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스파이어>는 2007년부터 2020년까지 서비스된 스마일게이트의 FPS다. 한국 대신 중화권 및 글로벌 시장에서 소기의 성과를 거두었는데, 중국에서는 넥슨의 <던전앤파이터>와 함께 '인민게임'의 지위에 오른 게임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스마일게이트는 2019년 E3에서 후속작 <크로스파이어 X>를 깜짝 발표했다. 엑스박스 독점 '밀리터리 FPS'라는 점과 <맥스페인>, <앨런 웨이크>, <컨트롤>을 만든 레메디가 2편의 싱글 캠페인을 제작한다는 점에서 큰 기대를 모았다. 중국 유저를 넘어 전 세계 유저들에게 '크로스파이어'의 이름을 알리는 것이 스마일게이트의 목표였을 것이다. 작년 스마일게이트는 AAA급 콘솔 시장을 공략에 나서겠다며, '고티'(GOTY) 최다 수상을 노리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크로스파이어 X>는 그간 알려지지 않았던 '크로스파이어'의 세계관을 구체화했을 뿐 아니라, 콘솔 스탠드 얼론 게임에 도전한다는 소기의 성과를 거두었다. 아울러 최근 대세로 떠오른 엑스박스 게임패스에 입점하면서 글로벌 게이머에게 눈도장을 찍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2022년 연말, <크로스파이어 X>가 최다 고티를 받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긍정적인 부분을 먼저 말해보자면, 레메디 전매특허인 몽환적인 연출이 곳곳에 녹아들어갔다. 그렇게 전에 없었던 <크로스파이어 X>의 이야기가 나왔다.
전작 <크로스파이어>에는 보이지 않는 고스트 부대와 전투하는 '고스트 서바이벌'이 인기였다. 고스트모드라고도 불리었던 이 모드는 한쪽은 투명한 고스트로 근접 무기만을 사용해 상대를 공격할 수 있고 다른 쪽은 용병으로 고스트의 숨소리와 잔상으로 위치를 파악해 상대를 제압하는 게임이었다.
<크로스파이어 X>의 캠페인 <오퍼레이션 스펙터>에서는 보이지 않는 특수 요원 고스트가 어떻게 탄생하는지 집중 조명한다. 일종의 '미싱 링크'가 연결되는 셈이다. <크로스파이어>는 두 민간 군사 기업(PMC)의 갈등을 소재로 하고 있는데, 세계평화를 위해 활동하는 글로벌리스크와 특수 위장복과 약물을 만드는 블랙리스트가 경쟁한다.
<크로스파이어 X>에서는 두 PMC에 어떤 인물들이 있고, 어떤 계기로 활동을 시작했고, 블랙리스트가 왜 특수부대 고스트를 만들게 되는지에 대한 배경이 담겨있다. 특히 게임패스에 포함된 <오퍼레이션 카탈리스트>는 서사적으로 정석적인 밀리터리 FPS 캠페인 (테러조직과 일전, 동료 구하기, 배신과 음모 등)에 레메디 특유의 심리 묘사와 더해져 <블랙 옵스> 풍의 어둡고 음모론적인 이야기를 완성시켰다.
점점 짧아지는 싱글 캠페인 추세에 맞게, <크로스파이어 X>에 마련된 싱글 모드도 평균적인 FPS 플레이 이력을 보유한 게이머라면 넉넉 잡아서 하루면 엔딩을 볼 수 있다. 둘 다 모두 엔딩을 본 입장에서, 레이저 피하기 같은 어드벤처 요소나 거대 병기로봇과 일종의 보스전이 포함된 <오퍼레이션 스펙터>가 더 재밌었다.
부담없이 맛볼 수 있도록 마련한 게임패스 용 줄거리 하나, 이 게임이 마음에 든 유저들을 위해 마련한 유료 캠페인 하나를 마련해 선택의 여지를 남긴 것도 기록해둘 만하다. 출시 초기 게임패스 유저들은 캠페인을 이용할 수 없었던 문제가 발생했지만, 최근 해결된 것으로 보인다.
현재 <크로스파이어>는 중국에서 e스포츠를 소재로 드라마가 만들어졌고, 헐리우드에서 영화화도 예정되어있다. 미디어믹스 측면에서 <크로스파이어 X>가 들려주는 새로운 이야기는 <크로스파이어> IP가 더 공고해지는 계기가 될 것이다.
리뷰어로서 적합한 표현일지 모르겠지만, <크로스파이어 X>는 오늘날의 스마일게이트를 일궈낸 효자 IP에게 다소 아쉬운 대우다. 무릇 FPS라고 한다면 건플레이가 제일 핵심적인 게임적 요소가 되어야 할 텐데, <크로스파이어 X>의 건플레이 경험은 수준 미달이었다. 어떤 절차와 기준으로 품질보증(QA)이 이루어진 것인가, 묻지 않을 수 없을 정도다.
패드를 기본으로 지원하는 FPS라면 조준 과정에서 락온 보정은 어느 정도 들어가줘야 한다. 이 게임은 그 부분이 미진하다. 건플레이에 긴장감이 떨어지니 스토리에서 아무리 멋진 이야기를 풀어내려고 해도, 멀티에서 내 실력을 뽐내려고 해도 집중을 하기가 어렵다. 30프레임 고정에다가 레이트레이싱의 맛을 보긴 어려웠다.
입력 지연(인풋랙)이 생겼고, 벽뚫(오브젝트를 뚫고 총알 대미지가 발생)도 있었다. 벽뚫의 경우, 10년 전 원작에서도 종종 봤던 것 같기에 캐주얼 FPS의 재미를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선호될 수 있지만, 콘솔 밀리터리 FPS가 추구할 만한 방향은 아닌 듯하다. 더구나 <크로스파이어>가 대성공한 중국 시장에서는 이 게임을 즐기기 쉽지 않다.
설정에서 감도를 바꾸거나, '조준 지원 목표 스냅'을 켜면 어느 정도 보정을 받을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뚝뚝 끊기는 조작감이 완전히 개선되지는 않았다. 기자는 자타공인 '저주받은 에이밍의 소유자'다. 그래도 한때 클랜 활동도 하고, 이 일로 밥은 벌어먹을 정도는 총게임을 해봤는데, 이 게임에서는 제대로 적을 조준하기가 어려웠다.
상황이 이러니 멀티플레이는 언감생심인데, 체력을 6배나 더 주고 쌍'소총'을 쏘는 부기맨은 극심한 OP여서 밸런스가 깨졌다. (제작진은 부기맨 밸런스를 맞추겠다고 밝혔다.)
그래서 방패가 달린 권총을 들고 대응사격을 하다가, 어떤 적이든 한 방에 보내는 근접공격으로 킬하는 방식으로 싱글플레이를 완수해야 했다. NPC의 인공지능도 그다지 뛰어나지 않아 나를 쏘다가 앉기로 숨어버리면 다른 곳을 보고 있다던지, 나와는 멀리 떨어진 허공에 총을 난사하는 경우가 많았다. 상대 스나이퍼들은 플래시 포인트로 '나 여기 있어요'라고 대놓고 알려주고 있었다.
평균 이하의 플레이 이력을 가진 FPS 유저들도 스토리의 엔딩을 볼 수 있도록 <맥스 페인>의 불렛 타임에 해당하는 컴뱃 브레이커가 준비되어 있었다. 권장 난이도 기준, 굉장히 빠른 속도로 게이지가 차서 이 기능을 굉장히 자주 사용하게 됐다.
체력 판정도 굉장히 넉넉했기 때문에 블랙아웃 직전에 짧게 은·엄폐를 한다면 다시 풀(full) 체력으로 전투에 임할 수 있다. 건플레이가 재밌게 설계됐다면, 컴뱃 브레이커도 넉넉한 체력도 재미 요소로 다가왔겠지만, 조작감부터가 흔들리다 보니 게임을 깰 수'는' 있게 돕는 보조 수단으로 기능했다.
또 보급 포인트에서는 총알과 수류탄을 무한정으로 새로 받을 수 있어 '쫄리는 맛'이 부족했다. 게임 플레이 경험이 부정적인 방향에 쏠려있다 보니, 오픈월드 RPG에나 어울릴 법한 장난감 수집 요소는 공허했다. 게임의 세계관을 깊게 알 수 있는 사진이나 음성 데이터를 수집할 수도 있었지만, 급박하게 돌아가는 전쟁터에서 새초롬하게 누워있는 장난감은 그 의미를 짚을 수 없었다.
엑스박스의 본진이라고 할 수 있는 영미권에서 <크로스파이어 X>에 대한 부정 의견이 줄을 이으면서 스마일게이트도 대응에 나섰다.
스마일게이트 엔터테인먼트 부수로 본부장은 "오랜 기간 스마일게이트와 함께한 사용자와 팬을 본의 아니게 실망하게 했다. 게임 내 문제에 대해 사과하며, 정확한 문제점과 극복 방안을 안내하고자 한다. 스마일게이트는 소중한 사용자와 투명하게 소통할 것이며, 다시 신뢰를 회복할 수 있기를 바란다"라며 게임의 개선 의지를 밝혔다.
<크로스파이어 X>도 <노맨즈스카이>, <사이버펑크 2077>처럼 선발매 후조치의 길에 접어든 것이다.
일단 내고 나중에 고치는 업계의 새로운 관행이 썩 반갑지는 않지만, 모쪼록 게임의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다. 스마일게이트는 라이브 서비스는 서비스대로 하면서 게임을 개선시켜야 할 것이다. 두 회사가 협업을 거쳐 만든 결과물인데 싱글은 레메디의 노스라이트 엔진으로, 멀티는 언리얼 엔진으로 만들었다. 따라서 이 부분에서도 어떻게 개선점이 제출될지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
향후 PC 플랫폼을 지원한다면, 키보드와 마우스로 개선된 조작을 즐길 수 있을지도 모른다. 구체적인 개선 로드맵은 3월 발표될 것으로 전해진다. <크로스파이어 X>는 <헤일로 인피니트>, <기어스 5> 등 쟁쟁한 슈팅 게임이 포진된 엑스박스 생태계에서 생존할 수 있을까? 게임패스 유저들에게 기본적으로 제공되는 밀리터리 FPS라는 부분은 향후 강점으로 작용할지도 모른다.
베타테스트 시절 <로스트아크>가 스팀에서 글로벌 접속자 100만 명을 넘기는 히트작이 될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지금 스마일게이트의 <로스트아크>는 부던한 노력과 소통 끝에 세계에서 제일 잘 나가는 MMORPG가 되었다. <크로스파이어 X>도 그렇게 되려면, 조작감을 중심으로 게임 경험 자체를 많이 고쳐야 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