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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뷰/리뷰

어쩐지 재밌어지는, 이목구비가 뚜렷한 ‘삼국지PK’

전체적으로는 B급 게임, 각각의 콘텐츠는 담백하다

실리에 2014-01-23 09:40:55

[‘해봤더니’는?] ‘해봤더니’는 디스이즈게임 기자가 다양한 게임들을 즐긴 다음, 그 느낌을 형식과 분량에 구애받지 않고 ‘가볍게’ 전달하는 게임 소개글입니다. 게임을 상세히 분석하는 정식 리뷰나 체험기와 다르게, 코너명 그대로 “해 본 다음의 느낌”을 솔직·담백하게(주관적으로) 담아내는 글입니다. 독자 여러분들도 가볍게 읽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디스이즈게임 권정훈 기자


그래서 하고 싶은 말 요약: 전체는 별로지만, 이목구비는 또렷하다! 숲 말고 나무를 봐야 하는 게임. 


 

이 게임 얕볼 수 없겠는데?


<삼국지PK>는 <삼국히어로OL>, <신기행> 등을 서비스하고 있는 이펀컴퍼니가 출시한 모바일게임이다. 지난 1월 9일 안드로이드OS와 iOS로 출시됐고, 나인뮤지스를 홍보 모델로 기용해 이목을 끌었다. 


디스이즈게임의 모바일게임 간판 연재 기사인 <신‘짝’게임>을 위해 플레이를 준비할 때만 해도 기자들은 이 게임에 대한 기대가 크지 않았다. 겉은 코에이테크모의 전략 SLG <삼국지> 시리즈에, 속은 콘텐츠를 모조리 쑤셔넣은 흔한 웹게임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첫인상부터 ‘걸그룹을 내세운 아저씨들의 웹게임’이 아닐까 하는 선입견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고 기대치도 낮았다. 하지만 플레이를 시작한 지 20분 만에 모두 “이 게임 어쩐지 재미있어지기 시작했어!”라는 말이 나왔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렇게 리뷰를 쓰고 있을 정도로 확실히 몰입도는 높은 게임이다. 이 게임 만만치 않다.
 

나인뮤지스의 <삼국지PK> 홍보 영상.

 

 

[새 창에서 영상보기]

 

 

탄탄한 튜토리얼, 15분 안에 승부한다!

 

많은 SLG가 초반에 느린 진행과 변화 없는 플레이 때문에 흥미를 잃기 쉬운데, <삼국지PK>는 이 부분을 잘 잡은 듯하다.

 

<삼국지PK>는 로딩 화면에서 15분 만에 게임을 어디까지 즐길 수 있는지 보여준다. 15분이면 30레벨이 되고 핵심 콘텐츠인 국가전을 즐기기 위한 준비가 끝난다. 여기까지가 튜토리얼에 해당하는데, NPC의 안내에 따라 터치만 해도 게임 콘텐츠를 배움과 동시에 엄청난 속도로 레벨이 오른다.

 

사실 단순히 터치만 하는 과정인데 이게 의외로 재미 있다. 튜토리얼 과정은 방대한 콘텐츠를 진공팩 수준으로 압축해서 보여준다. 1% 정도 과장하자면, 거의 1분에 큼지막한 콘텐츠 하나는 경험하게 된다.


콘텐츠 하나가 조금 익숙해질 만하면 바로 다음 콘텐츠가 쏟아지니 지루함 따위를 느낄 틈이 없다. 15분 동안 정신없이 플레이하다 보면 어쩐지 게임에 빠져들게 된다. 게다가 콘텐츠를 소모한 것이 아니라 전부 습득한 덕분에 앞으로의 플레이를 기대하게 된다.

 

15분만에 속성으로 군주를 키워내는 육성 시스템.



살림은 간편하게, 방치해도 잘 굴러가는 나라

 

30레벨이 되면 국가전에 참여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당장 천하통일의 과업을 이룰 수는 없다. 이제 갓 세상에 나선 신출내기 군주는 다른 군주의 먹잇감에 불과하다. 자원과 장수를 모아 강력한 세력을 만드는 것이 우선이다.


<삼국지PK>의 내정 관리는 상당히 간편하다. 300여 개의 영지가 있지만, 플레이어는 나만의 영지 1곳만 관리하면 된다. 따라서 영토가 늘어날수록 내정에 대한 부담이 늘어나는 일은 없다. 손이 가는 부분도 적다.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건물 발전은 계속 해주는 것이 좋은데, 50레벨까지는 수동으로 한 번 예약해두면 20단계까지 발전이 자동으로 진행된다.


성내에 농지, 목장, 병영 등 여러 가지 건물을 지으면 자원은 일정 시간마다 저절로 모인다. ‘제사’나 ‘정무’를 통해 수동으로 추가 자원을 얻을 수도 있지만, 자원이 부족할 일은 없어서 심심할 때 보너스 스테이지를 즐기는 기분으로 눌러주면 된다. 내정을 이렇게 대충 해도 나라가 제대로 굴러갈지 걱정이 될 정도로 플레이어의 손을 타지 않는다.

 

내정에 손대지 않아도 잘 돌아가는 이상적인 국가.



 적당한 난이도와 장수 영입으로 꿀재미를 주는 던전


성에서 (방치 상태의) 경제 활동을 하는 동안 던전에서 신나게 싸우면서 군대를 키울 수 있다. 던전은 스테이지 방식이고 적 부대를 차례로 물리치며 점점 강한 적을 만나 도전하게 된다.


이 던전이 참 재미 있다. 딱히 스토리가 있는 것도 아니고, 단순히 전투 위주의 미션만 반복할 뿐인데 몰입하게 된다. 미션을 진행하다 보면 산적 두목부터 서황, 하후연과 같은 최고 수준의 장수와 싸우고 영입할 수 있다. 좋은 장수야말로 <삼국지>의 꽃이 아니겠는가. 코에이테크모의 <삼국지> 시리즈에서 충성도 99인 장수를 세 치 혀로 등용할 때만큼은 아니라도 아군 진영에 좋은 장수가 모인다는 것은 분명 큰 즐거움이다.

 

<삼국지PK>에서 손꼽히는 명장 중 하나인 서황을 얻었다.

또 하나, 미션의 난이도 밸런스가 좋다. 반복되는 미션이 너무 쉽거나 어려우면 금방 질리거나 지칠 수 있다. 그런데 <삼국지PK>의 던전 난도는 상승폭이 좁지만, 차근차근 올라가는 계단처럼 구성돼 있다. 미션을 진행하다 보면 한 번씩 막히는 부분이 있는데, 이 부분의 허들이 높지 않다.

 

출전 장수의 레벨을 조금만 더 올리거나 상점에서 조금 더 좋은 아이템을 구하면 클리어할 수 있는 수준이다. 때로는 전투에서 전술을 잘 선택하면 미션을 성공하기도 한다. 내 군대가 얼마나 강해졌는지 바로 눈에 보이니 성장에 대한 보상을 즉시 확인할 수 있는 셈이다. 덕분에 당근이 매달린 낚시대를 보며 계속 달려가는 말처럼 던전을 질주하게 된다.

 

던전에서는 유명한 장수들을 차례로 물리쳐야 한다.



가위바위보 전술의 묘미가 살아 있는 전투 시스템


<삼국지PK>의 전투는 참전하는 장수들의 부대가 하나씩 차례로 나와서 서로 병력을 소모하며 겨루는 방식이다. 한 전투에는 장수를 5명까지 내보낼 수 있고 장수 한 명은 3개 이상의 부대를 지휘한다. 최소 부대 3개부터 많게는 20개 이상의 부대가 전투에 참여하는 셈이다.

 

전략 시뮬레이션을 표방하는 다른 <삼국지> 게임처럼 매복, 화공 등 신묘한 계책은 없다. 오로지 정정당당하게 한 부대씩 차례로 나오는 질서정연한 모습을 보인다. 첫 번째 부대가 무너지면 두 번째 부대가 나와서 싸우는 릴레이 방식으로 한 쪽 병력이 전멸할 때까지 싸운다. 여기에 장수와 아이템의 능력치, 그리고 전술의 선택이 병력 소모에 영향을 미친다.

 

줄을 서시오! <삼국지PK>의 전투에 새치기는 없다. 오로지 1:1뿐.

 

진행 자체는 단순하지만, ‘전술’이라는 요소를 넣음으로써 재미를 살렸다. 전술에는 돌격, 공격, 그리고 수비가 있는데 이 세 가지가 가위바위보처럼 맞물려 있다. 즉 돌격은 공격에, 공격은 수비에, 수비는 돌격에 강하다. 던전에서는 상대방의 전술이 보이지만, PvP에서는 예측해서 전술을 선택해야 한다. 전술이 제대로 맞아떨어졌을 때의 재미가 꽤 쏠쏠하다.

 

장수의 중요함도 잘 살렸다. 장수는 자신의 부대가 공격할 차례에 기술을 1회 사용할 수 있다. 장수마다 고유의 기술이 있고 효과도 모두 다르다. 평범한 공격력으로 여러 부대에 피해를 주는 장수가 있는가 하면, 최고의 장수 중 하나로 꼽히는 서황은 3개 부대에 큰 피해를 주는 강력한 기술을 사용한다.

 

부대가 너무 많아서 수동으로 일일이 조작하기 싫을 때는 그냥 내버려두면 된다. 10초 동안 전술을 선택하지 않으면 자동으로 전투가 진행되는데, 생각보다 인공지능이 엉뚱한 선택은 하지는 않는다.

 

가위바위보 전술 시스템의 묘미가 전투에 재미를 더한다.

 

 

하나의 콘텐츠가 된 ‘발번역’

 

<삼국지PK>의 현지화 수준은 썩 좋은 편이 아니다. 기본 메뉴에서는 딱히 흠잡을 곳이 없지만, 시나리오에 등장하는 대사에서는 이른 바 ‘발번역’을 꽤 많이 발견할 수 있다. 마치 번역기를 사용한 듯이 어색한 문장부터, 도무지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는 단어도 등장한다. 어떤 상황은 황당 개그를 방불케 할 정도로 헛웃음이 나기도 한다.

 

사실 가끔씩 등장하는 황당한 이야기를 보면, 번역이 아니라 원문의 문제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원문이 어떤지는 알 길이 없으니 일단 어색한 표현을 모두 ‘발번역’이라는 말로 묶어서 표현하겠다.

 

곤란한 백성을 내버려두면 충성도가 오릅니다(?).

 

일반적으로 게임의 진행이 어려울 정도로 질이 떨어지는 번역은 치명적인 단점으로 지적받는다. 그런데 <삼국지PK>는 마음이 조금만 관대해지면 이런 ‘발번역’을 하나의 콘텐츠로 즐길 수 있다. 

 

일단 <삼국지PK>는 스토리를 강조하는 게임이 아니다. 튜토리얼에서나 주인공의 시나리오가 조금 등장할 뿐이고, 튜토리얼 이후로는 메뉴 이외의 텍스트에는 거의 신경 쓸 필요가 없다. 

 

게임이 시작할 때 주인공의 설정부터 평범하지 않다. 주인공은 우연히 길을 가다가 도적떼를 만난 미인을 구해주는데, 미인은 감사의 뜻으로 나라를 세우면 협력하겠다고 한다. 그래서 주인공은 호쾌하게 나라를 세워버린다(…). 

 

이렇게 튜토리얼에서 보여준 훌륭한 발번역은 정무를 보는 에피소드로 이어진다. 산길이 미끄럽다는 백성들의 원성을 무시했더니 충성심이 오른다거나, 병든 노모가 걱정이라는 장수를 “그렇다면 고향으로 가라”며 해임해버리기도 한다. 기술 이름도 예외가 아니다. 투석기 부대를 끌고 온 황건적 두목 장보의 스킬 이름은 무려 ‘롤링 스턴’(스톤도 아니고)이다. 이쯤 되면 다음에는 뭐가 나올지 궁금해서라도 텍스트를 읽게 된다. 

 

TIG 기자들이 배를 잡고 웃게 만들었던 ‘장보의 롤링스턴’.

 

 

정작 천하통일은 내것이 아니다

 

<삼국지>가 기본적으로 삼국대립이라는 설정이므로, 영토의 개념을 도입한 <삼국지> 게임은 대체로 천하통일을 목표로 하는 경우가 많다. <삼국지PK>에도 300여 곳의 영지가 등장하고, 국가끼리 영토를 차지하기 위해 싸우는 ‘국가전’을 핵심 콘텐츠로 내세웠다. 플레이어는 게임을 시작할 때 위·촉·오 중 하나의 세력을 고르고 같은 세력의 플레이어들과 함께 다른 세력에 맞서 싸우게 된다.

 

그런데 정작 국가전은 매력적이지 않다. 영토를 점령하더라도 ‘내 것’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영토는 세력 단위로 소유하는데, 세력에 대한 소속감이 옅은 편이라서 개인에게는 별 감흥이 없다. MMORPG의 길드나 공격대와 같이 플레이어 간의 유대감이 형성되지 않기 때문이다.

 

영지 규모를 보면 ‘천하통일’이 너무 멀게만 느껴진다.

 

세력전의 진행 방식도 한몫한다. 세력전이 벌어지고 있는 장소로 부대를 이동하면 전투에 참여할 수 있는데, 여기서도 전투는 질서정연한 1:1 승부로 진행된다. 세력전에 참여한 플레이어가 30명이면 대략 100개의 부대가 전투에 투입되는 셈인데, 이 부대들이 모두 일렬로 늘어서 있다.

 

치열한 영토 싸움에 부대를 끌고 왔더니 은행처럼 ‘번호표를 뽑고 잠시 대기하세요.’라는 메시지를 받았을 때의 기분을 상상해보라. 전투의 진행도 결코 빠른 편이 아니라서 대기 번호 100번을 받았을 때의 절망감은 상당하다. 

 

더욱이 매번 이런 치열한(?) 전투가 장시간 벌어지다 보니 영토가 한 세력으로 쉽게 넘어가지도 않는다. 한쪽 세력이 튀어나오면 바로 두 세력의 견제를 받는 상황이 계속 돼서 ‘천하통일’이라는 목표는 너무나도 멀다. ‘살아 있는 동안에는 누군가 통일을 하긴 하겠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니, 어쩌면 제갈량이 말했던 이상적인 삼국의 균형에는 가장 가까운 모습인지도 모르겠다.

 

치열한 영토 전쟁, 하지만 순서는 지켜야 한다.

 

 

전체는 어설퍼도 이목구비는 뚜렷하다


솔직히 <삼국지PK>를 전체적으로 보면 A급 게임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번역은 어색하고 메뉴는 너무 많아서 어디에 뭐가 있는지 헛갈린다. 담고 있는 콘텐츠는 많은데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방대한 영토와 수많은 장수가 등장하는 국가전을 강조했지만, 영토를 점령하고 세력을 확대하는 맛도 별로다.

 

그런데도 뜯어보면 재미는 있다. 다른 것은 몰라도 던전과 전투 하나는 확실하게 할 만하다. 던전을 진행하면서 다음 미션에 도전하고, 새로운 장수를 영입하는 맛에 화면을 떠날 수 없다. 그리고 전투에서 더 강해진 부대의 모습을 직접 확인하면 마음이 뿌듯해진다. 어떤 이는 다른 부분에서 재미를 느낄지도 모르겠다.

 

<삼국지PK>는 전체적인 모습이 조금 어설프지만, 곳곳에 담백한 재미 요소가 숨어 있는 게임이다. 마치 ‘콘텐츠가 이렇게나 많이 있으니, 하나 정도는 취향에 맞는 게 있겠지?’라고 말하는 듯하다. 

 

<삼국지>를 소재로 하는 모바일게임은 꾸준히 출시되고 있다. 최근에는 모바일 환경에 맞춰 소재를 캐주얼하게 풀어낸 게임이 많이 등장하고 있다. 드물게도 <삼국지PK>는 고전적인 장수와 전략, 그리고 영토 전쟁이라는 큰 스케일을 다루고 있다. 아주 훌륭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오랜만에 ‘삼국지다운’ 게임을 해봤다는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