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싯적에 게임 좀 해본 마니아라면 '영웅왈도전'이라는 애칭으로 불리기도 하는 <히어로즈 오브 마이트 앤 매직 3>(이하 <HOMM 3>)에 대해 알고 있을 것이다. 지금은 사라진 '뉴 월드 컴퓨팅'에서 개발한 턴제 전략 게임으로, 군세를 이끌고 영토를 넓혀나가며 최종적으로는 상대의 기지를 함락하는 것이 목표였다.
특히 <HOMM 3>는 시리즈 중 가장 높은 완성도와 명확히 구분되는 진영 별 특성을 통해 한 때 <문명> 시리즈에 버금가는 '악마의 게임' 칭호를 받기도 했다. 그만큼 제대로 빠져들기만 하면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중독성을 자랑했고, 발매 후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아직도 고전 게임 커뮤니티 등지에서 언급이 되곤 한다.
하지만, 반대로 보면 <HOMM 3> 이후 팬들의 니즈를 충족할 만한 턴제 전략 시뮬레이션이 적었다는 이야기도 된다. 그리고 참으로 오래간만에 턴제 전략 장르를 표방하며 <HOMM 3> 팬들에게 어필할 만한 인디 게임이 나왔다. 바로 2022년 3월 1일 발매된 <히어로즈 아워>다.
<HOMM 3>를 즐겨 본 게이머라면 튜토리얼을 몇 초 플레이해보고 대부분의 시스템을 이해할 정도로 비슷하지만, 여기에 약간의 차별화를 더했다. 바로 실시간으로 전투가 진행된다는 점이다. /디스이즈게임 김승주 기자
# 게임 전반에서 느껴지는 <HOMM 3>에 대한 리스펙
<히어로즈 아워>의 전반적인 게임 운영은 <HOMM 3>와 크게 다르지 않다.
종족마다 마을에 하루 하나의 건물을 제작할 수 있으며, 서로 다른 병종이 등장한다. 병종은 게임 시간으로 1주(7턴)마다 보충된다. 플레이어는 이런 병종을 모아 나만의 군세를 꾸려 거점 주변을 밝혀나가게 된다.
광산을 점령해 하루마다 자원을 받거나, 영웅의 레벨을 올려 보다 강력한 스킬로 아군을 지원하도록 할 수 있다. 주위 맵을 돌아다니며 계속해서 핵심 자원을 획득하고, 획득한 자원과 영웅 경험치를 바탕으로 더욱 강력한 군대를 모아 상대방의 기지를 파괴하는 게임이라고 보면 쉽다.
<HOMM 3> 팬이라면 스크린샷만 봐도 단박에 이해가 갈 것이다
<HOMM 3>과 조금 다른 점이라 한다면, <히어로즈 아워>는 게임메이커 엔진을 바탕으로 한 픽셀 그래픽으로 제작됐다. 픽셀 그래픽 퀄리티가 높은 편은 아니지만, 종족별 특징을 구분할 수 있는 정도는 된다.
가장 큰 차이점을 둔 부분은 바로 전투다. '턴제'가 아닌 '실시간' 방식으로 진행된다. 시작 전 군대의 위치를 조절해 주면 플레이어의 군대는 자동으로 진격해 상대방을 공격한다. 팔을 빼고 느긋하게 전투를 지켜볼 수도 있지만, 아군의 진형을 실시간으로 수정하거나 영웅의 스킬을 사용할 수도 있어 완전한 자동 전투는 아니다.
전투 시작 전 진형을 설정해 주면
알아서 실시간 전투를 진행한다
또한, 아무리 많은 개체 수가 있어도 한 병종이라면 하나의 유닛으로 표현되었던 <HOMM 3>와 달리 <히어로즈 아워>는 보유한 유닛 개체가 대부분 화면에 표시된다. 덕분에 게임 중반부터는 꽤 규모 있는 전투를 관람할 수 있다. 물론, 최적화와 맵 크기 문제가 있어 모든 개체 수가 전투에 등장하는 것은 아니다. 일정 유닛을 전투 시작 전 배치할 수 있고, 전투 중 아군의 수가 줄어들면 '증원군' 형식으로 후방에 배치된 군대를 불러오는 식이다.
영웅도 전투를 지휘만 하는 게 아니라 직접 등장해 전투를 한다. 특정 영웅은 자신의 공격력과 방어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스킬을 가지고 있어, 육성만 제대로 된다면 버프 마법을 둘둘 두른 채 '무쌍'을 펼칠 수도 있다. 영웅의 체력이 모두 감소한다고 해도 맵 후방으로 물러날 뿐 큰 페널티는 없기 때문에 영웅의 생존에 너무 큰 신경을 쓸 필요는 없다.
마치 <토탈 워> 시리즈 같은 실시간 대규모 전투를 핵심으로 내세워서인지, 각 병종에는 다양한 특성이 존재한다. 특정 병종은 '돌진'이나 '밀치기' 등을 사용해 상대방 유닛을 밀어붙여 진형을 와해시키며, 공중을 나는 유닛은 체력이 적은 상대 유닛을 잡아 채 낙사시킨다. 영웅이 사용할 수 있는 스킬에도 상대방의 진형을 바꾸거나, 좁은 지형에 큰 대미지를 입힐 수 있는 능력이 포진해 있어 적재적소에 사용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기에 진형과 조합, 전략을 통해 다양한 전투를 맛볼 수 있는 것이 <히어로즈 아워>의 재미다. 밀집 대형을 통해 몰려오는 적을 격파하거나, 방어 대형으로 최대한 시간을 끌면서 영웅의 스킬로 적을 격파할 수 있다. 서로의 군세가 맞붙는 와중에 별동대를 편성해 상대방의 원거리 딜러를 기습하는 것도 가능하다. 아군 병종 특성을 이해하고 전략만 잘 짜면 '불가능'하다고 여겨진 전투를 '완벽한 승리'로 이끌 수 있다.
조합과 전략을 통해 어려워 보이는 전투도
승리로 이끌 수 있다는 점이 <히어로즈 아워>의 재미다
# 모두가 공평하게 '무한 부활'? 의료소의 존재
자원을 모으고 병종을 관리하는 '내정' 시스템에도 <HOMM 3>와 일부 차이점이 존재한다.
가장 큰 차이는 바로 '의료소'의 존재다. <HOMM 3>는 아군이 전멸할 경우에 이를 만회할 수 있는 방법이 많지 않았지만, <히어로즈 아워>는 도시에 의료소를 짓기만 하면 사망한 유닛 중 일부를 되돌려준다. 언데드 종족인 '디케이'를 제외하면 모든 종족이 공평하게 의료소를 도시에 건설할 수 있다.
덕분에 의료소를 일찍이 짓기만 해도 초반 정복 전쟁에서 소모되는 사상자 일부를 보충할 수 있으며, 상대방과의 전면전에서 패배하더라도 의료소를 통해 돌려받은 유닛으로 수성전을 펼치며 후일을 도모할 수 있다. <히어로즈 아워>의 공성전은 수성하는 쪽이 상당히 유리한 편이다.
의료소 덕분에 도시 한 번 점령하는 데도 전투를 2~3번 연속으로 진행할 수도 있다
오직 '디케이' 종족만이 의료소가 없어 초반 게임에서 불리한 편이다. 마치 야언못(야 언데드 할게 못 돼)
# 소규모 개발의 한계 보이지만, <HOMM 3> 팬이라면 주목할 만한 게임
아쉽게도 <히어로즈 아워>에는 소규모 개발의 한계가 곳곳에서 보인다.
먼저 캠페인과 멀티플레이의 부재다. 가격이 비싼 게임이 아니기에 캠페인과 멀티플레이까지 바란다는 점은 과욕으로 여겨질 수 있지만, <HOMM 3>가 높은 평가를 받았던 이유는 다양한 캠페인과 멀티플레이의 존재 때문임을 생각하면 아쉽다 할 수 있다.
밸런스가 불안정하다는 문제도 아쉽다. 기자의 <HOMM 3> 실력은 초심자에 가깝지만, <히어로즈 아워>는 특정 병종의 조합이나 스킬이 지나치게 강력해 어려운 난이도도 손쉽게 클리어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게임 중반부부터 상점에서 등장하는 중립 영웅이나, '수은 괴물' 등의 특정 스킬, 혹은 몇몇 꼼수만 이용하면 어렵지 않게 상위 난이도를 클리어할 수 있다. 다행히 개발사도 이를 인지하고 있는지 지속적인 패치를 통해 진영 간 밸런스나 콘텐츠에 대한 업데이트를 진행하고 있다.
<HOMM 3>의 가장 큰 장점으로 손꼽혔던 '진영 간 특성'도 <히어로즈 아워>에는 보이지 않아 아쉽다. <히어로즈 아워>에는 11가지 종족이 존재하지만, 디케이를 제외한 모두가 '의료소'를 가지고 있고 병종 간 특성도 비슷해 종족별 운영이 크게 다르지 않은 편이다.
<히어로즈 아워>에는 11가지 종족이 있다
하지만, 아직 종족별 특성이 도드라지지는 않는 편이다. 연구 부족이 이유일 수도 있지만
픽셀 그래픽도 장르적 특성과 어울리지 않는 면이 일부 보인다. 소규모 스튜디오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 볼 수 있지만, 다소 간편화된 픽셀 그래픽 덕분에 마을 화면에서 배치된 건물을 볼 때나, 내정 단계에서 게임 구도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후반부 전투에서도 아군과 적군이 뒤섞이면 전세를 파악하기 어려운 편이다. 보통 화면 상단의 그래프와 병종 숫자를 보며 전세를 파악하게 된다. 요약하자면, <히어로즈 아워>는 독특하거나 멋진 완성도를 가진 인디 게임은 아니다. 게임 전반에 <HOMM 3>의 그림자가 너무나 짙다.
하지만 <HOMM> 시리즈의 오랜 팬으로 보이는 개발자의 손에서 나름의 불합리성을 개선하고 '실시간 전투'를 통한 개성을 갖추기 위해 많은 신경을 쓴 인디 게임이다.
인디 게임 플랫폼 'itch.io'나 스팀에서 별도의 홍보 없이 입소문을 타며 흥행하고 있다는 점도 바로 여기에 있다. 게임 가격이 2만 원이 넘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꽤 풍성한 콘텐츠를 가지고 있다고 볼 여지도 충분하다. <히어로즈 아워>는 현재 스팀과 스토브를 통해 한글화 판매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