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닝구'가 돌아왔다.
닝구가 누구냐고? <라테일>, <게임빌 프로야구> 후기 시리즈의 일러스트레이터, 몇년 전 재기 발랄한 <하스스톤> 패러디 청첩장으로 화제가 된 개발자, 그리고 국산 1인 제작 RPG메이커 게임계에 한 획을 그은 <서프라이시아>를 혼자 만든 사람.
2000년대 중반 처음 공개된 <서프라이시아>는 1인 개발 무료 게임이라는 것이 믿기기 힘들 정도로 방대하고 깊이 있는 게임성, 톡톡 튀는 유머 감각, 그리고 (완전판 기준) 론칭 7년이 지난 뒤에도 게임을 보강한 개발자의 열정 등으로 큰 반향을 일으킨 게임이다.
<서프라이시아>를 개발한 닝구(본명: 박민우)는 마지막 패치 이후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다가 올해 중순, <아리아: 테일즈 오브 타마게리아>라는 신작과 함께 1인 개발자로 돌아왔다. 신작 <아리아: 테일즈 오브 타마게리아>는 부산 인디 커넥트 페스티벌 2018 경쟁 부문에 진출했다.
게임 기자로서, 한 때 <서프라이시아>와 함께 뜬 눈으로 밤을 지샌 한 명의 유저로서 놓칠 수 없는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산 인디 커넥트 현장에서 '닝구' 박민우 대표와 만났다. 그의 신작 <아리아: 테일즈 오브 타마게리아>와 함께.
스튜디오 N9의 박민우 대표
만나서 반갑습니다! <서프라이시아>를 재밌게 즐겼는데, 만든 분을 직접 뵙게 될 줄은 몰랐네요.
박민우 대표: 반갑습니다. 어렸을 때 젊은 혈기로 만든 작품이었는데, 이렇게 오래 사랑 받을 줄은 몰랐어요.
첫 작품 <서프라이시아>부터 복귀작 <아리아: 테일즈 오브 타마게리아> 모두 턴제 전투를 사용한 RPG입니다. 이런 장르를 좋아하시나 봐요.
예. 턴제 RPG보단 턴 방식 게임 자체를 좋아하는 것 같아요. <세계수의 미궁> 같은 RPG는 물론, <엑스컴>같은 전략 게임, <하스스톤>같은 TCG 등 턴 방식 게임을 가리지 않고 즐기거든요. 최근엔 <다키스트 던전>도 열심히 했고요. 첫 작품인 <서프라이시아>는 턴제 전투를 JRPG 느낌으로 만들고 싶어 도전한 작품이죠.
'닝구'라는 닉네임으로 처음 공개한 작품이었죠. 초창기부터 퀄리티에 대한 감탄이 많았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때부터 게임업계에 들어오는 게 목표였나요?
비슷해요. 정말 게임을 만들고 싶었죠. 그림을 배운 계기도 게임 개발자가 되고 싶어서였거든요. 그래서 저한테는 흔히 말하는 '고유한 그림체'라는 것이 희미해요. 게임을 만드는 일러스트레이터는 다른 사람의 화풍을 구현할 수 있어야 하거든요.
다만 이런 동기와 별개로, <서프라이시아> 자체는 업계에 뜻을 두며 만든 작품은 아니에요. <서프라이시아>를 만들기 시작한 시기와 제가 업계 일을 시작한 시기가 비슷하거든요. 2003년부터 일을 시작했으니까요. 사실 <서프라이시아> 캐릭터들의 이름도 저와 제 친구들의 학창시절 별명이에요.
<서프라이시아> 마지막 패치가 2015년 있었던 걸로 기억해요. 거의 10년 동안 무료 게임 하나에 매달린 셈인데….
그러게요. 그 때 생각이 조금 더 있었다면 돈 받고 팔았을텐데…. (웃음) 농담입니다. <서프라이시아>는 패러디나 이런 것 때문에 팔 수 있는 작품이 아니니까요.
10년 간 게임 하나에 몰두했다는 건 과분한 평가 같아요. 회사 일도 했고, 여가 시간에 다른 게임도 많이 했으니까요.
그래도 젊은 혈기 때문인지, 게임을 더 완전하게 다듬고 싶다는 마음이 계속 있었어요. 그래서 나중엔 회사 관두고 대충 반 년 동안 빠짝 수정 작업을 했죠. 지금 생각해보면 어떻게 그랬나 싶어요. 그래도 그렇게 한 덕에 <서프라이시아>가 유저 분들께 오래 기억된 것 같아요.
<서프라이시아> 이후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발히 활동하시다가 다시 개발자로 돌아오셨어요.
이제는 생계를 생각해야 할 나이니까요.
오히려 생계를 생각하면 하고 있던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 일이 더 괜찮지 않나요? 프리랜서 경력만 5년이고, 또 많은 작품에 참여하셨는데….
들켰네. (웃음) 솔직히 프리랜서 일 하면서도 나름 잘 벌었어요. 그런데 그것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것이 있더라고요.
5년 전에 회사 관뒀을 때 마음 먹었던 게 '내 게임을 만들자'였거든요. 처음엔 프리랜서 일 하면서 게임 만들 생각이었는데 두 개를 병행하는 게 쉽나요. 개발은 계속 미루다가 어느 날 터졌어요. 내 게임을 만들자는 마음이. 게임 만들고 싶어 업계에 들어왔는데 게임을 못 만드니까요.
미친 거죠. (웃음) 그런데 더 늦어지면 정말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제는 가정까지 있으니까. 이성은 미쳤다고 하는데, 마음 한 편에선 더 늦기 전에 무조건 시작해야 한다는 생각이 넘쳤어요. 결국 이 마음을 이기지 못하고 개발 시작했죠.
집에서는 뭐라던가요?
아내에겐 항상 고맙고 미안해요. 남편 수입이 끊겼는데도 그걸 이해해주고 스스로 가장이 됐으니까요.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게임을 잘 만들어야죠.
스튜디오 N9라는 이름으로 신작을 공개하셨어요. 이번엔 1인 개발이 아닌가요?
아직은 1인 개발입니다. '1인 개발이 내 정체성!'이라는 건 아니에요. 다만 아직 내 한 몸도 건사할 상황이 아니니 다른 분 끌어들이기 죄송스럽죠. 아마 이번 작품까진 혼자 완성하고, 이후 성적을 보며 차츰 팀을 만들 것 같아요.
그래서 이번 작품이 중요해요. 이걸 잘 해야 아내에게 당당한 남편이 될 수 있고, 또 다음 개발도 계속 할 수 있으니까요.
그런 것 치곤 PC 게임, 턴제 전투 등 자신의 취향을 확고히 드러내시던데요.
인디니까요. (웃음) 제 게임을 만들고 싶어 시작했는데, 남의 시선만 신경 쓰면 본말전도죠. 그럴거면 프리랜서 일을 하거나 회사에 들어가는 것과 다를 바 없겠죠.
그리고 저는 이게 가장 성공률 높다고 생각해요. 제가 좋아하지도, 잘 알지도 못하는 영역에 도전하는 것보다, 제가 가장 좋아하고 잘 아는 영역에 도전하는 것이요. 재미있게 만들면 언젠간 누가 알아주지 않겠어요?
1인 개발이야 이전에도 하셨겠지만, 지금은 부담이 더 큰 상황이잖아요. 힘들진 않으세요?
힘들죠. 그래도 주변에서 많이 도와줘요. 또 다른 개발자 분들을 보고 힘을 많이 얻고요. 근래엔 한대훈 님을 보고 용기를 많이 얻었어요. 프로그래밍 같이 생소한 부분에선 직접적인 도움을 받기도 했고요.
신작 이름이 <아리아: 테일즈 오브 타마게리아>죠? 혹시 어떤 의미가 있나요?
거창한 건 아니고, 정말 개인적인 의미가 조금 있네요. 전작 <서프라이시아>는 <어스토니시아 스토리>에 대한 오마쥬로 제목을 지었어요. astonish가 '깜짝 놀라게 하다'라는 의미거든요. 그래서 비슷한 단어인 surprise를 만져 <서프라이시아>라는 제목을 지었죠.
이번 작품도 비슷한 의미를 담고 싶었어요. 마침 일본어 타마게루(たまげる, 놀라다)가 떠오르더라고요. 바로 만져서 제목을 만들었죠. 아, 메인 제목이자 주인공 이름인 '아리아'는 A로 이름을 지을 필요가 있어 고민하다 나왔어요. 그래야 검색창 상단에 노출되니까요. (웃음)
<아리아: 테일즈 오브 타마게리아>(이하 아리아)는 <다키스트 던전>과 <세계수의 미궁>에 많이 영향 받은 게임이에요. 전작 <서프라이시아>가 JRPG에 영향을 받아 세계를 탐험하는 게임으로 만들었다면, <아리아>는 거점 마을을 중심으로 온갖 던전을 탐험하는 고전적인 던전 공략 게임에 가까워요.
<아리아>에 대해 간단히 소개해 주실 수 있나요?
도전적인 난이도의 던전 탐사 게임이랄까요? 기본적으로 거점 마을에서 의뢰를 받고, 마을 주변에 있는 다양한 던전을 탐험하는 콘셉트에요. 던전 구조는 기본적으로 랜덤 생성. 방이나 몬스터의 배치는 물론이고, 보물상자·제단·광맥 같은 오브젝트도 다 랜덤 생성입니다. 같은 오브젝트라도 효과는 알 수 없고요.
예를 들어 던전에서 똑같이 대포를 발견해도, 어떤 때는 성공적으로 작동해 임의의 방에 있는 몬스터를 쓸어버릴 수도 있고, 어떤 때는 대포가 터져서 파티에 피해를 줄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변수를 늘려 같은 테마 던전을 돌더라도 매번 다른 느낌을 받게 하는 것이 목표에요. 물론 이런 랜덤 시스템 외에도, 유저가 직접 단서를 찾아 던전을 해금하는 등 노력으로 무언가를 개척하는 요소도 존재합니다.
이쯤 되면 아시겠지만, 제법 난이도가 높습니다. 영향받은 작품이 작품이니까요. 세이브 슬롯도 하나고요. 파티원들의 스킬을 잘 조합하고 활용하지 않으면 던전 하나 깨기도 쉽지 않을 거예요.
<서프라이시아>도 버프·디버프가 중요했죠. 그것과 비슷한 방식인가요?
전작보다 더 깊이 있을 거예요. <서프라이시아>는 기본적으로 능력치를 더하고 빼는 스킬이 많았죠.
<아리아>는 이런 것 외에도 상황을 통제할 수 있는 스킬을 여럿 넣었어요. 예를 들어 보스의 다음 패턴을 파훼하지 못하면 아군 하나가 확정적으로 죽는 상황이 있다면, <서프라이시아>는 방어력 버프나 회복 등으로 상황을 돌파했겠죠. 하지만 <아리아>에선 이런 방법 외에도 보스의 목표를 강제로 바꾸는 등 더 다양한 성격의 해결책을 찾을 수 있습니다. 캐릭터의 상태나 위치에 따라 효과가 달라지는 조건부 스킬도 있고요.
보스 몬스터도 연속 패턴을 파훼하지 않으면 아군에게 심각한 피해를 주는 유형, 시간이 지날수록 강해지기 때문에 타임어택을 해야 하는 유형 등 더 다양해졌고요.
저 보물상자에는 함정이 있을까, 없을까?
캐릭터는 얼마나 될까요?
클래스는 12개인데, '캐릭터'는 그것보다 더 많습니다. <다키스트 던전>처럼 용병을 고용해 파티를 만드는 방식이거든요. 똑같은 성기사라고 해도 캐릭터마다 특성이 다르죠. 예를 들어 어떤 캐릭터는 '천리안' 특성을 가지고 있어 던전 구조를 미리 알 수 있고, 어떤 캐릭터는 저주 받은 물건에 영향을 받지 않는 식입니다.
어떤 '캐릭터'를 데려가느냐에 따라 던전 공략도 달라지겠죠. 또 파티 조합에 따라 랜덤 이벤트가 발생할 수도 있고요.
저는 실패를 극복하는 모델을 좋아해요. 던전이나 캐릭터, 스킬 등에서 다양한 선택지를 만든 것도 이 때문이죠. 계속 도전하며 최적의 공략, 나에게 맞는 공략을 찾으라고.
용병을 고용하는 방식이면 이야기 요소는 조금 약해지겠어요. 주인공 개념이 희미해지니.
아, 그 부분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되요.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소수의 주인공격 고정 캐릭터가 있거든요. 사실 처음엔 100% 용병으로만 게임을 만들려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전작 유저들이 <서프라이시아>에서 가장 많이 좋아했던 것이 캐릭터성과 스토리였더라고요. 제 장점을 버리긴 아까워서 스토리, 개그 요소를 추가했어요.
물론 <서프라이시아>처럼 미리 정교하게 짠 연출은 못 보여주겠지만, 탐험 중 소소한 즐거움은 얻을 수 있을 거예요.
전작의 강점이 나온 김에 하나만 더 물을게요. <아리아>도 <서프라이시아>처럼 파고들기 요소가 있을까요?
지금 단계에선 만들지 못했지만, 론칭 버전에선 들어가 있어야겠죠. 그런 것을 찾는 것도 훌륭한 재미잖아요? 그리고 제 목표 중 하나가 '엔딩을 본 다음에도 즐길 수 있는 RPG'를 만드는 거예요.
출시는 언제로 생각하고 계세요?
콘텐츠 제작 자체는 올해 말이나 내년 초쯤 끝날 것 같아요. 마무리 작업 포함하면 내년 상반기쯤 선보일 수 있을 것 같네요.
마지막으로 유저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서프라이시아>를 재미있게 즐긴 분들께 실망스럽지 않은 게임을 만들겠습니다. 많은 기대 부탁드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