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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전 세계 모바일 매출 1위 '페이트: 그랜드오더'의 성공 이유 (上)

[연재] 김승주의 방구석 게임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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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주(사랑해요4) 2020-08-18 16:58:32

성공하는 게임을 만들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대답은 간단하다. 좋은 게임을 만들면 된다. 게임이 재밌으며, 시스템이나 스토리로 훌륭하다고 말할 수 있다면 많은 사람들이 그 게임을 선택할 것이다. 물론 게임의 장르와 규모, 주관 등에 따라 훌륭한 게임의 정의는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여기 앞서 말한 원론적인 이야기에서 벗어난 게임이 있다. 그래픽이 화려하지도 않다. 밸런스 또한 썩 좋다고 말하기 힘들다. 게임을 하는 유저들마저 떨어지는 퀄리티에 한숨을 내쉰다. 하지만 게임은 부정적인 평가와는 별개로 무시무시한 상업적 성공을 거두었다.

오늘 이야기는 모바일 오타쿠 게임 대표작 <페이트: 그랜드오더>(이하 페그오)다.  /편집= 디스이즈게임 김재석 기자

 


 

 

# 연 매출 1조, 하지만 PvP도 매서운 PvE도 없는 게임

 

게임이 받는 여러 비판과는 별개로 <페그오>는 무지막지한 상업적 성공을 거둔 게임이다. 2016년부터 급증하기 시작한 매출은 계속 상승곡선을 그렸다. 그러더니 <페그오>는 2018년에 전 세계 모바일 시장 매출 1위를 기록했다. <페그오>는 일시적인 현상일 수 있다는 관측에도 불구하고 꾸준하게 세계 모바일 게임 매출의 탑 순위를 고수하고 있다.

 

시장 조사 사이트의 데이터를 종합하면, <페그오>는 매년 조 단위에 이르는 매출을 기록하고 있다. 게임은 '내수' 일본뿐 아닌 한국과 중국 등지에서도 수년 째 매출을 올리고 있다. 아래 자료들을 보자.

페그오의 매출액 그래프. 18년 매출이 12억 달러 정도로 추정되는데, 이를 환산하면 1조가 넘는다. (출처: 센서타워)

실제로 정점을 찍은 2018년에는 모바일 매출 1위를 기록했다. (출처: 앱애니)

하지만 <페그오>의 흥행은 조금 이상하다. '가챠 게임'에서 매출을 긁어모을 수 있는 원동력은 대체로 이렇다. ― 유저들 간의 경쟁 심리를 조장해 PVP를 활성화시키고 '압도적인' 힘을 가진 캐릭터를 출시해 매출을 끌어모은다. PvP가 아니더라도, PvE 난이도를 높임으로써 게임을 마스터 하기 위해서는 지출을 필수불가결하게 만드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페그오>에는 PvP도, 유저들 수준을 나누는 극한의 PvE도 없다.

<페그오>의 제작사인 딜라이트워크스 또한 "우리는 비상식적인 기획을 통해 성공할 수 있었다"라고 자신하고 있을 정도다. 아무리 <페그오>의 근본이 캐릭터 콜렉팅을 주요 포인트로 내세우는, 항상 사행성 논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가챠 게임'일지라도 이런 흥행은 이질적이다.

어떻게 <페이트: 그랜드오더>는 게임의 원작 제작사 타입문의 전성기를 이끄는 '신위의 수레바퀴'가 될 수 있었는가?

도대체 무엇이 페그오를 이 자리까지 이끌었는가?

 

# 타입문의 시작으로 돌아가보자


시간은 돌고 돌아, 1999년까지 흘러간다. 타입문은 본래 일러스트레이터 '타케우지 타카시'(이하 타케우지)와 소설가 '나스 기노코'(이하 나스)가 주축으로 결성했던 동인 서클이었다. 본래 타카우치 타케시는 우리에게도 친숙할 법한 '나이타미 미사미츠'가 운영하던 컴파일의 일러스트레이터였다.


나스 키노코의 오너 캐릭터
타케우지 타카시의 오너 캐릭터


90년대 후반, 컴파일이 운영 위기를 겪으면서 타케우지도 자연스럽게 다른 회사로 이직했다. 이직 후 타케우시는 동인 활동에 흥미를 느끼고 '타케보우키'라는 웹사이트를 만든 후 자신은 만화를, 나스는 소설을 쓰는 식으로 사이트를 운영하게 된다. 이때 연재된 소설이 '공의 경계'다.

 

타케보우키의 모습. 지금은 예전의 자취를 찾아보긴 힘들고, 간간히 글이 올라오곤 한다.

국내에 발매된 공의 경계의 표지. 공의 경계는 일본에서 발매 1달 만에 40만 장의 출하량을 기록했다.

이후 그 둘은 활동 영역을 넓히기 위해 타케우지의 컴파일 직장 동료들, 그리고 타케보우키를 애독하던 소수의 팬들이 모여 동인 서클 타입문을 결성해 첫 작품 <월희>(2000)를 출시한다. <월희>는 비주얼 노벨 게임이자, '공의 경계'와 세계관을 공유하는 신전기(어반 판타지) 장르를 표방하고 있다.

<월희>는 동인 게임임에도 불구하고 원고지 5,000장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분량을 가지고 있는데, 덕분에 특유의 매력 있는 세계관이 여실히 담겼고, 그 결과 특유의 마니아층을 형성할 수 있었다.

 

흥미롭게도 <월희>는 성인 게임이다. 본래는 일반 소설로 기획되었지만, 타케우지의 권유로 인해 '19금' 요소들이 들어갔다는 이야기가 있다. 약간 오해를 할 수도 있는데 19금 요소는 곁다리로 들어간 정도이며 게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 않다.

 

<월희>의 표지. 세월의 흐름이 느껴진다.

그리고 <월희>와 팬 디스크인 <가월십야>, 동인 서클 '프랑스빵'과 협력한 작품인 대전 액션 게임 <멜티 블러드>의 성공에 힘업어 타입문은 2003년에 상업 회사로 발전하게 된다. 그리고 상업 회사로써 처음 내놓은 작품이 바로 2004년에 발매된 <페이트: 스테이 나이트>. <페이트> 시리즈는 이 작품에서 첫 출발을 알렸다.

2004년, 비주얼 노벨로 발매된 <페이트: 스테이 나이트>

<페이트: 스테이 나이트>도 <월희>와 비슷한 어반 판타지 장르의 비주얼 노벨이다. 주인공 '에미야 시로'가 우연히 '5차 성배 전쟁'에 휩쓸리게 되면서, 전쟁에 참가하게 된다는 이야기가 골자. 스토리는 '페이트' 루트와 'UBW' 루트, 그리고 '헤븐즈 필'의 세 가지 큰 갈래로 나뉜다. <페이트> 시리즈의 특징은 역사에서 나오는 영웅들이 '서번트'라는 미소녀/미소년 캐릭터로 치환되어 등장한다는 점이다.

가장 유명한 설정은 아서 왕이 '세이버(진명은 따로 있지만, 대부분이 클래스 이름인 세이버로 부른다)'라는 여성으로 등장한다는 것. 그리고 게임의 여러 심오한 뒷배경과 누구나 상상의 나래를 쉽게 펼칠 수 있는 역사 인물들에 대한 과감한 재해석을 통해 <페이트>는 어마어마한 상업적 성과를 거뒀다.

거의 20만 장이 넘는 판매고를 올렸는데 이는 에로게 역사상 거의 유일하다고 할 수 있다(아무리 오타쿠 관련 산업이 발전한 일본이라 하더라도 성인 게임은 꽤 마이너한 장르다). <페이트: 스테이 나이트>도 <월희>와 비슷하게 19금 요소가 약간 가미된 게임이었다.

"묻겠다. 그대가 나의 마스터인가?"

 

덕분에 <페이트> 시리즈의 성공을 기반으로 여러 미디어 믹스를 진행해 나가며 <페이트>의 IP를 천천히 쌓아나가기 시작했다. 후속작이자 팬 디스크인 <페이트: 할로우 아타락시아>를 발매하고, 스튜디오 딘과의 협업을 통해 <페이트> 시리즈를 애니메이션으로 만들기도 했다. 일본의 유명 시나리오 라이터 우로부치 겐이 <페이트: 스테이 나이트>의 프리퀄 소설인 '페이트 제로'를 발간하기도 했다.

 

페이트: 스테이 나이트의 프리퀄이었던 페이트 : 제로

특히 애니메이션 제작사 'unfotable'에서 제작한 '페이트 제로'의 애니메이션이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언포테이블은 나스 기노코의 소설 '공의 경계'의 극장판을 만들면서 떠오르기 시작한 제작사였다. 현재는 인기 만화 '귀멸의 칼날'의 애니메이션을 제작할 만큼 성장한 회사.

특히 원화, CG 등 수많은 부분을 자체적으로 제작하는 수직적 계열화가 이루어진 제작사였기 때문에, TVA(티비 애니메이션)이라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작화를 뽑아내며 찬사를 받았다. 우로부치 겐이 집필한 특유의 우울하고, 강렬한 스토리도 호평을 샀다.

미디어 믹스의 성공 덕분에, 타입문은 동인 시절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규모의 팬층을 형성할 수 있었다. 이러한 성공을 기반으로 대전 액션 게임, 휴대용 게임, 스핀오프 애니메이션 등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페이트> 시리즈의 미디어 믹스는 문어발 같이 뻗어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2015년, 모바일 플랫폼으로 발매된 게임이 바로 <페이트 그랜드오더>다.

  

제로의 작화는 가히 어마어마했고, 이는 상업적 성공의 기반이 되었다. 

제로를 통해서 <페이트> 시리즈는 일약 메이저에 오르는 데 성공한다. 

 

 

# <페그오>, 그 시작은 미약했지만...

 

<페이트: 그랜드오더>는 온라인 게임으로 기획되었다가 프로젝트가 무산된 <페이트: 아포크리파>의 설정을 차용해 만들어진 게임이다. 리부트는 애니메이션과 같이 게임도 발매해 보자는 '애니플렉스'의 제안으로 시작되었다. 아포크리파는 당초 3D 온라인 게임으로써 여러 서번트가 등장해 PvP를 벌인다는 콘셉트였다.

 

프로젝트가 무산되었던 페이트 아포그리파. 이후 몇몇 설정을 가지고 라이트 노벨이 발매되기도 했다.

개발사인 딜라이트워크스는 스퀘어 에닉스 출신의 쇼지 아키히토가 혼자서 설립한 회사다. 타입문의 제안으로 <페그오>의 제작에 착수한 곳인데, 발매 초기에는 전체 직원이 30명도 채 안 되는 작은 회사였다. 애초에 타입문과 애니플렉스는 코어 게이머들이 즐기는 소규모의 게임으로 <페그오>를 기획했기 때문이다.

 

게임의 기본 방식은 트레이딩 카드 장르였고 스토리도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원작 게임이 20만 장 정도 팔렸으니 게임의 유저층도 그 선에서 형성되리라 여겼다. 하지만 아키히토는 <페이트>가 가진 가능성을 믿었고 끈질기게 타입문을 설득했다. 반년의 논의 끝에 결정된 모토는, <페이트: 스테이 나이트>의 파생 게임이 아닌 하나의 외전작을 만들자는 것.

 

쇼지 아키히토 (출처 : 딜라이트워크스)

그리고 앞서 말한 아포크리파의 컨셉을 차용하고 독자적인 설정을 얻어, 수많은 서번트가 등장해 일종의 올스타전을 펼친다. 그리고 그만큼 캐릭터와 스토리에 역량을 집중했다. 원작자인 나스 기노코의 감수를 받고, 여러 작가진이 참여한 덕에 게임의 1부 스토리만 글자로 4MB에 달할 정도.

 

<페그오>는 2014년 7월, 이전부터 진행되고 있던 <페이트> 시리즈의 극장판과 같이 공개되었다. 원래는 극장판의 방영에 맞춘 겨울에 오픈할 예정이었으나 여러 사정으로 인해 차일피일 미뤄졌다. 결국 게임은 2015년 7월에 발매되었다.

 

페그오의 플레이 화면

 

하지만 초창기의 <페그오>는 말 그대로 엉망진창이었다. 개발사인 딜라이트워크스가 규모가 크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미 예측한 독자도 있을지도 모르겠다. 개발 기간도 짦았고, 프로젝트에 들어가는 예산이나 인력도 넉넉하지 않았다.

 

게다가 <그랜드오더>는 신생 개발사가 내놓은 데뷔작. 최적화 수준이 좋지 못해 고사양의 스마트폰이 아니라면 발열 문제가 심각했다. 콘텐츠는 적었으며 인터페이스는 편의성이 떨어졌다.


또 게임을 진행하면서 자주 보게 되는 보구(필살기) 연출을 스킵할 수가 없었다(이것은 지금도 동일하다). 그리고 가장 심각한 예는 커맨드 카드를 누르는 순간 '뒤로가기'가 없어서 선택을 취소하는 게 불가능했다.

 

스킬을 선택하고 공격 대상만 정하면 되는데, 다른 스킬을 사용하고 싶어져서 선택을 취소하려고 해도 안 된다는 소리다. 스킬을 선택했으면 무조건 공격해야 한다. 시간을 되돌리고 싶다면 게임을 강제로 종료해야만 했다.

 

인터페이스는 지금 봐도 참...

결국 항의 끝에 추가되기는 했다.

게임에 대한 개발 노하우도 없었으니 밸런스는 이미 먼 산을 넘어가 있었다. 강력한 서번트와, 주류에서 벗어난 서번트들의 성능 차이는 심각한 수준이었다. 스토리의 난이도 또한 들쭉날쭉해, 게임을 진행하면서 갑작스럽게 난이도가 크게 상승하는 부분도 있었다. 이야기의 연출력도 나빴다. 특히 유저들은 그저 일러스트만 왔다 갔다 할 뿐인, 차라리 '없으니만 못한' 연출에 경악했다.

가장 큰 문제는 게임이 자랑하는 스토리조차 엉망진창이었다는 것. 나름 괜찮은 시나리오도 있었지만, 몇몇 스토리의 엉성한 전개와 무의미한 연출, 특정 캐릭터에 대한 편애는 팬들 사이에서 논란을 낳았다. 덕분에 <페그오>는 IP와 코어 팬층의 힘으로 출시 1년 만에 600만에 가까운 다운로드 횟수를 기록했지만 낙관적인 미래를 예상하는 유저들은 거의 없었다. (下 편에서 계속)

말을 아끼겠다.

아니. 할 말이 없다. 무려 춤을 추는 연출이다. 컷씬이라도 쓰면 덧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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