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C(부산 인디 커넥트 페스티벌) 2018 첫날, 기조연설자로 나선 데피니션식스 크리스 해커 대표는 ‘게임 디자인으로 보는 행운과 경청’이라는 주제로 강단에 섰다. 그는 강연에 앞서, “행운은 우리가 제어할 수 있는 요소는 아니다. 다만, 열심히 일한 결과에 운까지 동반한다면 최고의 결과를 맞을 수 있다. 오늘은 게임 개발 중 운을 가져갈 방법에 대해 전하고자 한다”라고 말했다. 디스이즈게임은 금일 강연을 1인칭 시점으로 정리했다. / 디스이즈게임 박준영 기자
게임을 만드는 방식은 크게 ‘탑 다운’과 ‘바텀 업’이 있다. 탑 다운은 게임 개발 시작 단계부터, 구상과 프로토타입 등을 만들고 예상했던 결과가 실제로 적용되는지 등을 이행하는 방식이다. 반대로, 바텀 업 방식은 제작 과정과 상황에 따라 내용을 추가하며 개발하는 방식이다.
두 방법 중 어느 것이 더 좋은 방법이라 할 수는 없다. 다만, 나는 바텀 업 방식을 선호하는 편이다. 그 이유는 탑 다운 방식으로 게임을 개발하면 유저 반응을 알기까지 너무 많은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유저 반응을 늦게 알면 게임이 발전할 수 있는 가장 큰 힘 ‘운’이 적용되는 시간이 길어진다.
오늘 소개할 게임 <스파이 파티>는 ‘운’덕분에 발전한 게임이다. 게임은 칵테일 파티 중 이를 망치려는 ‘스파이’ 한 명과, 스파이를 잡기 위한 킬러 ‘스나이퍼’가 서로 겨루는 게임이다. 승리를 위해 스파이는 스나이퍼에게 들키지 않고 각종 미션을 해결해야 하며, 스나이퍼는 수많은 사람들 중 스나이퍼를 찾아 총알 단 한발에 물리쳐야 한다.
게임 개발 중 여러 부분에 운이 작용했지만, 이중 게임 실황 데이터에 기초해 이야기 하고자 한다. <스파이 파티>는 약 2만 회 이상 플레이 한 유저들이 있어 게임에 어떤 요소가 발전해야 하고, 어떤 부분이 긴장감을 주는지 등을 누적 데이터를 통해 알 수 있었다. 이 과정을 통해 개발 과정에서는 의도하지 않았지만, 유저 해석이 달라져 게임 발전에 기여한 요소들도 있다.
우선, ‘손님 유혹’미션이다. 스파이는 유혹 미션 중 유혹해야 하는 대상 앞으로 가면, 타이밍에 맞춰 버튼을 누르는 ‘저스트 타이밍’방식에 미니 게임을 진행한다. 미니게임 성공 여부에 따라 유혹 성공 여부가 바뀌며, 시간 제약이 있는 게임이기에 유저들이 이를 무조건 성공하도록 노력할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개발진 예상과 달리 막상 게임 론칭 후 일부러 미니게임을 실패하는 유저들이 등장했다.
알고 보니, 미니게임 실패 시 유혹 대상이 그냥 지나쳐 NPC처럼 보였고, 유저들은 스나이퍼를 속이기 위해 일부러 실패한 것이다. 심지어, 이를 이용해 다른 NPC에게 누명을 씌워 스나이퍼가 미션을 실패하도록 유도한 유저도 있었다. 의도한 디자인은 아니었지만, 유저들이 게임 해석을 달리하고 이를 게임에 적용해 진행한 사례다.
캐릭터 이동 속도 차이를 게임에 이용한 사례도 있었다. <스파이 파티>에는 수많은 캐릭터가 등장하며, 이중 드레스나 장신구 등으로 인해 이동 속도가 느린 캐릭터들이 있다. 이들이 활용된 미션은 스파이 미션 중 ‘도청장치 설치’미션이다.
도청장치 설치를 위해선 스파이가 도청 대산 반경에 들어와 있어야 한다. 그런데, 대부분 캐릭터들의 이동속도가 빨라 도청 대상을 가로질러 갈 경우 그냥 지나치게 된다. 때문에 설치를 위해 도청 대상 주변을 부자연스럽게 맴돌게 되며, 스파이는 금새 스나이퍼에게 들켜 저격당한다.
그런데, 이동 속도가 느린 캐릭터들은 달랐다. 속도가 느린 덕에 도청 대상 근처를 가로질러가도 도청기를 설치하는데 시간이 부족하지 않았다. 스나이퍼에게 들키지 않고 자연스럽게 도청기를 설치할 수 있는 캐릭터인 셈이다. 이동 애니메이션을 신경 쓰다 보니 자연스럽게 느려져 의도했던 디자인은 아니었다. 하지만, 플레이어들이 이를 파악하고 이용해 게임 스타일 자체를 바꾼 사례다.
의도와 달리 게임 난이도를 올린 부분도 있었다. <스파이 파티>는 서로 속고 속이는 심리전이 기반이 된 게임이라 1시간 정도만 플레이해도 쉬는 시간을 가져야 할 정도로 고도 집중을 요한다. 때문에, 게임을 빠르게 진행하고 끝낼 수 있는 아케이드 성격을 띈 맵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결과 탄생한 맵이 동선이 매우 좁은 ‘발코니’다.
발코니는 좁은 공간에 캐릭터가 모여있는 맵이다. 미션과 이동 경로 등 모든 부분에 제한이 있어, 제작 당시만 하더라도 플레이어들이 가볍게 즐길 수 있는 맵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맵이 좁고 동선이 없다 보니 오히려 유저들에게 ‘최고 난이도 심리전’을 요하는 맵이 됐다. 심리전 부담을 덜기 위해 선택한 요소가 오히려 심리전을 가중시킨것이다.
앞서 전한 사례들은 모두 의도하지 않았거나 의도와는 다른 결과를 낸 사례들이다. 개발자 입장에서는 이와 같은 ‘의도하지 않았던 결과’를 패치를 통해 얼마든지 개선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난 그러지 말라고 전하고자 한다. 사람들이 다르게 받아들인 요소가 있다면, 아이디어를 받아들이고 그를 통해 발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게임 개발자는 유저 피드백이 게임 최대 장점을 발굴할 수 있는 행운이라 생각해야 한다. 피드백은 무료로 게임 아이디어를 받는 것이기도 하다. 게임을 더 좋게 만들 수 있는 아이디어가 있다면 개발자가 마다할 이유가 없다. 소중한 자원인 셈이다. 여러분들은 게임 중 전혀 신경 쓰지 않았던 부분에 피드백을 받을 수도 있으며, 이 피드백이 게임을 바꾸는 최대 요소가 될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이야기를 더 전하자면, <스파이 파티> 개발에 약 9년 정도 시간이 걸렸다. 이정도 시간을 들여 개발하라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중요한 요소를 발견하기까지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걸릴 수 있다는 걸 알았으면 한다.
아주 사소하고 작은 요소일 수 있지만 발견까지 몇 달, 아니 몇 년이 걸릴 수도 있다. 모든 개발자는 사람들의 플레이를 읽고 반응을 읽을 시간이 필요하다. 집중하지 않으면 보일 것도 보이지 않는다. 사람들의 반응을 읽고 집중해 호평받는 게임을 만들 수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