문에 엘리멘탈리스트보다 방어력이 낮은 워리어나, 공격력이 비정상적으로 높은 가디언 등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모든 직업이 장거리와 근거리 무기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고, 직업마다 100여 개의 스킬 중 10개(무기 교체를 포함해 15개)의 스킬만을 골라서 장착할 수 있다 보니 전략의 폭은 한층 넓어집니다. 여기에 특성과 이에 따른 패시브 스킬까지 고르다 보면 캐릭터 세팅에만 한나절이 걸릴 정도입니다.
극단적으로는 파워와 정밀도에 모든 능력치를 투자하고, 특성으로 라이플의 사정거리를 늘리고 스킬 재사용시간을 줄인 후, 슬롯 스킬에서 크리티컬 확률을 높이는 스킬과 방어력을 떨어트리는 스킬을 장착하고, 라이플의 연사 스킬인 발리(Volley)를 이용해 장거리 저격 워리어를 만들 수도 있습니다.
터프니스와 바이탈, 힐링파워에 투자한 후, 외치기 계열 스킬을 사용할 때 힐 효과를 받는 패시브 스킬을 장착하고, 슬롯 스킬을 모두 외치기 계열로 바꾼 뒤, 반격과 방어가 가능한 방패를 들어서 좀처럼 죽지 않는 탱커를 만드는 것도 가능합니다. 모두 실제 게임에서도 원거리 딜러로 재미 좀 봤던(?) 세팅들입니다.
■ 탱커·딜러·힐러의 구분을 없앤 던전 공략
전투에서도 각종 버프와 상태이상을 통해 상황을 유리하게 이끌어 나가야 합니다. <길드워 2>에서는 유독 상태이상(Condition)이나 버프효과(Boon)를 유발하는 스킬이 많습니다. 기본공격은 물론 웨폰 스킬에도 2개 중 하나 꼴로 상태이상 혹은 버프효과가 걸려 있을 정도죠.
상태이상은 11종류, 버프는 9종류가 있으며 각 상태이상과 버프는 간단한 아이콘으로 표시됩니다. 출혈이면 출혈, 공격력 강화면 강화 등 각종 상태이상과 버프의 효과가 정해져 있고 이를 몇 개의 아이콘으로 묶어서 보여주는 만큼 전투 중에도 자신과 적의 상태를 빠르게 판단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워리어가 적 A에게 해머쇼크 스킬을 이용해 7초짜리 이동속도 저하를 걸고 메스머가 같은 적에게 일루져너리 리프를 통해 5초짜리 이동속도 저하를 걸었다면 적 A는 총 12초 동안 이동속도가 50%로 감소하는 식입니다. 버프와 디버프 모두 정해진 아이콘만을 사용하는 만큼 익숙해지면 빠르게 전황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탱커와 딜러, 힐러의 구분도 없앴습니다. 일단 모든 직업이 자체 힐 스킬을 갖고 있고, 다른 유저를 전담으로 치유해줄 수 있는 스킬이 아예 없습니다. 가디언이 그나마 힐러에 가까운 역할을 맡을 수 있지만 보스 몬스터의 공격 한 번에 체력이 몇 천씩 날아가는 상황에서 100 단위로 차오르는 체력은 언 발에 오줌 누기도 안 됩니다.
예를 들어 가장 많은 유저들이 찾는 Citadel of Flame 던전의 중간보스는 강력한 공격력을 앞세워 유저를 괴롭힙니다. 반면 공격이 눈에 뻔히 보이는 만큼 타이밍에 맞춰 회피기술로 공격을 피하거나 아예 장거리 무기로 상대하게 되죠. 체력이 일정 이하로 줄어들면 거대한 전갈을 소환해서 바닥에 돌까지 집어 던지는 만큼 꾸준한 회피가 중요합니다.
이 밖에도 수십 마리의 전갈이 쏟아져 나오는 둥지를 재빠르게 올라가야 한다거나, NPC가 문을 열 때까지 적을 이리저리 끌고 다니고, 소화기로 불을 끄며 길을 만드는 등 ‘미니게임에 가까운’ 공략이 많이 요구됩니다.
덕분에 미끼(?) 역할을 해줄 근거리 직업 1명 정도를 제외하면 파티구성도 자유롭습니다. 던전 보상도 토큰을 얻은 후 교환하는 방식인 만큼 굳이 직업을 맞출 필요도 없죠.
좋게 말하면 가볍게 미니게임을 즐기듯 깰 수 있고, 나쁘게 말하면 강력한 적에게 힘을 모아 대항하는 웅장함은 조금 적은 편입니다.
■ 신선하지만 아직은 걱정되는 과금방식
과금형식도 독특합니다. <길드워 2>는 패키지 판매와 부분유료 방식을 동시에 사용하고 있습니다. 패키지를 구입하고 나면 추가과금 없이 게임을 즐길 수 있지만 각종 캐시 아이템을 팝니다.
캐시로는 잼(GEM)을 사용하는데요, 판매하는 캐시 아이템도 창고나 인벤토리 확장, 꾸미기, 약간의 경험치 버프 정도에 그치는 만큼 패키지 구입 이후에는 현금 지불 없이 즐길 수 있습니다.
게다가 잼과 골드(게임머니)의 교환이 가능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유저들이 최고 레벨 달성 이후 필요할 경우 골드를 잼으로 바꿔서 사용하고 있죠. 심지어 매일매일 시세도 달라집니다.
개발사의 수익면에서는 걱정이 됩니다만 덕분에 <길드워 2>에서는 아직까지는 인플레이션 현상을 보기 어렵습니다. 골드가 생겨나는 만큼 꾸준히 소모되니까요.
■ 캐릭터보다는 배경이 더 아름다운 세계
좋은 그래픽의 기준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단순히 캐릭터가 예쁠 수도 있고 뛰어난 엔진을 통해 사실적인 물리효과나 세밀한 텍스쳐를 보여줄 수도 있죠. <길드워 2>는 사실적인 배경을 자랑으로 내세웠습니다.
최근 게임들에 비해 <길드워 2>의 캐릭터 모델링은 투박합니다. 모공까지 보일 듯한 매끄러운 피부결도, 음각하나하나까지 표현된 세밀한 복장도 찾아볼 수 없죠. 단순히 캐릭터만 놓고 보자면 몇 년 전 나온 국내 MMORPG들이 훨씬 낫습니다.
그 대신 <길드워 2>는 배경과 사실적인 표현에 집중했습니다. 고원에서 산으로, 다시 강과 숲으로 이어지는 맵은 평지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들쑥날쑥하고 높은 산에는 잡목이 가득합니다. 바닷가에는 해안에서 떠밀려온 거대한 산호초와 유물 파편들이 넘쳐 흐르고 설산에서는 폭설과 강풍, 번개가 몰아칩니다.
지형의 높낮이가 극명하고 눈에 보이는 대부분의 지형을 올라갈 수 있는 만큼 배경이 한층 실감납니다. 유저가 지나갈 때마다 재잘거리는 NPC의 대화나 건물 안쪽, 길바닥 등에 버려진 잡동사니, NPC의 고민이 녹아 든 하트 퀘스트도 사실성을 더하죠.
아름다운 배경을 뒤로한 채 유저끼리 모여 몸으로 치고받는 전통놀이(…)를 즐기거나 눈덩이를 던져 벌떼를 쫓고, 만렙 토끼(?)를 피해 식량을 옮기기도 합니다. 배경 하나만큼은 지금까지 나온 어떤 게임과 비교해도 부족함이 없습니다. 여기에 유유자적한 플레이가 겹치다 보니 진짜로 게임 속에서 살아 가는 느낌입니다. 다만 그만큼 시스템 요구사양은 다소 높은 편입니다.
야생의 마을을 달리는 차르.
■ 필드 레이드의 끝, 메타 이벤트
정해진 시간마다 열리며 대규모 인원이 동원되는 메타 이벤트도 다양한 공략의 재미를 줍니다. <길드워 2>에는 스토리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는 강력한 보스들이 월드 이벤트로 등장합니다. 이들은 일반 월드 이벤트에 비해 압도적인 강력함을 보여주고 그만큼 보상도 강력(?)하죠.
예를 들어 아이스 드래곤인 조르마그의 발톱(the Claw of Jormag)은 등장 후 강력한 얼음벽으로 자신을 보호합니다. 얼음벽에 가까이 가면 한기에 대미지를 입기 때문에 장거리 무기로 벽을 파괴한 후 대미지를 입혀야 하죠.
조르마그의 발톱은 얼음벽 밖에서 강력한 얼음파도를 날리거나 몬스터가 생성되는 크리스탈을 뿌리며 유저들을 괴롭힙니다. 이후 체력이 떨어지면 NPC의 포격에 의해 날개가 파괴되고, 폭탄을 든 자폭로봇들이 조르마그의 발톱을 향해 돌진합니다. 자폭로봇을 지키며 폭발에 의해 조르마그의 발톱이 기절했을 때 대미지를 입히면 그를 쓰러트릴 수 있죠.
각 메타 이벤트는 몇 개의 월드 이벤트와 함께 연이어 벌어지는데요, 하나하나가 해당 지역의 스토리를 끝맺는 역할을 합니다. 스토리와 세계관 관심이 있는 유저라면 상당한 재미를 맛볼 수 있죠.
참고로 <길드워 2>에서는 긴급회피를 통해 적의 공격을 피할 수 있는데요, 던전과 메타 이벤트에서는 긴급회피를 쓸 일이 아주 많기 때문에 마치 액션게임을 하듯 적의 공격을 피하며 싸우는 일이 자주 벌어집니다.
벽을 부수고 나면 직접 대미지를 입힐 수가 있다.
■ 버그워? 쏟아지는 버그와 버그에 가까운 난이도
문제는 버그와 버그 뺨치는 난이도입니다. <길드워 2>에는 버그가 참 많습니다. 버그 수정만으로도 업데이트 목록을 가득 채우고도 고치지 못한 버그가 남을 정도입니다. 특히 버그가 몰린 후반부에는 한 지역에 두세 개씩 중요한 버그들이 산적해 있죠.
월드 이벤트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 건 기본이고 몬스터가 무적 상태에 빠진다거나 갑자기 사라지고, 스킬 퀘스트나 비스타 포인트가 작동되지 않아서 맵 공략을 끝내지 못할 때도 많습니다. 던전에서도 잊을 만하면 생기는 버그 때문에 짜증 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죠.
계속되는 업데이트를 통해 수시로 버그를 고치고 있습니다만, 여전히 곳곳에 버그가 있습니다. 오죽하면 맵 100% 공략을 위한 최고의 시기는 서버 다운 직후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니까요.
난이도 조절도 엉망입니다. <길드워 2>의 난이도는 심하게 들쑥날쑥합니다. 혼자서 진행하는 퍼스널 스토리에서 갑자기 4~5명의 적을 동시에 상대하라는 건 예사고 일부 던전에서는 무한 부활 수준의 공략을 요구하는 곳도 있습니다.
원하지 않는 몬스터가 달라붙는 일명 애드(Add)가 비일비재로 벌어지는 지옥 같은 장소도 있죠. 그나마 꾸준히 어려우면 원래 그렇다고나 생각했을 텐데요, 끔찍하게 어려운 퀘스트나 던전 이후 갑자기 애들 장난 수준의 보스가 나오는 경우도 많습니다. 어려움과 쉬움이 정신 없이 섞인 상황이랄까요.
만렙을 달성한 후의 동기부여도 부족합니다. 만렙까지는 모든 행동이 경험치로 이어지는 만큼 유저의 동기가 확실해지지만 만렙 이후에는 상황이 다릅니다.
지역마다 레벨과 아이템 성능 보정이 있는 만큼 아이템을 바꿔도 큰 차이를 느끼기 어렵고, 그나마 최고수준의 아이템인 엑조틱 장비도 조금만 노력하면 쉽게 맞추다 보니 장비 세팅을 끝내고 던전과 월드 이벤트만 반복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죠. 혹은 다음 업데이트나 확장팩을 기약하며 게임을 떠나거나요.
참고로 <길드워 2>는 장비의 외형을 굉장히 강조했습니다. 엑조틱 이후에도 외형이 엄청나게 바뀌는 레전더리 아이템을 만들거나, 던전 장비들을 합성하고, sPvP에서 랭크를 올려서 새로운 외형의 갑옷을 얻을 수 있는데요, 정작 성능의 차이가 전혀 없으므로 외형에 큰 관심이 없는 유저라면 매력을 느끼기 어렵습니다.
토너먼트인 sPvP도 전용 장비를 사용하고, sPvP에서 얻은 아이템을 일반 필드에서 사용할 수 없는 만큼 ‘순수한 재미’가 아니면 동기부여가 어렵습니다. MMORPG의 고질적인 숙제인 만렙 이후 가이드라인을 확실하게 제시해 주지 못하고 있죠. 오랫동안 꾸준히 성장해 나가는 즐거움을 원하는 유저들에게는 만렙 달성 후 엑조틱 아이템을 모으는 순간 모든 콘텐츠가 끝난 셈입니다.
그나마 최종 콘텐츠에 가장 가까운 것이 자신의 장비를 그대로 사용하는 월드 VS. 월드인데요, 정작 만렙 이후에는 월드 VS. 월드의 보상이 필요없는 경우가 많아 큰 의미를 주지 못합니다.
<길드워 2>에서는 각 서버의 실력에 맞춰 3개씩의 서버를 묶어 일주일 동안 서버 전쟁을 벌입니다. 이긴 서버는 이긴 서버끼리, 진 서버는 진 서버끼리 실력에 맞춰 무한히 승부를 겨루는 방식입니다.
대규모 전쟁은 물론 성을 중심으로 각종 공성무기가 동원되고, 길드의 문장을 점령한 성에 새기는 등 재미와 명예, 그리고 실리를 함께 누릴 수 있습니다. 전장에 들어가기 위한 대기시간만 짧게는 5분에서 길게는 1시간에 달할 만큼 <길드워 2>에서 가장 뜨거운 반응을 보이는 콘텐츠입니다.
그런데 만렙에 도달하고 모든 아이템을 맞추고 나면 월드 VS. 월드에 참가할 목적이 사라집니다. 월드 VS. 월드의 보상인 경험치와 카르마 포인트를 쓸 일이 없으니까요. 만렙 이후에도 경험치를 모으면 꾸준히 스킬 포인트를 얻을 수 있지만 배울 만한 스킬은 이미 전부 익힌 후입니다. sPvP처럼 랭크가 오르는 것도 아니고요.
월드 VS. 월드에 꾸준히 몰두할 수 있는 전용 보상, 아니면 무언가 ‘클리어해 나간다’는 기분을 느낄 수 있는 새로운 동기부여가 필요할 듯합니다. 개인적으로는 특수한 스킬을 찍거나 약간의 능력치를 올릴 수 있는 <다크 에이지 오브 카멜롯>의 렐름 랭크 같은 시스템을 기대했는데 아쉽더군요.
■ 너프로 일관하는 불안한 업데이트
초기 운영과 업데이트 방향도 지적할 점이 많습니다. <길드워 2>의 업데이트는 대부분 하향 패치입니다. 레벨업 혹은 아이템 습득에 괜찮다 싶은 방법이 있다면 가차 없이 업데이트 대상이 됩니다.
요리를 통한 레벨업이 주목받자 카르마 포인트를 이용한 요리 재료 판매상을 90% 이상 없애 버렸고(…) 특정 구간 월드 이벤트 반복이 효과적이라는 이야기가 나오자 월드 이벤트 보상을 확 깎았습니다.
최고 레벨 이후 레어 아이템을 값싸게 구매할 수 있던 상인은 일주일 후 10배로 오른 바가지 요금과 함께 돌아왔고, 던전을 통한 골드와 토큰 수집이 인기를 끌자 모든 던전을 어렵게 바꾸고 보상을 줄였습니다.
밸런스를 잡는 것은 좋지만 매번 너프로 일관하는 만큼 유저들의 반발은 심해질 수밖에 없죠. 심지어 초반에 혜택을 본 유저들조차 후발주자에 대한 차별 문제를 걱정할 정도입니다.
여기에 앞서 말한 버그와 난이도까지 겹치면서 웃지 못할 일도 왕왕 생기는데요, 예를 들어 인기 던전인 Citadel of Flame는 최근 업데이트를 통해 보상이 절반으로 줄어들고 난이도가 상승하면서 유저들의 발길이 뚝 끊겼죠.
하지만 던전 보상을 두 번 얻을 수 있는 버그가 발견되고 어려운 부분도 역시 버그를 통해 해결하는 방법이 나오면서 다시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아레나넷은 버그 혹은 효율이 좋은 루트를 꾸준히 너프하고, 유저들은 다시 새로운 버그와 효율을 찾아내는 악순환입니다.
Citadel of Flame 던전의 흥망은 현재 <길드워 2>의 업데이트의 상황을 잘 보여줍니다.
■ <WoW>의 틀을 벗어난 새로운 도전
<길드워 2>는 <WoW>의 틀을 깨겠다는 아레나넷의 의지가 보이는 MMORPG입니다. 아레나넷은 <길드워 2>의 서비스 전부터 고리타분한 퀘스트 중심의 진행과 전투방식을 비판해 왔죠.
그렇다고 <WoW>의 틀을 벗어나기 위해 무모한 도전을 택하지는 않았습니다. 그저 지금까지의 콘텐츠를 잘 다듬고 쌓아둔 후에 거기에 <길드워 2> 특유의 양념을 가미했을 뿐이죠. 그 과정에서 유저의 자유로운 선택을 방해하는 ‘정해진 루트’만 빼버렸습니다.
지금의 <길드워 2>는 마치 산더미처럼 과자를 쌓아 두고 원하는대로 집어 먹는 것 같은 게임입니다. 입맛에 맞는 과자만 골라 먹어도 충분히 배가 부르죠. 편식을 한다고 감시하는 사람도 없고 남은 과자는 입맛에 맞는 과자를 모두 먹은 후 천천히 도전해도 됩니다. 정 맛이 없으면 그냥 버려도 무방하고요. 이미 배는 충분히 불렀으니까요.
<WoW> 이후 MMORPG의 발전이 멈춰 있다고 생각하는 유저라면 꼭 플레이하기를 권합니다. 정해진 퀘스트를 따라가지 않아도, 스토리를 하나도 하지 않아도 충분히 게임이 재미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게임입니다.
각종 버그와 진짜 이건 아니다 싶을 만큼 난이도 조절에 실패한 퀘스트, 던전을 감안하더라도 59.99달러의 값어치는 충분히 하고 남습니다. 이번 리뷰에서는 9점을 줬지만 만약 ‘가격 대비 성능’을 감안한다면 10점을 줘도 아깝지 않은 게임입니다.
다만 스스로 목적을 세우는 일이 익숙하지 않거나 아무런 고민 없이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가는 ‘편한 MMORPG’를 찾는다면 <길드워 2>가 만족스럽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현재 <길드워 2> 최고의 단점은 만렙 이후의 동기부여니까요. 영어가 크게 필요하진 않지만 기본적인 영어가 안 된다면 게임의 스토리와 세계관의 재미가 반감되니 이점도 주의해 주세요.
전작을 즐긴 유저라면 익숙한 그웬의 무덤. <길드워 2>는 전작의 200년 후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