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투가 재미있어야 한다. 스토리가 흥미로워야 한다. 다양한 아이템을 갖춰야 한다. 지금까지 RPG의 흥행공식처럼 여겨지던 말들입니다. <아틀란스토리 for Kakao>(이하 아틀란스토리)는 여기에 정면으로 반기를 들었습니다. 아이템은 선택의 여지조차 없이 교복처럼 틀에 박혀 있고 전투는 자동진행에 건너뛰기(스킵)까지 가능합니다. 스토리는 고생한 흔적은 보이지만 딱히 재미난 수준은 아닙니다.
진행과정도 뻔합니다. 피로도가 떨어질 때까지 싸워서 경험치와 돈, 아이템을 얻고, 그렇게 얻은 돈과 아이템으로 장비를 강화하고, 강화한 장비로 더 강한 적을 물리쳐서 더 많은 돈과 아이템을 얻습니다. 무한 반복이죠. 그것도 굉장히 노골적인.
그런데 이 게임, 재미있습니다. 제대로 된 콘텐츠라고는 성장밖에 없지만 반대로 보면 성장 하나만큼은 기가 막히게 살렸다고나 할까요? 모바일에서 무리한 조작과 복잡한 시스템을 도입하기보다는 성장의 재미에 공들인, ‘선택과 집중’을 잘 보여주는 예입니다.
하루에 두세 번만 접속하면 되고, 언제든 게임을 끌 수 있고, ‘지른’ 만큼 확실히 강해지지만 난이도도 적당하고, 경쟁요소가 심하지도 않아서 억지로 지르라고 강요하지는 않죠. 덕분에 안드로이드 전체 매출순위 톱10에 들 정도로 성적이 좋습니다. /디스이즈게임 안정빈 기자
■ 메인스토리는 덤. ‘진짜’는 캐릭터 성장에 있다
<아틀란스토리>는 간단히 말하자면 ‘한 가지 메뉴로 승부하는 맛집’ 같은 게임입니다. 콘텐츠는 굉장히 다양합니다. 일반던전과 정예던전부터 훈련, 상점, 정령소환, 콜로세움, 비공정을 이용한 탐험과 약탈, 호송, 퀘스트 등 어지간한 게임에 있는 시스템은 다 가져왔죠. 하지만 모든 콘텐츠는 ‘캐릭터의 성장’이라는 하나의 목적에 집중돼 있습니다.
진행방식은 정말 단순합니다. 메인퀘스트를 따라서 일반던전을 하나씩 클리어해 나가면 됩니다. 일반던전은 매우 쉬워서 별다른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도 무난하게 적들을 해치워 나갈 수 있죠. 별다른 선택지나 이동구간 같은 것도 없습니다. 스태미나가 허락하는 한 던전을 진행하고, 클리어하고, 보상을 받고, 이야기를 보면 됩니다.
게다가 <아틀란스토리>의 전투는 진형을 짜두면 자동으로 진행됩니다. 운에 따라 조금씩 승부가 갈리는 경우는 있지만 일단 전투에서 플레이어가 조작하는 부분은 하나도 없죠. 만약 일반적인 RPG처럼 스토리와 게임 진행의 재미를 찾는 유저라면 <아틀란스토리>의 재미는 여기서 끝입니다.
퀘스트는 사실 성장을 돕기 위한 보너스에 불과합니다.
■ ‘성장의 재미’ 하나는 확실히 챙긴 게임
<아틀란스토리>에서 강해지는 방법은 다양합니다. 여느 RPG처럼 스태미나를 사용해서 일반 던전을 돌며 차곡차곡 경험치를 쌓을 수도 있고, 티켓을 내고 훈련소에서 경험치를 올릴 수도 있습니다. 훈련소 티켓은 정해진 시간마다 1장씩 제공되죠.
아이템을 강화하거나 조금 더 쉬운 정예던전을 클리어하고 얻은 조합서를 이용해 더 강한 아이템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문장과 정령소환, 정령합성 등을 이용해서 능력치를 올리거나, 전투에서 얻은 SP(스킬포인트)로 스킬을 강화하고, 주점에서 기본 능력치가 강한 동료를 영입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이 모든 방법에는 조건이 있습니다. 던전 입장에는 스태미나가 소모되고, 강화나 정령소환에는 막대한 돈이 듭니다. 훈련소는 이용횟수에 제한이 있고, 아이템 제조와 문장은 (주로 낮은 레벨 던전에서 나오는) 재료를 다수 요구하죠. 주점에서 강한 동료를 얻기 위해서는 명성이 필요합니다.
주점에서는 동료를 얻을 수 있습니다. 명성이 높을수록 등급이 높은 동료를 얻을 수 있죠.
그래서 <아틀란스토리> 플레이타임의 대부분은 이런 ‘조건’을 채우는 데 쓰게 됩니다. 실제로 레벨 40이 넘을 때까지 플레이하면서 하루에 메인 퀘스트를 진행하는 시간은 10분이 채 안 됐습니다. 나머지는 일반던전에서 아이템을 얻어서 장비 혹은 문장을 강화하거나, 동료를 얻기 위해 콜로세움에서 명성을 쌓고, 비공정을 호송하고, 약탈하는 시간입니다.
무작정 강해지는 게 목표라면 시시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아틀란스토리>에서는 자신의 강함을 확인할 수 있는 장치들을 요소요소에 배치했습니다. 대표적인 게 정예던전입니다. 정예던전은 던전별로 하루에 1번씩만 클리어할 수 있고 아이템을 더 강한 아이템으로 조합할 수 있는 조합서를 줍니다. 대신 각각의 던전마다 일반던전과는 비교도 안 되게 막강한 적들이 등장하죠.
메인 퀘스트를 하듯 진행했다가는 순식간에 전멸당하기 십상이므로 자연스럽게 아이템부터 전술, 강화상태, 스킬과 문장, 정령 등을 고민하게 됩니다. 여기에 다른 유저와 강함을 겨룰 수 있는 콜로세움, 호송, 약탈 같은 콘텐츠도 등장합니다. 강해질수록 할 수 있는 것들이 늘어나고, 점점 더 큰 보상이 들어오죠.
아이템이나 능력치, 스킬 등 모든 것이 수직 구조로 이뤄져 있고, 성장치를 숫자로 보여주는 만큼 직관적입니다. 모든 콘텐츠에는 스태미나, 명성, 돈, 횟수 등의 제한도 걸려 있죠. 던전부터 강화까지 버튼을 누를 때마다 눈에 띄게 강해지는 캐릭터와 강해질수록 확실하게 늘어나는 보상, 강함을 확인할 수 있는 정예던전, 거기에 하루 성장치의 제한까지.
단언컨대 <아틀란스토리>는 ‘성장의 재미’만 떼어 놓고 보면 최고 수준의 게임입니다.
2시간에 한 번씩 경험치를 주는 훈련소. 입수 가능한 경험치도 크다.
정예던전에서는 자신의 강함을 시험해 볼 수 있다.
■ 모바일에 최적화된 시스템이 주는 즐거움
하루에 할 수 있는 활동이 제한돼 있고 재충전 시간도 길다 보니 플레이에 많은 시간을 뺏기지 않습니다. <아틀란스토리>의 스태미나 충전시간은 30분. 충전량은 던전 1번 진입이 가능한 5 스태미나입니다. 반면 던전의 자동 전투는 길어도 30초 이내로 끝나죠. VIP 등급의 유저는 한 번 깬 전투는 그냥 넘겨버릴 수도 있습니다.
훈련소 티켓은 2시간에 1장꼴로 충전되고, 비공정을 이용한 탐사와 호송, 약탈은 아예 일일 횟수가 정해져 있습니다. 정예던전 역시 캐시를 (많이) 질러서 VIP 등급이 높아지기 전까지는 던전당 하루 1번 클리어로 제한되죠. 아껴서(?) 플레이하더라도 하루에 두세 번 접속하면 충분합니다.
간단히 생각하면 원하는 만큼 게임을 못하는 답답한 구조지만, 조작보다는 성장에 집중한 <아틀란스토리>에서는 게임을 가볍게 즐길 수 있다는 ‘장점’도 됩니다. 솔직히 성장만 바라보는 게임에서 시간을 쏟아 부을수록 한없이 강해진다면 그건 게임이 아니라 ‘노동’에 가깝겠죠. 하루 종일 버튼만 눌러서 캐릭터를 강하게 만들어야 할 테니까요.
특별한 조작이 필요없는 만큼 언제 어디서나 가볍게 즐길 수 있다는 것도 장점입니다. 게임 도중에 전화가 오면 게임 접속이 끊기는 난감한 시스템을 택했지만 불편함이 없을 정도입니다.(…) 급하게 취하는 조작도 없다 보니 들고 다니며 한 손으로 플레이하기에도 적당합니다.
모든 조작이 터치로 끝난다. 많이 누를 필요도 없다.
제조에서는 아이템이 나오는 던전을 알아서 보여준다. 고민의 여지가 없는 게임.
■ 안 지르거나. 엄청 지르거나. 호불호가 나뉘는 결제
결제 부분은 다소 위화감이 듭니다. 좋게 보면 착하고, 나쁘게 보면 한도 끝도 없이 지르게 되는 시스템입니다.
<아틀란스토리>의 결제는 중국에서 자주 쓰는 VIP 방식을 도입했습니다. 결제하면 할수록 혜택이 늘어나는 방식인데요, 하루에 한 번만 입장이 가능한 정예던전을 여러 번 가능하도록 초기화하거나 추가 스태미나, 훈련소 티켓 등을 얻을 수 있습니다. 말만 들으면 굉장히 사기적인 혜택 같지만….
정작 VIP 혜택을 누리는 데도 추가 캐시가 들기 때문에 제대로 이용할 수 있는 혜택은 몇 안 됩니다. 예를 들어 VIP 5단계가 되고 나면 하루에 1번 진입할 수 있는 정예던전을 무려 13번이나 들어갈 수 있는데요, 2번째 입장부터는 루비 50개(약 5,000 원)이 들기 때문에 이용하는 사람은 거의 찾아볼 수 없죠. 하루에 정예던전만 들어가다 수 십 만 원씩 소모할 수 있는 구조입니다.
얼핏 보면 엄청난 혜택 같지만….
막대한 돈을 쓰지 않는 한 하루에 제한된 성장의 범주를 크게 넘어서기는 어렵고, 결국 (일부 막대한 과금을 한 유저를 빼면) 결제한 유저와 하지 않은 유저가 생각보다 큰 차이가 없는 기이한(?) 구조를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다른 유저와 직접 경쟁하는 콘텐츠는 콜로세움과 호송, 약탈 등 일부에 그치고, 이를 빼놓고도 게임을 진행할 수 있는 만큼 결제하지 않은 유저도 큰 박탈감을 느끼긴 어렵죠. 실제로 전투 스킵 시스템을 이용하기 위해 VIP1 단계에서 결제를 멈추는 유저가 가장 많을 정도입니다.
반면 매일매일 루비로 스태미나와 돈을 일정량씩 채울 수 있기 때문에 가랑비에 옷 젖는 수준의 결제를 하게 되는 경우는 잦습니다. 밸런스가 맞는 것 같으면서도 중간이 없는 기묘한 결제 구조입니다.
매일매일 열게 되는 보물상자와 스태미나. 상자는 괜찮지만 스태미나는 제법 부담이 되는 편.
가장 필요한 건 저레벨 전투를 넘기기 위한 VIP 1단계다.
■ 폭풍 같은 성장에 가려 빛을 보기 어려운 전략
성장에 ‘올인’한 만큼 단점도 확실합니다. 성장을 빼면 게임의 재미가 남질 않죠. 특히 전투가 아쉽습니다.
사실 <아틀란스토리>의 전투는 나쁜 편이 아닙니다. 전투는 자동으로 진행되기는 하지만 일정한 규칙에 따라 흘러가기 때문에 공격순서부터 필살기의 사용 타이밍을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습니다. 진영에 따라 결과도 크게 달라지죠.
예를 들어서 적이 몰려 있는 윗줄에는 방어력만 좋은 아군 용병을 미끼로 던지고, 빠르게 가운뎃줄부터 정리한다거나, 필살기 방어력이 약한 탱커가 적의 필살기 한 번에 무너지는 일을 막기 위해 탱커 앞에 마법사를 세워서 필살기를 견디는 전략도 가능합니다. 실제로 전략이 맞아떨어질 때의 쾌감도 끝내주고요.
다만 이 모든 것을 극복하고도 남을 만큼 캐릭터의 강화나 문장, 정령의 효과가 기하급수적으로 뛰는 만큼 기껏 짜놓은 전략은 캐릭터의 빠른 성장 앞에 반감됩니다. 정예던전에서 막히더라도 일단 훈련소든 강화든 할 수 있는 성장을 다 해보고 마지막으로 진영 좀 바꿔보는 수준이죠. 그나마도 강화 단계가 극단적으로 높으면 전략이고 뭐고 씨알도 안 먹히는 상황이 왕왕 벌어집니다.
주점을 통해 얻는 파티원도 정해져 있고, 그나마도 ‘등급이 높으면 무조건 강해지는 방식’이다 보니 선택과 전략의 재미가 더욱 줄어듭니다. 최소한 파티원 정도는 다양하게 구성해 볼 수 있는 수준이면 좋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진영만 잘 짜면 효과는 좋다. 근데 그냥 성장 더 시키는 게 효과가 더 좋다.
호송과 약탈 역시 나보다 레벨이 낮으면 먹이. 높으면 천적이다.
■ 쓸데없이 잦은 ‘푸시’, 갈수록 부족한 자극
지나칠 정도로 반복만 이어지다 보니 어느 순간이든 질리는 시기가 온다는 것도 단점입니다. <아틀란스토리>의 진행은 시작부터 계속 같습니다. 하루에 한 번 정예던전을 깰 수 있는 곳까지 몰아서 깨고, 메인 퀘스트를 깨고, 남는 경험치를 훈련소로 채웁니다.
그러고도 모자란 경험치는 문장이나 제조를 할 때 필요한 아이템을 구하면서 채우면 되죠. 여기에 콜로세움과 비공정을 통해서 정해진 명예점수를 채웁니다. 여기까지 하고 나면 하루 종일 접속할 일이 없습니다.
처음에는 빠른 성장에 재미를 느끼지만 어느 정도 레벨이 오르고 성장폭이 줄어들기 시작하면 순식간에 매너리즘이 찾아오죠. 보스전이나 좋은 아이템을 얻는 자극도 없습니다. 굳이 따지자면 정령소에서 고급정령이 나올 확률을 기대하는 것 정도?
뽑을수록 좋은 정령을 기대하게 되는 정령소. 하지만 확률은… 돈도 많이 들어서 결국 나중에 몰아하게 된다.
정예던전을 깰 때가 아니면 무언가를 해냈다는 성취감도 크게 부족합니다. 레벨 30후반부터는 슬슬 하루 이틀의 성장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정예던전이 등장하는데요, 하루를 투자해도 강해졌다는 걸 느낄 수 없는 순간, 재미가 눈에 띄게 줄어듭니다. 성장에 올인한 게임의 한계입니다. 만약 성장 자체에 관심이 적은 유저라면 질리는 속도는 더 빠를 수밖에 없습니다.
성장의 재미도 좋지만 최소한 하루도 빼놓지 않고 같은 일이 반복될 필요는 없으니까요. 조금이라도 플레이에 변화가 생기는 지점이 필요해 보입니다.
이런 단점에도 불구하고 앞서 말했던 것처럼 ‘성장의 재미’ 하나만은 확실한 편입니다.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오랫동안 즐길 수 있는 게임’을 찾는 유저에게 추천합니다. 남은 군생활이라도 세듯, 무럭무럭, 아니 꾸역꾸역 자라나는 캐릭터들을 보고 기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손이 거의 안 가고, 조작도 편하다는 장점도 크죠.
반면 단기간에 자극적인 재미를 원하거나 RPG의 기본을 갖추길 원하는 유저에게는 애매합니다. 개인적인 판단으로 볼 때 <아틀란스토리>는 잘 만든 육성게임이지 RPG는 아닙니다.
마치 중국산 웹게임을 (잘 다듬어서) 모바일로 옮겨 놓은 듯한 느낌입니다. 그게 예상보다 재미있었고 모바일 플랫폼에도 잘 맞아 떨어졌다는 점. ‘쭉쭉빵빵한’ 눈요기 캐릭터만 가득한 모바일게임 시장에서 오랜만에 진지한 일러스트를 만났다는 점을 더해 8점(10점 만점)을 주며 글을 마칩니다.
이기든 지든, 누가 나를 찾든 계속 ‘푸시’를 보내는 콜로세움. 하루에 2번 접속하는 게임에서 꾸준한 푸시는 짜증의 원흉이다.
일정 시간 랜덤한 재료 아이템을 파는 암시장. 은근히 깨알 같은 요소들이 많다.
이런 일러스트를 본 것도 오랜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