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적인 모습을 드러낸 <천룡기>의 첫인상은 ‘아저씨 게임’ 같았습니다. 전투와 이동은 마우스에 의존하고 자동이동과 각종 편의성 시스템을 지원하죠. 헤매는 일이 없도록 진행도 ‘외길’입니다. 여기에 콤보 방식의 연속기와 NPC 우호도, 염색, 업적, 제작, 회피기동 등 최신 게임에서 많이 사용하는 시스템을 자연스럽게 접목했습니다. 깔끔한 그래픽도 인상적입니다.
종합해서 표현하자면 ‘최신 아저씨게임’ 정도가 되겠네요. 다만 퀘스트 동선이나 커뮤니티 유도 등의 부분은 보완이 필요해 보였습니다. /디스이즈게임 안정빈 기자
■ 좋게 보면 쉽고 편한, 나쁘게 보면 낡은 시스템
<천룡기>는 요즘 게임으로는 보기 드물게 마우스에 전적으로 의존한 조작방식을 택하고 있습니다. 마우스 클릭으로 이동하고 마우스로 적을 클릭하면 이동 후 자동으로 공격을 시작합니다. 스킬의 쿨타임도 짧게는 10초, 길게는 8분 가량으로 길고, 이동과 공격을 함께할 일이 없어서 모든 행동을 마우스로만 처리해도 불편함이 없습니다.
W, A, S, D 키를 통한 이동도 가능하지만 지형은 복잡한 반면 점프가 없고 작은 물체조차 넘어갈 수 없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마우스 위주로 이동하게 되더군요. 여기에 스킬 숙련도와 ‘인스턴스 방식이 아닌’ 던전도 있습니다.
그만큼 조작은 쉽고 편합니다. 자동이동을 지원해서 거의 모든 지역을 클릭만으로 이동하고 길은 외길이라 고민할 필요도 없죠. (돈만 있다면) 무공도 충분히 배울 수 있는데다가 복잡한 컨트롤이나 전략을 요구하는 부분도 없습니다. 단순함이 생명인 아저씨 게임의 규칙을 충실히 따르고 있죠.
■ 있을 건 다 있다. 최신 요소들의 접목
단순히 30~40대를 겨냥한 쉽고 편한 아저씨 게임이라면 이미 많습니다. 특히 중국산 게임의 편의성과 콘텐츠 분량은 이미 잘 알려져 있죠. 반면에 <천룡기>는 아저씨 게임처럼 편하지만, 콘텐츠는 요즘 것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업적, 채집, 제작. 염색, 탈것 등 전투 이외의 시스템은 물론이고 NPC와 우호도를 쌓아 이런저런 보상을 얻는 관계나 오행 시스템을 이용해서 새로운 능력을 발휘할 수도 있습니다.
<천룡기>에서는 NPC에게 선물을 주고 우호도를 올릴 수 있습니다. 우호도는 상인이나 경비병 등의 기능성 NPC를 제외한 대부분의 NPC에게 적용돼 있으며 NPC마다 선호하는 물품이 다릅니다. 물품을 신나게(?) 모아서 전달하며 우호도를 올리면 숨겨진 퀘스트나 새로운 무공을 받을 수 있죠.
좋아하는 물품이 2~3종에 그치다 보니 우호도를 올리기보다는 물품을 모아오는 ‘퀘스트’를 하는 기분도 듭니다만, 그래도 뻔한 퀘스트보다는 훨씬 덜 식상하더군요. 우호도를 올려서 얻는 보상들을 미리 알 수 있기 때문에 원하는 NPC만 공략(?)하는 맛도 있습니다.
오행 시스템도 독특합니다. <천룡기>에서는 일부 아이템에 화, 수, 금, 목, 토의 5개 오행이 붙어 있습니다. 각 오행을 정해진 숫자만큼 모으면 특수한 능력이 발동되죠. 예를 들어 수 속성 오행이 붙은 아이템 2개를 구하면 수류진기가 발동돼 방어력을 2% 증가시켜주고, 각 속성 오행을 2개씩 모으면 혼원천기를 발동해 모든 능력치를 10% 증가시킬 수 있습니다.
오행은 각 아이템에 확률적으로 붙기 때문에 어떤 오행을 어떤 아이템에서 끌어 모을지를 정하는 것도 중요한 변수가 됩니다. 단순하지만 은근히 생각하게 되는 시스템이죠.
■ 깔끔한 그래픽과 지루하지 않은 전투
전투에도 최신요소들을 접목했습니다. <천룡기>에서는 상황에 맞는 무공을 사용해 ‘추가 대미지’를 입힐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검객의 강격 무공은 기절 중인 적에게 사용하면 ‘강타’라는 표시가 뜨며 높은 대미지를 입히죠. 마찬가지로 붕산격은 넘어진 적에게 ‘강타’가 발동됩니다.
<천룡기>에서는 이를 이용해 연속기를 꾸미게 되는데요, 적을 쓰러트리는 돌격 이후 붕산격을 사용하거나 적을 기절시키는 대천장 이후 강격을 사용하는 식입니다. 여기에 기절, 넘어트림 등의 상태이상 효과가 없는 무공들은 최대 3회까지 몰아서 사용할 수 있습니다. 물론 쿨타임도 그만큼 늘어나죠.
간단한 연속기와 몰아치기가 가능하다 보니 이동과 공격을 동시에 할 수 없는, ‘서로 맞붙어서 싸우는 방식’임에도 불구하고 지루하지가 않습니다. 직업마다 적의 공격을 피할 수 있는 회피무공도 갖추고 있어서 PvP에서도 서로의 다음 수를 읽는 재미가 있죠.
그렇다고 복잡한 전략이나 빠른 손놀림을 요구하지도 않습니다. 연속기도 따지고 들자면 쓰러트린 적에게 강타, 기절한 적에게 강타, 공중에 뜬 적에게 강타, 배후에서 때릴 때 강타 4종류에 불과하죠. 그저 상황판단에 따른 약간의 재미를 주는 정도입니다.
그래픽도 좋습니다. 대나무 숲이나 바위산 등 동양풍의 배경을 살 살렸죠. 조금은 칙칙한 복장의 색이나 무늬도 배경과 잘 어울리고, 강남의 모 성형외과를 보는 듯한 ‘비슷하면서도 다 예쁜’ 얼굴들도 나쁘지 않습니다.
무기를 휘두를 때 먹물이 튀거나 거대한 중간보스들도 인상 깊습니다. 조금 끊기는 동작과 이를 감추기 위한 듯 적을 공격하거나 맞을 때마다 발동되는 억지스러운 화면 떨림은 눈에 거슬리지만 옵션을 통해 어느 정도 보완할 수 있습니다. 외형적인 면으로만 봤을 때는 만족할 만한 수준입니다.
■ 아직은 눈에 띄게 부족한 ‘노하우’
문제는 눈에 띄는 노하우 부족입니다. 위메이드는 2007년 <창천> 이후 MMORPG를 서비스한 적이 없습니다. 일반적인(?) MMORPG라면 <미르의 전설> 시리즈가 끝이죠. 그래서인지 <천룡기>에서는 퀘스트 동선이나 지형제작, 커뮤니티 형성 등에서 많은 아쉬움을 느끼게 됩니다.
배경과 동선의 예를 들어 봅시다. <천룡기>는 울퉁불퉁한 산악지형과 목책으로 가득한 마을, 빼곡한 나무숲 등 배경에 많은 공을 들였습니다. 반면 맵은 ‘무조건 길을 따라 걷도록’ 일자형식으로 꾸며져 있고 점프가 불가능하며 지형을 오르내리거나 작은 오브젝트조차 비켜갈 수 없습니다.
덕분에 울퉁불퉁한 길을 모두 ‘빙빙 돌며’ 이동해야 하죠. 차라리 보기엔 안 좋더라도 그냥 평지로 맵을 만들었으면 하는 바람이 들 정도입니다. 자동이동도 정확하지 않아서 툭하면 돌이나 언덕에 막히기 일쑤고요.
여기에 퀘스트 동선도 불편합니다. 의미 없는 왕복이 많고 기껏 퀘스트를 몰아서 해결했더니 같은 지역에 보내기 일쑤입니다. 가뜩이나 이동이 어려운데 동선까지 꼬이다 보니 진행이 굉장히 답답해집니다.
쉴 새 없이 일자진행으로 계속 지역을 이동시키다 보니 ‘사람들이 모일 틈’이 없고, 파티퀘스트도 짐만 되는 일이 잦습니다. 사람을 모아야 하는 퀘스트를 마을에서 10분은 넘게 달려야 하는 맵 구석에, 그것도 일회성으로 만들어 놓다 보니 그냥 무시하는 게 속 편할 정도죠.
일부 아이템을 제외하고 모든 것을 ‘캐릭터에 귀속’해 놓고서는 정작 다른 직업 아이템만 계속 나오는 상황도 기운을 빼놓습니다. 유저 피드백을 통한 세부적인 조절들이 필요해 보이는 부분입니다.
■ 속만 채울 수 있다면 ‘잘 만든 최신 아저씨 게임’
예상과는 많이 달랐지만 <천룡기>는 의외의(?) 가능성을 보여주었습니다. 30대 이상의 게이머들을 겨냥했음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시스템들이 녹아 있죠. 그래픽이 좋고 이것저것 할 것도 많아서 여성 유저에게도 괜찮을 듯합니다. 마치 ‘배울 것 많은 요즘 게임에 적응하기는 어렵지만 최신 게임은 하고 싶은 유저들’을 노린 듯한 모양새입니다.
다만 아직까지는 아쉬운 부분이 많습니다. 복잡한 시스템은 없지만 정작 설명과 보상이 미흡하다 보니 NPC 우호도나 염색, 제작 등에 대해 제대로 이해 못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았고, 경공을 펼치자 엄청나게 빠른 ‘잰 걸음’으로 달려가는 캐릭터의 동작은 실소를 자아낼 정도로 어색했습니다.
겉모습은 완성됐습니다. 이제는 그 속을 어떻게 채울지가 <천룡기>의 관심사입니다. 위메이드의 5년 만의 도전이 어떤 결실을 맺을지 지켜보겠습니다.
정작 감옥이나 문, 일부 건물 벽에는 충돌판정이 없다. 덕분에 열쇠가 없이도 NPC를 구출하는 개그가 벌어지기도 한다.
무난하게 즐길 만한 낚시. 제작과 생산은 구색을 갖춘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