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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DC 2024] 재밌는 게임 만드는 방법? 시(詩)에도 답이 있다!

무엇을 숨기고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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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준(음주도치) 2024-03-20 17:11:15

학창 시절 누구나 한 번쯤 비어 있는 '장래 희망' 칸을 채워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전업 시인이 되겠다는 건 아니었지만, 다른 직업을 쓰면서도 항상 시인의 삶을 꿈꿔왔다. 어느새 그 경계는 허물어져 창작자의 삶이면 모두 수용할 수 있는 선에 이르렀고, 기자 또한 그 범주 안에 해당하니, 어쩌면 지금 꿈 속에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기사가 아닌 문학 작품을 활발히 썼던 시기인 대학생 때, 여러 시인들을 만난 경험이 있다. 그 중 한 사람은 이런 말을 했다. "소설가, 작가는 어떤 분야의 전문가라는 뜻으로 '가'짜 돌림이 붙지만, 시'인'은 전문가가 아닌 사람다운 사람을 말한다"고. 참 죄송하지만, 다시 곱씹어봐도 자의식 과잉이라는 생각이 든다. 시의 특징인 간결함, 운율, 비유는 시의 소유물이지, 시인의 소유물이 아니니까. 창작자는 창작자일 뿐이다. 


770개가 넘는 GDC 강연 중 이런 기자의 눈을 사로잡는 강연이 있었다. "시가 더 나은 게임을 만들어준다"는 제목이다. 마음의 고향이 부르는 대로 일단 발걸음을 옮겼다. 시와 게임? 전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 아닌가 싶지만, 의외로 꽤 좋은 궁합이었다. 범주가 굉장히 넓은 두 장르 시와 게임, 그 교집합에 잘 만들어진 게임은 무엇인지에 대한 힌트가 있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디스이즈게임 김승준 기자


턱수염이 인상적인 인디게임 개발자 조던 마그누손. 
걱정마시라, 이 분은 자의식 과잉도 아닐 뿐더러 본받을만한 사고 방식을 가진 분이었다.


# 불필요한 건 모두 버려라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꼽는 좋은 게임의 조건은 무엇일까? 몰입할 수 있는 흥미로운 스토리를 제시하는 작품, 플레이 자체에서 재미를 주는 게임 등 다양할 것이다. 


반면, 시는 어떤가? 보편적인 감정보다 개인적인 상황이나 동기를 설득하는 경우가 많고, 모호한 영역에 머무를 때도 있다. (그는 이에 대해 "자신의 기억으로의 초대"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그러나, 이 자체로만 적용한다면, 게임이 산으로 갈 가능성이 높다. 


먼저 첫 번째 특징 중 하나인 간결함을 살펴보자. '조던'은 게임을 해체하는 작업을 즐겼던 것으로 보인다. <론리니스>(외로움)이라는 게임에선 다른 요소는 모두 배제하고 오직 몇 개의 점으로만 화면 내 대상과 동세를 담아내기도 했다. 


단어를 고르고 골라 한 줄을 완성하는 시는 '선택과 집중'의 대명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완다와 거상>, <메트로이드>, <저니>, <림보>, <인사이드>, <라이프 이즈 스트레인지>, <더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 2> 등의 예시를 들어, 이들이 캐릭터의 상황과 감정을 설득해내기 위해 어떤 선택과 집중을 했는지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해변에서 슬픔에 빠진 소녀와 강연자의 실험 게임 중 하나인 <론리니스>


환경을 활용하는 동시에 선택과 집중을 하는 게임들


다른 시퀀스와 달리 기타 연주에만 집중해 엘리의 감정에 몰입하게 만드는 <더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 2>의 한 부분.

# 반복에서 오는 운율, 변칙에서 오는 리듬

산문시까지 영역을 확장한다 해도, 시가 다른 문학 장르보다 더 집중력을 보이는 요소는 리듬과 템포다. 그렇다면, (노골적인 리듬게임이 아닌) 게임에서 리듬과 템포는 어떻게 조절할 수 있는가? 


'조던'은 '반복과 변주'를 강조했다. 일정한 패턴 속의 불규칙함이 효과적인 감정 전달의 매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젤다의 전설: 야생의 숨결>에서 탁 트인 공간을 내려다볼 때의 풍경, <그리스>에서 색상을 통해 변주를 주는 방식 등이 언급됐다.


<젤다의 전설>의 공간 활용은 단순한 성취감을 넘어 어떤 감정의 전달로 이어진다.

<그리스>의 색상 활용(또는 절제)도 확실한 변주를 준다.


<브라더스>에서 반복적으로 제시되던 협동과 동행의 패턴은 변화를 맞이한다.

시의 특징 중 하나는 (좋은 의미의) '모호함'이다. 시의 형태를 빌려 말하는 순간, 직설적인 표현에서 한 걸음 우회하게 된다. 여기까지 따라 오고 나면 그가 왜 점 단위로 해체된 실험적인 게임에 도전했는지 이해가 된다. 


'조던'은 GamePoemsBook.com이라는 도메인에 무료로 <Game Poems>라는 책을 올려뒀다. 시의 특징을 따르는 게임이 모두 좋은 게임이 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흔하지 않은 시선으로 좋은 게임을 찾는 방법 중 하나를 제시했다는 측면에서는 굉장히 흥미로웠다.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 또는 살아가는 삶의 의미와 아름다움을 조명하는 시, 그리고 재미를 전달하기 위해 만들어진 게임. 여러분이 감동을 받거나 인상 깊게 플레이한 게임은 '시'와 닮았는가?


좋은 주제와 이야기를 담은 게임은 좋은 게임이 되는가?


'시'가 절대적인 기준이 될 수는 없겠지만, 좋은 게임을 찾는 하나의 관점이 되어 줄 수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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