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슨이 차기 블록체인 프로젝트 '메이플스토리 유니버스’를 처음 공개한 것은 2022년 NDC를 통해서다.
<메이플스토리> IP 기반 NFT 생태계를 조성, 상호운용성을 바탕으로 유저 창작물 중심의 경제를 만들어내겠다는 전반적 기획은 여타 블록체인 게임 프로젝트가 표방하던 방향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다.
당시의 발표가 프로젝트의 지향점과 그 방법론을 개괄한 것이었다면, 올해 GDC에서 이뤄진 후속 발표는 ‘지속 가능한 MMORPG 개발’이라는 프로젝트의 당위를 처음으로 논하고 있다. P2E 게임을 서비스할 수 없는 규제환경상 국내 서비스는 예정하지 않고 있지만 여전히 눈길이 가는 이유다.
이날 발표에 나선 황선영 그룹장은 20여 년의 장기 서비스를 유지하고 있는 <메이플스토리>의 고전적 가치. 그리고 블록체인 기술을 통해 이를 강화/연장할 방안에 관해 설명했다. /샌프란시스코(미국)= 방승언 기자
<메이플스토리>는 누적 유저 1억 8,000만 명, 10년 넘게 플레이한 계정 5,000만 개 이상에 달하는 초장수 MMORPG다. 황 그룹장에 따르면 <메이플스토리>가 이처럼 장수할 수 있었던 것은 ‘핵심적 재미’를 꾸준히 제공함으로써, 유저가 계속해서 게임에 돌아올 이유를 마련한 결과다.
게임의 핵심 재미 요소를 계속 제공하기 위해서는 첫째로 그 핵심 재미가 무엇인지 규명하고, 이를 계속하여 강화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
그렇다면 <메이플스토리>의 핵심 재미 요소는 무엇일까? 황 그룹장은 ‘아이템 획득 경험’, 이른바 RX(Rewarding Experience)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RX를 계속 제공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그저 좋은 아이템을 제공하면 된다"고 황 그룹장은 이야기한다.
실제로 인게임 아이템을 '뿌릴' 권한을 쥔 넥슨에게 이것은 쉬운 일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온라인게임 환경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모든 유저는 각자 다른 방식으로 게임을 경험하며, 더 나아가 대결, 경쟁, 협동, 교환을 통해 게임상의 자체적 경제 체제를 구성하기 때문이다.
덕분에 개별 아이템의 체감 가치 역시 개인이 처한 복잡한 상황에 좌우될 수 있다. 이를테면 내 주변과 비교해선 좋아 보이던 아이템이 시장에 나가 다른 아이템에 견주어지는 순간, 가치 하락을 겪을 수 있다. 이렇듯 유동적인 경제 속에서 좋은 RX를 계속 제공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RX의 긍정적 경험을 유지하기 위해 개발진은 크게 두 가지 영역에서 노력을 기울였다.
하나는 아이템의 '활용성', 혹은 '쓸모'의 확장이다. 아이템은 역할이 많을수록 가치가 높다. 예를 들어 빙판 위에서 걷게 해주는 신발이 있다면, 착용할 상황이 더 많으니 가치가 높고, 아이템의 전투력이 높으면 더 많은 전투에 쓰일 수 있으니 역시 가치가 높다.
그간 아이템의 쓸모를 키우기 위해 개발진은 여러 콘텐츠를 추가하여 아이템들의 사용처를 추가하는 방안을 선택했다. 실제로 <메이플스토리> 팀은 200명 넘는 팀원의 노력을 통해 그동안 6개 대륙, 6개 지역, 직업, 보스 등을 더해왔다. 1년에 4~5회 벌어지는 주요 업데이트마다 보스, 직업 등 요소가 대거 추가되는데, 다른 게임과 비교하면 수년에 한 번 나오는 확장팩 개념에 맞먹는다고 개발진은 자평한다.
한편 개발진이 생각하는 RX 유지의 두 번째 관건은 아이템의 ‘희소성’이다. 희소성 역시 아이템의 체감 가치를 크게 좌우한다. 성능 좋은 아이템이어도 모두가 가질 수 있으면 의미가 줄어든다. 반대로, 겉보기에는 아무 의미 없어 보이는 아이템도 획득이 어렵다면 가치가 높다. 따라서 아이템의 ‘공급량’을 조정하는 것은 RX 유지에 필수적인 요소다.
그런데 업데이트를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유저들의 RX가 개발진이 의도한 것에 못 미치는 경우가 발생한다. 그 이유를 찾기 위해 개발진은 항상 게임을 모니터링하며 업데이트 후의 RX가 의도에 부합할 수 있도록 조처를 한다.
그 조처 중 하나가 바로 봇과 작업장 관리다. 아이템 생산이 과도해지면 인게임 인플레이션이 발생, 아이템의 가치가 떨어지고 경제가 붕괴하면서 RX 역시 약화한다. 넥슨이 절대 원치 않는 상황이다.
이 문제에서도 200여 명의 데이터 분석 팀이 달려들어 봇을 막는 데 주력하고 있다. 이들이 지난 20년간 막아낸 봇 계정의 수가 1,000만 개를 넘는데, 이는 뉴욕시 인구보다도 많은 숫자다. 이런 강력한 조치에 나설 수 있던 것은 ‘희소성 관리’가 RX 전체에 영향을 준다는 인식 덕분이다.
이렇듯 콘텐츠 업데이트와 희소성 관리를 통해 20년의 세월을 지속한 <메이플스토리>. 이제 넥슨은 그 재미를 향후 10년, 20년으로 이어 나가겠다는 태도다. 물론 이것은 자동으로 달성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넥슨이 생각하는 ‘해결법’은 바로 블록체인 기술이다.
기존에 개발진은 아이템 사용처를 확장하기 위해 콘텐츠 업데이트에 노력했다. 하지만 ‘다음 세대’에서도 같은 방법으로 사용처를 확장하는 데엔 한계가 있다. 이론적으론 물론 개발자를 2배, 4배로 늘려서 연 단위 업데이트를 월 단위로 진행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게 정답은 아니다. 막대한 추가 비용이 발생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넥슨은 대신, 팬과 크리에이터들의 창작 활동에 집중해보기로 했다. 온라인 게임의 경우, 팬이 만들어내는 팬아트, 게임공략 등 2차 창작물이 게임의 경계를 허문다. 이를 통해 유저들은 게임에 더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고, 이렇게 조성된 생태계는 매체 안팎을 하나로 묶는다.
다만 엄밀히 따지면 인게임 생태계와 유저가 만든 외부 생태계는 그간 서로 구분되어 있었다 핵심 재미인 RX가 인게임에만 한정되어 있었다는 점에서 그렇다. 지금까지 ‘아이템’은 게임 밖에서 사용되지 못했다는 얘기다.
반면 블록체인을 통해 인게임 아이템을 NFT화 하면 이를 단일 게임 밖으로 끌고 나와 ‘메이플스토리 유니버스’ 생태계 안에서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 아이템이 단일한 게임에서 하나의 큰 ‘우주’(유니버스)로 옮겨지는 것이다.
'메이플스토리 유니버스'에서 유저는 신규 콘텐츠 추가에 있어 더 이상 개발진에 의존할 필요가 없다. 대신 창작자 생태계가 만들어내는 아이템의 무한한 사용처가 RX를 성장시킬 것이다. 이것이 바로 RX 2.0의 기본 접근이다.
블록체인으로 통합되는 메이플스토리 생태계
하지만 이런 이상적 전망이 실현되려면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하나 있다. 인게임 경제상의 인플레이션 조절이다.
기존 <메이플스토리>는 여타 MMORPG와 마찬가지로, 생성되는 아이템의 수량이 무한하고 예측 불가해 아이템의 희소성 관리가 힘들다. 예를 들어 1,000명의 플레이어가 아이템을 획득할 경우 서버에 1,000개의 아이템이 더해지는 식인데, 실제로는 얼마나 많은 유저가 게임을 플레이할지 모르기에 결국 아이템의 희소성은 예측 및 통제가 힘들다.
이러한 한계 극복을 위해 넥슨은 새로운 아이템 생성 체계인 ‘제한적 생성’ 시스템을 도입한다. 즉 특정 아이템의 숫자가 이전과 달리 유한해진다는 의미다. 유저 수 증가량만큼 아이템 수도 늘어나던 이전과 달리, 전체 서버 단위에서 수량을 조절하기 때문에 유저가 많아져도 아이템의 생성량에 영향이 없다.
넥슨은 <메이플스토리>의 향후 20년을 위해 블록체인을 접목한 ‘메이플스토리 유니버스’ 생태계를 조성할 예정이다. 그렇다면 '메이플스토리 유니버스'는 정확히 어떻게 구성될까?
'메이플스토리 유니버스'는 여러 게임과 NFT가 상호작용하는 가상의 세계다. 그 안에는 물론 MMORPG가 포함되겠지만, 전반적인 목표는 게임의 경계를 넘어서는 것이다.
'메이플스토리 유니버스'의 문을 여는 것은 오리지널 <메이플스토리>에 아이템 수량 제한 시스템을 얹은 <메이플스토리 N>이다. 기존 게임처럼 플레이되지만, 게임에서 NFT를 얻고 교환할 수 있다는 점이 다르다.
유저간 NFT 거래는 곧 새로운 경제의 조성을 의미하는데, 이때 앞서 말한 수량 제한 시스템으로 인플레이션을 관리한다. 아이템 유형마다 주기적으로 고정된 숫자의 아이템만 만들어지고, 일정 시기가 지나면 아예 생산이 중단되는 식이다. 이를 통해 강력한 아이템의 RX가 증가할 수 있다.
아이템 획득이 제한되는 만큼 상당수 유저는 이제 서로 크게 다른 경험을 할 것이다. 또한 파밍은 혼자만의 콘텐츠가 아닌 경쟁 콘텐츠가 되면서 난도가 높아질 예정이다. 대신 그만큼 새로운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유저들은 파밍 전략을 면밀히 짜게 될 것이며, 사냥터 선정에도 신중해질 것이다.
또한 모든 필드와 보스는 다른 아이템 드롭 풀을 지니기 때문에, 더 다양한 성장 방향성이 존재할 수 있다. NFT 아이템들은 모두 고유의 활용도와 희소성을 지닐 것이기에 이를 통해 성장 경험도 기존보다 강화된다. 이것이 <메이플스토리>와 <메이플스토리 N>의 주요 차이점 중 하나다.
또한 NFT의 상호운용성을 활용하는 핵심 애플리케이션도 몇 가지 도입된다. 그중 하나는 <메이플스토리 N 모바일>이다. 이는 <메이플스토리 M>의 블록체인 버전으로, 유저들은 스마트폰 환경에서도 제한 없이 NFT 콘텐츠를 즐길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앞서 알아본 것처럼 넥슨 개발자들의 힘만으로 NFT 아이템의 활용성을 늘려 나가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넥슨은 크리에이터와 함께 차세대 RX를 구현하기로 했다. 이것이 바로 <메이플스토리 N 월드>를 만든 이유다.
<메이플스토리 N 월드>는 여러 유저가 <메이플스토리>의 리소스를 활용, 각자의 블록체인 게임을 만들 수 있는 샌드박스 플랫폼이다. 유저들은 게임의 소유자가 되는 동시에, 전 세계의 친구들과 함께 게임을 플레이할 수도 있다. 또한 콘텐츠 기여도에 따라 수익을 얻을 수도 있고, 자신의 NFT로 다른 유저들의 창작물과 인터랙션 할 수도 있다. 이렇게 만들어진 콘텐츠는 PC와 모바일 환경에서 모두 이용 가능하다.
마지막은 <메이플스토리 N SDK>다. 이 SDK(소프트웨어 개발 키트)를 배포함으로써, ‘메이플스토리 유니버스’는 넥슨이 정의내린 범주 밖으로까지 확장될 수 있다. 개발자들은 메이플스토리 NFT를 이용한 여러 앱과 게임을 만들 수 있다. 예를 들어 건강관리 앱이나 일일 리마인더 앱, 스케줄러 등, 그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다만 이러한 생태계가 지속 가능하려면 참여자를 위한 보상이 뒤따라야 한다. 넥슨은 크리에이터와 개발진을 동일선상에 두고 그 기여도를 측정해 구분 없이 보상하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이는 사용자들이 데브팀의 방향성에 맞춰 생태계 활성화에 동참할 동기를 유발할 것이다. 여기에 필요한 고유 토큰을 제작했으며, 관련 내용은 곧 발표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