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의 로마, 꾸준히 2위를 지켜온 중국, 그리고 가슴이 시켜서 한다는 이집트"
지난 2일, <문명 온라인>의 1차 비공개 테스트(CBT)가 종료됐습니다. CBT 동안 유저들은 로마, 중국, 이집트로 나뉘어 게임을 즐겼고, 자신의 문명이 승리할 수 있도록 다른 문명의 유저들과 치열하게 다퉜죠.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번 1차 CBT에서는 로마 문명 유저들이 1등의 영예를 가장 많이 누렸습니다. 1차 세션과 3차 세션의 1등을 가져갔거든요. 중국은 3차 세션까지 꾸준히 2등을 유지했고, 이집트는 2차 세션만 1등을 기록하고 나머지 세션에서는 3등을 기록했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CBT 1일차 때는 예상 못 한 일이었습니다. 세 문명 중에서는 이집트 유저 수가 가장 많았거든요. 인해전술을 앞세운다면 그럭저럭 유리하게 플레이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예상과는 정반대되는 결과가 나왔네요.
물론 세션 성적이 나빴다고 해서 손해 볼 일은 아니었지만요. 정복욕이 강한 유저라면 아쉬워할 일이긴 한데, 자유분방한 유저들은 이집트 영토 안에서 충분히 유쾌하게 놀았거든요. 그들의 유쾌한 멸망사(?)를 스크린샷으로 정리해봤습니다. /디스이즈게임 전승목 기자
문명이 시작되기 전에 슴… 아니, 여왕이 있었다.
4월 22일 페이스북을 통해 공개된 인물인데, 이 인물을 본 유저들은 하나같이 "예쁘다"며 감탄했죠. 일부 유저는 "가슴이 시켜서 한다. 이집트로 대동단결!"이라며 CBT가 시작되기 한참 전부터 이집트를 선택하겠다고 선언하기도 했고요.
물론 모든 이집트 유저가 가슴 하트셉수트 여왕만 보고 소속 문명을 선택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하트셉수트 여왕에 감명받아 이집트 문명을 선택하겠다고 나선 사람을 쉽게 찾아볼 수는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럴까요? 적지 않은 유저들은 "이집트 문명에 사람이 많이 몰리겠다"고 예상했고, 그 예상은 보기 좋게 맞아떨어졌습니다. 이때부터였을 겁니다. 가슴이 시켜서 한다는 이집트라며 가슴+이집트, 일명 '슴집트'라는 말이 널리 쓰이기 시작한 것은요.
기껏 열심히 지은 도시를 빼앗기다니... 1차 세션은 3등으로 마무리
그리고 CBT 1일차, 아니나 다를까? 이집트 유저들은 놀라운 속도로 영토를 확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신대륙도 개척하고 도시도 많이 짓고 다들 신 나게 플레이했죠. 참고로 노란색이 이집트, 보라색이 로마, 붉은색이 중국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험난했습니다. 가공할만한 전투력을 자랑하는 로마 문명이 이집트를 침공하기 시작했거든요. 이집트는 애써 지어놓은 도시를 로마에게 빼앗기고 급속히 점령 점수를 잃었습니다.
참고로 <문명 온라인> 1차 CBT의 승리 조건은 '점령 승리'였습니다. 도시를 많이 가질수록 '점령도'가 올라가고, 세션이 끝날 때 가장 높은 점유율을 기록한 문명이 1등을 차지하는 방식이죠. 한 마디로 이집트는 열심히 올린 점령도를 본의 아니게 로마에게 넘겨주는 일을 겪은 셈입니다.
우리도 싸울 줄은 알아! 중국과 1등을 두고 다툰 2차 세션
1차 세션에 3위를 한 분노 때문일까요? 5월 29일부터 30일까지 진행된 2차 세션에서는 이집트가 저력을 발휘했습니다. 로마는 사람이 적어져서 그런지, 1차 세션만큼 힘을 발휘하지 못했죠.
그럼에도 2차 세션 막판은 나름대로 긴장이 넘쳐났습니다. 중국이 무섭게 성장하고 있었거든요. 이때 로마와 중국이 손을 잡고 마지막 공방전에 밀고 들어왔다면 방어하기 어려웠을 겁니다.
다행히 로마는 이집트를 도왔습니다. 중국 문명과 사이가 안 좋았나 봐요. 덕분에 이집트 유저들은 중국 문명과 대치 중인 북쪽 국경에 신경을 집중적으로 쏟을 수 있었습니다.
물론 중국 유저들도 만만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이집트 북동쪽 국경을 허물고 빠른 속도로 남쪽으로 이동해서 레벨 높은 내륙 도시들을 차지하려는 전략을 세웠습니다. 레벨 높은 도시를 차지하면 레벨 1 도시보다 훨씬 높은 점령도를 가져갈 수 있으니, 이집트를 1등에서 끌어내릴 수 있다고 생각했겠죠.
이에 질세라 이집트 유저들도 반격에 나섰습니다. 서쪽 주요 도시를 지키는 병력 외에는 모두 북동쪽 국경에 모여서 중국 유저들과 싸우고, 그들의 거점을 부수려고 노력했죠.
비록 거점 도시까지는 부수지 못했지만, 이집트 문명은 결사항전을 한 덕분에 1위를 지켰습니다. 모두들 꼴찌에서 1등으로 올라왔다며 기뻐했죠.
누가 더 빨리 영토를 넓힐까? 전격전으로 경쟁한 3차 세션
대망의 마지막 세션, 이때부터는 저도 지인들과 파티를 맺어 전방으로 나섰습니다. 슬슬 게임 시스템도 어느 정도 파악했겠다, 이제는 내 도시를 짓고 문명의 승리에 기여해봐야겠다 싶었거든요.
저는 지인들과 합류해서 최전방 국경지대에 '다스후르'란 도시를 세웠습니다. 처음에는 아무 것도 없는 평야였는데, 열심히 공사를 하니 어느 순간부터 그럴싸한 도시가 세워지더군요.
하지만 도시를 세웠다는 기쁨도 잠시였습니다. 로마 문명이 '다스후르'를 첫 목표물로 삼고 돌격해왔으니까요.
"하다못해 시청만은...!" 시청이 부서지면 도시가 점령당하거든요. 그래서 건축공으로 전직해서 언 발에 오줌 누듯 시청 수리에 나섰지만, 공방전 끝나기 전까지 30분 이상이나 남은 시점이었죠.
결국은 시청이 파괴당하고 말았고, 저와 지인은 도시 잃은 노숙자가 되고 맙니다. 하는 수 없이 바로 뒤에 있는 '카훈'이란 도시로 후퇴해서 재정비하려 했는데...
"도무지 막을 수가 없습니다!" 단 5분만에 로마 유저들이 도착했습니다. 고속도로 탄 듯 마냥 무서운 속도로 행군하는 로마군을 어떻게 상대할 수가 없었어요.
전투 결과, 정면으로 로마와 싸우는 건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렇다고 원군을 요청하려니, 다른 이집트 유저들도 각자 최전방 도시를 지키느라 바빴고요.
그래서 '엘 아르미나'라는 도시를 경유해서 해안가에 있는 로마 후방 도시들을 기습 공격하자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일단 도시를 점령해야 많은 돈을 벌고, 그 돈으로 수비를 하든 공격을 하든 할 수 있으니까요.
"어? 왜 여기에도 로마군이 있지?" 아무래도 이 로마 유저들도 이집트 후방 도시를 치기 위해 우회했나 봅니다. 문제는 이 로마 유저 숫자가 우리보다 두 세 배는 많았다는 것이죠. (...)
그래서 로마 유저들이 지나가길 기다렸다가 후방 도시로 침투했습니다. 이제 저 두 도시들을 쳐서 돈을 벌어야겠네요.
돈 벌 생각에 기대감이 부풀어 신나게 달렸습니다. 마침 해안가라 경치도 좋고 모든 일이 좋았죠. 단, 저 도시 위치만 빼고요.
우습긴 하지만 공략하기 쉽지는 않았어요. 물 때문에 상대적으로 취약한 남문, 서문으로 진입할 수가 없었거든요. 북문과 동문 근처에는 감시탑들이 줄줄이 서있었고요.
"성문을 못 뚫을 것 같으면 넘어가면 그만이지!" 불행 중 다행으로, 남쪽 성벽 근처에는 아주 높은 바위가 있었습니다. 그걸 밟고 들어와서 시청만 부쉈죠.
"가기 전에 시청 알박기(?) 하고 가야지!" 시청을 짓지 않으면 빼앗은 도시가 통째로 사라지는 현상이 나타납니다. 하지만 당장 공사할 시간이 없었고, 시청 건설터만 만들어두고 다음 도시로 향할 수밖에 없었죠.
다행히 로마 유저들은 후방도시로 오지 않았습니다. 돈도 10만 골드 이상 들어왔겠다, 남서쪽 로마 영토도 빼앗았겠다, 한시름 놓을 수 있었습니다.
슬슬 르네상스 시대로 넘어갈 타이밍이 왔네요. 중세 시대 때는 못 캤던 '황 광물'을 채집해서 르네상스 무기를 만들 시기가 왔습니다.
전직도 완료! 르네상스 시대 직업인 철거 전문가입니다. 망치를 휘둘러서 빠른 시간 안에 건물들을 허물 수 있는 직업이죠.
만반의 준비를 끝내고 2일차 첫 공방전에 합류했습니다. 적 도시 근처에 병영을 지어서 리스폰 위치를 최대한 가깝게 설정한 뒤 오직 시청만 공격해서 도시를 점령했죠. 도시 경비병이 공격하든 말든 상관하지 않고요.
돈도 벌었으니 공성용 전차도 장만했습니다. 제자리에 동체를 고정한 뒤 포탄을 난사하는 무시무시한 탈것이죠. 이 전차 덕분인지, 전 날에는 한 공방전마다 도시 2~3개만 부술 수 있었는데 이제는 5개는 우습게 부술 수 있네요.
다만 로마 문명의 발전 속도가 더 빨랐다는 게 문제였죠. 열기구가 벌써 떴네요? 하지만 공방전이 종료되기 직전이었습니다. 폭격당해서 전차가 부서지는 걸 감수하고서라도 성을 파괴하는 데에 집중해야 했죠.
"6개째 점령했다!" 단 5~6명의 공격으로 짭짤한 전공을 거뒀습니다. 이 정도 했으면 충분히 문명 승리에 도움이 될 거로 생각했죠. 하지만…
어라, 우리 후방도시들 어디로 갔지? 월드맵을 확인해보니 우리가 파괴한 도시보다 로마에게 파괴된 도시가 더 많았습니다. 아무래도 로마 유저도 점령한 도시가 무너지든 말든 이집트를 초토화하자고 생각했나 보네요.
일단 진군을 멈추고 레벨 10 도시부터 지켜야겠다 싶었습니다. 이때 레벨 10 도시 하나를 빼앗기면 점령도 5%가 깎이는 상황이었거든요. 도시 하나 빼앗기면 2, 3위 순위가 갈릴 판국이었습니다.
자칫하면 로마와 중국보다 낮은 점령도를 기록하겠다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중국 유저들이 병영을 짓고 도시를 공격할 기지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이란 말이 있죠. 2일 오후 6시, 로마와 주로 싸우던 중국 유저들이 이집트를 거세게 공격하기 시작했습니다. 앞으로 공방전이 두 차례밖에 안 남았으니, 점령도가 비슷한 이집트를 누르고 2등을 기록하자고 판단한 모양입니다.
나름대로 방어 준비 열심히 했다고 생각했는데... 성안에 감시탑을 빽빽하게 설치하고 탱크까지 준비해서 항전했는데, 결국은 도시를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또다시 노숙자 신세네요.
그나저나 중국도 로마도 이집트를 공격하고 있는데, 어째 이 상황에 이집트 유저들의 수가 줄어든 듯했습니다. 다들 어디로 가 있는 것일까요?
설마 여기에…? 전체 채팅창을 계속 살펴본 결과, 적지 않은 유저들이 '남극'을 외치고 있었던 겁니다. 마지막 공방전을 앞둔 상황이었는데 괜찮은 것일까요?
"괜찮아, 우린 대륙을 잃었지만 남극을 얻었어!" CBT 종료를 앞둔 상황이었는지라, 몇몇 유저들은 이미 마지막 공방전에 관심을 잃었습니다. 건축자재도 하나 없는 남극에다 도시를 지으려 애를 쓰고 있었죠.
"여러분 남극 세종 기지(?)로 오세요!" 결국 이집트는 점령도 19%를 기록하고 3등으로 마지막 세션을 마감했습니다. 대신 남극은 이집트 유저들의 천국으로 변했죠.
CBT가 종료된 뒤에도 이집트의 남극행은 이야깃거리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어느 유저는 유쾌한 마무리라고 하고, 어떤 유저는 대륙에서 지고 남극으로 쫓겨났다고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죠. 전쟁을 좋아하는 유저는 아쉬워했고요.
그래도, 이런 엉뚱한 마무리도 나쁘지는 않은 것 같네요. 즐거워하는 사람들도 많았고. 그리고 추후 테스트에서 이집트가 다시 승리를 거둘 날이 올지도 모르고요. 개인적으로는 아쉬우면서도 유쾌한 마무리였다 생각합니다. 잘 놀았습니다. 다음 CBT에도 또 만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