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캡게임즈가 만든 <플랜츠 vs 좀비>(Plants vs. Zombies, 이하 PvZ)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캐주얼게임 중 하나로, 스마트폰·PC·콘솔 등 플랫폼을 가리지 않고 인기를 끌었습니다. 특히 게임에 관심이 많지 않은 사람도 <PvZ>를 즐길 정도였죠.
팝캡게임즈 조지 팬 디자이너(기획자)는 9일(미국시간)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GDC 2012에서 ‘우리 엄마는 어떻게 해서 <PvZ>를 플레이하게 됐나?’는 주제로 강연했습니다. 그가 밝힌 비결은 바로 튜토리얼. 잘 만든 튜토리얼 덕분에 게임을 좋아하지 않는 어머니도 <PvZ>에 푹 빠졌다는 거죠.
조지 팬은 좋은 튜토리얼을 만들기 위해서는 10가지 사항을 기억해야 한다며 <PvZ>를 예로 들면서 설명하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강연을 그대로 들어 보시죠. /샌프란시스코(미국)=디스이즈게임 현남일 기자
팝캡게임즈 조지 팬(George Fan) 리드 디자이너.
① 게임 속에 튜토리얼을 녹여라
많은 게임들이 본격적인 플레이 시작에 앞서 튜토리얼을 하도록 권장하지만, 사실 게이머들은 대부분 튜토리얼을 거치지 않고 게임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튜토리얼은 말 그대로 게임 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기 때문이죠. 게이머들은 게임을 통해 즐거움을 얻으려고 하지, 배우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튜토리얼을 아예 안 만들 수는 없죠. 어떻게 해야 할까요? 게임 속에 튜토리얼을 교묘하게 녹이거나, 마치 튜토리얼이 아닌 것처럼 속이는 게 좋습니다. 실제로 <PvZ>는 별도의 튜토리얼 없이 게임 스테이지 안에 튜토리얼을 녹였죠. 덕분에 거부감 없이 플레이 요령을 배우게 됩니다.
보통 이런 화면에서 게이머들은 튜토리얼을 거치지 않고 ‘뉴 게임’을 바로 누른다.
하지만 이렇게 살짝 바꾸면, 유저들도 튜토리얼을 하는 데 큰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다.
② ‘읽기’보다 ‘하기’가 낫다
텍스트를 통해 게임의 플레이 방법을 일일이 가르치는 것은, 분명 많은 정보를 짧은 시간에 알려주는 효율적인 방법이기는 합니다. 하지만 유저들이 텍스트를 읽는 것은 결코 재밌지 않죠. 너무 많은 텍스트를 통해 게임 방법을 가르치려고 하면, 유저가 텍스트를 읽다가 포기하고 나갈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PvZ>는 시작부터 텍스트로 플레이 방법을 전달하지 않고, 일단 좀비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이동하는 모습, 그리고 식물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공격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유저가 좀비를 잡도록 합니다. 아주 기초적인 것부터 유저들이 직접 플레이함으로써 방법을 알려주죠.
짧은 시간에 많은 정보를 가르치기에는 좋지만, 이런 튜토리얼은 결코 좋다고 할 수 없다.
<PvZ>는 게임을 직접 플레이하면서 배울 수 있도록 했다.
③ 한 번에 모든 것을 가르치려고 하지 말라
<PvZ>는 사실 꽤나 복잡한 메커니즘과 다양한 경우의 수를 갖고 있는 게임입니다. 그런데 처음부터 초보자들이 모든 것을 다 알 필요는 없죠. 그저 좀비를 어떻게 쓰러뜨리는지, 어떻게 자원을 모으고 식물을 심는지 정도만 알면 게임을 즐기는 데 문제가 없습니다.
그래서 의도적으로 <PvZ>의 콘텐츠를 스테이지 1에서부터 아주 천천히, 하나씩 개방해 스테이지 하나당 한 가지 사실만 기억하면 되도록 조절했습니다. 덕분에 유저들은 게임을 배운다는 느낌으로 초반 스테이지를 플레이하는 게 아니라, 즐긴다는 느낌으로 필요한 사항들을 익혔습니다.
실제로 <PvZ>는 스테이지 하나를 클리어하면 아이템이 하나씩 개방된다.
④ 한 번에 하나의 행동만 하도록 제약하라
때때로 유저들은 용도가 뻔한 아이템이라도 개발자가 전혀 생각하지 못한 방향으로 사용하곤 합니다. 이는 게임을 배우는 과정에서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PvZ>는 특정 시스템을 배울 때 아예 다른 행동은 하지 못하게 막거나 정말 뻔히 보이는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가령 햇살 자원 채취 방법을 배울 때는 햇살을 눈에 확 띄게 표시하고, 다른 곳을 누르지 못하게 막는 식입니다. 그리고 유저가 올바른 행동을 하면 텍스트와 효과음 등으로 피드백을 줘서 제대로 행동했음을 인식하게 만들었습니다.
누가 봐도 반짝이는 햇살을 클릭하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디자인했다.
⑤ 텍스트를 쓸 때는 최대한 짧고 간결하게
튜토리얼 티를 내지 않고, 또 최대한 텍스트를 사용하지 않고 유저들을 가르치려고 해도 때로는 어쩔 수 없이 텍스트를 써야 할 때가 있습니다.
단, 이 경우에는 한 가지를 조심해야 하는데 바로 한 화면에 너무 많은 텍스트를 표시하는 것입니다. 유저들은 한 화면에 너무 많은 텍스트가 나오면 제대로 읽지도 않고 넘어가버립니다. 그러면 튜토리얼로서 실격이라고 할 수 있겠죠.
그래서 <PvZ>의 경우 어쩔 수 없이 텍스트를 출력해야 할 때는 무조건 8단어 미만만 나오도록 규칙을 정했습니다. 이 정도로 짧다면 유저들이 아무리 대충 넘겨도 대부분의 사항을 알게 되거든요.
⑥ 흐름을 끊지 말아라
신나게 게임을 즐기고 있는데 갑자기 게임이 멈춘다. 그리고 게임이 이것저것을 가르치려고 든다. 이런 상황에 직면하면 게이머들은 대부분 ‘짜증난다’고 생각하겠죠.
게임의 흐름을 끊고 무언가를 가르치는 것은 때로는 효과적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유저에게 스트레스를 준다는 점에서 결코 좋은 선택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잘못하면 스트레스 때문에 게임을 지울 수도 있으니까요.
⑦ 최대한 세심하게 배려해라
개발하는 입장에서는 ‘설마, 이런 것도 모를까?’ 하고 생각할 만한 사소한 사항도 유저는 이해하지 못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간혹 발생합니다. 그래서 튜토리얼을 구성할 때 최대한 세심하게 배려해야 합니다.
옛날에 <PvZ>를 론칭했던 초기에 일부 유저들이 식물을 왼쪽에 심는 것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만약 왼쪽에 식물을 심지 않는다면 ‘그것은 틀렸다’는 메시지를 바로 호출하도록 조절해서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⑧ 시끄럽게 굴지 말아라
앞에서 최대한 텍스트를 적게 표시하라고 했는데, 이어서 한 가지를 더 말하자면 ‘모든 것을 설명하려고 하지 말라’는 겁니다. 게임의 모든 요소와 클리어하는 방법까지 모두 가르치려고 들면 ‘소음’처럼 보일 수도 있으니까요.
⑨ 시각적인 면을 이용해서 가르쳐라
<PvZ>에 등장하는 식물들은 대부분 겉모습만 봐도 역할을 파악할 수 있도록 디자인돼 있습니다. 이는 좀비들도 마찬가지로, 모습만 봐도 어떤 특징을 갖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죠.
덕분에 유저들은 굳이 텍스트를 읽지 않더라도 해당 식물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좀비가 나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알게 됩니다. 열 번 읽는 것보다 한 번 보는 게 낫죠.
딱 봐도 이 좀비는 사물을 뛰어넘을 것처럼 생겼다. 실제로도 그렇기 때문에 유저들은 바로 이 좀비에 대한 대책을 구상하게 된다.
⑩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는 지식을 활용하라
게임을 전혀 모르는 사람도 <플랜츠 vs. 좀비>라는 게임명을 들으면 ‘식물과 좀비가 싸우는 게임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 겁니다. 실제로 <PvZ>가 캐주얼 게이머들 사이에서 자리를 잡는 데 게임명은 큰 도움이 됐습니다.
게임명만 봐도 이 게임이 어떤 성격인지는 명확하기 때문에 (vs를 화합이나 평화의 뜻으로 이해하는 사람은 없겠죠?) 유저들은 게임의 목표가 무엇인지 배울 필요가 없습니다.
이렇게 때로는 유저들이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지식을 최대한 게임 기획에 반영하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가령 <PvZ>에는 양철통을 쓴 좀비가 등장하고, 식물 중에는 자석 식물이 있는데요, 이들이 어떻게 상호작용할지는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되겠죠. 누구나 이미 알고 있는 지식이니까요.
이름만 봐도 어떤 식물인지 연상할 수 있도록 대중적인 단어를 조합해 이름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