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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뷰/리뷰

반쪽짜리 ‘무협 스킨’ 카드배틀, 무협영웅전

‘무협소설 마니아’ 시각으로 본 <무협영웅전 for Kakao> 체험기

김승현(다미롱) 2014-07-22 23:12:36
정통 무협 카드배틀을 표방하는 <무협영웅전 for Kakao>(이하 무협영웅전)가 지난 11일 국내에 정식 출시됐다. 게임은 카드배틀 게임에서는 흔치 않은 무협이라는 소재, 그리고 홍콩의 유명 무협소설가 김용의 작품에 기반한 방대한 시나리오를 내세우며 국내 시장에 도전장을 던졌다.
 
하지만 막상 플레이해 본 <무협영웅전>은 무협 소재의 카드배틀이라기 보다는, ‘무협 스킨’의 카드배틀이라는 느낌이 강했다. 기본기 자체는 나쁘지 않았지만, 무협물의 핵심 요소인 무공은 찾아볼 수도 없었고 주력으로 내세웠던 김용의 무협 세계관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무협 마니아의 시선으로 <무협영웅전>을 평해 보았다. /디스이즈게임 김승현 기자


무협은 고전? 고전게임 같은 첫인상


<무협영웅전>의 첫 인상은 전형적인 카드배틀 게임이었다. 게임은 고전적인(?) 카드배틀 게임의 문법을 충실히 따른다. 전투 승패는 캐릭터 카드의 전투력(정확히는 공격력이나 방어력) 합산에 따라 결정되고, 다른 카드를 재물로 사용해 카드를 성장시키거나 진화시킨다.

최근 카드배틀에서 볼 수 있는 확률형 스킬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진화(무협영웅전에서는 환생)를 마친 고급 캐릭터는 확률에 따른 버프•디버프가 존재하긴 하지만, 적어도 지난 1주일 간의 플레이 동안 이것이 전투에 미치는 영향은 거의 없었다. <무협영웅전>의 전투는 카드배틀 전투의 기본 틀만 있는 셈이다.


게임은 전형적인 카드배틀 게임의 방식을 띈다.

물론 이런 기본틀이 마냥 나쁘다는 의미는 아니다. 플레이를 하며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전투력과 행동력(PvE 콘텐츠를 위해 필요한 일종의 피로도 시스템)이 그리는 아슬아슬한 밸런스였다. 캐릭터 성장을 조금만 게을리하면 금방 한계가 찾아오지만, 지속적으로 성장에 필요한 재료 카드들을 퍼줘 카드를 성장시키는 재미가 있다. 행동력도 (적어도 초반은) 계정 레벨업 직전에서 소진돼 유저가 계속 핸드폰을 만지게 한다. 눈에 띄는 시스템은 없지만, 아슬아슬한 ‘밀당’으로 유저를 끊임없이 붙잡는다.

다만 문제는 이것이 다른 카드배틀에 익숙한 유저에게는 너무도 밋밋하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전투에 변수가 없다 보니 신경쓸 요소가 없고, 설상가상으로 게임의 연출도 거짓말로라도 좋다고 하기 힘들다. 절묘한 PvE 콘텐츠 구성으로 끊임없이 유저의 시선을 빼았지만, 잠깐이라도 시선을 빼았는데 실패하면 하고 싶은 마음이 뚝 꺾인다. 생각 없이 플레이하긴 좋지만, 한번이라도 흐름이 끊기면 게임도 끊어지기 쉬운 구조였다.

일부 캐릭터가 환생(진화) 할 때 얻는 스킬들. 스킬 폭이 좁고, 범위와 확률도 한정적이기 때문에 어지간한 투자 없이는 전투에 미치는 영향력이 적다.


돈과 비급으로 뒤얽힌 냉혹한 비정강호


이러한 흐름을 이어주는 것이 ‘약탈’이라는 콘텐츠였다. <무협영웅전>은 ‘강호’나 ‘던전’이라는 PvE 콘텐츠 외에도, 다른 유저의 비급 조각(모으면 강력한 아이템을 얻을 수 있다)이나 은화를 빼앗을 수 있는 약탈∙비무(어떻게 하면 비무가 상대 은화를 빼았는 콘텐츠를 뜻하는 용어가 됐는지는 차치하자)라는 콘텐츠가 존재한다.

비급은 <무협영웅전>에서 유일하게 캐릭터 능력치를 %로 올려주는 아이템이고, 은화는 캐릭터의 성장 재료를 구하거나 성장 과정 자체에 소모된다. 하지만 보통 쓸모 많은 아이템들이 그러하듯, 게임 속에서 두 아이템을 구하기란 쉽지 않다.


캐릭터가 약하면 아침마다 한 눈에 다 들어오지도 않는 약탈 소식을 확인해야 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무협영웅전>의 약탈 콘텐츠는 ‘아귀다툼’이 따로 없다. 캐릭터가 약할 때는 하룻밤 안에 수십 개의 약탈 메시지를 보는 것은 예사다. 이런 상황에서 혹시라도 좋은 비급을 얻게 되었다면 분에 넘치는 기연을 얻은 삼류 무인의 심정이 어떤지 그대로 느껴진다. 누가 습격하진 않을지 덜덜 떨면서 1시간이라는 유저와 캐릭터 모두 조립시간을 견뎌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대로 내가 강해지면 이러한 태도는 정반대로 뒤바뀐다. 다른 유저를 약탈했는데 원하는 비급이 나오지 않으면 나올 때까지 습격하고, 비무로 많은 돈을 얻을 수 있는 상대가 발견되면 싸울 수 있을 때까지 싸워 돈을 뺐고 또 빼았는다.

강호의 도의는 땅에 떨어지다 못해 묘자리 파고 비석까지 세운 꼴이지만, 무협물 특유의 ‘강자존’(强者存)이라는 개념과 강함이 가지는 마력만은 제대로 표현해냈다.

다만 문제는 이러한 재미가 오래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은화를 많이 주네? 그럼 다시공격!


무(武)가 없는 무협물이라고?


<무협영웅전>은 무협물로써는 한가지 중요한 요소가 빠진 게임이다. 일반적으로 무협물이라는 장르를 규정하는 요소로는 무(武)와 협(俠)이라는 요소가 있다. 무는 무협물에서 흔히 등장하는 무공이라는 초월적인 강함을 일컫는 요소고, 협은 의리와 복수로 대표되는 무협물의 이야기 전개 방식을 뜻한다.

특히 하늘을 날고 바위를 부수는 ‘무공’(武功)이라는 개념은 그 자체로 무협물을 대표하는 상징이다. 하지만 정통무협을 내세우는 <무협영웅전>에는 이러한 요소가 존재하지 않는다. 단순히 화려한 무공 연출이 없다는 의미는 아니다. 

게임 속 모든 캐릭터는 전투력이라는 요소로만 구분된다. 어떤 상황에서 어떤 위력을 발휘한다거나, 어떤 적에게 강하다는 특색이 존재하지 않는다. 가진 무공에 따라 캐릭터의 쓰임은 물론, 캐릭터의 개성까지 결정되는 무협물의 특징 자체를 찾아볼 수 없었다.

물론 게임에는 비급이라는 요소가 존재하고, 특정 캐릭터가 특정 비급을 가졌을 때 ‘무공’이라는 효과가 부여되기도 한다. 하지만 비급은 단순히 캐릭터의 능력치를 높여주는 일개(?) 아이템일 뿐이고, 무공이라는 효과도 캐릭터의 능력치가 추가로 증가하는 패시브 강화 효과에 불과할 뿐이다.


<무협영웅전>의 이런 면은 게임의 무협물로써의 정체성은 물론, 게임의 재미에도 영향을 끼쳤다. 무엇보다 고민의 재미를 느낄 수 없었다. 전투에 영향을 끼치는 요소가 극히 적다 보니, 패배하더라도 상성이나 전략을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반복작업으로 더 많은 재화를 벌어 캐릭터를 강화하는 것이 다였다. 

이러다보니 짜릿함을 안겨 주었던 약탈 콘텐츠도 뒤로 갈수록 전투력을 따라가지 못해 흥미를 잃기 십상이었다. 유저 본인이 전투력을 따라가지 못하면 ‘절정고수’들 사이에 끼어 저항할 의지를 잃었고, 다른 유저들이 유저의 강함을 따라가지 못하면 역으로 계속되는 승리 때문에 약탈의 재미가 갈수록 줄었다. 

물론 카드배틀 게임치고 이러한 경향을 벗어난 작품은 많지 않다. 하지만 많은 게임이 상성이나 확률 스킬 등으로 유저가 전투에 개입할 수 있는 요소를 남겨놓는 것에 반해, <무협영웅전>은 무협물이라는 특성에도 불구하고 이상할 정도로 전투에 개입할 수 있는 요소가 적었다. 그리고 결과는 무미건조한 전투와 그에 따라 점점 지루해지는 플레이였다.




김용이 아니라 ‘김신필’의 세상


<무협영웅전>의 ‘무’가 게임의 근본적인 재미에 영향을 줬다면 게임 곳곳에서 드러나는 ‘이상한’ 묘사는 ‘김용’ 세계관, 나아가 무협이라는 장르에 흠집을 내는 요소였다.

<무협영웅전>은 김용이 집필한 <사조영웅문> <신조협려> <의천도룡기> <천룡팔부> 등의 작품세계와 유사한(?) 세계를 배경으로 한다. ‘유사한’이라는 표현을 쓴 것은 게임 곳곳에서 보이는 이해하기 힘든 명칭 때문이다. 분명 게임은 곳곳에서 이 작품이 김용 작품의 세계를 배경으로 했다는 것을 드러낸다. 하지만 정작 캐릭터나 무공 명칭을 보면 고의로 이름을 뒤튼 것 같은 느낌을 강하다.

예를 들어 <신조협려>의 두 주인공 양과와 소용녀는 게임에서 ‘양서광’과 ‘소용아’라는 이름으로 표시된다. 물론 ‘서광’은 작중 양과의 별호 중 하나였고, ‘용아’라는 명칭도 소용녀의 애칭이었으니 아주 틀린 이름은 아니다. 하지만 익숙한 본명을 버려두고 왜 이렇게 캐릭터를 꼬아서 표현했는지는 알 수 없다. 

이 밖에도 <신조협려>의 최종보스였던 금륜법왕은 ‘천축금륜왕’으로 개명됐고, 김용 세계관 최고수 중 하나인 독고구패는 ‘독고무적’으로 이름 뜻이 반대가 되었다. 윤지평같은 조연의 이름이 그대로 나온 것이 신기할 지경이다. 이러한 알 수 없는 번역은 무공에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김용 세계관 최강의 무공서로 꼽히는 구음진경은 구음무경이 되어 버렸고, 동방불패의 상징과도 같은 규화보전은 규화신공이,  홍칠공의 성명절기 강룡십팔장은 강룡십구장(…)으로 개명되었다.


분명 김용 세계관을 내세운다던 작품이었는데, 관련 작품과 인물, 무공의 이름을 요상하게 바꿔 놓았다. 참고로 원래대로라면 <신조협려>의 ‘양과’, 그리고 ‘강룡십팔장’이 맞다.

물론 명색에 김용 작품을 바탕으로 한 만큼, 서로 관련이 있는 캐릭터가 같은 무리에 있으면 서로의 능력치를 강화하는 등의 원작 요소(?)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유저에게 표시되는 것은 캐릭터 대사 한 줄 없이 그저 단순한 능력치 증가뿐. 이러다 보니 이러한 요소도 그저 원작의 설정을 차용한 캐릭터 강화 옵션으로만 다가올 뿐이었다.

이쯤 되면 게임사가 김용을 모르거나, 사실 그냥 패러디 게임이었는데 필자가 잘못 알고 있었거나, 최악의 경우 김용 IP를 확보하지 못해 이렇게 돌려 말하는 것 아닌지 의심까지 될 정도다. 어떤 이유든 김용 작품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맥이 빠지는 요소였다.

종합하자면 <무협영웅전>은 무협 마니아의 입장에서 보기에는 김용 세계관도, 무협물이라는 장르도 온전히 살리지 못한 카드배틀 게임이었다. 무협물의 상징인 무공은 찾아볼 수도 없고, 게임이 내세웠던 김용 세계관도 부족한 스토리텔링과 이상한 번역 때문에 제대로 체감되지 않았다. 그리고 이러한 무협물로써의 한계는 다시 게임의 재미와 깊이에도 악영향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