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도 마찬가지다. 업데이트가 이어지면서 스토리는 산으로 치솟았고, 적의 패턴을 분석하고 이를 뛰어넘는 ‘액션으로의 재미’도 더 이상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공략보다는 아이템 강화수치를, 재미보다는 클리어시의 보상을 더 강조한 게 현재 <던전앤파이터>의 모습이다.
개발사인 네오플 역시 이런 현실을 잘 알고 있던 듯하다. 이번 겨울 업데이트에서 네오플은 <던전앤파이터>의 새로운 전성기를 위한 해답 찾기에 나섰다. 액션게임으로의 회귀, 꼬여있던 스토리의 재정립, 그리고 새로운 재미다.
벌써 수년을 지속해온 온라인게임이 전성기의 재미를 되찾는 건 가능한 일일까? <던전앤파이터>는 모든 일의 시작과 끝을 보여줄 '마계로 가는 길'에서 그 해답을 제시했다.
/글 = (생전에 네오플을 칭찬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한) 디스이즈게임 신호현 기자
/편집 = (체험기를 편집하며 호현 기자가 미친 줄 알았던) 디스이즈게임 안정빈 기자
[지금까지의 문제] 호평에서 악평으로 치달은 ‘대전이’의 스토리
<던전앤파이터>는 시즌4 ‘대전이’를 기점으로 모든 스토리를 리뉴얼하며 새로운 이야기를 선보였다. 대전이 이전 <던전앤파이터>의 스토리는 과학이 발달한 세계였던 마계가 핵전쟁으로 인해 황폐화되고, 그러한 마계를 되살리기 위한 음모를 꾸미는 제 2사도 힐더의 이야기가 중심이었다.
예언에 따라 사도들을 죽이면 마계가 점점 예전의 아름다운 모습으로 되돌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힐더는 사도를 아라드 전역으로 전이시키고 아라드 사람들에게 사도는 생존을 위협하는 존재라는 인식을 만들었다. 힐더의 계획은 적중해서 사도끼리는 죽일 수 없다는 규칙에서 벗어난 '시련으로 단련된 칼날', 모험가(플레이어)는 카인과 힐더를 제외한 모든 사도를 절멸시켰고, 사도들은 그런 모험가들을 비웃으며 하나 둘 죽어나갔다.
모든 설정은 굉장히 짜임새 있게 구성되어 있었으며, 힐더의 저주로 꼭두각시가 된 아이리스 포춘싱어의 실험으로 마수를 얻게 된 여자 귀검사나 '고통의 마을 레쉬폰'에서 자신에게 불사를 내려준 게 힐더라는 진실을 알고 혼란스러워하는 남자 마법사의 모습 등 신규 캐릭터 하나하나에도 융통성 있는 스토리가 녹아 들어가며 호평을 자아냈다.
많은 문제의 시발점인 대전이 업데이트. 대전이는 아라드에만 충격을 준 게 아니었다.
그러나 대전이 이후 스토리는 크게 달라졌다. 태초의 창조신인 칼로소와 고대 사도들과의 싸움에 대한 설정이 전면으로 부각됐고, 칼로소가 '위대한 의지'라는 이름으로 힘을 되찾아가며 모든 세계를 하나로 합치는 대전이를 일으킨 결과 지금까지 이어오던 스토리는 흐지부지하게 끝나버렸다. 자잘한 설정들은 플레인이라는 일종의 평행세계로 넘어갔다.
[죽은 자의 성에서 내놓은 해결법] 두 번째 스토리 리뉴얼. 매력적인 캐릭터와 탁월한 심리묘사
기존 아라드의 이상현상을 ‘검은 악몽’이라는 설정을 도입해 안정적으로 풀어냈고, 웨펀마스터 '반'이라는 미친 존재감의 캐릭터도 등장시켰다. 높은 계급을 갖고도 직접 모든 사건을 해결하는 소탈한 모습과 냉혹한 전략, 전이사건의 흑막이라는 이중적인 모습을 갖춘 반은 지금까지 <던전앤파이터>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던 캐릭터의 ‘심리적인 갈등’도 보여준다.
스토리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제국의 기사단장이자 4인의 웨펀마스터 중 하나인 '반' 참고로 설정과 달리 일러스트는 대대적으로 너프됐다.
스토리가 바뀌며 애물단지였던 고대 던전도 달라졌다. 기존의 고레벨을 달성해야 갈 수 있는 고대 던전의 형태가 아니라 꼭 거쳐가야 하는 스토리상의 변환점으로서 개편됐고, 난이도도 싱글플레이에 맞춰졌다. 고대 던전을 플레이어들이 스토리를 더욱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요소로 재활용한 것이다.
어지간한 스펙으로는 일반 난이도조차 돌파하기 힘들었던 안톤 퀘스트도 마찬가지다. 안톤이 마계로 가기 위한 교두보가 되면서 일반 유저들을 위한 스토리 중심의 던전으로 개편됐다.
참고로 안톤을 처치하고 도달하는 죽은 자의 성은 제 9사도 루크가 스토리의 중심선에 떠오른다. 특히 루크와 관련된 스토리는 예상 외의 방법으로 유저들에게 반전을 안겨주는데 이는 아직 죽은 자의 성을 플레이해보지 못한 플레이어들을 위한 즐거움으로 남겨두겠다. 직접 확인해보자.
역시나 다른 사도들처럼 모험가를 비웃으며 죽어가는 안톤의 모습이다.
[지금까지의 문제] 액션은 사라지고 ‘스펙’만 남은 전투
초창기 <던전앤파이터>는 이에 충실했다. 보스를 눕히고 무한 콤보를 이어가는 것을 막는 기상충격파뿐 아니라 특정 상황에서 피격 시 발동하는 적 몬스터의 반격 패턴, 플레어어의 스펙이 낮을 시 발생하는 후 딜레이 등을 극복해 나가는 재미로 ‘차별화’를 시도했다. 최근의 MORPG에 비하면 어려운 감은 있지만 신규유저라도 조금만 생각을 하며 플레이에 임하면 충분히 따라올 만한 수준이었다.
체력, 공격력, 방어력, 몬스터의 수까지 악랄하게 강화되는 진:고대던전
이계던전을 포함해 대부분의 던전이 홀딩기만 충분하다면 몬스터의 패턴 자체를 보지 않고 클리어 할 수 있었고, 결국 네오플은 전투개시 후 일정 시간 내에 몬스터를 처치하지 못하면 물리와 마법방어력이 극한까지 올라 대미지가 전혀 박히지 않는 방어력 맥스 패턴(속칭 방맥)까지 추가했다.
그 결과 <던전앤파이터>의 전투는 극도로 단조로워졌고, 홀딩기와 화력을 갖춘 캐릭터만 살아남는 양극화까지 가져왔다. 홀딩을 유지하는 사이에 보스를 처치하거나, 아니면 괴악한 패턴에 전멸을 맞는다. ‘액션이 아닌 숫자의 난이도’가 도입된 셈이다.
죽은자의 성 에이리어의 6개의 던전
[죽은 자의 성에서 내놓은 해결법] 벨트스크롤게임 본연의 플레이로 돌아오다
죽은 자의 성 지역에서 플레이할 수 있는 던전은 일반 던전 5개와 스폐셜 던전 1개다. 연출부터 이야기하자면 첫 던전인 매달린 망루에서는 프로펠러를 타고 죽은자의 성에 진입하는 과정에서 적의 쏟아지는 폭탄을 제거하며 프로펠러를 지키는 플레이를 진행하게 된다. 여기에 망루 진입 과정에서는 중력이 반전되는 연출도 준비돼있다. 고전게임을 많이 해본 사람들은 자연스레 입가에 미소를 지을 수 있는 부분들이다.
파워스테이션 지역에 도입됐지만 그다지 큰 차이를 나타내지 않았던 던전의 분기점과 미션 개념도 돋보인다. 던전을 도는 플레이 시간이 조금 길어지지만 던전 내의 시설들을 파괴하면 보스의 패턴이 대폭 약화되고, 자신이 있다면 빠른 시간에 보스를 처치하는 방식이다.
죽은 자의 성 지역에서는 <던전앤파이터>가 추구하는 새로운 방식의 보스전도 경험할 수 있다. 모든 던전의 보스는 체력이 일정 퍼센트 이하로 줄어들 때마다 무적이 되며 강제 패턴을 발생시킨다. 때문에 홀딩기의 남발이 아닌 ‘보스의 패턴을 알고, 이를 피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
예를 들어 왕의 서고에서는 거대 로봇형 보스인 '콰트로 마누스'가 유저들을 추격해오며 페이즈별로 지형을 붕괴시키고, 다중 레이저빔, 움켜잡기 등의 다양한 패턴을 선보인다. 주먹을 땅을 내려치는 충격강타는 일일이 점프로 피해줘야 하고, 암석이 떨어져서 플레이어의 길을 막기도 한다.
매달린 망루에서는 5초 동안 바닥의 붉은 구역에서 최대한 벗어나고, 보스가 뒤돌아보는 순간 움직이지 않아야 하는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형식의 패턴을, 샐러맨더의 화로에서는 꼬리에 달린 무기에 따라 바뀌는 공격패턴을 선보인다.
플레이어들의 일방적인 공격에 맞서 방어력만을 강화시키며 맞대응 하던 방식을 액션을 살릴 수 있는 직관적인 모습으로 바꾼 것이다. 여담이지만 죽은 자의 성 업데이트 이후 <던전앤파이터> 유저들 사이에서는 ‘왜 진작 이런 방식을 도입하지 않았냐’는 애정어린(?) 비판이 쏟아지는 중이다.
솔직히 말해 이전까지 <던전앤파이터>의 대규모 업데이트는 빈말로도 호평을 해줄 만한 요소가 그리 많지 않았다. 당연히 해야 하는 캐릭터 밸런싱을 대규모 업데이트라는 미명하에 지나치게 몰아서 수행하며 유저들의 원성을 샀고, 스토리는 스토리대로 무너져 내렸으며 던전의 구조는 양극화를 부추겼다.
업데이트를 반복하다 보니 액션보다는 업데이트가 쉬운 아이템과 스펙에 치중하게 되고, 그 결과 액션의 비중이 줄어들고, 결국 던전의 재미를 액션이 아닌 아이템과 클리어 보상에서 찾게 되고, 다시 액션의 비중이 더 줄어드는 ‘재미의 악순환’이다.
결국 네오플에서는 뒤늦게나마 이런 ‘악순환’에서 벗어날 필요성을 느꼈던 듯하다. 액션에서는 세심하고 전략적인 플레이로 공략의 묘미를 살렸고, 스토리에서는 가볍고 저렴한 B급 냄새를 풍기는 개그 퀘스트와 게임의 핵심을 관통하는 진지한 에픽 퀘스트가 잘 어우러져 있던 과거의 향수를 되살렸다.
죽은 자의 성 업데이트는 지난 겨울 <던전앤파이터> 페스티벌에서 ‘최고 레벨을 1만 올리는 이유는 단순한 레벨업과 반복보다 콘텐츠의 재미를 느끼게 해주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 윤명진 디렉터의 이야기가 빈말은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던전앤파이터>의 골수유저로서도 ‘작지만 확실한 변화’를 느낄 수 있는 업데이트다.
남은 문제는 여전히 많다. 업데이트에 따른 각종 버그와 제 자리를 못 잡는 신규 직업, 업데이트 체험기인만큼 언급하지 않았지만 이벤트에 참가한 계정을 임시로 이용정지 시키는 운영방식 등 ‘네오플스러움’을 보여주는 단점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리뉴얼이라는 좋은 말로 포장했지만 이는 바꿔 말하면 유저가 게임에 몰입하기 어려울 정도로 설정이 계속 바뀌고 있다는 뜻도 된다. 죽은 자의 성에서 도입한 시스템들을 얼마나 이어갈 수 있느냐도 관건이다. 손이 많이 가는 어려운 길임은 확실해 보이기 때문이다.
다만 과거 <던전앤파이터>의 전성기를 추억하는 플레이어들에게만은 이번 '죽은 자의 성' 업데이트는 신의 한 수로 여겨질 만큼 완벽했다. 네오플에 욕하는 재미로 플레이를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인 <던전앤파이터>를 지속적으로 플레이한 필자가 ‘칭찬’을 할 정도라면 얼마나 확실한 기대감을 줬는지 상상이 갈 것이다.
앞으로의 <던전앤파이터>가 어떤 행보를 걷게 될까? (아마도 약 10년전 게임시작 버튼을 누른 후 처음으로) <던전앤파이터>의 업데이트 방향에 대해 기대를 걸며 이만 죽은 자의 성 업데이트 체험기를 마친다.
에픽 퀘스트 중 NPC 로이의 사랑 이야기는 대전이 이전의 퀘스트 '카곤의 접근'을 상기시킨다
에픽 퀘스트 중 NPC 로이의 사랑 이야기는 대전이 이전의 퀘스트 '카곤의 접근'을 상기시킨다
카곤의 접근 퀘스트를 기억하고 있는 플레이어라면 배꼽을 잡고 폭소할만한 재미있는 퀘스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