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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전 세계 통기타 마니아 홀렸던 '우크라이나 게임'

'스토커' 시리즈

에 유통된 기사입니다.
김승주(4랑해요) 2023-02-27 15:03:57

게임과 음악은 떼 놓을 수 없는 관계입니다. 게임과 음악이 시너지를 일으킨 사례도 많습니다. 두 주제를 가지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내용을 써 보고자 합니다. 흥미롭지만 어디에서도 정리된 내용을 찾기 어려운 소재를 모았습니다. - 게임과 음악 연재 

 

① '우마무스메'에는 '우마뾰이'만 있는 것이 아니다. (링크)

② FPS의 총소리로 '노래'를 만든다고요? 건사운드 리믹스 (링크)

③ 음악과 게임이 빛어낸 예술. 프랙무비 (링크

④ 전 세계 통기타 마니아 홀렸던 우크라이나 게임 (현재 기사)

 

풀벌레가 우는 밤하늘, 타오르는 모닥불 앞에 둘러앉아 통기타를 치는 것은 그야말로 낭만이다.  2007년 우크라이나에서 출시된 <스토커> 시리즈는 게임 내에 삽입된 통기타 음악으로 유명하다. 당장 유튜브에 검색만 해 봐도 실제 게임에 등장한 모습처럼 모닥불 앞에 앉아 기타를 연주하는 동영상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몇몇 게이머는 <스토커> 시리즈라 하면 통기타 음악을 먼저 떠올릴 정도. <스토커> 시리즈는 특유의 분위기로 인해 세계적인 성공을 거둘 수 있었는데, 이를 가장 잘 대표하는 것이 바로 이 기타 OST라고 할 수 있다. /디스이즈게임 김승주 기자




 

# 포스트 아포칼립스는 아니지만


<스토커> 시리즈가 분위기로 깊은 인상을 남긴 이유는 무엇일까? 먼저, <스토커> 시리즈는 겉으로 보이는 인상과는 다르게 '포스트 아포칼립스'(핵전쟁 이후의 세계를 다루는 창작물)를 다룬 게임은 아니다. 게임 내의 배경인 'ZONE'은 체르노빌 발전소 인근으로 제한되어 있다.

 

게임 스토리 상에서는 실제 재난 외에도 추가적인 사고가 있었고, 이에 돌연변이와 이상 현상으로 가득하게 되어 출입 금지 지역이 됐다는 설정이다.

 

게임에 등장하는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스토커'라고 불리는 게임 내 주요 등장인물은 대부분 자발적으로 ZONE에 들어왔다. 대다수는 이상 현상에서 구할 수 있는 희귀한 물질 '아티팩트'를 가져다 팔아 일확천금을 꿈꾸고 있다. 범죄를 저질러 더 이상 도망칠 곳이 없어 들어온 자들도 있다. 용병업을 하거나 불법 관광객을 인도하며 돈을 버는 사람도 있으며, 스토커 생활을 청산했으나 ZONE에 너무나 오래 있던 나머지 바깥 세계에 적응하지 못해 돌아온 이들도 있다.

이처럼 <스토커> 시리즈의 설정은 일반적인 뉴클리어 포스트 아포칼립스와는 조금 다르다. 방사능 괴물, '틱티티틱' 하고 기분 나쁜 소리를 내뿜는 가이거 계수기, 이해할 수 없는 이상 현상이 등장하지만 조금 다른 설정을 채택한 덕분에 차별화된 분위기 속에서 다양한 인간군상을 자연스럽게 표현할 수 있었다. 목숨을 걸고 ZONE에서 활동하는 스토커들은 때로는 돈을 위해, 때로는 개인적인 목표를 위해 서로 싸우거나, 위험한 장소로 모험을 떠난다.

운 좋게 살아남아 저녁이 되면 모닥불을 피우고 옹기종기 둘러앉아 휴식을 취한다. 여기서 이따금 한 명이 기타를 꺼내 연주하고, 연주가 끝날 때마다 서로가 간단한 잡담을 주고받는다. "난 이제 ZONE이 지긋지긋해", "여기가 집이라고 상상해봐. 집에 돌아오면 정말 따뜻한 음식과 아내가 있는데...", "그놈이 쓰레기 같은 부츠를 팔았어. 1주일 만에 밑창이 다 망가졌네"

덕분에 게임 내에서는 NPC가 기타를 칠 뿐인 간단한 시스템이지만, 게임의 설정과 특유의 음울한 분위기를 별도의 연출 없이 담백하게 담아낼 수 있었기에 <스토커>의 기타 음악은 게이머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조금 과장된 비유를 보태면, 전쟁 같은 직장 생활을 마친 후 퇴근한 현대인의 모습과도 닮았다고 할 수 있다.



여담으로 <스토커>가 동유럽권에서 크게 유행한 이후로 코스프레를 하고 에어소프트건 모임을 진행하거나 아예 실제 체르노빌에 찾아간 사례가 있다고 전해진다. 게임에 등장하는 스토커들처럼 우크라이나 정부에서 진행하는 공식 투어 대신, 코스프레를 한 채 불법으로 체르노빌 인근 지역에서 사진을 찍고 캠핑을 하는 것이다. 재미있게도 이들의 사진을 보면 기타는 거의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해외 매체 '더 버지'에 따르면 불법 관광객도 있었으며, 이들을 전문적으로 중계하는 사람도 존재했다고 한다. 불법 관광은 우크라이나 정부가 2019년 단속을 크게 강화한 이후로 줄어들었다. 전쟁까지 벌어진 지금은 사실상 없어졌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스토커> OST를 연주하는 핀란드 에어소프트건 동호회


# <스토커>와 다크 엠비언트

 

배경음과 환경음도 <스토커> 특유의 분위기를 표현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스토커>의 배경 음악은 '다크 앰비언트' 장르로 이루어져 있다. 앰비언트는 최소한의 멜로디를 사용해 특유의 잔잔하고 사색적인 분위기 전달에 주력하는 음악 장르다. 다크 앰비언트는 여기서 잔잔하지만 어둡고 무서운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집중하는 하위 장르라고 보면 된다.

따라서 <스토커>는 지역마다 배경음이 존재하긴 하지만 특별한 멜로디라 할 것이 거의 없다. 대신 플레이어의 귀를 자극하는 날카로운 소리와 마치 도시가 울부짖는 듯한 소리로 가득하다.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OST는 <콜 오브 프리피야트>의 '프리피야트' 지역 테마곡이다. 

 


 

여기에 <스토커>는 특유의 환경음에도 공을 기울였다. 가령 마귀가 날아가는 소리, 누군가가 풀숲을 헤치는 소리, 낡은 전등이 발광하는 소리가 있다.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긴 시스템으로는 주위에 NPC나 생물체가 존재할 시 나오는 모션 센서의 소리다.

 

플레이어 근방에 움직이는 물체가 있을 경우 '따닥'하는 소리를 내는데, 이따금 게임에서 어두운 곳을 홀로 다니다가 모션 센서에 소리가 잡힐 때 오는 찾아오는 공포감은 상당하다. 아무도 없어야 할 곳에 누군가가 있다는 뜻이니까.


어떻게 보면 이런 환경음까지 전부 모여 게임의 분위기를 전달하는 하나의 곡으로 이루어진 셈이다. 유튜브에서 찾아볼 수 있는 <스토커> 기타 음악 연주에도 환경음은 빼놓지 않고 등장하는 편이다.

더불어 이런 공포 속에서 안전한 지역으로 진입하면 배경 음악이 잦아들고, 스토커들이 삼삼오오 모닥불에 앉아 기타를 켜는 것을 볼 수 있다. 여기서 오는 심리적인 안정감 또한 플레이어가 받는 인상에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게임에서 어두운 밤길을 홀로 걷고 있는데,
오른쪽의 숫자가 0에서 1로 변경됨과 동시에 발자국 소리가 들린다면 돌연변이가 추격해 오고 있다는 뜻이다. 
(출처 : 존 서바이벌 가이드)

 

여담으로, <스토커>는 영미권에서 슬라브(동유럽권) 문화를 코믹하게 표현하는 '치키 브리키' 농담(meme)을 가장 먼저 유행시킨 게임이기도 하다. 특히 <스토커: 클리어 스카이>에서 밴디트(강도) 진영에서 들을 수 있는 기묘한 라디오 음악은 이 농담을 대표하고 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댓글에서도 "이 곡을 듣고 나니 M16이 AK-47으로 변했습니다"와 같은 농담을 확인할 수 있다.

 

<스토커: 클리어 스카이>의 주역 단체인 '클리어 스카이'의 본거지에서 들을 수 있는 라디오 음악도 빼놓을 순 없다. 게임의 설정, 스토리를 알고 있다면 더욱 인상적인 곡이다.

 

 

 


 

 

# 흉내내기 어려운 동구권 게임 특유의 감성

 

마지막으로 게임 커뮤니티에서 종종 언급되는 '동구권 게임 특유의 감성'을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명확하게 정의되어 있지 않지만, 동구권 게임의 큰 특징으로는 불편함이 있다. <스토커> 역시 완벽한 게임이라곤 말하기 어렵다.

 

첫 작품인 <쉐도우 오브 체르노빌> 부터 엄청난 개발 기간이 소요됐으며, 자체 제작한 'X-ray' 엔진을 통해 당시로써는 뛰어난 그래픽과 AI를 구현하려 하는 등 많은 욕심을 부린 게임이기도 해 게임 진행에 큰 영향을 미치는 버그도 많았다. '빠른 이동' 같은 편의성은 기대도 할 수 없었다. <스토커> 시리즈에는 빠른 이동이 없다.


<스토커>는 'A-life' 시스템을 통해 플레이어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NPC나 괴생명체들이 활동하고,
전투에서는 우회로를 스스로 찾는 등 전략적으로 행동하도록 했다. 
시대를 앞서갔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지만, 그만큼 버그도 많았다.

혹자는 동구권 특유의 문화와 자연 환경, 열악한 개발 환경, 낮은 PC 사양, 시간을 보낼 여가가 부족한 환경 상 오랜 플레이타임을 보장하는 것이 중요하기에 이런 모습이 드러나는 것이라고 추측했다. 

구 소련의 몰락과 해체로 인한 복잡하고 처절한 역사도 짚어볼 필요가 있다. 어떻게 보면 <스토커>와 같은 동구권 게임 특유의 시스템과 우울한 분위기 그리고 OST는 여기서 기인했다고 볼 수 있으며, 쉽사리 따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지금도 우크라이나 전쟁은 계속되고 있으며, 조속히 마무리될 징조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이런 환경 속에서 정식 후속작인 <스토커 2>의 개발진들은 일부는 체코로 이전하고, 남은 인원들은 전쟁에 참여하거나 방공호 속에서 폭격을 견뎌 가며 게임을 개발하고 있다. <스토커 2>는 2023년 12월 출시 예정이다. 

일부 개발진이 거주하고 있는 방공호 (출처: 공식 트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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