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티카>의 개발초기, 올엠의 김영국 이사는 인터뷰에서 게임의 특징을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그냥 머리 굴릴 것 없이 신나게 두들겨 부수는 게임이요.” 3년이 지나고 그 말은 사실이 됐다.
<크리티카>는 지극히 단순한 게임이다. 물건이 보이면 물건을. 보스가 보이면 보스를 부순다. 피로도를 알뜰살뜰 쓰기 위해 동선을 고민할 필요도 없다. 그리고 다음에 어디로 가야 할 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여기에 과장된 연출과 취향이 확실한 캐릭터를 양념으로 버무려 ‘초액션’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직관적이고 그만큼 단순한 재미다.
다만, 게임을 찬찬히 뜯어 보면 개발사인 올엠이 이런 단순한 재미를 위해 얼마나 많은 고민했는지 알 수 있다. 던전의 플레이 시간을 줄여 단순함의 반복이 지겨워질 수 있는 요소를 원천 봉쇄했다. 아이템을 통한 파티보상과 피로도를 미끼로 자발적인 커뮤니티를 만들어냈다.
지금까지의 어떤 MORPG보다도 단순한 게임, 하지만 그 단순함을 위해 치밀하고 오랜 설계를 거친 게임, <크리티카>를 디스이즈게임에서 살펴봤다. /디스이즈게임 안정빈 기자
■ 과장과 단순. 두 마디로 설명되는 초(超)액션
<크리티카>는 초액션을 내세운 게임이다. 그리고 <크리티카>가 내세운 초액션은 두 단어로 설명된다. 과장된 연출과 단순한 게임성이다.
<크리티카>의 기본적인 진행은 <던전앤파이터>와 비슷하다. 방단위로 쪼개진 던전(스테이지)을 오가며 모든 적을 소탕하고 보스 몬스터를 처치한다. 일반몬스터가 워낙 약하고 유저에게는 광역공격 기술이 많아 전투는 자연스럽게 각 방의 몬스터들을 모아서 예쁘게 처치하는 ‘몰이사냥’ 위주로 흘러간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연출이다. <크리티카>의 연출은 과장됐다. 과장도 그냥 과장이 아니다. 불기둥은 기본이고, 집채만한 얼음덩어리가 쏟아진다. 캐릭터 보다 5배는 큼직한 수리검이 바람을 일으키며 돌고, 거대한 블랙홀이 모든 걸 집어 삼킨다. 덩치는 북극곰만한 늑대(천랑주)가 온 몸에 번개를 두르고 화면 전체를 뛰어다니는 장면은 애교다.
뭔가 엄청난 기술도 아니다. 그냥 수많은 기술 중 하나의 연출이 저 정도다. A버튼만 누르면 나가는 그런 그냥 스킬이다.
지나가는 기술A의 이펙트가 이 정도다.
<크리티카>는 여기에 미친듯한 공격속도와 강제캔슬을 추가했다. 폭마의 관착두두타는 3초에 42번 이상의 공격을 쏟아 붓고 체술사의 냐광참은 적을 스치는 것만으로도 10번 이상의 대미지를 준다. 모든 기술과 일반공격에 강제캔슬이 적용되기 때문에 일반공격에서 기술로, 다시 기술에서 기술로 쉴 새 없이 공격을 이어갈 수 있다.
단순히 연출만 빠르고 화려한 것도 아니다. 더 많은 대미지를 주기 위해 기술이 발동되는 동안 쉴 새 없이 버튼을 연타하거나 타이밍에 맞춰 기술을 사용하는 타이밍을 조정하는 등 플레이어가 조작을 통해 과장된 연출을 직접 느낄 수 있는 장치들을 곳곳에 배치했다.
한 번에 수십 마리의 몬스터를 몰아 싸우고, 화면을 가득 메우는 이펙트 속에서 초당 수십 번의 연타가 쏟아지는 기술을 쉬지 않고 사용하는 전투. 덕분에 <크리티카>의 전투는 보는 것만으로도 시원하고 호쾌하다.
공격과 공격이 쉬지 않고 이어진다.
■ 열혈바보에 고양이소녀, 차도남까지. 취향존중의 캐릭터
주인공이 특정한 인물이 아닌 직업으로 분류되는 온라인게임에서 많은 개발사들은 캐릭터에 지나친 성격을 부여하는 걸 꺼린다. 플레이어가 자기 캐릭터의 이미지를 자유롭게 상상할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해서다. 반면 <크리티카>는 노골적일 만큼 캐릭터의 성격을 부각시켰다.
<크리티카>의 캐릭터는 극단적이다. 음성파일의 절반가까이가 비명(…)인 폭마나 광전사는 열혈과 광기 그 자체를 보여준다. 그리고 도적은 전직을 통해 차분한 누님부터 고양이(…)까지 다양한 여성상을 소화한다.
총기와 마법, 그리고 점잖음을 매칭시킨 마법사는 차가울 만큼 냉정하고 손발이 오그라드는 수준의 대사를 거침없이 내뱉는다. 그쪽(?) 용어를 꺼내자면 열혈바보에 고양이소녀, 중2병, 누님캐 등이 판을 친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크리티카>의 모든 캐릭터가 그 중 하나에 속해있다.
얼굴과 모션만 봐도 어떤 캐릭터인지 설명할 필요도 없을 정도.
“내 손에 얼어붙은 것을 영광으로 생각해라(냉기술사)”, “봐라, 이것이 천재와 일반인의 차이다(그림자술사)”, “신나게 놀아서 피곤하다옹(체술사)”, “당신 제법이네? 덕분에 즐거웠어(암살자)”, “아무래도 사람을 베는데 눈을 떠 버린 것 같군(마검사)”, “승리드아아아아으아(광전사)”처럼 주옥 같은 명대사들은 기본이다.
기술 하나에서도 각 캐릭터의 성격을 엿볼 수 있다. 열혈바보 수준의 폭마는 자신과 적을 불태우고 화려하게 터트리는 기술을 위주로 사용하며, 중2병의 끝을 달리는 그림자술사는 적의 그림자를 뜯어내거나 자신의 그림자를 거대화해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적을 처치한다. 어지간한 애니메이션 뺨치는 성우녹음은 덤이다.
이처럼 캐릭터성이 극단적으로 살아있다 보니 캐릭터(직업)를 ‘고르는 맛’도 한층 늘어났다. 마치 격투게임에서 자신의 취향에 맞는 캐릭터를 고르는 느낌이다. 유치함을 극단적으로 싫어하는 유저라면 몰라도, 정말 약간의 덕후끼(?)만 있는 유저라면 입맛에 맞는 캐릭터 취향의 전투를 마음껏 즐길 수 있다.
공식 홈페이지의 이미지 게시판만 봐도 다양한 덕질(!)의 흔적들을 볼 수 있다. 이미 <크리티카>의 캐릭터를 이용한 2차 창작물(…)까지 나왔을 정도. 그만큼 캐릭터성 하나는 확실하다. 여담이지만 <크리티카>에서는 여성 NPC에 유난히 공을 들인 일러스트도 볼 수 있다.
노렸군. 노렸네. 노렸어.
■ 동선조차 고민할 일이 없다. 단순함의 끝을 달리는 게임성
<크리티카>의 게임진행은 단순하다. 전투부터 퀘스트 진행까지 막힘이 없다. MORPG라면 흔히 겪을 법한 동선의 고민조차 없다.
대부분의 MORPG는 반복의 지겨움을 막기 위해 2~3개의 던전을 난이도별로 번갈아 가며 진행한다. 플레이어의 레벨이 10이라면 레벨 10 던전의 보통 난이도에서 적 A의 흔적을 발견하고, 레벨 9 던전의 어려움 난이도에서 증거품을 찾은 후, 레벨 11 던전의 쉬움 난이도에서 적 A를 만나 싸우는 식이다.
그 다음에는 아마도 도망친 적 A를 추적하기 위해 레벨 10 던전의 어려움 난이도와 레벨 11 던전의 보통 난이도를 오갈 것이다.
유저 입장에서는 매번 다른 던전에 진입하는 만큼 상대적으로 지겨움을 덜 느끼게 된다. 같은 던전을 적게는 3~4번 많게는 수십 번까지 재활용해야 하는 MORPG가 택한 방법이다. 다만 이 방식은 퀘스트 동선이 한 번 꼬이기 시작하면 대책이 없다는 게 문제다.
예를 들어 레벨 9 던전의 퀘스트를 모두 완료했는데 레벨 10 던전의 퀘스트를 깨고 나니 다시 레벨 9 던전으로 가라는 퀘스트를 주는 경우다. 피로도로 하루 플레이를 제한하는 MORPG에서 이처럼 비효율적인 플레이가 진행되면 유저는 짜증을 느낄 수밖에 없다.
<크리티카>의 퀘스트도 숫자가 적은 편은 아니다.
반면 <크리티카>에서는 한 던전의 ‘끝’을 본 후 다음 던전으로 넘어가게 된다. 레벨 57 던전인 ‘할다림의 솟구친 제단’과 관련된 퀘스트가 20개 정도 된다면 ‘할다림의 솟구친 제단’을 10여 회 이상 반복하며 퀘스트를 모두 마칠 때쯤 다음 던전인 ‘드러난 라피스 동굴’에 갈 퀘스트가 주어지는 식이다.
일일퀘스트를 제외하면 이전 던전으로 돌아가는 퀘스트를 단 한 차례도 주지 않는다. 사실상 해당 던전의 모든 퀘스트를 완료해야 다음 던전에 갈 수 있는 레벨이 되기 때문에 유저 입장에서는 동선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게임을 즐길 수 있다.
던전에서 수행하는 퀘스트도 깔끔하다. <크리티카>에는 운에 좌우되는 퀘스트를 찾아보기 힘들다. 개발팀에서 3번에 걸쳐 클리어하도록 만든 퀘스트는 무조건 3번에 걸쳐 퀘스트 아이템이 나오는 방식이다. 퀘스트의 종류도 누군가를 죽이거나, 누군가를 죽여서 무엇을 얻어 오거나, 무언가를 부수거나, 무언가를 부숴서 무엇을 얻어오거나 하는 단조로운 것들이다.
모든 적을 죽이고 모든 물건을 부순다면 자연스럽게 ‘최고로 효율적인 동선’이 완성된다. 그냥 퀘스트가 모두 사라질 때까지 모든 것을 파괴하며 그 던전만 20번이고 30번이고 반복하면 된다는 뜻이다. 참 쉽죠?
앞으로 딱 15번만 더 만나자. 응?
■ 단순함을 위한 고민. 던전이 지겹지 않은 마법의 10분
문제는 반복이다. 한 던전에서 ‘끝을 본다’는 건 반대로 한 던전의 퀘스트를 모두 완료하기 전까지는 계속 같은 콘텐츠를 즐겨야 한다는 뜻이다. 실제로 최고 레벨 직전의 던전인 ‘원옥의 대공동’은 퀘스트 완료를 위해서만 20번에 가까운 플레이를 요구한다. 당연히 ‘지겨움’에 대한 걱정이 생길 수밖에 없다.
<크리티카>에서 택한 해결책은 ‘짧고, 변화가 있는 던전’이다. <크리티카>의 던전은 짧다. 초반부에는 2~3분만에 클리어할 수 있는 던전이 주를 이룬다. 최고 난이도 던전인 ‘시련의 틈’조차 길어야 10분을 넘기지 않는다. 반면 한 던전에 등장하는 몬스터는 100마리 이상. 5초에 한 마리 이상이 죽는 밀도 높은 전투가 10분 내내 이어진다.
여기에 퀘스트에 따라 던전의 구성도 변한다. 난데 없이 라이벌 역할의 중간보스가 등장하는가 하면, 그 중간보스가 다시 다른 보스로 바뀌어있고, 아예 의문의 세력이 등장하기도 한다.
일반몬스터가 약하디 약하다. 길어야 10분을 넘지 않는 <크리티카>의 던전에서 패턴을 파악해야 하는 중간보스는 던전의 재미를 좌우하는 요소다. 그런 중간보스가 퀘스트에 따라 툭하면 달라지다 보니 같은 던전이라도 상당히 다른 느낌을 제공한다.
여기에 직업구성에 따라 전투의 전개가 달라지므로 적어도 10번 이내의 반복으로는 지겹다는 느낌을 받기 어렵다. 정신 없이 달리는 와중에 기억에 남는 부분마다 조금씩 다른 포인트를 심어주는 셈이다.
다만 이 같은 몰입도와 변화에도 불구하고 20번에 가까운 반복이 계속되는 후반부에는 지루함을 피할 수 없다는 게 단점이다.
생각도 못했던 인물이 덤벼올 때도 있다.
■ 단순함 속에서 전략을 집어넣은 ‘수퍼아머’
앞서 말한 것처럼 <크리티카>의 전투는 쏟아지는 이펙트의 향연이다. 4인 파티에서는 쏟아지는 이펙트 덕분에 적과 아군의 구분이 어려울 정도다. 솔직히 상황 파악은 커녕, 내 위치가 어디인지 파악하면 다행이다. 이런 상황에서 제대로 된 전투를 치르기란 어렵다. 그래서 <크리티카>는 격투게임에서 주로 활용하던 ‘수퍼아머 방식’을 도입해 전투의 전략을 추구했다.
<크리티카>에서 모든 캐릭터는 특정 공격을 가할 때 수퍼아머 효과를 얻는다. 수퍼아머 상태는 몸이 붉은 색 테두리로 표시되며 공격을 받더라도 모션이 취소되지 않는다. 간단히 말해 적의 공격을 (대미지는 입지만) 무시한 채 공격을 가한다는 뜻이다.
보스의 공격력과 체력은 당연히 유저의 캐릭터보다 몇 배는 강하다. 수퍼아머 상태에서 서로 공격을 주고 받아봐야 손해를 보는 건 유저다. 고로 유저는 자연스럽게 수퍼아머를 파괴할 수 있는 일부 기술을 이용해 전투를 이끌어 나가게 된다.
보스의 붉은 테두리가 바로 수퍼아머 표시다.
필자의 주 캐릭터였던 폭마의 예를 들어보자. 집중적인 공격에 특화된 폭마는 총 7개의 수퍼아머 파괴기를 갖고 있다. 다만 각 수퍼아머 파괴기술마다 발동시간과 재사용시간이 다른 만큼 적의 공격에 맞춰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한다.
보스몬스터가 수퍼아머 상태로 도주를 시도한다면 범위가 넓고 발동이 빠른 폭염패기로 발을 묶어 놓고, 파티원이 대미지를 입힐 수 있는 시간을 벌고 싶다면 관착두두타로 3초 동안 보스몬스터를 잡아둘 수 있다. 타이밍만 맞춘다면 2명 이상이 지속적으로 수퍼아머 파괴기를 날려 보스몬스터를 ‘움직이지도 못하는 상황’으로 만드는 것도 가능하다.
후반부에는 보스 몬스터가 절반 이상의 시간을 수퍼아머 상태로 보내는 만큼 수퍼아머와 수퍼아머 파괴를 이용한 공방전은 <크리티카> 전투의 핵심이 된다.
적을 구석에 몰아넣고 신나게 때리다가 수퍼아머가 발동되면 이를 수퍼아머 파괴기로 깨부수고 다시 신나게 폭행을 가하는(…) 방식이다. 물론 주도권은 여전히 유저 손에 있는 ‘공격일변도의 전략’이다.
참고로 이펙트가 화면 전부를 가리는 난전 속에서도 수퍼아머의 붉은 테두리만큼은 확연히 알아볼 수 있다. 슈퍼아머 시스템이야 말로 이펙트로 시야를 확보할 수 없는 상황과 공격위주의 호쾌한 액션을 유지한 채로 전투의 긴장감과 전략을 (일부나마) 살리기 위한 올엠의 묘안인 셈이다.
결론은 수퍼아머까지 부숴버리면 된다.
■ 고민의 흔적은 보이지만, 답답한 최고 레벨 콘텐츠
최고 레벨 콘텐츠는 아직 많이 아쉽다. 또 하나의 레벨 시스템인 에테르포스를 이용한 던전과 세트아이템, 재미난 특수효과를 구현해놓고도 정작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분위기다.
<크리티카>의 최고레벨 콘텐츠는 에테르포스를 이용한 던전과 아이템 제작이다. ‘에테르포스’란 던전에서 얻는 일종의 부가적인 능력치로, 최고 레벨 던전을 진입하기 위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최고 레벨 던전 ‘리온 강철 용골 조선소’와 ‘시련의 틈’, ‘광기어린 연금술사의 공방 1층’의 보통난이도는 모두 에테르포스 50 이상을 모아야 입장할 수 있다. 영웅난이도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에테르포스 150이상이 필요하다.
에테르포스는 레벨 58 이상의 던전에서 랜덤하게 떨어지며 이를 얻으면 캐릭터의 에테르포스 수치가 계속 오른다. 에테르포스는 던전 진입을 위한 조건 이외에도 캐릭터의 공격력을 올려주는 효과가 있다. <던전앤파이터>의 항마력 시스템을 캐릭터로 옮겨왔다고 보면 된다.
에테르포스를 쌓아야 입장할 수 있는 시련의 틈의 모습
에테르포스는 보다 장기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만약 에테르포스가 아이템에 붙는다면 해당 아이템보다 좋은 아이템이 나왔을 때 지금까지의 무용지물이 되는 셈이지만 캐릭터에 누적된 에테르포스는 이후의 던전에서도 꾸준히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고레벨 유저들을 위한 또 하나의 레벨시스템인 셈이다.
이미 150의 에테르포스를 필요로 하는 던전이 공개됐으며 이후에도 꾸준히 사용될 예정인 만큼 에테르포스를 올리는 것 자체가 새로운 목적이 되는 셈이다.
이렇게 에테르포스를 쌓아 도전하는 최고 레벨 던전에는 상급 세트아이템이 등장하며, 같은 부위의 세트아이템 6개를 모은 후 업그레이드해서 희귀 세트아이템으로 바꿀 수도 있다.
참고로 최고 레벨 던전의 입장은 하루 2회. 모든 던전을 클리어하더라도 하루 8번이 한계다. 그 중에서 자신이 원하는 아이템을 얻을 확률이 얼마나 될까? 심지어 희귀등급 세트아이템을 만들려면 이 아이템을 6개씩 모아야 한다.
여기에 굉장히 낮은 확률로 나오는 상자를 열어서 굉장히 낮은 확률로 나오는 장비 제작권이 필요하고, 역시나 하루에 일일 퀘스트를 포함해 6~7개를 구할 수 있는 광물 40개가 필요하다. 기타 게임머니 등은 포함하지 않은 조건이다.
계륵이라는 말밖에 안 나오는 세트 아이템의 능력치.
그렇다고 세트아이템의 성능이 뛰어난 것도 아니다. <크리티카>의 아이템옵션은 랜덤으로 정해진다. 같은 옵션이라도 격차가 크고, 고급 아이템일수록 기본 성능이 뛰어나다. 아이템의 옵션 폭이 큰 만큼 원하는 능력치의 아이템을 얻기 위해서는 수 십 개의 아이템이 필요하다.
특히 세트아이템처럼 상급 수준의 아이템이라면 한층 쉽게 구할 수 있는 경매장표 희귀아이템이 더 나은 경우가 많다.
결국 세트아이템을 제대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희귀 등급까지 올린 후 좋은 옵션의 아이템이 나오기를 바라야 하는데, 지금 같은 아이템 분배구조로는 아이템 옵션은 커녕 1개의 희귀 등급 아이템을 만들기도 어렵다.
차후 최고 레벨 던전이 더 열리고 나면 재료 수급이 조금은 쉬워지겠지만, 던전 40번을 넘게 반복해야 옵션이 좋을 지 나쁠 지도 모르는 아이템 1개를 만들 수 있다는 건 지금까지의 <크리티카>의 호쾌했던 진행과 비교해 볼 때 답답하다.
직업에 맞춰 우선권을 주거나, 거래를 허용해 희귀 세트아이템을 누구나 쉽게 제작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대신 하드코어한 유저들은 더 좋은 옵션의 아이템을 얻기 위해 같은 작업을 반복하도록 유도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지금의 <크리티카>의 최고 레벨 콘텐츠는 마치 신나게 달리던 야밤의 고속도로가 끝나기 무섭게 퇴근길 2차선으로 접어드는 기분이다. 애당초 아이템이 귀한 게임이라면 모를까, 최고 레벨이 되자마자 던전의 횟수에 진입조건, 아이템 거래까지 한 번에 제한되다 보니 게임이 굉장히 답답해진다.
그냥 놔둬도 재미난 옵션이 수두룩하다.
■ 분명 좋은데, 와닿을 틈이 없는 스토리
스토리와 그래픽도 아쉬움을 남긴다. <크리티카>의 스토리는 간단히 말해 ‘라피시움이라는 새로운 동력을 개발한 알키가 독재자의 위치에 오르지만, 라피시움의 편안함에 취한 시민들이 이를 사실상 인정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썩어빠진 수뇌부부터 독재자 알키가 적을 축출하는 과정, 작은 마을 렌트의 의용군이 알키를 내쫓기까지의 과정이 나름 진지하게 그려진다.
하지만 스토리를 대부분 텍스트 위주로 전달하고, 중요한 퀘스트와 일반 퀘스트가 알아보기 어려울 만큼 뒤섞인 탓에 스토리가 한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여기에 가뜩이나 밀도 높은 전투, 빠르게 반복되는 던전과 퀘스트가 더해지다 보니 솔직히 제대로 이야기를 이해하고 있는 유저가 얼마나 될지 의문이 들 정도다.
진행도 너무 빨라서 스토리를 진득하게 읽더라도 해결되는 내용보다 의문이 더 많이 남을 지경. 특히 후반부의 시청 탈환 부분은… 그냥 급전개의 끝이다.
스토리가 공감을 주지 못하다 보니 NPC에 비해 보스 몬스터의 비중도 굉장히 낮다. 최고레벨을 달성한 필자 역시 20번을 넘게 만나느라 지겨워진 라이키르를 제외하면 딱히 떠오르는 보스 몬스터가 없다. 캐릭터성을 강조한 게임에서 정작 스토리가 공감을 주지 못한다는 건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최신 게임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부족한 그래픽도 아쉽다. 다만 많게는 초당 100번 이상의 타격이 오가고, 화면을 가리는 거대한 이펙트가 몇 개씩 동시에 표시되는 게임에서 이 이상의 그래픽을 추구하는 것도 무리일 듯하다.
알키는 어디가고. 넌 누구냐?
■ ‘심플이즈베스트.’ 단순함을 위한 치밀한 노력이 돋보이는 게임
같은 제품을 만들 때 부품을 늘리기는 쉬워도 줄이기는 어렵다. 게임도 마찬가지다. <크리티카>의 단순한 재미를 조금만 뒤집어 보면 개발사가 단순한 진행 속에서도 유저에게 재미를 주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고민을 거쳤는지 알 수 있다.
대표적인 부분이 커뮤니티다. MORPG에서 커뮤니티는 정말 얻기 어려운 요소다. 던전 입구마다, 채널마다 뿔뿔이 흩어진 유저들이 서로 만나게 하기도 어렵고, 길드나 친구를 강제하기도 쉽지 않다. 그래서 많은 MORPG가 반 강제적인 파티플레이를 통해 유저를 ‘만날 수밖에 없도록’ 만든다.
<크리티카>는 채찍 대신 당근을 들었다. <크리티카>에서는 다른 유저에게 하루에 5개까지 피로도 없이 던전에 입장할 수 있는 입장권을 줄 수 있다. 입장권은 한 명에게 몰아서 줄 수 없고, 자기 자신에게 선물하기도 불가능한 탓에 유저들은 자연스럽게 다른 유저와 친구를 맺고 입장권을 교환하게 된다.
하루에 줄 수 있는 입장권은 5장이지만 받을 수 있는 입장권은 3장이 한계다. 2장의 여유가 있는 셈이다. 입장권이 여유롭고 매일 새로운 친구를 추가하기도 귀찮다 보니 어느 정도 게임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친구 목록에 있는 유저들과 입장권을 계속 주고 받게 된다. 여기에 같은 던전을 계속 반복하는 만큼 한 번 맺은 파티가 오래간다는 장점도 있다.
길드조차 없는 MORPG인데 커뮤니티가 살아있다. 신비한 수준.
진행에 방해가 되는 콘텐츠는 과감히 삭제했고, 기존의 MORPG에서 터부시되던 빠른 성장과 같은 던전의 반복적인 진행도 적극적으로 도입했다. 화면 가득 쏟아지는 이펙트에서도 전략을 주기 위해 수퍼아머 시스템도 도입했다. 모두 쾌적한 초액션을 위한 노력들이다.
여기에 잔 재미도 추가했다. 정해진 방향에서 적을 공격하면 추가 대미지를 주는 나침반시리즈부터, 공격속도나 크리티컬 확률 등을 일정수치까지 올리면 능력치가 추가로 오르고, 각종 상태이상에 걸린 적에게 강력한 대미지를 주 는 등 각양각색 옵션이 마련돼있다.
적을 때리면 하트가 날린다거나 눈에서 레이저를 뿜고, 적을 죽일 때마다 울음을 터트리는 상식에서 벗어난 아이템 옵션도 있다. 단순한 진행에 살을 보태주는 일종의 양념이다.
다만 레벨 업 과정에서 너무 빠르게 달리다 보니 최고레벨에 멈춘 이후의 위화감이 심하다는 점은 아쉽다. 하루 8번으로 제한된 에테르 포스를 이용한 던전이나 같은 아이템을 교환도 없이 운에 맡기고 무작정 모아야 하는 제작시스템 등은 지금까지 잘 달려오던 <크리티카>와 어울리지 않는 요소들이다.
다른 MORPG라면 몰라도 초액션이라는 이름으로 신나게 달린 <크리티카>라면 그에 걸맞은 최고레벨용 콘텐츠가 필요하지 않을까? 21일과 28일로 예정된 추가 업데이트에서 해결해야 할 부분으로 보인다.
반대로 최고레벨까지는 흠잡을 곳이 없다. 그만큼 올엠은 <크리티카>에서 단순한 재미 속에 많은 고민을 녹여냈다. 앞서 말했듯 정말 취향이 맞지 않는 유저를 제외한다면, 그리고 부족한 그래픽으로 인한 첫인상만 극복할 수 있다면 <크리티카>는 당초부터 그렇게 외쳤던 초액션의 재미를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최고 레벨 콘텐츠에 대한 아쉬움은 남지만 단순하면서도 재미있는 게임이라는 어려운 과제를 소화했다는 점만으로도 9점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