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크래프트>와 <워크래프트> 시리즈로 유명한 블리자드는 대형 타이틀을 만드는 개발사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런 블리자드가 올해 초 ‘가벼운’ 부분유료 게임을 서비스하겠다고 선언했다. 새로운 ‘블록버스터’를 기대하던 팬들은 의아해했는데, 이러한 반응은 팬들이 처음은 아니었다. 이 프로젝트의 시작을 지켜보았던 블리자드 임직원도 처음에는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리고 반년 뒤, 블리자드의 신작 <하스스톤>은 정식 서비스 시작도 전에 전 세계에서 100만 명 이상의 유저가 즐긴 게임이 되었다. ‘코어’하기로 이름 높은 CCG(컬렉터블 카드 게임) 장르의 대중화, 그리고 블록버스터 전문(?) 개발사에서 만든 소규모 프로젝트라는 한계까지. <하스스톤> 개발진은 이러한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했을까?
9일 미국 애너하임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블리즈컨 2013’에서 <하스스톤> 개발팀 ‘팀파이브’의 ‘에릭 다즈’ 리드 디자이너와 ‘벤 브로드’ 테크니컬 디자이너가 공개한 개발기를 들어보자. /디스이즈게임 김승현 기자
<하스스톤>을 개발한 ‘에릭 다즈’ 리드 디자이너(왼쪽)와 ‘벤 브로드’ 테크니컬 디자이너.
마니아가 도전한 ‘쉬운’ 게임 만들기
<하스스톤>을 만든 ‘팀파이브’는 블리자드의 카드게임 마니아들이 모인 개발팀이다. 블리자드 내 카드게임 마니아의 전통(?)은 199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막상 팀을 결성했더니 15 명이 전부였다. 지난해 발매된 <디아블로 3>의 개발 인원이 75 명,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를 처음 개발한 인원이 60 명이었다. 블록버스터 게임으로 유명한 블리자드 내에서는 작디 작은 규모의 개발팀이었다.
개발하는 인원이 적은 만큼 팀파이브가 가장 먼저 고민한 것은 집중해야 할 목표였다. <하스스톤>의 첫 번째 목표는 ‘모두를 위한 게임’이었다. 복잡한 규칙, 알 수 없는 용어 등 카드게임은 대중에게는 어렵고 난해한 장르다. 팀파이브는 이를 허물어 문외한도 쉽게 즐길 수 있는 대중적인 카드게임을 만들고자 했다. 한눈에 알아보기 쉬운 게임, 짧고 간편하게 즐길 수 있는 게임이 <하스스톤>의 최우선 목표였다.
두 번째 목표는 게임의 배경인 <워크래프트> 시리즈와의 연계였다. <워크래프트> 시리즈는 블리자드의 대표적인 프랜차이즈다. 역사도 길고 소스도 다양하기에 <하스스톤>이 빌릴 수 있는 소재는 많았다. 문제는 이를 어떻게 게임에 잘 녹이는가였다. <워크래프트> 시리즈의 대부분은 RTS였고, 그나마 <하스스톤>과 유사한 장르였던 <워크래프트 TCG>는 <하스스톤>이 추구하는 바와 거리가 있었다.
<하스스톤>의 마지막 목표는 생동감 넘치는 게임이었다. 팀파이브 모두 실제로 손에 카드를 쥐고 게임을 즐겼던 이들인 만큼, 게임 화면 안에서도 실제 카드게임과 같은 ‘느낌’을 선사하고 싶었다. 이러한 목표는 게임의 과장된 효과나 덱 에디터의 유저 인터페이스(UI), 카드팩 디자인 등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줄이고, 고치고, 다시 만들고
목표가 정해지자 바로 프로토타입 제작에 들어갔다. 재미의 검증을 위해 처음 만든 프로토타입은 실제와 같은 ‘종이 카드’였다. 첫 프로토타입은 지금의 <하스스톤>보다 전통적인 TCG에 더 가까운 느낌이었다. 카드의 효과도 복잡했고, 카드의 종류도 지금보다 훨씬 다양했다. 한마디로 ‘어려운’ 게임이었다.
<하스스톤> 초기 버전에 존재했던 ‘요새’ 카드.
다음 프로토타입은 웹게임으로 만들어졌다. 한 차례 검증을 거친 만큼 현재의 <하스스톤>에 많은 부분이 계승된 버전이었다. UI의 핵심 디자인이 이 때 완성됐고, 밸런스 조정으로 인해 플레이 동기 부분도 많이 개선됐다. 지는 사람이나 이기는 사람이나 보다 재미있게 플레이할 수 있는 게임을 향해 한 발 더 다가갔다.
가장 많이 어려움을 겪은 것은 카드 설계였다.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어떤 카드를 접하더라도 한눈에 카드의 효과를 알아볼 수 있어야 했다. 이는 곧 간결한 카드 설계, 그리고 그에 걸맞은 UI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졌다. 시행착오도 많았다.
예를 들어 현재 1의 마나를 들여 모든 하수인에게 1 대미지를 입히는 ‘소용돌이’ 카드는 본래 훨씬 복잡한 효과를 갖고 있었다. 소용돌이의 원안은 3 마나 소모로 모든 하수인에 1 대미지, 만약 캐릭터가 무기를 장착하고 있다면 추가로 1 대미지, 만약 캐릭터의 체력이 12 이하라면 추가로 1 대미지를 주는 카드였다.
카드 하나에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전사 직업의 무기∙분노 특성이 모두 반영된 설계였지만, 이와 별개로 카드의 능력이 직관적이지 못해 폐기됐다. 이외에도 당시에는 ‘마우스 포인트를 가까이 하면 피해를 주는 카드’, ‘연패 수만큼 능력치가 증가하는 카드’ 등 지금은 상상하기 힘든 카드가 훨씬 많았다.
원안이 폐기되거나 수정된 카드 사례.
카드의 효과를 단순화하니 이번에는 게임의 깊이가 발목을 잡았다. 대중적인 게임을 지향했지만 단순한 게임을 염두에 두진 않았다. 개발자 모두 내로라하는 카드게임 마니아였기에 깊이가 없는 게임을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때문에 전통적인 TCG의 요소를 덜어내는 가운데 카드의 효과나 카드 간의 시너지 효과 등은 되도록 풍부하게 유지하려고 애썼다.
이 과정에서 소환 시 발동되는 ‘전투의 함성’, 죽으면 발동되는 ‘죽음의 메아리’, 피해를 입으면 발동되는 ‘격노’ 등 다양한 카드 효과가 설계됐다. 새로운 카드 효과는 다시 카드 설계에 대한 검증으로 이어졌고, 이러한 과정은 베타테스트 전까지 몇 번이나 반복됐고, 베타테스트 이후에는 밸런스 조정이라는 이유로 또 한 번 검증이 반복됐다.
<워크래프트>가 아닌, <하스스톤> 만들기
<워크래프트> 시리즈의 색을 유지하면서 <하스스톤>만의 특색을 부여하는 것은 개발팀의 큰 고민 중 하나였다. 역사가 오래된 만큼 가져올 수 있는 소재는 많았지만, 장르가 다른 만큼 그 소재에 <하스스톤>만의 특징을 입히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마법사’(제이나 프라우드무어)는 일반 유저들에게도 이미지가 뚜렷한 직업이라 설계가 쉬운 경우였다. 실제로 마법사의 대표적인 공격 마법인 ‘화염구’는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마법사의 주력 기술임과 동시에, <워크래프트> 시리즈를 모르는 유저들에게도 쉽게 이해시킬 수 있는 마법 카드였다.
‘도적’(발리라 생귀나르)는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도적의 특색을 살리기 위해 고민을 많이 했던 사례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도적은 ‘버블’이라고 불리는 연계 게이지를 모으고, 이를 한꺼번에 소진시켜 강력한 위력을 발휘할 수 있는 직업이었다. 개발진은 원작의 느낌을 살리기 위해 다른 카드를 낸 뒤 연이어 카드를 소환하면 높은 성능을 발휘할 수 있는 ‘연계’ 능력을 도적 전용 카드에 부여했다. 이는 도적 전용 카드들의 낮은 마나 비용과 맞물려 <하스스톤> 만의 연계 플레이를 가능하게 했다.
이외에도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주요 캐릭터인 ‘깨어난 여왕 이세라’는 꿈을 다룬다는 설정에 걸맞게 <하스스톤>에서 각종 ‘꿈’ 카드를 소환하는 등 주요 카드들은 원작의 특성을 재구성해 보여주고 있다.
마스터 랭크의 40%가 무결제 유저, <하스스톤>의 현재
에릭 다즈 리드 디자이너와 벤 브로드 테크니컬 디자이너는 마지막으로 <하스스톤> 베타테스트 기간 동안 기록된 각종 통계를 공개했다. 11월 9일까지 <하스스톤>의 베타테스트에 참여한 인원은 100만 명 이상. 이 중 적지 않은 유저들이 현금 결제를 했다.
하지만 최고 등급이라고 할 수 있는 마스터 랭크 중 결제 유저의 비율은 높지 않다. 마스터 3성(星) 랭커 중 한 번도 현금 결제를 하지 않은 유저의 비율은 44%. 10명 중 4명이 운과 실력만으로 최고 랭크를 유지하고 있는 셈이다.
선공과 후공의 승률 차이는 아직까지는 선공이 미세한 차이로 앞서고 있다. 브론즈 랭크와 실버 랭크에서는 평균 선공과 후공의 비율이 53:47을 기록하고 있고, 마스터 랭크에서는 이 차이가 더욱 줄어 선공의 승리 확률은 51.3%까지 떨어진다. 참고로 ‘체스’의 경우, 선공과 후공의 승리 비율은 54:46을 기록하고 있다.
직업별 승률은 새로운 전략의 등장함에 따라 계속 변화하고 있어 명확한 판단이 힘들다. 초기에는 ‘사냥꾼’(렉사르)과 ‘성기사’(빛의 수호자 우서)가 승률 58.9%와 54%로 앞섰으나, 그 다음에는 도적과 ‘흑마법사’(넬쥴)이 각각 53.7%, 53.5%를 기록하며 치고 올라왔고, 10월 통계에서는 ‘주술사’(쓰랄)와 마법사가 55.2%, 53.7%의 승률을 차지했다.
팀파이브는 앞으로 더욱 <하스스톤>의 콘텐츠를 가다듬어 게임의 완성도를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현재 논란이 되는 ‘정신지배’나 ‘개를 풀어라’ 등 오버 밸런스 카드의 패치가 예정돼 있고, 이외에도 신규 카드와 모드, 각종 편의기능 추가로 게임의 살을 붙여 나갈 예정이다. ☞ 관련기사
<하스스톤>의 리드 디자이너 에릭 다즈는 “하드코어 유저와 캐주얼 유저, 그리고 무결제 유저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밸런스를 선보이겠다. 앞으로도 많은 성원 부탁드린다”고 말하며 발표를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