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생 개발사 엔픽셀(NPIXEL)의 첫 번째 작품 <그랑사가>(GRAN SAGA)는 여러 의미로 게이머들과 업계의 많은 주목을 받았던 작품입니다. <세븐나이츠>를 개발한 주요 개발진의 신작이라는 점도 있지만, 이 게임 개발 기간 동안 개발사가 유치한 투자 규모가 '수백억 원' 대에 달합니다.
실제로 CBT 등을 통해 드러난 게임은 '신생 개발사'의 작품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높은 수준의 비주얼과 퀄리티를 보여주었습니다. 유명 연예인을 동원한 광고는 유튜브에서 무려 1천만 조회수를 기록할 정도로 화제를 모으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 게임은 지난 1월 26일 출시 이후, 3일 만에 애플 앱스토어 매출 순위 1위를 기록하고 첫 주말에는 구글 플레이 매출 순위 4위를 기록할 정도로 상업적으로 큰 성과를 거두며 좋은 출발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일각에서는 여러 논란이 있지만, 어찌되었든 2021년 1분기, 가장 눈에 띄는 작품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죠. 그렇다면 과연 <그랑사가>는 어떤 게임일까요? 게임을 직접 플레이 해봤습니다.
<그랑사가>는 PC 및 모바일에서 즐길 수 있는 풀 3D 그래픽의 멀티 플랫폼 MMORPG입니다. 하지만 말이 멀티 플랫폼이지, 콘텐츠의 구성만 놓고 보면 '자동' 플레이 기반의 모바일 MMORPG라고 할 수 있으며, '조작'과 관련된 부분은 사실상 '터치'(클릭) 외에는 이렇다 할 요소가 없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물론 불친절하긴 하지만 PC에서 게임패드로 조작이 가능하고, 게임의 중후반에는 콘트롤로 해결할 수 있는 퀘스트나 난이도가 일부 존재하기 때문에 무작정 자동 플레이를 해야하는 게임은 아닙니다. 무엇을 할지는 유저의 판단이긴 하죠.
다만 게임을 즐기는 입장에서 이 게임은 언리얼 엔진으로 개발된 고품질/고사양을 가장 큰 특징으로 내세우는 만큼, 게임 자체의 '최적화'는 모바일이 아닌 PC를 기준으로 맞춰져 있습니다. 모바일에서는 최신 고사양 스마트폰에서도 '버벅'이거나 '픽셀이 튀는것'을 발견할 수 있으며, 무엇보다 발열이 심하기 때문에 장시간 플레이를 하기에는 살짝 무리가 따릅니다. MMORPG라는 장르의 특성상 플레이 시간을 염두에 둔다면 말이죠.
PC 버전으로 게임을 구동하면 괜히 '블록버스터'급 게임이라고 지칭하는 게 아님을 알 수 있을 정도로 높은 수준의 3D 비주얼 퀄리티를 보여줍니다. 모델링 면에서 만큼은 다른 어지간한 PC 패키지 게임들과 비교해봐도 뒤떨어진다는 점을 느낄 수 없으며, 풍부한 캐릭터 표정 묘사와 전투 이펙트, 애니메이션 등은 그 자체만으로도 유저들에게 보는 맛을 제공합니다.
또한 캐릭터의 대사는 일부를 제외하면 거의 모든 대사가 유명 성우들을 통해 '더빙' 되어있습니다. 그 음성과 연기의 퀄리티는 마니아들 사이에서도 인정 받을 정도로 최상급이라고 봐도 됩니다. 여기에 게임 BGM 역시 <파이널 판타지 15>의 OST를 담당한 것으로 유명한 시모무라 요코가 참여하고, 도쿄 시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의 협업을 통해 제작된 만큼 확실한 퀄리티를 보장하는 편입니다.
이렇듯 겉모습은 다른 모바일 게임들에 비해 여러 의미로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만, <그랑사가>는 게임 자체의 콘텐츠 구성만을 놓고 보면 '모바일 MMORPG'의 공식을 충실하게 따르는 작품입니다.
플레이어는 게임의 스토리 흐름에 따라 다양한 필드를 돌면서 '스토리를 감상하고', 몬스터들을 사냥하면서 자신의 분신이 되는 캐릭터를 육성하고, 장비를 맞추고, 다양한 방식으로 전투력을 높이고, 더 높은 난이도의 지역으로 진출하고…를 끊임없이 반복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다른 유저들과 함께 공동의 목표로 특정 몬스터를 사냥하는 '협력전' 방식의 콘텐츠(섬멸전), 다른 유저들과 승부를 겨루는 PVP 콘텐츠(결투장) 등 다양한 콘텐츠를 즐길 수 있습니다. '행동력'(AP) 방식으로 하루 입장 횟수가 제한된 재료 파밍 던전이나, 기타 사이드 콘텐츠도 한 가득 준비되어 있고, 다른 유저들과 길드를 형성해서 공동의 목적을 위해 힘을 합칠 수도 있습니다.
여기까지는 일반적인 모바일 MMORPG와 다를 것이 없죠? 확실한 것은 상당한 개발비가 투자된 작품 답게 콘텐츠의 양 자체는 많고, 'MMORPG'로서 즐길 거리도 많다는 사실입니다. 계단식으로 유저들이 성장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유저들이 '성장하는' 재미 또한 충분히 느껴볼 수 있습니다.
다른 모바일 MMORPG와 차별화되는 것은 일단 그 비주얼에서도 어림 짐작할 수 있지만 소위 '미소녀 캐릭터 수집형 게임'의 테이스트를 잔뜩 섞어 놨다는 것입니다. 이 게임에는 주인공 격인 '라스'와 히로인격인 '세리아드'를 포함해 총 6명의 캐릭터들이 등장하는데, 이들 자체는 뽑기 없이 처음부터 기본으로 제공됩니다.
하지만 이들이 사용하는 '무기'(스킬)이 각각 '그랑웨폰' 이라는 캐릭터 개념으로 등장하고, 플레이어는 이들을 미소녀 캐릭터 수집형 게임의 '뽑기'와 유사한 형태로 획득할 수 있습니다. 이들 무기와 스킬의 디자인은 외형적으로는 사람입니다. 네, 아이템이 아닌 사람의 형태로 묘사 되어있습니다.
그랑웨폰은 C(커먼) 부터 SSR까지 그 등급이 정해져 있고, 당연하지만 등급이 높을수록 뽑기 확률이 낮습니다. 이 게임의 뽑기는 정가 기준으로 약 2~3만원에 10연차가 가능하며, 뽑기 확률은 최상위 SSR 등급의 확률이 3%입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다른 미소녀 캐릭터 수집형 게임들과 비슷한 수준이라고도 볼 수 있지만, 주의해야 할 점은 이 게임은 '캐릭터'(그랑웨폰)과 별도의 '장비'(아티팩트)가 함께 섞여서 나오는 뽑기라는 점입니다. 그리고 SSR 중에서도 사실상 '히든 SSR' 이라고 부를 수 있는 상위 등급이 하나 더 있는데(변신 그랑웨폰), 이런 변신 그랑웨폰은 뽑기 확률이 0.3% 미만(확률업 이벤트에서 0.4%)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그랑사가>는 일반적인 모바일 MMORPG. 특히 이른바 '아재'들이 즐기는 모바일 MMORPG와 다르게 처음 시작과 함께 어떤 그랑웨폰을 들고 게임을 하느냐에 따라 체감되는 난이도와 유저들의 만족감이 천차만별입니다.
이 때문에 이 게임은 '리세마라'(리셋 마라톤. 기본 재화로 원하는 캐릭터가 나올 때까지 계정 생성과 뽑기를 반복하는 행위)가 활발합니다. '시작' 자체만 놓고 보면 MMORPG보다는 다른 미소녀 캐릭터 수집형 게임과 크게 다르지 않고, 그렇기에 오히려 일반적인 모바일 MMORPG를 기대한 유저라면 당황할 수도 있습니다.
대신 이 게임은 유료 재화의 관리나 '보상'으로 뿌리는 유료 재화의 양이 많은 편입니다. 계정을 생성하면 일단 SSR 그랑웨폰 하나는 무조건 얻을 수 있는 뽑기권을 제공하기에 리세마라 자체도 난이도가 낮은 편이고, 챕터 4까지만 진행해도 캐릭터 뽑기를 족히 100회는 할 수 있는 양의 유료 재화를 무상으로 제공합니다.
그리고 게임이 서비스 초창기라는 점을 감안해야 하겠지만, 운영에서는 사소한 오류가 있어도 상당한 양의 유료 재화를 유저들이 '혜자'라고 느낄 정도로 다량 뿌립니다. 아예 지난 1월 말에는 최상위 변신 그랑웨폰 중에서도 가장 인기가 많은 캐릭터를 유저들에게 '이벤트' 명목으로 그냥 뿌렸을 정도입니다. 그렇기에 이 '캐릭터 뽑기' 부분은 실제 게임을 즐기는 유저들의 '체감' 면에서 보면 다른 미소녀 캐릭터 게임들보다 오히려 접근성이 좋다고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단순히 '캐릭터 뽑기' 뿐만 아니라 이 게임은 여러 면에서 '미소녀 캐릭터 게임'의 테이스트. 혹은 '캐릭터성'을 중심으로 하는 서브컬처 게임으로서의 특성도 강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게임에는 기본적으로 '주인공 파티'라고 부를 수 있는 6명의 캐릭터들이 등장하고, 100여종이 넘는 그랑웨폰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이들은 모두 강한 캐릭터성을 가지고 있고, 개별 캐릭터들의 스토리를 감상할 수 있는 콘텐츠들도 다수 준비되어 있습니다.
캐릭터들의 외형을 꾸밀 수 있는 콘텐츠도 물론 준비되어 있고, 이는 다시 말해 게이머에 따라서는 취향이 맞는다면 얼마든지 '최애캐'가 나오고 '덕질'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게임의 3D 비주얼 퀄리티 자체가 높다는 점 역시 이를 거듭니다.
<그랑사가>는 게임의 '메인 시나리오' 부분에서 다른 서브컬처 게임에 비해 유저들의 눈길을 '확 붙잡을 만한' 부분은 사실 적은 편입니다. 주인공은 정해져있기에 특정한 스킬과 무기의 외형을 최애캐로 선택하고 덕질을 하기엔 좀 미묘합니다. 이 부분은 정말 취향을 크게 탈 것으로 보입니다.
스토리는 매우 정석적이고 왕도적인 '보이 미츠 걸'을 기반으로 주인공들의 성장 스토리를 다루는 판타지물입니다. 당장 "여신이 흑룡에 의해 어쩌구" 로 시작하는 프롤로그는 2021년의 트렌드로 보기에는 고전에 가까운 시작이라고 할 수 있죠.
물론 때로는 이런 왕도적인 평이함이 취향에 맞는 분들도 많겠지만, 이 부분에서 <그랑사가>는 서브컬처 지향 게임이면서도 호불호가 갈릴 수밖에 없습니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스토리가 '재미 없냐' 하면 그건 아니고, 적당한 긴장감을 유지하면서 나름 주인공들의 숨겨진 비밀이나 스토리를 즐길 수 있습니다.
근데 생각만큼의 숨겨진 반전이라기에는 좀 너무 눈에 보이는 반전이라는 부분이 아쉬운 부분입니다. 그리고 그랑웨폰들의 스토리도 따로 존재합니다. 이들의 연계와 인연도가 높아질 수록 새로운 능력을 추가할 수 있는데, 다시말해 자주 사용하는 애정을 가지는 아이템은 그만큼 강해지고 강해진만큼 스토리를 알아갈 수 있습니다.
결국 <그랑사가>는 모바일 MMORPG에 미소녀 캐릭터 수집형 게임의 테이스트를 잔뜩 섞은, 어떤 의미로는 하이브리드형 게임이라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모바일 MMORPG로서는 '육성'이든 '콘텐츠'든 충분히 깊이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만, 문제는 '캐릭터 수집형 게임' 으로서의 특징으로 인해 여로모로 이질감이 느껴질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 게임이 '완전한 서브컬처 게임이냐' 라고 하면 그건 또 아니라는 점에서 일부 게이머들 입장에서는 무언가 어중간하다는 느낌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진입장벽을 극복하면 <그랑사가>는 게임 자체가 가진 장점도 많고, 재미도 있는 작품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어찌되었든 파밍을 포함해 캐릭터를 끊임없이 '육성하는' 재미 자체는 살아 있고, 다양한 콘텐츠들의 짜임새도 훌륭한 편입니다.
그리고 (PC 버전 기준) 비주얼을 감상하는 맛도 살아 있습니다. 역으로 서브컬처 게임을 좋아하는 유저 입장에서는 이 정도 취향을 만족시켜주는 모바일 MMORPG 자체가 굉장히 희귀하다는 점에서 또 가치가 있습니다.
과연 <그랑사가>가 초반의 좋은 기세를 유지하고 계속해서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 이후 행보가 주목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