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버스는 게임인가? 창작자와 향유자라면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라고 답할 수 있다. 그러나 행정적, 법적 차원에서는 메타버스가 무엇인지 분명하게 정의하고 구분할 필요가 있다. 전 정부와 현 정부에서는 아직은 모호한 그 개념을 '신산업'으로 꼽고, 주요 국정과제로 삼았다.
현재 행정부에서 메타버스를 어떻게 볼 것인지에 대한 파워게임이 벌어지는 것으로 관측됐다. 메타버스는 플랫폼으로 과학기술정보통신부(과기부)가 담당하지만, 그 안에는 적지 않은 게임물이 서비스 중이기 때문이다.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와 게임물관리위원회(게관위)에는 <제페토> 등 메타버스 내 들어가는 게임물(게임)에 심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네이버제트가 서비스하는 <제페토>에는 다종의 게임이 업로드되어 서비스 중이다. 이들 게임은 모두 현행 게임산업법의 적용을 받고 있지 않다. 네이버제트는 기본적으로 정부의 결정에 따르겠다는 입장이지만, 그간 이들의 플랫폼은 출시 이후 지금껏 회색지대로 남아 '디지털 그루밍' 등의 문제를 야기해왔다.
메타버스는 게임인가? 이 물음에 간단히 대답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메타버스가 게임이 아니어야 하는 사람들에게 이 문제는 대단히 복잡한 질문이다.
과기부와 문체부 사이에는 메타버스를 어떻게 볼 것인가를 두고 이견이 존재했다. 일차적으로 메타버스 자체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한 문제였다.
2021년 7월, 국회 입법조사처(입조처)에서는 "메타버스는 플랫폼으로 게임이 아니다"라는 보고서가 나왔다. 입조처는 "메타버스를 통해 게임이 제공된다고 해도 메타버스 자체가 게임은 아니므로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을 직접 적용하는 것은 어려울 수 있다"라고 썼다.
이후 정부에서는 논의 과정을 거쳤고 메타버스의 키는 과기부가 쥐기로 했다. 과기부는 ▲플랫폼 개발지원 사업 ▲ 코리아 메타버스 어워드 ▲ 메타버스 얼라이언스 포럼 ▲ 메타버스 노마드 시범사업 ▲ 메타버스 윤리원칙 수립 등의 관련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런 흐름에 발맞춰 입법부에서도 메타버스 진흥 법률안이 3가지 제출됐다.
발의 날짜순으로 김영식, 김승수, 허은아 의원이 대표 발의했다. 세 의원 모두 국민의힘 소속이다. 가장 먼저 제출된 김영식 의원 안에서는 메타버스를 "컴퓨터프로그램 등 정보처리 기술·장치와 정보통신망을 이용하여 입체환경으로 구성된 가상사회에서 가상인물 등을 통하여 다양한 사회적·경제적·문화적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제작된 가상의 공간"이라고 정의했다.
훗날 자세히 살펴볼 기회가 있겠지만 미리 보자면, 3개의 메타버스 법안의 쟁점은 메타버스 경제에 있을 것이다. 김영식 의원안에서 "이전 가능한 금전적 가치가 전자적 방법으로 저장되어 발행된 증표"로 "메타버스화폐"를 지칭하고 약정에 따라 "메타버스화페"를 타인에게 양도하고 환전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허은아 의원안에는 "메타버스 사업자는 이용자가 자신의 아바타 및 보유 가상자산 등의 처분을 결정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라고 하고 있다.
하지만 메타버스 플랫폼 안에서 게임이 주로 실행되고 있다. 인식상으로나 지표상으로나 한국에서 유력한 메타버스는 <로블록스>와 <제페토> 정도로 꼽힌다. 두 곳 모두 적지 않은 게임이 들어간 플랫폼이다. <로블록스>는 자체등급분류사업 자격을 취득한 구글을 통해서 게임으로 분류가 되어있지만, <제페토>는 '소셜' 파트로 분류를 받았다.
문체부는 지난 7월 1일, 네이버제트에 <제페토> 안에 게임요소가 있는 콘텐츠의 등급분류가 필요하다고 통보했다. 실제로 <제페토> 내에는 <스매시 럼블>, <기기괴괴>, <아이들 마이너>, <점프마스터> 등 게임이 실행 중이지만 모두 심의를 받지 않았다.
이에 문체부는 "메타버스는 SNS와 유사한 플랫폼으로 원칙적으로 게임산업법상 규제를 미적용"한다라면서도 기존 게임과 유사한 게임을 제공하면서도 현행 법의 적용을 받지 않겠다는 것은 형평성 문제가 있다는 논리를 전개했다. 이어 네이버제트에게 자체등급분류 사업자를 안내할 수 있다고 소개했다. 또 개인이 제작한 게임에 대해서는 심의 과정을 간소화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면서 과기부와 문체부 두 부처의 의견차가 일어났다.
국무총리 산하 국무조정실(국조실)은 8월부터 3차례 이상 과기부와 문체부 사이의 회의를 주관했다. 메타버스와 게임의 관계에 대한 부처별 입장을 조율하기 위해서였다.
8월 10일, 정부 서울청사에서 회의가 열렸다.
과기부는 "메타버스 게임규제는 신산업성장 저해, 자율규제 및 규제 최소화 기반 마련"을 주장했다. 이어 문체부에 메타버스를 "일부 게임적 요소가 있는 비게임"으로 볼 수 있도록 예외 고시를 제정하자고 제안했다. "기존 규제의 적용 여부를 논의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것이다. 문체부는 "메타버스와 게임물을 구분하는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현행 법의 적용 대상을 명확히 하자"고 이야기했다.
9월 2일, 두 부처는 다시 만났다.
문체부는 '메타버스 게임 예외 고시 제정'은 수용 불가하다고 선을 그었다. 대신, 그 대안으로 메타버스 사업자가 '게임존'을 지정할 수 있게 하고 그 안의 게임들을 자체 등급 분류할 수 있도록 하자고 역제안했다. 메타버스 안의 유해게임이 생겨날 수 있기 때문에 기존의 규제를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과기부는 "메타버스 사업자가 자체등급사업자가 될 경우 등급표시, 불법게임물 유통금지 등 게임산업법 내 다양한 규제에 직면, 창작자 또한 국내 플랫폼을 외면함에 따라 국내 메타버스 생태계 고사가 우려된다"는 입장을 지켰다.
국조실은 "차기 회의까지 양 부처가 실현 가능한 대안을 만들어오라"라고 답변했다. 그러면서도 "기존 규제 프레임을 가지고 신산업에 접근할 경우, 다양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그리고 9월 6일, 두 부처는 세 번째 회의를 열었다.
과기부는 "게임규제는 세계 유일의 강력한 사전규제이자 덩어리 규제로 메타버스에 적용하려는 시도는 기업의 혁신을 막고 신산업 발전을 저해할 수 있는 심각한 우려를 야기한다"라고 규제 개선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기존 규제 적용은 "인스타그램, 유튜브, 페이스북, 티톡(틱톡의 오타로 추정) 등의 해외 게임성 콘텐츠는 규제하지 않는 국내 기업을 역차별"하는 처사라고 성장 동력을 잃어버릴 수 있다고 썼다. 그러므로 "메타버스의 목적, 기능 특성에 부합하는 경우 일부 게임적 요소가 있다 하더라도 게임 규제 적용을 제외해야 한다"라는 주장을 반복했다.
문체부도 물러서지 않았다. 메타버스 안에 게임이 있다면 "게임산업법을 적용"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문체부는 메타버스 내 게임이 예외를 적용 받으면 ▲ 특혜 논란과 타법과의 형평성 ▲ 불법게임물 규제 한계 ▲ 사행화 우려가 있다고 짚었다.
메타버스에 불법게임물이 발견되면 사후 모니터링을 할 수 없는 데다, 고스터·포커류(고포류) 및 음란성, 폭력성 게임도 규제할 방안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또 문체부는 "암호화폐나 메타버스에 대한 관리체계가 없는 상황에서 게임산업법 적용마저 배제될 경우, 이용자의 재산 피해에 대한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부재"하다는 지점을 강조했다.
결국 두 부처는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명확한 결정이 날 때까지 메타버스 내 게임에 대해서는 게임산업법 적용을 유예 중이다. 국무조정실은 "메타버스 내 콘텐츠에서 게임산업법을 명시적으로 유예한 적은 없고 연내 메타버스 내 일반 콘텐츠와 게임을 구분하는 가이드라인을 만들 것"이라는 입장이다.
9월 22일, 국회 대정부질의에서 정의당 류호정 의원은 한덕수 국무총리를 호명했다. <제페토>에 등재된 게임과 그렇지 않은 게임을 보여준 뒤, 둘의 차이를 물었다. 이에 총리는 "하나는 메타버스 같고, 하나는 보통 사이버 게임 아닌가? (중략) 확신이 없다"라고 답변했다.
류 의원은 "둘 다 게임"이라고 단언하면서 "게임 요소가 거의 동일하기 때문에 다 게임. 메타버스 내 게임은 게임법 적용을 받고 있지 않다. 그 이유를 아느냐?"라고 물었다. 한 총리는 "게임은 중독성을 걱정해서 등급을 심사하는 것이 강하게 유지되고 있다"라고 답했다.
이에 류 의원은 "메타버스에도 중독이 있다"라고 반문했고, 한 총리는 "산업으로서 다른 용도도 있기 때문에 좀 더 육성해야 하는 차원에 중점이 있다"라고 생각했다. 류 의원은 "산업을 육성해주는 게 아니라 대기업 네이버의 뒷배를 불려주는 것"이라며 과기부의 현 입장을 비판했다.
한 총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메타버스가 앞으로 중요한 4차산업의 일부로 기술도 더 키우고 많은 용도도 (개발)해야 하는 상황이다. 2030 부산 엑스포에 메타버스 엑스포를 하려고 생각하고 있다. 이런 쪽으로 메타버스에 관련된 첨단적 요소를 활용하는 것이 좀 더 중점을 두어야 할 시기"라고 답변했다.
해당 질의 이후 류호정 의원은 10월 5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 네이버제트 김대욱 대표를 증인으로 신청했다.
7월 게임위의 등급분류 통보 이후, 네이버제트는 행정부에 "게임적 요소가 있다고 등급을 분류받거나 자체등급심사를 추진하면 산업 발전 저해의 우려가 있다"라는 뜻을 전했다.
이어 "정부 정책이 결정되면 후에 대응하겠다"라고 답변했다. 이어 "한글 맞춤 서비스 등 게임적 요소를 함유한 메타버스를 게임으로 분류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맞섰다. 또 "자유로운 창작활동을 저해해 창작자의 유출로 이어질 것"이라며 "국내 기업에 대한 역차별로 신산업 성장의 큰 저해가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과거 네이버는 실적발표 때 <제페토> 내 게임에 관한 언급을 한 적 있다. 한성숙 전 대표는 2021년 3분기 컨퍼런스 콜에서 "<제페토>는 브랜드와의 제휴, 라이브, 게임과 같이 새로운 기능들이 추가돼 매출이 빠르게 늘고 있다"라며 서비스 내 게임이 매출 성장을 견인했음을 발언한 사실이 있다.
실적발표 중 '제페토 스튜디오 내에 게임 기능을 열면 게임물관리위원회(이하 게임위)와 마찰이 생길 수 있을 것 같다'는 질문에 박상진 최고재무책임자(CFO)는 "현재 제페토 내 사용자 맵에서는 게임 요소가 없고, 공식 맵에서는 게임 요소가 있긴 하지만 게임 기능, 게임 카테고리라고 보기는 어렵다"라고 말했다.
<제페토>라는 플랫폼 안에서 게임을 서비스하고는 있고 매출에 일정 부분을 책임지고 있지만, <제페토> 자체를 게임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 네이버의 의중으로 이해된다. 본지는 네이버제트 측에 "<제페토> 내 게임 콘텐츠들이 기존 게임물과 구체적으로 어떻게 구분되는지" 질의했다.
네이버제트를 국감 증인으로 신청한 류호정 의원은 "(<제페토>에 들어간 게임들은) 게임이 분명 맞다"라면서 "혁신이라는 이름으로 기존 법 질서를 어지럽히면 곤란하다"라고 꼬집었다. 이어서 "메타버스가 아니더라도 융합 콘텐츠가 많아지면서 정리가 필요한 시점이지만, 기존 게임을 형해화 하려는 시도는 부적절하다"라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