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랑그릿사 모바일>의 기세가 뜨겁다. 지난 4일 국내 출시된 게임은 2주일이 다 돼 가는 현재, 구글 매출 2위, 유저 평점 4.8(애플은 매출 4위, 평점 4.9점)이라는 굉장히 좋은 성적을 보여주고 있다
사실 <랑그릿사 모바일>은 출시 전 이 정도 흥행이 예상된 게임은 아니다. 게임의 최고 강점인 <랑그릿사> IP 자체가 전성기가 너무 오래돼 팬층이 한정되는데다가, 게임의 장르는 모바일에서 좋은 성과 거둔 예가 드문 SRPG이자, 유저들이 좋은 감정을 가지지 않은 수집형 RPG. 여기에 더해 게임은 이미 해외에서 반년 이상 먼저 서비스 돼 골수 유저들은 중국, 영어, 일본어 버전을 즐기고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게임은 이런 조건 속에서도 구글 매출 2위, 유저 평점 4.8점이라는 빼어난 성적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수집형 RPG 대부분이 매출이 좋을 경우 평점이 안 좋았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례적인 케이스다.
<랑그릿사 모바일>은 어떻게 흥행과 평가 2마리 토끼를 같이 잡았을까? 그것도 10, 20년 전 '추억'이라는 상대와 싸워가며. 2주일 간 플레이하며 느낀 <랑그릿사 모바일>의 흥행, 호평 요인을 정리했다.
<랑그릿사 모바일>은 3개의 과제를 안고 출시된 게임이다. 먼저 게임의 주요 특징인 <랑그릿사> IP는 90년대가 전성기였고 2번째로 오래된 작품인 2편이 가장 인기 있었던 시리즈다. 때문에 게임은 10~20년 전 추억을 되살리고, 이것을 지금 트렌드에 걸맞게 재해석해야 한다. 십수 년 간 제대로 된 후속작이 없어 괴로워했던 팬덤을 만족시키면서.
SRPG라는 장르도 IP와 상황이 비슷하다. 특히 SRPG는 대단위 전투, 전략성이라는 특징 때문에 모바일에서 흥행 사례가 별로 없었던 장르다. 때문에 게임이 흥행하기 위해선 SRPG 유저들에겐 전략성 등 장르 특유의 미덕을 인정 받음과 동시에, 모바일에서 플레이해도 피곤하지 않은 게임을 만들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수집형 RPG라는 게임 형식은 유저들의 반감을 해결해야 했다. 물론 장르의 핵심인 수집욕과 성장욕을 잘 충족시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른 수집형 RPG들과 싸워 이기려면 요 몇 년 간 유저들이 호소한 수집 스트레스(≒ 유료 뽑기 피로도) 해결이 급선무였다. 물론 그러면서도 상업적으론 흥행에 실패하지 않아야 하고.
결론부터 말하면 <랑그릿사 모바일>은 이 3마리 토끼를 성공적으로 잡았을 뿐만 아니라, 각 요소를 유기적으로 연결해 IP 활용 게임으로서나 모바일 수집형 RPG로서나 주목할만한 성과를 냈다. 일단 여러 요소 중 <랑그릿사> IP에 대한 얘기부터 해보자. (SRPG적 요소도 IP에 포함되는 요소긴 하지만, 전개 상 시리즈의 외형적·시스템적 특징 재현부터 언급한다)
시리즈 전성기의 캐릭터, SRPG 게임성을 적극 어필하는 <랑그릿사 모바일>의 홍보 이미지
# 팬심 확실히 자극했다! 철저한 원작 재현, 납득할 수 있는 재해석
<랑그릿사 모바일> 개발진이 IP와 관련해 우선 집중한 것은 시리즈 초기 작품인 1·2편에 대한 오마주와 재해석이다. 1·2편은 시리즈의 30여 년 역사 상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타이틀이고, 시리즈의 주요 특징을 확립한 작품이다. 특히 두 작품이 보여준 정통 SRPG 전투는 유저들에게 시리즈의 주요 특징처럼 받아들여져, 변화를 추구한 후속작들의 평가가 상대적으로 낮아지는 현상까지 낳았다.
게임은 시리즈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1·2편, 특히 그 중에서도 2편을 집중적으로 재해석했다. 전투 방식부터 3편 이후 나온 실시간 전투나 변형 SRPG 전투가 아니라, 유닛 하나하나를 직접 조종해 싸우는 1·2편의 전통적인 SRPG 전투를 사용했다.
<랑그릿사 모바일>을 시작하면 1·2편의 BGM '네오-홀리워'의 어레인지 버전이 재생되고 주인공과 1·2편 주인공들이 함께 시리즈 전통의 악역 '보젤'과 싸운다. (수집형 RPG라는 장르 특성 상) 올스타전 성격을 가진 <랑그릿사 모바일>의 특징, 그리고 게임이 추구하는 감성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다.
튜토리얼 전투 중 한 컷. 주인공과 함께 1, 2편의 주인공, 시리즈 주요 조역인 제시카가 함께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튜토리얼 전투가 끝난 뒤에도 게임은 곳곳에서 시리즈에 대한 오마주, 혹은 재해석을 보여준다. 튜토리얼 후 본격적으로 주인공 캐릭터를 만들 때에는 시리즈 전통의 질문&답변 방식 캐릭터 메이킹 시스템을 사용하고, 게임의 첫 스테이지는 시리즈 전통(?)에 맞게 성검 랑그릿사를 둘러싼 분쟁에 휘말린 소년·소녀가 제국군을 피해 도망간다는 콘셉트다.
게임은 이외에도 전직 트리와 룬스톤(특수 재화를 소비해 유저가 선택하지 않은 전직 트리도 진행할 수 있는 시스템), SD 병졸들이 서로 돌격해 쓰러진 적을 날려버리는 전투 연출, 병과 별 상성 구조, 각종 어레인지 BGM, 검풍이나 광선포 같은 영웅들의 공격 모션 등 다양한 부분에서 원작 요소를 구현했다.
메인 스토리가 어느 정도 진행된 뒤에는 아예 <랑그릿사> 시리즈의 스토리를 간략하게나마 다시 체험할 수 있는 '시공의 균열'이라는 모드까지 열린다. 첫 이야기는 시리즈 대표작인 <랑그릿사 2>. 참고로 이 콘텐츠에선 캐릭터 승급에 필요한 재화가 나오는데다 레벨 제한도 메인 스토리보다 낮아 게임 중 가장 많이 유저가 접하게 되는 모드 중 하나다.
자연히 유저 입장에선 <랑그릿사 모바일>의 메인 스토리보다 <랑그릿사 2> 이야기를 더 자주 접하게 된다. 이는 게임의 각종 원작 재현 요소들과 함께 시리즈 팬들의 추억을 자극하는 요소다. 또한 이렇게 보여지는 <랑그릿사 2> 이야기는 원작에 비해 볼륨이 작긴 하지만, 선악 관계 없이 매력적으로 그려지는 캐릭터와 큰 빈틈 없이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이야기들 덕에 시리즈를 모르는 유저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다.
<랑그릿사 2>의 스토리를 다시 체험할 수 있는 시공의 균열 모드. BGM이나 맵 구조 등 여러 요소들이 모바일에 맞게 구현됐다.
물론 세월이 흐르고 플랫폼이 달라져 100% 원작의 맛을 보여주지 못하는 부분도 존재한다. 일러스트레이터가 달라져 바뀐 화풍, 1·2편과 달리 영웅과 병사가 '1개 유닛'으로 구현된 부대 시스템, 간략한 전직 트리 등이 대표적이다.
개발진이 이 부분에서 잘 한 것은 이런 변화를 독단적으로 추진하지 않고, 팬들이 '납득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재해석하고 변화한 것이다.
예를 들어 게임의 화풍은 일러스트레이터가 바뀌었어도 최대한 넘버링 타이틀의 화풍을 살리는 방향으로 다시 그려졌다. 볼륨이 작아진 전투나 전직 트리 등도 모바일이라는 플랫폼, 수집형 RPG라는 장르적인 요소를 고려하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다. 개발진의 팬심, 혹은 IP에 대한 이해도가 느껴지는 부분이다.
<랑그릿사 모바일>의 이런 납득할 수 있는 변화는 앞서 말한 클래식 감성 구현 전략과 함께 10년 넘게 넘버링 타이틀 끊기고 기대 이하의 후속작·IP 활용 작품에 고통 받은 팬들에게 먹혔다. 모바일에선 IP 활용 게임이 팬들을 만족시킨 예가 많지 않아 더 돋보이는 결과다. 일부 유저들은 <랑그릿사 모바일>을 일컬어 (모바일 수집형 RPG인데도!) '오랜만에 등장한 제대로 된 후속작'이라고 극찬할 정도.
<랑그릿사 모바일>에서 재해석된 쉐리 일러스트
# 전략성부터 무쌍(?)까지. 모바일서 제대로 구현된 SRPG 전투
물론 위에 말한 요소 대부분은 시리즈 팬들에게 추억을 줄 순 있어도, 게임성 측면에서 팬과 유저들을 만족시키긴 힘든 '포장지' 같은 요소들이다. 그렇다면 <랑그릿사 모바일>은 SRPG 장르의 전략적인 전투, 시리즈 특유의 게임성을 어떻게 구현했을까?
유저들이 기억하는 <랑그릿사> 시리즈의 전투는 크게 2가지 모습이다. 하나는 극단적인 병과 상성과 적들의 강한 군세가 만드는 전략적이고 난이도 높은 SRPG 전투. 정상적(?)으로 게임을 진행할 경우 할 수 있는 체험이다. 다른 하나는 힐노가다나 룬스톤 등 다소 변칙적인 장치들을 사용해 캐릭터를 과하게 성장시켜 무쌍(?) 전투를 하는 것.
이런 상반된 경험은 시리즈 대부분의 작품이 싱글 게임이었기에 이런 꼼수·파고들기 요소를 허용하기 쉬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반대로 캐릭터 자체가 곧 유료 모델인데다 계속 서비스를 해야 하기 때문에 전투력 상승 속도를 제어해야 하는, 여기에 더해 PvP 요소 때문에 밸런스가 까다로운 수집형 모바일 RPG에선 시도하기 힘든 방식이라는 말과도 같다.
하지만 <랑그릿사 모바일>은 이런 상반된 경험을 제한적으로나마 라이브 서비스되는 모바일 RPG속에서 구현했다.
<랑그릿사 모바일>의 전투 구조는 앞서 말한 경험 중 첫 번째를 베이스로 구성돼 있다. 게임엔 보병→창병→기병→보병, 궁병→비병, 승병→마물 등의 병과 상성이 존재한다. 유닛이 어떤 지형에 있느냐에 따라 전투력이나 이동력이 보정된다. 또한 원작과 달리 스킬에 MP 개념이 사라진 대신 '쿨타임' 시스템이 적용돼 유저의 '상황 판단'이 더 중요해졌다.
유저가 게임에서 조종할 수 있는 유닛은 최대 5기. 반면 적은 많으면 10기 이상 나온다. 단순히 숫자만 많은 것이 아니다. 게임은 20, 30레벨을 기점으로 등장하는 적 능력치가 급격히 올라간다. 중반부터는 상성 맞춰 적을 공격해도 몇 번 쳐야만 쓰러트릴 수 있을 정도. 이런 구조는 적과 아군이 교대로 턴을 주고 받는 SRPG 전투에서 난이도를 높이는 요소다. 또한 게임은 전장이 좁은 편이기 때문에 1번의 실수로 큰 손해를 보는 경우가 많다.
(참고로 좁은 전장은 플레이 타임을 줄여 모바일 플렛폼 특유의 피로도 문제를 완화하고, 좁은 전장과 극명한 상성 관계는 짧은 플레이 타임 안에서 마치 묘수 풀이처럼 밀도 있는 전략 고민을 안기는 역할도 한다)
마지막으로 대부분의 스테이지에는 업적이나 보물상자 같이 한 번에 완벽하게 플레이하기 위해선 유저의 전략을 제약해야 하는 요소도 존재한다. 즉, 유저는 기본적으로 적보다 적은 전력을 가지고, 완벽하게 클리어하기 위해선 전략이 제한되는 상황에서, 극단적인 병과 상성까지 고려해 적을 무찔러야 한다. 아, 스테미너(≒ 식량)의 가치가 높기 때문에, 미션 실패의 부담이 큰 것은 덤. (실패하면 소량의 스테미너가 차감된다)
때문에 유저는 자연히 성장 과정 중, 적정 레벨 스테이지에선 유닛들의 이동력과 스킬, 행동 패턴 등을 한 수 한 수 따지며 고민하는 전략적이고 난이도 높은 SRPG 전투를 체험하게 된다.
하지만 '성장'이라는 요소가 개입하면 완전히 달라진다. <랑그릿사 모바일>은 성장으로 인한 능력치 상승(혹은 보정)이 굉장히 큰 게임이다.
고전하던 스테이지를 캐릭터들 레벨 1만 높여 재도전해도 놀라울 정도로 난이도가 낮아진 걸 체감할 수 있다. 원작처럼 극단적인(?) 무쌍 플레이는 불가능하더라도, 성장한 것을 체감하기엔 충분한 변화다. 그리고 게임은 레벨, 클래스, 용병(영웅이 고용할 수 있는 병사), 장비, 인첸트 등 다양한 성장 요소를 가지고 있어.
이 성장 요소들은 일정 단계에 다다를 때마다 큰 이득을 줘 유저가 성장의 재미를 잘 체감할 수 있게 한다.
예를 들어 5레벨 단위로 랭크업이 가능한 '클래스'의 경우, 랭크업을 할 때마다 신규 스킬 해금, 신규 용병 해금, 능력치 증가 등 다양한 변화가 딸려온다. 특히 스킬·용병 해금 같은 변화는 부대의 전투력 상승이나 전략적 다양성에 큰 영향을 주는 요소다. 만약 한 클래스를 다 키우고 상위 직업으로 전직했을 때의 성장폭은 더욱 크다.
게임은 이외에도 10레벨 단위로 패시브 스킬이 해금되거나 강화되는 장비, 2·4 세트를 맞출 때마다 버프가 추가되는 인첸트 등 성장 요소 곳곳에 이런 체감 요소를 넣었다. 나는 아직 그 단계까지 가진 못했지만, 한 전직 트리 육성이 끝나고 룬스톤을 통해 다른 전직 트리의 스킬·능력치까지 가져오면 이런 성장 체감 요소는 더욱 커질 것이라 추정된다.
<랑그릿사 모바일>의 이런 계단형(?) 성장 모델은 적정 레벨에서는 SRPG 특유의 전략 전투를 유지하는 한편, 어려움을 돌파하고 캐릭터를 성장시켰을 땐 고생하던 스테이지를 손 쉽게 돌파하게 해 성장의 쾌감을 극대화 한다. 만약 바로 성장을 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3성으로 클리어 했을 시 '소탕' 기능이 해금되는 식으로 확실한 어드벤티지를 제공한다.
게임은 이처럼 정교한 상성 관계와 맵 구성, 그리고 성장에 대한 명확한 체감을 통해 시리즈 특유의 상반된 전투 경험을 모바일에 맞게 구현하는데 성공했다.
'적 처치 시 재행동' 스킬을 가진 쉐리는 성장하며 '생명력 90% 이상 시 공/방 증가' 패시브, '행동 종료 시 생명력 회복' 패시브 등을 배우며 전투력과 전술적 유연성이 급격히 커진다.
# 전략성을 유지하며, 캐릭터 수집욕을 자극하는 방법
SRPG의 핵심이 전략성이라면, 수집형 RPG의 핵심은 '캐릭터'다. 구체적으로 말해 성능이나 외형, 캐릭터성 등으로 유저의 수집욕을 자극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런 수집욕 자극은 보통 '성능'의 영향이 크기 때문에 SRPG 같은 파워 밸런스에 민감한 장르와는 궁합이 좋지 않다. 그렇다면 SRPG이자 수집형 RPG인 <랑그릿사 모바일>은 전략성을 유지하며 어떻게 수집욕을 자극했을까?
게임은 크게 3가지 줄기를 통해 SRPG와 수집형 RPG 사이의 균형을 잡았다. 첫 번째는 앞서 언급한 병종 간 상성 관계. <랑그릿사 모바일>의 병종 간 상성 관계는 같은 성장 수준에선 절대적이다. SSR 캐릭터라고 할지라도 역상성 SR, R 등급 캐릭터를 이길 수 없다. R등급(뽑기에서 나오는 최저 등급) 기병 '레아드'만 해도 우세 병종인 보병을 상대할 땐 여포, 아니 여포는 못 되도 안량이나 문추는 될 수 있다.
아무리 좋은, 강한 캐릭터도 약점이 있고 게임을 하며 이를 흔하게(!) 만날 수 있다. 반대로 아무리 등급 낮은 캐릭터도 상성 덕에 다 쓰임새를 가지고 있다. 게임은 이런 대원칙을 (적어도 현재까진) 철두철미하게 지키기 때문에 후술할 각종 장치들을 도입해도 SRPG의 전략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
물론 이렇게 상성 관계가 명확하면 게임이 가위바위보 싸움으로 흘러가 캐릭터 각각의 개성이 묻힐 수도 있다. 이는 수집욕을 자극할 필요가 있는 수집형 RPG에겐 좋지 않은 요소고.
헤인의 텔레포트 마법을 사용해 스테이지를 1턴 만에 클리어하는 모습. 이처럼 SR, R 등급 캐릭터도 확실한 쓸모가 존재한다.
<랑그릿사 모바일>은 이런 약점을 해결하기 위해 같은 병종 캐릭터라고 하더라도 스킬 구성이나 전직 트리를 달리 해 캐릭터의 특성을 명확히 부각했다.
예를 들어 똑같은 마법사라고 하더라도 에그베르트는 다수의 광역 공격·디버프 스킬를 가지고 있어 대규모 전투에서 강점을 보이고, 헤인과 제시카는 텔레포트 스킬 덕에 기동력이 필요한 전투에서 요긴하게 쓰인다. 텔레포트 듀오끼리 비교해도 헤인은 불·번개 마법에 특화돼 보병과 기병을 상대하는데 유리하고, 제시카는 바람 마법 중심 스킬과 높은 마법 방어력 덕에 비병과 마법사에게 강한 모습을 보이는 식이다.
이는 근접 딜러도 마찬가지다. 같은 비병이라고 해도 쉐리는 높은 공격력과 '적 처치 시 재행동'이란 스킬 덕에 적진에 파고들어 유리 대포를 처치하는 암살자처럼 쓰인다. 반면 란스는 시스템 상 우세 상성이 없는 비병 주제에(?) 고유 스킬 덕에 비병·기병에게 상성적 우위에 있어 돌격전차처럼 운용할 수 있다. 같은 병종이라도 캐릭터마다 특징과 쓰임새가 명확히 다르다.
<랑그릿사 모바일>은 여기에 더해 스토리 중간중간 각 캐릭터들을 입체적으로 묘사해 유저가 캐릭터의 성능뿐만 아니라 캐릭터 자체에 애정을 가지게끔 유도한다. 이는 <랑그릿사> 시리즈 자체가 캐릭터들을 선악 구분 없이 매력적으로 만든 덕도 있지만, 게임 안에서도 친밀도 스토리 등을 통해 의외의 면모를 조명하거나 예상치 못하게 캐릭터를 망가트리는 등 개발진이 다양한 앵글로 캐릭터를 조명한 덕도 있다.
쉐리의 말괄량이 같은 면모를 잘 보여준 친밀도 스토리.
마지막 장치는 중반부 해금되는 '진영' 강화 스킬이다. <랑그릿사 모바일>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저마다 특정 진영에 속해 있다. 예를 들어 게임의 주인공인 메튜는 '빛의 군단'과 '시대의 주역'이란 진영에 속해 있고 2편의 인기 캐릭터 레온은 '제국의 빛'과 '전략의 대가'라는 전영에 속한 식이다.
그리고 게임에 나오는 일부 캐릭터들은 자신과 같은 진영 캐릭터들에게 일반 스킬관 차원이 다른 버프를 주는 '초월 강화'라는 스킬을 가지고 있다. 게임의 중후반 콘텐츠도 초월강화를 염두에 두고 디자인돼 있을 정도.
때문에 유저는 중반 이후부터 자연스럽게 특정 진영 중심으로 파티를 꾸리게 된다. 그리고 이는 특정 진영, 특정 병종 캐릭터에 대한 필요성을 자극한다. (물론 R, SR 등급으로도 파티를 짤 순 있지만, SSR로 짜면 더 강하지 않겠는가?)
지금까지 짚은 요소들은 <랑그릿사 모바일>의 게임성이나 재미에 대한 것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재미있는 게임과 돈을 잘 버는 게임은 다르다. 그렇다면 <랑그릿사 모바일>은 이런 게임성을 유지하면서 어떻게 높은 매출을 거두고 있을까? 수집형 RPG면서도 어떻게 좋은 평점과 게임성을 유지하며 높은 매출을 거둘 수 있을까?
# 무과금 유저도 자연히 소·중과금이 되는 영리한 유료 모델
<랑그릿사 모바일>의 유료 모델 전략은 크게 3가지로 요약된다. ▲ 무과금 유저도 돈을 쓰고 싶게 만드는 '합리적인 소액 상품' ▲ 뽑기 스트레스는 낮추면서도 유저를 소·중과금 유저로 유도하는 천장·확정뽑기 시스템 ▲ 고래(*) 유저들을 위한 조합 중심 파티 전투와 강화 시스템.
※ 고래: 게임에 돈을 아낌 없이 투자하는 유저를 일컫는 은어. 핵과금 유저 등으로도 지칭된다.
게임을 하며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저렴한 월 부스터 상품이다. 이젠 수집형 RPG를 제대로(?) 시작하려면 3~5만원을 결제하고 들어가는 것이 당연해진 시대가 되긴 했지만, 그럼에도 만 단위의 돈은 부담되는 금액이다.
그런 면에서 봤을 때 <랑그릿사 모바일>의 천 원 단위 상품들은 확실한 메리트다. 가격이 싸다고 이득이 약한 것도 아니다. 30일 간 매일 크리스탈 50개를 주고 경험치·친밀도 버프가 있는 5,900원짜리 패키지는 받을 수 있는 크리스탈 가치만 고려하면 6만 5천 원에 달한다.
일일 콘텐츠의 추가 보상 횟수를 늘려주거나 전투 중 유저의 선택을 무를 수 있는 상품도 가격은 몇 천 원에 불과한 반면, 혜택은 스테미너가 귀한 <랑그릿사 모바일>에서 굉장히 큰 가치를 가진다. 3개의 월 부스터 상품 모두 구매가 크게 부담되지는 않으면서 혜택은 확실하다.
이런 가성비 좋고 합리적은 상품은 무과금 유저가 쉽게 소과금으로 전향(?)하게 유도한다. 이는 사업적인 부분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사람 심리 상 게임에 처음 돈을 쓰는데는 저항이 있지만, 한 번 돈 쓴 게임에 돈을 쓰는 것은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저렴한 부스터 상품으로 매월 고정적인 매출을 만드는 것은 물론, 향후 유저들이 게임에 돈을 더 쉽게 쓸 수 있는 토대를 만든 셈이다.
수집형 RPG에서 유저들이 가장 많이 스트레스 받는 '유료 뽑기' 부분에선 일정 횟수 이상 상품을 구매했을 경우 최고 등급 캐릭터를 지급하는 시스템(일명 천장)을 도입해 피로도를 낮췄다. 유저는 최대 100번 안에 SSR 캐릭터를 확정 획득할 수 있다. 참고로 100회 뽑기하는데 들어가는 비용은 정가(?) 기준 35만원 내외, 월 부스터만 활용해 크리스탈을 모으면 약 3만 원이 필요하다.
아직 국내에 도입되지 않아 언급하기 조심스럽지만, 해외 서버에서 진행된 '확정 뽑기 이벤트'도 주목할 만한 요소다. 이벤트 상품을 구매해 나오는 첫 SSR 캐릭터는 로스터 3명 중 '유저가 가지고 있지 않은 캐릭터'로 나오는 이벤트다. 많은 수집형 RPG에서 최고 등급 캐릭터를 얻기 힘들어, 얻어도 맨날 내가 가진 것과 같은 것이 나와 스트레스 받는 것을 생각하면 엄청난 이득이다.
뽑기의 피로도보단, 뽑았을 때의 만족도가 더 부각되는 모델이다. 이는 캐릭터 모으는 것이 주요 콘텐츠인 수집형 RPG, <랑그릿사 모바일>처럼 캐릭터 조합이 중요한 게임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천장은 다른 측면에서 SSR 얻을 때까지 '얼마 남았다'라는 것을 대략적으로 알려 줌으로써 한 번 돈을 쓴 유저가 SSR이 나올 때까지 더 돈을 쓰게 하는 동력도 된다. 유저의 스트레스를 줄이는 것 뿐만 아니라, 유저가 자연스럽게 돈을 더 쓰게 하는 장치도 되는 셈이다)
# 무·소과금 유저를 달래며 '고래' 유저를 유혹하는 방법
그렇다면 여기서 의문 하나. 부스터 상품은 몇 천 원 밖에 안되고 뽑기도 천장이 있는 게임이 어떻게 매출 2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일까? 앞서 말한 것들은 게임 유료 모델에 대한 평을 좋게 할 순 있어도 단기적으로 매출을 끄집어 내긴 힘든 상품들이다. 반면 <랑그릿사 모바일>은 아직 구글 다운로드 수가 50만도 안 되는 게임인데다, 구글 매출 2위는 하루에 억 단위 돈을 벌어야만 차지할 수 있는 순위다.
이는 앞서 말한 게임의 조합 중심의 파티 구성과 캐릭터 성장 모델을 보면 알 수 있다. 앞서 말했든 <랑그릿사 모바일>은 특정 진영 중심으로 파티를 짜야 전투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게임이다. 레벨이 오르고 게임 난이도가 올라갈수록 유저는 자연히 특정 진영, 특정 역할을 가진 캐릭터에 대한 니즈가 커지게 된다.
물론 <랑그릿사 모바일>은 R이나 SR 등급도 충분히 쓸모가 있는 게임이기도 하다. 하지만 사람 마음이 어찌 낮은 등급 캐릭터로 파티를 짜고 싶어 하겠는가? SSR 캐릭터로 파티 짜고 버프 받으면 더 강한데. 가능하다와 좋다는 엄연히 다르니까. 그리고 실제로 <랑그릿사 모바일>의 SSR 캐릭터들는 독특한 고유 스킬들을 가지고 있어 '제대로' 파티를 구성할 경우 충분히 강력한 모습을 보여준다.
여기에 더해 같은 병종이라 하더라도 스킬 구성에 따라 특화 영역이 확연히 다른 캐릭터 디자인은 꾸준히 유저의 수집욕을 자극한다.
좋아하는, 혹은 파티의 중심이 되는 캐릭터가 생겼더라도 만약 '제대로' 키우고 싶은 생각이 든다면 추가 욕구가 생긴다. 예를 들어 캐릭터 조각을 모아 '돌파'하면 능력치가 오르고 고유 스킬도 강화되기 때문에 후반부가 될수록 조각 수집에 대한 니즈가 커진다. SSR 장비들이 가진 독특하고 강력한 패시브도 '최고 성능'을 지향한다면 무시 못할 유혹이다.
즉, <랑그릿사 모바일>은 무·소과금 유저가 큰 투자 없이 즐길 수 있게 구조를 짠 것과 별개로, '고래' 유저가 게임에 투자할 요소는 얼마든지 있는 게임이다.
다만 게임이 이 부분에서 잘한 것은 시간 들이면 싸게(혹은 무료로) 이 돌파·SSR 장비 획득이 가능한 장치(친밀도 던전, 여신의 시련)를 만들었으면서도, 뽑기 등을 통해 빨리 가고 싶은 길도 함께 만들어놨다는 점이다. 이는 무·소과금 유저들이 큰 박탈감 느끼지 않고 게임을 할 수 있게 도닥이면서도, 고래 유저들이 확실히 돈을 쓰고 이득을 얻을 수 있게끔 만들어 흥행과 평가 모두를 잡았다.
# IP와 장르, 유저 심리에 대한 섬세한 이해가 돋보이는 수작
<랑그릿사 모바일>에 대한 평을 간단히 정리하면 'IP 재현, SRPG 게임성, 수집욕, 유료 모델 등 많은 영역에서 빼어난 모습을 보여준 게임'이다. 물론 자주 끊기는 메인 스토리나 PvP 밸런스 등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많은 장점들 덕인지 이게 크게 게임 경험에 크게 악영향을 주진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인상적인 것은 이런 강점 하나하나가 전부 유기적으로 연결돼 작동한다는 점이다.
원작의 느낌은 단순히 그림이나 연출뿐만 아니라, 전투와 캐릭터 성능에도 녹아져 있어 전방위적으로 향수를 자극한다. SRPG 전투의 전략성과 난이도는 '1달 간 행동 1회 무르기 가능' 같은 상품 판매를 촉진시키고, 캐릭터들의 개성과 진영 요소는 뽑기에 대한 니즈를 강화한다. 뽑기나 조각 중심 성장 모델 같은 스트레스 많은 요소들은 소액 상품이나 천장, 친밀도 던전 등의 각종 장치 등을 통해 단점은 완화되고 장점이 부각된다.
이처럼 게임은 각 요소 하나하나가 다른 요소와 밀접하게 연관돼 강점은 더욱 강화하고 약점은 감춘다. 이런 구조를 IP의 느낌까지 살리는 와중에 제대로 만든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IP 활용 게임으로서는 물론, 모바일 SRPG, 수집형 RPG 면에서도 플레이 해 볼 가치가 있는 게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