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구야담 팔도견문록>(이하 ‘청구야담’)은 제주 4.3 사건을 다룬 포인트 앤 클릭 어드벤처 <언폴디드: 동백이야기>의 개발사 코스닷츠가 만든 두 번째 타이틀이다.
<언폴디드: 동백이야기>가 아픈 역사의 가감 없는 전달에 집중, 기능성과 장르적 재미를 함께 노린 작품이었다면 <청구야담>은 ‘야사’라는 더 분방한 형태의 역사적 진술을 바탕으로 기존보다 넓은 청중에 다가선다.
줄거리는 조선 초기 동명 야담집을 판타지 추리/어드벤처 장르로 각색하고 있다. 명탐정 괴물 전문가 ‘정 도사’와 동료 겸 호위 ‘조 군관’은 함께 조선 팔도의 괴사건을 해결해나며 다양한 인물들과 마주친다. 게임은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지난해 5월 모바일에 먼저 출시했으며, 전통 소재에 대한 깊은 이해, 그리고 매력적 캐릭터로 확고한 팬층을 확보한 상태다.
이제 코스닷츠는 <청구야담>을 PC 플랫폼으로 확장, 새로운 팬층을 맞이할 준비에 한창이다. 2023년 플레이엑스포 둘째 날 메인스테이지에서 ‘<청구야담> 아트 제작기’를 주제로 강연을 진행한 코스닷츠의 정재령 대표 겸 아트 디렉터를 만나, <청구야담>의 아트 철학, 코스닷츠가 지나온 길, 그리고 앞으로 나아갈 바를 청해 들었다.
Q. 디스이즈게임: 먼저 본인 소개를 부탁한다. 강연 내용에 따르면 많은 직무를 맡아보시는 듯한데.
A. 정재령 대표: 게임 개발의 안팎에 고루 참여한 것이 사실이다. 우선 공동 대표로서 대외적으로 회사를 설명하는 역할을 맡았다. 동시에 AD 겸 UI 디자이너 직무를 수행했고, 두 차례 크라우드펀딩 업무도 담당했다. <청구야담>은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대중에 처음 소개되는 작품이었기에 리워드 등 설계에 심혈을 기울여 진행한 기억이 있다. 현재의 PC 버전 출시 펀딩도 담당 중이다.
Q. 강연에서 새 작품을 기획하기 위해 크라우드펀딩 플랫폼(텀블벅)의 주요 이용자층을 먼저 분석했다고 설명했다. 분석 내용이 어떻게 ‘조선 괴물 추리물’이라는 테마 선택으로 이어졌는지 궁금하다.
A. 텀블벅 유저분들 중 한국의 괴물에 관심을 가진 이용자분들이 많다는 점에 착안했다. 또한, 이분들 사이에서 한국 콘텐츠 기반 굿즈에 대한 수요도 크다. 한국사를 잘 알고 있는 개발사로서 그러한 니즈에 맞춰 콘텐츠를 개발하고자 시도한 결과다.
한편, 원전이 야사를 담은 야담집인 만큼 이를 어떻게 ‘고증’할 것인지가 관건이었는데, 우리가 파악한 바로는 한국 콘텐츠에 관심이 많은 텀블벅 사용자분이 고증 영역에서 중점적으로 보시는 것이 의복, 지역, 시기, 배경 등이어서 이 점에 신경을 썼다.
관련 경험담을 하나 공유하자면 캐릭터 일러스트 좌우 반전 때문에 옷고름 방향이 변하는 것을 지적하셨던 분이 계시다. 일러스트가 2D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생긴 현상인데, 아무래도 옷고름을 왼쪽으로 매는 건 죽은 사람에 한하다 보니 그 부분이 맘에 걸리신 듯하다. 그 정도로 엄중한 시선으로 바라보시기 때문에 우리도 기본으로 여기고 신경 쓰고 있다.
Q. 캐릭터 매력으로 특히 인기를 끌고 있는 게임인데, 청중에게 이를 어필하기 위해 사용한 방법이 무엇이었는지 궁금하다.
A. 계획 초기부터 <청구야담>은 캐릭터 게임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크라우드 펀딩 때도 다른 것보다 ‘인물 카드’를 먼저 제작해 캐릭터별 이름과 성격, 자주 쓰는 말 등을 먼저 선보였다. 실제 펀딩 페이지를 보면 제작 과정 설명도 물론 있지만, 어떤 캐릭터가 나오는지를 더 전달하려 노력했다. 잠깐 등장하는 NPC의 설명까지도 모두 강조해 넣었다.
그렇게 캐릭터 디테일 구축에 공을 들였지만, 최근에도 “정 도사와 조 군관의 생일을 왜 아직도 밝히지 않느냐”는 피드백을 받았던 적 있다. 그만큼 우리 유저분들 중 캐릭터를 중시하는 분들이 많다.
Q. 아까 강연에서 중국이나 다른 아시아 국가 느낌이 나지 않도록 디자인에 각별히 유의했다는 말씀이 인상적이었다. 게임에 등장하는 괴물들의 외형 표현에서도 비슷한 노력이 필요했을 것 같은데.
A. 직접 담당한 부분은 아녔지만, 내부 논의를 토대로 설명하자면, 괴물들을 되도록 동물처럼 표현하고자 노력했다. 예를 들어 대표적인 괴물 ‘구미호’의 흔한 표현 방식을 보면 <리그 오브 레전드>의 아리같이 인간 여자 형상에 꼬리가 달린 모습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청구야담>에서는 괴물이라고 하면 주둥이가 길게 나와 있는 등 일반적 동물 외형에 가깝고 구미호도 마찬가지다. 조선의 괴물을 보면 인간 형태도 있지만 개, 지네, 여우 등 다양한데, 그 원형이 전래동화에서처럼 그대로 살아 있어야 조선 판타지가 될 수 있다고 판단했던 것 같다.
Q. 게임을 해보면, 아이콘 등 UI가 시스템적 구성요소에 그치지 않고 하나하나 별도의 완결된 아트처럼 보인다. 그렇게 디자인한 이유가 있다면?
A. 모바일 플랫폼에 나와 있는 기존 ‘조선 게임’들을 플레이했을 때, 조선 테마는 알아보겠으나 딱히 예쁜 느낌을 주지는 않는다고 생각했다. <청구야담>은 ‘조선 게임이면서 예쁜’ 인상을 주고 싶었다. UI가 게임의 완성도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유저가 ‘거슬리는 부분 없이 예쁘다’고 받아들이길 바랐다.
사실 그런 욕심 때문에 솔직한 말로 디자인이 좀 과해졌다고는 생각한다. 모바일 게임이니 좀 더 투명하고 라이트하게 디자인할 수도 있었을 텐데, 무조건 넣어야 한다고 결정한 요소가 많았다.
Q. 그렇게 '과한' UI를 만든 이유를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준다면?
A. 코스닷츠가 갖추고 있는 조선에 대한 이해도와 기본 태도를 <청구야담>을 통해 모자람 없이 전부 다 표현하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예를 들어 조선을 뜻하는 ‘청구’(푸른 언덕)라는 개념의 색상과 형태를 UI에 최대한 녹여낸 것도 그런 이유다.
그러니까 코스닷츠가 조선을 얼마나 제대로 표현할 수 있는지 보여주려 한 거다. 유저분들이 보면서 ‘뭘 이렇게 많이 넣었나’라고 여기실 수도 있지만, 우리가 얼마나 잘할 수 있고, 또 얼마나 진심인지 알리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일이었다.
인디는 그렇게 끊임없이 대중에 어필하고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개발사뿐만 아니라 개개인도 능력치를 최대한으로 증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그러기 위해서 할 수 있는 모든 걸 전부 쏟아부었다.
Q. <청구야담>의 핵심이 되는 두 가지 축 중 하나가 조선이라는 시공간적 배경이라면, 다른 하나는 ‘도교’라는 사상적 배경인 듯하다. 아트에서 이 도교적 요소를 어떻게 표현하였는지 궁금하다.
A. 레퍼런스로 삼은 ‘십장생도’를 보면 특유의 구름, 해 등의 자연물 표현법이 있다. 이것을 아트에 많이 반영했다.
예를 들어 주인공 ‘정도사’의 정체성을 표현하기 위해 UI에 항상 구름을 넣었다. 정도사는 항상 위(하늘나라)로 올라가고 싶은 인물이다. 이를 설명해 주는 요소가 바로 구름, 산, 해와 같은 상승의 이미지들이다.
그래서 십장생도를 참고해 이들 요소를 그려 넣었다. 또한, 십장생도 자체가 불로장생을 추구하는 도교적 의미를 담고 있다. 따라서 그 안의 자연물을 참고해 넣음으로써 신선이 되고 자 하는 도교적 욕구도 자연스럽게 표현 가능하다고 여겼다.
Q. <언폴디드: 동백이야기>에 비해 이번 <청구야담>은 대중성에 포커스를 맞췄던 작품이다. 실제로 얼마간 대중성을 확보했다고 자평하는지?
A. 구체적 시장 성적을 밝힐 수는 없겠으나, 모바일에 어울리지 않는 BM인데도(*유료로 스토리 챕터를 구매하는 방식) 국내 모바일 게임 씬에서 스토리게임을 좋아하시는 분들, 그리고 캐릭터를 좋아하는 분들은 거의 다 구매를 해주셨다고 생각한다.
<청구야담>의 PC 버전 출시를 계획한 것 역시 대중성의 확장과 관련이 있다. <청구야담>의 게임성은 모바일 환경에서 주로 인기를 끄는 유형하고는 많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현재의 팬층은 전부 텀블벅을 통해 모바일 환경에서 게임을 접한 분들인데, 이분들은 캐릭터 쪽에 애정을 가지신 분들이 많다.
만약 게임을 PC로 확장한다면 추리게임이라는 장르 자체를 중시하는 새로운 팬 분들도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PC 게이머분들은 비교적 장르 자체에 애정을 가지는 경우가 많은 듯하다. 개인적인 바람은 <역전재판>을 즐기셨던 모든 게이머분이 우리 게임도 즐겨주시는 거다.
Q. 국내의 추리게임 팬덤이 아주 크지는 않은 듯한데.
A. 실제로 해외 팬덤이 비교적 더 큰 것 같지만, 대신 국내 팬덤은 코어한 성격이 있다고 본다.
추리게임이 그 성격상 모두가 즐길 만한 장르는 아니고, 텍스트량도 많아서 유저가 적은 편이다. 하지만 그만큼 타이틀 수도 적어서 한 작품에 장르 팬이 다 같이 몰리는 경향이 있다고 생각하고, <역전재판>의 성공 비결도 거기 있는 것 같다.
다른 말로 하면, 그만큼 추리게임 팬분들이 새 작품에 항상 목마른 것 같다. 따라서 그 니즈를 저희가 맞출 수만 있다면 워낙 유저 베이스가 큰 PC플랫폼인만큼, <청구야담>이 유저를 확보할 가능성도 크다고 생각을 했다.
Q. <언폴디드: 동백이야기>와 <청구야담>은 비슷한 듯하지만, 장르, 소재, 주제의식 등 다른 점도 매우 많다. 그렇지만 두 게임을 관통하는 코스닷츠의 개발철학이 있다고 한다면?
A. 한국사를 소재로 한 것이 공통점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사를 소재로 이렇게 게임을 두 개나 만든 회사가 거의 없다. 비록 <언폴디드: 동백이야기>는 사건의 배경이 더 강조되고, <청구야담>은 상업성 측면에서 캐릭터가 강조된다는 차이점은 있지만, 이렇듯 두 게임 모두 다 한국을 다룬다는 공통점이 있다.
앞으로도 한국사를 기반으로 나가겠다고 계획한 상태다. 한국사가 상업성을 많이 지니는 콘텐츠는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한국사 소재 게임에 있어 ‘온리 원’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다.
Q. 한국 소재 게임이 많지 않다는 말씀을 해주셨는데, 점점 늘어나는 듯하다. 다른 한국 소재 게임들에 대한 견해를 묻고 싶다. 이를테면 프랑스 개발사가 만든 조선 배경 게임 <수호신> 같은 사례가 있는데, 어떻게 보시는지?
A. <수호신>은 사실 우리가 PC 버전 포팅에서 아트 퀄리티 업그레이드를 신경 쓴 계기가 된 게임이다. <수호신>의 아트를 보면 실사처럼 공이 매우 많이 들어가 있다. 그리고 실제로 유저분으로부터 <수호신>에 비해 <청구야담>의 아트 퀄리티가 낮다는 피드백을 받기도 했다. PC 플랫폼에서 아트의 스탠다드가 더 높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업그레이드 작업 중이다.
다른 사례로는 <검은 사막>의 <아침의 나라> 업데이트를 인상 깊게 봤다. 어떤 면에서는 <청구야담>과 비슷한 점이 많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한국 전래동화나 설화에 기반한 괴물들과 싸우는 내용이다. 그런데 대중적 성공을 거뒀고 팬들이 좋아하고 있다. 해외 팬분들이 많은 게임으로 알고 있는데, 이렇게 한국적 소재를 풀어서 성공하는 모습을 보니 반가웠다.
물론 우리 게임은 <검은 사막>과는 다르게 캐릭터 중심의 인디 게임이니까 결과가 다를 수 있지만, 그래도 이렇게 한국적인 것을 건드려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사실이 고무적이다.
Q. 끝으로 <청구야담>의 팬분들, 그리고 여타 게이머분들께 전하고픈 말이 있다면?
A. 오늘 아트 강연을 하면서 찾아온 분들이 많아 놀랐다. 생각보다 <청구야담>을 아는 분들이 나름 많구나 싶었다. 사실 이번 강연은 <청구야담>을 알리기보다는 기존 후원자분들, 그리고 팬분들을 뵙고자 했던 의도가 더 컸다. 그분들 중 PC 버전과 펀딩 시작을 기다리는 분들이 계셔서, 이 기회에 관련 계획을 홍보할 생각이었다.
또한 팬분들께 늘 온라인으로 피드백을 받고 있으니, 이번엔 오프라인에서도 피드백을 받고 싶었던 면도 있다. 저희는 인디인 만큼 피드백이 너무 소중하고, 어떤 피드백이든 받아들일 자세가 되어있다. 그러니 언제든 피드백을 주셨으면 좋겠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개인적으로 <청구야담> IP가 참 아깝다고 생각한다. 같은 IP로 펀딩을 세 개나 한다는 게 욕심인 것은 맞지만, 팬분들은 IP를 아직 내려놓지 않았다는 면에서 기뻐해 주리라 생각한다. 더 많은 분께 게임을 알리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잘 만든다’, ‘많은 신경을 쓰고 있구나’라는 평가만 들을 수 있어도 저는 성공이라고 여길 것 같다.
다가오는 5월 30일 1주년을 맞이해 PC 펀딩을 시작할 예정이다. 출시는 내년 상반기를 목표로 하고 있으며, 현재 스팀에서 위시리스트에 등록할 수 있으니 많은 성원 부탁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