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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전 세계 모바일 매출 1위 '페이트: 그랜드오더'의 성공 이유 (下)

[연재] 김승주의 방구석 게임 (4)

에 유통된 기사입니다.
김승주(사랑해요4) 2020-08-25 10:23:51

앞선 이야기: 전 세계 모바일 매출 1위 '페이트: 그랜드오더'의 성공 이유 (上) (바로가기)

 

# <페그오>는 어떻게 이런 문제를 떠안고도 성공했는가?

 

(이어서) 그렇다면 IP의 힘에 기대던 <페그오>는 어떻게 반등했나?

 

먼저 엉망인 스토리가 다듬어지기 시작했다. 1부 4막까지만 해도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던 스토리는, 5막부터 페이트 특유의 설정을 적절하게 풀어내면서 나쁘지 않은 반응을 이끌어 냈다. 특히 원작자 나스 기노코가 본격적으로 참여한 6막부터는 평가가 완전히 뒤집어졌다.

 

보다 못한 나스가 스토리에 직접적으로 관여하기 시작하면서, 스토리는 나름 구실을 갖추기 시작했다

그리고 페이트 시리즈에 대한 신규 팬의 유입도 많아지고 있었다. <페이트 제로>를 제작한 유포테이블에서 만든 <페이트: 헤븐즈 필> 극장판이 많은 애니메이션 애호가들에게 호평을 받았고, 극장에서 페이트 시리즈를 접한 마니아들이 자연스럽게 게임으로도 유입되었기 때문이다.

IP의 힘과 다른 미디어 믹스와의 상호작용은 <페이트: 그랜드 오더>의 가장 큰 흥행 요인이 되었다. 먼저 세계관부터 각 서번트들이 총집합한 '올스타전'에 가까운 개념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페이트 시리즈는 게임, 만화, 애니메이션 등을 통해 수많은 스핀 오프로 파생되어 있었다. 

 

그리고 여기에 다양한 설정을 덧붙임으로써 수많은 외전작들로 나뉜 캐릭터들을 게임으로 한데 모아 등장시켰다. 그러면서도 <페그오> 또한 하나의 외전이었기 때문에 새로운 캐릭터들 또한 자연스럽게 스토리에 녹여낼 수 있었다.

 

본작의 메인 히로인이자, 많은 인기를 보유한 오리지널 캐릭터 마슈

아무리 IP의 힘이 대단하더라도 특정 작품의 외전을 만든다면 많은 캐릭터들을 한데 등장시키기 곤란하다. 원 작품의 세계관을 무리하게 확장시키다가는 '원작 파괴'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서 <페이트 스테이 나이트>의 외전 게임을 만든다면 등장할 수 있는 캐릭터들은 '5차 성배 전쟁'에 등장한 인물들로 제한된다. 하지만 오리지널 캐릭터를 만들어 투입시킨다면, 새로운 '독자적 설정'이 등장하고 원작의 스토리와 충돌하면서 기존 팬들을 실망시킬 수도 있다. 

그렇기에 지속적인 논의를 통해서 <페그오>를 <페이트: 스테이 나이트>의 외전격 게임이 아닌 '페이트 세계관 자체'를 다룬 외전으로 전환했다는 점은 현명했다.

<페이트 스테이 나이트>를 기반으로 한 대전 액션 게임 <언리미티드 코드>. 한 작품만을 기반으로 한다면 등장할 수 있는 캐릭터가 제한된다

 

그리고 수많은 캐릭터들을 한데 모아 등장시킨다는 것은, 페이트 시리즈가 이전부터 역량을 집중하던 다양한 미디어 믹스화와 시너지를 이룬다.

 

특정 IP에 대한 마니아의 유입 경로는 다양하다. 원작 게임을 즐기면서 빠져든 사람도 있을 테고, 극장에서 상영되는 애니메이션을 보고 유입된 팬들도 있다. 휴대용 게임기로 발매된 <페이트: 엑스트라>와 같은 게임을 즐기다가 빠져들게 된 경우도 존재한다.

 

이토록 다양한 접근 방식을 통해 페이트라는 IP의 매력과 설정에 빠져든 사람들에게 수많은 캐릭터들이 총출동해 서로 싸우고, 상호작용하며 이야기를 진행하는 <페그오>가 매력 있게 다가오는 것은 당연했다.


페이트 시리즈가 많은 역사 속 인물들을 한데 모아 게임에 등장시켰다는 점도 한몫했다. 다양한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에는 최고의 설정이기 때문이다. 다양한 개성과 영웅이라는 이름에 걸맞는 힘을 보여주면서도, 생전에 다하지 못했던 소원을 가진 서번트들의 이야기는 페이트의 수많은 뒷설정들과 얽혀 독특한 개성을 발휘했다.

그랜드 오더 또한 애니메이션화가 이루어졌다

<페그오> 또한 여기에 그치지 않고 게임의 스토리를 다룬 미디어 믹스를 전개했다. 드라마 CD, 성우들이 참여하는 공식 라디오, 아케이드 액션 게임, 소설과 공식 만화까지. 심지어 한국 공식 카페에서 연재된 웹툰도 있다.

가장 인기 있는 미디어 믹스는 게임 공식 코미디 만화, '만화로 알아보는! <페이트: 그랜드 오더>'다. 작가는 이전부터 게임 패러디 만화로 유명했던 '리요'.

 

이 만화는 공식 만화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의 개그 센스를 보여준다. 수많은 메타 발언은 기본이요, 주인공인 '구다코'는 아예 가챠에 미쳐 있는 캐릭터로 등장할 정도다. 그러면서도 불합리한 게임 시스템과 가챠를 신랄하게 비판한다. 어떻게 보면 <페그오> 플레이어들의 분신이고, 그들의 마음을 대변해 준다고 볼 수도 있다.


이 사진 하나로 요약 가능하다

2주년을 기념하여 한국에 축전을 보내기도 (출처 : 넷마블)

그 인기 덕분에 여러 행사에서 게임의 마스코트처럼 사용되기도 한다

이런 미디어 믹스의 다양화는 계속해서 게임에 대한 흥미를 유지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된다. <페그오>가 사람들에게 어필했던 가장 큰 매력 요소는 캐릭터와 스토리고, 미디어 믹스의 확장은 이런 매력을 더더욱 강화시켜 주니까.

텍스트로 묘사되는 연출이 아쉽다면 애니메이션을 보면 된다. 게임의 뒷설정에 대해 더욱 파고들고 싶다면 원작 게임이나 공식 서적을 보면 된다. 게임에서 진행되는 이벤트가 아니더라도 공식 만화나 다른 미디어 믹스를 통해 캐릭터들이 서로 농담을 주고받는 모습을 관람할 수도 있다.

지금까지 페이트가 쌓아온 미디어의 산은 거대하다. 유저들은 게임의 업데이트가 지지부진하거나 스토리의 진행 속도가 답답할지라도 다른 미디어를 통해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다. 덕분에 점점 더 페이트에 빠져든다. 게임을 하다가 애니메이션을 보고, 애니메이션을 보다가 게임을 하는 것이다. <페그오>의 소비는 단순한 게임 소비가 아니다.

페이트의 미디어 믹스는 수없이 많다

이런 구조는 게임의 엄청난 매출과 직결된다. 다양한 길을 통해 유입된 유저들은 애착을 두는 캐릭터들도 제각기 다를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좋아하는 캐릭터들이 또 다른 캐릭터들과 상호작용하며 싸움을 벌인다면 더더욱 좋다. 여기에 더해서, <페그오>는 캐릭터들을 등장시키는 데 있어 자신들의 강점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새롭게 등장한 캐릭터들은 가챠 로테이션에 곧바로 투입되지 않는다. <페그오>는 게임을 진행하면서 캐릭터가 나름의 활약을 펼치고, 이야기가 클라이맥스로 치닫는 순간 픽업 이벤트를 개최한다. 캐릭터들을 등장시키는 빌드 업이 확실하다는 소리다. 덕분에 게임의 세계관에 흠뻑 빠져든 팬들이 정말로 '시의적절한' 순간에 캐릭터가 새롭게 추가되니 지출하지 않고는 배길 수 없게 되어 버린다.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 보자. <페그오> 세계관에서는 세계가 위험에 처했을 때 ‘억지력’이라는 힘이 발동된다. 억지력은 범 인류사 속 영웅들을 등장시켜 주인공에게 위기를 극복할 힘을 빌려준다. 

하지만 주인공이 임무를 완수하면 영웅도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간다. 이별의 순간, 각 영웅들은 주인공과 동고동락하며 느낀 자신들의 감상을 담담하게 말한다.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이별이 끝나고, 상점에 들어가면 해당 영웅의 픽업 이벤트가 떡하니 등장한다.

대표적인 캐릭터로 ‘오키타 얼터’가 있다. 아래 사진을 보자.

 

매력있는 캐릭터들과 만나, 동고동락하며 세계를 지키고

눈물이 콸콸 쏟아지는 이별 후
상점에 들어가면

가챠(0.7%)가 떡하니 등장한다

이런 방식이다.

 

그리고 글의 도입부에서 이야기했듯이 <페그오>에는 PvP가 없다. 깊게 파고들면 논란의 여지가 있겠지만 PvE의 난이도가 엄청나게 높지는 않다. 물론 처음 시작하는 플레이어들에게는 불필요한 반복 플레이를 줄여주고 게임을 쉽게 풀어나갈 수 있게 해주는 '공멀젤(공명+멀린+컬라이더스코프 예장)'이 권장되기는 한다. 그렇다고 해서 계속해서 출시되는 고등급의 캐릭터들을 무조건 뽑아야 게임의 스토리를 돌파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위에서 설명했듯이, 유저들이 가챠에 열중하는 이유는 말 그대로 캐릭터에 대한 애정이다. 이것만으로도 엄청난 매출을 뽑아내고 있으니 앞서 설명한 페이트라는 IP의 힘이 오타쿠 계층에게 어느 정도인지, <페그오>가 매력 있는 캐릭터 장사를 위해서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진 더 설명하지 않아도 되리라 생각한다. 

 

 

# 딜라이트워크스의 마케팅 기법: <페그오>의 일상화

 

 

지속적인 정보 노출은 게이머들이 계속해서 게임에 흥미를 가지고 플레이하는 동력이 된다. 업데이트 소식도 없고, 미디어에 노출도 거의 되지 않으며, 개발사의 근황도 감감 무소식이라면 유저들은 "게임이 망해가는구나"라고 느낄 것이다.

딜라이트워크스는 계속해서 유저들이 <페그오>라는 콘텐츠에 노출될 수 있도록 했다. 메일이나 트위터, 게임의 푸시 알림을 통해 계속해서 유저들에게 가치 있는 정보, 메일이라도 확인하고 싶게 만드는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노력했다. 가장 신경을 썼던 것은 공식 트위터 계정이다. 18년 기준으로 팔로워 수는 120만 명에 달하고 있으며, 2017년 트위터 트렌드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을 정도다.

유저들을 위한 오프라인 행사도 꾸준하게 진행했으며, VR과 같은 다양한 방식을 통해 유저들을 놀라게 했다. 딜라이트워크스 측에서 말하길 이는 "<페그오>와 함께하는 삶"이라고 한다.

 

모든 방법을 총동원해 지속적으로 페이트라는 IP를 노출시킨다

푸시 메시지도 센스 있게 발송하곤 한다

만우절에는 모든 서번트의 일러스트를 리요의 그림체로 바꾸기도 했다 

 

 

# 수많은 문제점들이 있지만...


​하지만 <페그오>가 가진 고질병들이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니다. 아무리 수많은 개선이 이루어졌을지라도 게임의 인터페이스와 그래픽 퀄리티는 너무나 조악하다.

 

위에서 말한 지속적인 정보 노출과는 별개로, 딜라이트워크스가 소통과 운영 부분에서는 많은 문제점을 보이고 있기도 하다. 버그를 사용한 계정을 대량 정지해 놓고 항의가 빗발치자 일관성 없이 다시 풀어준다던가, 게임에 대한 수많은 비판에도 불구하고 강연에서 보여주는 지나친 자신감 같은 문제까지.

 

특히 많은 논란을 낳았던 개발자 컨퍼런스에서의 강연. 특히 "실력이 있다고 비판적인 사람을 위로 올라면 조직에 대미지가 들어온다"라는 문구에서 비판을 받았다 (출처 : 소셜게임즈)

 

특히 악랄한 가챠 시스템에 대한 비판은 끝이 없다. <페그오>의 가챠 시스템은 언뜻 본다면 그렇게까지 악질적이지는 않다. 기본적인 게임 시스템 구조가 가챠를 크게 권장하지 않으며, 많은 사람들이 과금을 투입하는 이유는 순전히 캐릭터의 매력 때문이다. 캐릭터 등장 확률 자체는 타 게임과 비슷한 축에 속한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다.

 

먼저 천장 시스템이 존재하지 않는다. 운이 정말로 나쁘다면 캐릭터 하나를 획득하기 위해 100만 원이 훨씬 넘어가는 금액을 투입하더라도 캐릭터를 얻을 수가 없다. 

 

확률 보정마저도 존재하지 않아 5성 캐릭터를 얻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재화를 투입하는 것 외에는 별 수단이 없다. 무기명 영기라는 보상 시스템이 존재하긴 하지만 이미 '다섯 번 이상을 중복으로 획득한 캐릭터'에 대한 보상일 뿐이다. 게다가 다른 캐릭터와 교환하기 위해선 10장을 모아야만 한다.

 

5성 캐릭터를 교환할 수 있는 무기명 영기는 동일한 5성 캐릭터를 다섯 번 이상 얻은 이후에야 획득이 가능하다. 게다가 다른 캐릭터로 교환할려면 10개를 모아야 한다


페그오에 약 7만 달러(한화 8천만 원가량)를 투자한 유저를 인터뷰한 윌 스트리트 저널의 동영상

더해서 <페그오>는 장비와 캐릭터의 가챠가 통합되어 있다. 즉 한 가챠에서 서번트와, 서번트에 장착할 수 있는 예장(장비)이 같이 나온다. "10연차 이내 4성 확정!"이라고 하더라도 4성 확정 가챠에서 서번트가 나올지, 원하지 않는 예장이 나올지 누구도 모른다. 모바일 가챠 게임이 자주 써먹는 수법.

"4성 이상 1장 확정!, 3성 이상 서번트 1기 확정!" 이라는 두 문구를 보면 이해가 갈 것이다

미친듯한 한정 캐릭터들의 양산도 문제다. 5성 캐릭터들의 절반 이상이 한정 캐릭터다. 한정 캐릭터로 매출을 올리는 행태는 모바일 게임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지만 <페그오>의 경우에는 그중에서도 최고라고 할 수 있다. 한정 캐릭터가 이렇게 많은데도 천장 시스템이 없으니 운이 나쁘다면 수백만 원을 투자하고도 캐릭터를 못 뽑을 수도 있다.

 

5성 캐릭터를 정리한 표(최신은 아니다) 절반 이상이 한정 캐릭터임을 알 수 있다


# 마치며

 

<페이트: 그랜드 오더>는 일반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못 만든 게임처럼만 보인다. 하지만 다른 측면에서 본다면 오히려 잘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타입문이 15년이 넘는 기간동안 쌓아 올렸던 '페이트'라는 거대한 세계관과, 딜라이트워크스가 페이트라는 IP를 활용하기 위해 사용한 수많은 방법을 보면 <페그오>는 쉽게 넘겨짚을 게임이 절대 아니다. 캐릭터 '장사'라는 개념에서 보면 오히려 모범적이다.


하지만 앞서 말한 장점이 좋은 선례라면, 지나친 가챠와 엉망인 게임 구조는 악례라고도 할 수 있다. 이렇게 해도 엄청난 매출을 올릴 수 있으니 유사한 방식을 가진 과금 모델이 유행하기 시작한 것은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현재 모바일 가챠 게임이 직면한 극단적인 상업화라는 비판의 중심에 <페이트: 그랜드 오더>가 있음은 확실하다. 그렇기에 <페그오>가 페이트라는 굳건한 IP에 기대어 "팬들을 악독하게 빨아먹는다"는 비판을 피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어떻게 본다면 <페그오>는 일본에서 점점 몰락해가는 중인 '빠칭코'를 대체하는 새로운 도박을 대표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어떻게 보면 가챠는 디지털 빠칭코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는 일본의 문화적 특성과도 맞물린다. 일본은 도박 문화에 익숙한 편이고, <페그오> 이전에도 유저를 악독하게 빨아먹는 가챠 게임들은 굉장히 많았다

 

하지만 페이트라는 IP가 무너지지 않는 한 <페이트: 그랜드 오더>의 성공 신화는 계속될 것이다. 게임이 받는 수많은 비판에도 불구, <페그오>는 여전히 엄청난 매출액을 벌어들이며 흥행 신화를 써내려가는 중이다.

 

마차에 비유한다면, 마차(게임)는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만 같은데, 마차를 끄는 말(페이트)이 너무나도 강해서 미친 듯이 달려나가는 중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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