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스트 디센던트>는 넥슨이 만든 프리투플레이 ‘루트 슈터’ 게임입니다. 루트 슈터는 루팅(파밍이라고도 합니다)과 슈팅을 합친 용어입니다. RPG에서 아이템을 획득해 나가는 과정을 ‘루팅’이라고 하죠. 루트 슈터는 슈팅 게임처럼 즐기면서 RPG식 아이템 획득으로 캐릭터를 성장시키는 장르입니다. ‘루트 슈터’라는 명칭이 등장하기 전에는 실제로 ‘RPG 슈터’라고도 했습니다.
이 장르는 흥행 확률이 높지 않은 편입니다. <디비전> 시리즈, <데스티니>, <워프레임> 정도가 성공적 작품으로 꼽힙니다. RPG와 슈팅 장르 모두 기획적, 기술적 노하우가 많이 필요하다 보니, 잘 만들기가 역시 쉽지는 않은 듯합니다.
반대로 얘기하면, 두 장르 모두에 일가견이 있을 경우 도전할 만합니다. 이 지점에서 떠오르는 국내 기업이 있다면 역시 넥슨일 겁니다. 넥슨의 신작 루트 슈터 <퍼스트 디센던트>에 업계의 눈길이 쏠리는 것 또한 맥락상 자연스럽습니다.
게다가 ‘신작 가뭄’이 심한 장르 씬의 사정으로 인해, 게이머 사이에서도 관심이 높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이런 기대에 부응할 만한 게임일까요? 지난 19일부터 진행된 크로스플레이 오픈베타를 통해 직접 가늠해 봤습니다.
제목에 드러난 것처럼 <퍼스트 디센던트>는 특수한 능력을 지닌 ‘계승자’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웁니다. 계승자는 ‘잉그리스’ 대륙을 침략해 인류를 파멸 위기로 몰고 간 미지의 종족 ‘벌거스’에 대항하는 마지막 희망입니다.
계승자라고 불리는 이유는 인류의 오랜 조상인 ‘선각자’들로부터 유래한 힘, ‘아르케’를 일깨운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이 힘이 인게임에서는 계승자의 속성 및 스킬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계승자의 전반적 스킬셋은 어딘지 익숙합니다. ‘히어로 슈터’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탬플릿을 많이 빌려왔습니다. 방벽, 포탑, 폭탄, 화력, 암살 등 타 게임에 흔히 나오는 전형적인 특기를 지닌 계승자들이 많습니다.
'얼티밋' 등급의 캐릭터도 존재한다.
대신 이들에게 각자 특징적 전투 메카닉을 부여하면서, 각기 다른 재미를 주도록 설계한 것이 매력 포인트입니다. 같은 콘텐츠를 반복 플레이해야 하는 장르 특성상, 캐릭터 간 차별성이 확실할수록 좋습니다. ‘새 캐릭터를 얻어 새로운 플레이를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야 하니까요.
예를 들어 방벽류 스킬이 많은 ‘에이젝스’는 스킬 사용 때마다 ‘공허 에너지’를 축적하는 패시브 능력이 있습니다. ‘공허 에너지’가 일정 스택 쌓이면 반대로 스킬의 재사용 대기시간이 줄고 스킬에 새로운 효과도 더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에이젝스를 플레이할 때는 스킬 사용의 사이클에 신경을 쓰면서 비교적 정적인 플레이를 하게 됩니다.
반면 ‘버니’는 이동한 거리에 비례해 전기 에너지를 몸에 축적한 뒤 이를 방출하여 대미지를 입히는 메커니즘을 지닙니다. 여기에 어울리는 이동 속도 스킬도 지니고 있습니다. 따라서, 사격 시 이동 속도가 줄지 않는 화기를 장착하고 현란하게 적 사이를 누비는 게임플레이가 유도됩니다. 이렇듯 캐릭터마다 전혀 다른 플레이 감각을 선사함으로써, 똑같은 콘텐츠를 소비하더라도 상이한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합니다.
전기를 방출하는 버니는 인기가 좋은 계승자다.
계승자의 개성이 전투에서만 두드러지는 것은 아닙니다. 각각은 확연히 눈에 띄는 매력적 외형과 복장을 가지고 있어, 플레이어의 수집욕을 자극합니다.
다만 전형적 ‘얼음 마법사’처럼 생긴 빙결 능력자 ‘비에사’나, 흰 가운에 검은 뿔테를 쓴 의사 출신 캐릭터 ‘글레이’ 등의 디자인에서는 클리셰 차용이 다소 과하다는 인상도 있습니다. 전신 갑옷에 헬멧까지 뒤집어쓰고 있는 ‘방어형 캐릭터’ 에이젝스의 디자인도 비슷한 느낌을 줍니다.
반대로 간단한 설정 하나만으로 모든 캐릭터에 깊이를 부여한 점은 영리하게 다가옵니다. 계승자들은 인생에서 겪은 치명적 사고를 계기로 능력을 발현한다는 설정이고, 능력의 구체적 특성도 사고 내용과 연관돼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린 절도범이었던 ‘버니’는 훔친 수류탄이 전자기 폭발을 일으키면서 지금의 전기 능력을 얻었다는 식입니다.
다만 이런 계승자들의 이야기는 UI 상에서 텍스트로만 만나볼 수 있을 뿐, 인게임엔 관련 콘텐츠가 전혀 없다는 사실이 다소 아쉽게 다가옵니다.
다소 전형적인 캐릭터 디자인도 보인다
루팅 게임인 만큼 <퍼스트 디센던트>에는 수집 가능한 아이템 유형이 아주 다양합니다.
가장 기본 요소는 무기입니다. <데스티니> 시리즈와 유사하게 일반탄, 충격탄, 고위력탄, 특수탄 등, 사용하는 탄종에 따라 크게 네 종류로 나뉩니다. 여기서 다시 일반탄 총기는 SMG 및 라이플, 충격탄 총기는 핸드캐논 및 저격총 등으로 세분되는 식입니다.
몸에 착용하는 ‘액세서리’ 아이템 중에서는 ‘반응로’의 중요성이 큽니다. 스킬의 위력과 효율에 직접 보너스를 주기 때문입니다. 그 외의 액세서리는 타 게임의 방어구와 유사한 역할을 하며, 체력, 실드 등에 영향을 줍니다.
무기와 액세서리에는 모두 일반, 희귀, 궁극의 세 가지 희귀도가 있습니다. 희귀 등급 아이템은 일반 아이템보다 더 많은 능력치 옵션이 붙고, ‘궁극’ 아이템에는 특수한 작동 메커니즘이 추가되는 방식인데요. 일반/희귀 무기의 경우 스펙을 직접 강화할 수 없지만, 궁극 무기의 ‘고유 능력’은 강화할 수 있습니다.
무기 및 반응로만큼 중요한 아이템이 있는데 바로 강화 아이템인 ‘모듈’입니다. 모듈은 무기에 장착하는 모듈과 계승자가 착용하는 모듈로 구분됩니다. 이 중에는 스펙만 수치상으로 강화하는 일반 모듈도 많지만, ‘장전 후 첫 번째 탄환의 위력 강화’ 등 특별한 속성을 부여하는 특수 모듈 또한 다양하게 준비되어 있습니다.
궁극 등급 무기에는 특별한 효과와 작동방식이 있다.
<퍼스트 디센던트>의 전투는 크게 세 가집니다. 스토리를 따라 상에서 즉석으로 플레이하는 필드 전투, 여러 단계(웨이브)에 걸쳐 적 무리를 막아내는 ‘특수 작전’, 그리고 ‘거신’이라고 불리는 보스를 상대하는 ‘요격전’ 등이죠. 전투는 모두 아이템 획득 수단이기도 합니다. 제작 및 강화에 쓰이는 수많은 기본 재료를 이들 활동을 통해 수집합니다.
특히 ‘특수 작전’에서는 주요 파밍 아이템인 ‘비정형 물질’을 얻을 수 있습니다. 비정형 물질은 일종의 ‘확률형 아이템 상자’로, 정해진 아이템 풀에서 한 종류를 확률적으로 얻게 해줍니다. 이렇게 얻는 아이템 중 가장 중요한 건 역시 계승자 획득에 필요한 ‘도면’입니다. 설정상 계승자는 아르케를 안정화하는 과정을 거쳐 ‘제작’되는데, 여기에 쓰입니다.
그런데 비정형 물질을 ‘열고’ 그 안의 아이템을 얻으려면 반드시 각각에 연동된 요격전을 완수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이때의 아이템 드롭률은 모두 확률에 기반하기 때문에, 원하는 아이템을 얻으려면 요격전 반복 수행이 필수입니다. 따라서 유저들은 더 빠르고 효율적인 요격전 수행을 위한 스펙 마련과 전투 숙달에 힘쓰게 됩니다.
비정형 물질은 요격전 수행을 통해 아이템으로 만들 수 있다.
자, <퍼스트 디센던트>가 어떤 아이템 체계와 전투 시스템을 가졌는지 알아봤습니다. 사실 특별한 것은 없습니다. 선배 게임들이 정립해 놓은 시스템을 많이 참고하고 있으니까요. 아이템 희귀도 시스템, 네임드(이 경우 궁극) 아이템, 필드전, 디펜스, 보스 레이드, 모두 익숙합니다.
나선을 그리는 전반적 콘텐츠 구조도 마찬가지입니다. 같은 콘텐츠 싸이클을 쳇바퀴처럼 반복하는 듯하지만, 조금씩 스펙과 파밍 상태가 상승하는 그런 형태인데, 루트 슈터, ARPG에서 폭넓게 쓰입니다. 그렇다면 기사 첫머리에 ‘해볼 만한 게임’이라고 이야기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색다른 것은 없지만, 모자람도 없기 때문입니다.
<퍼스트 디센던트>는 ‘기본기’가 좋습니다. 우선 전투 만족감을 꼽아볼 만합니다. 파밍 중심의 게임은 획득한 새 아이템이 유저의 보상중추를 자극할 수 있어야 합니다. 즉, 획득했다는 사실을 즐거워할 수 있어야 한다는 얘깁니다.
보스는 단계별로 처치해야 한다.
그러려면 전투를 여기에 적합한 형태로 짜야 합니다. 유저가 얻은 힘이 어떤 효과를 발휘하는지 전투를 통해 다방면으로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얼마 전 모 ARPG 게임 운영진이 몬스터의 수 감소 패치를 했다가 원성을 산 것도 비슷한 맥락입니다. 좋은 무기를 얻어봤자 이를 이용해 적을 쓰러뜨리는 재미를 느낄 수 없다면 무용지물이니까요.
아이소메트릭 게임들에 비해 훨씬 능동적이고 디테일한 전투를 벌일 수 있는 루트 슈터 장르에서는 더욱더 강조되는 사안입니다. 이 장르의 소비자들은 단순히 적의 머리 위에 더 높은 대미지 수치를 띄우기 위해서 게임을 하지는 않습니다. 어려운 전투를 직접 극복해 낼 때 오는 ‘짜릿함’을 느끼고 싶어 합니다.
장르 특성상 건플레이 완성도만으로는 이 ‘짜릿함’을 구현하지 못합니다. 전투는 반드시 캐릭터의 특성, 육성 상태, 육성 방향을 효과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형태여야만 합니다. 실제 군사 용어를 빌리자면 신형 무기 성능을 실험하는 ‘프루빙 그라운드’(proving ground)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복잡한 육성 노력에 긍정적 피드백을 줄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퍼스트 디센던트>의 전투는 그 역할을 알차게 해내는 편입니다. 이는 첫 번째로 적들의 다양성 덕분입니다.
가장 평범한 전투인 ‘필드전’에서도 체력과 공격 빈도, 공격 방식(근거리, 원거리, 범위공격)이 다양한 적들이 우르르 나옵니다. 주변 몹을 무적 상태로 만들거나 아군 스킬 사용을 방해하는 등의 특수 능력자들도 주기적으로 등장합니다.
덕분에 꾸준히 변수와 돌발상황이 발생하면서 유의미한 난관이 되어줍니다. 그리고 유저들은 이것을 각자의 방식으로 돌파할 수 있습니다. 계승자별로 차별화되는 전투 메커니즘 덕입니다. 앞서 언급한 무기와 모듈을 계승자에 어울리는 최적의 형태로 조합하면, 다른 유저들이 상상하지 못했던 수준의 막강한 효율을 내곤 합니다. 그러니까 예를 들어 부숴지지 않는 방벽이나 기대 이상의 파괴력을 내는 포탑을 설치하는 유저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특정 몹이 주변 몹을 무적으로 만드는 등의 변수가 자주 등장한다.
둘째로는 전투의 ‘양감’도 큰 몫을 합니다. 한 번에 등장하는 몬스터의 수가 많아 내 위력을 확인할 기회가 많고, 더불어 적들의 위협도 배가합니다. 이를 상대하는 캐릭터의 속도감도 긍정적 요인입니다. ‘그래플링 훅’와 더블 점프 등 신속한 이동기가 있어 전투가 전반적으로 호쾌하게 펼쳐집니다. 총기 반동이나 발사음 등 ‘건플레이’의 기초 요소가 뒷받침되지 못한다면 이 모든 장점도 퇴색되었겠지만 매끄럽게 잘 해냈습니다.
진미는 ‘요격전’입니다. 고유한 이름을 지닌 보스 몬스터, ‘거신’들이 등장하며, 이들은 각자의 전혀 다른 외형과 기믹, 공격 패턴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전의 거신을 잡아야 다음 거신에 도전할 수 있는 계단식 구조인데, 공략 난도가 점점 올라가 나중에는 사전 조사가 필요할 정도로 복잡해집니다. 이 때문에 랜덤하게 만난 유저들과 함께 공략하기에는 쉽지 않습니다.
반대로 말하면 그만큼의 성취감을 준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특히, 보스 특성에 따라 각기 다른 특기의 계승자들이 활약할 수 있게끔 ‘판’을 깔아줬다는 점이 인상적입니다. 그러니까, 어떤 보스를 상대로는 높은 대미지가, 다른 보스를 상대로는 재빠른 스피드가, 또 다른 보스전에서는 동시에 여러 타겟을 공격할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해지는 식입니다.
보스몹을 얼리기도 한다
<퍼스트 디센던트>는 성장, 전투, 파밍이 나선형으로 꼬리를 무는 루트 슈터(혹은 ARPG)의 콘텐츠 순환 구조를 체계적으로 구현하고, 타이트한 전투와 특색 강한 캐릭터(계승자), 다각적 육성 시스템을 통해 각자의 방식으로 이를 공략하는 쾌감을 느끼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장르에 요구되는 최소 요건을 무리 없이 충족하고 있기에, 문법에 익숙한 유저라면 별 고민 없이 빠져들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콘텐츠 소모의 전반적 템포와 반복성은 이 게임에서 가장 우려되는 지점입니다. <퍼스트 디센던트>의 전투는 긴장감 있고 다이내믹하지만, 상당히 반복적이란 무시 못 할 단점이 있습니다. 특히 ‘잡몹’을 상대하는 필드 전투 및 특수 작전에서 반복성이 쉽게 드러나며, 지루함이 느껴질 위험성도 큽니다.
이는 전투의 빈도가 높고 지형이나 상황 등에서의 다양성이 부족한 탓에 여러 전장 상황과 적들의 기믹에 익숙할 기회가 많이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무엇이든 반복 숙달되면 쉽고 지루하게 느껴지기 마련입니다.
상점 페이지의 구성이 전체 게임의 재미에 큰 영향을 줄 가능성이 커 보인다. (사진은 상점 화면이 아님)
따라서 필요한 아이템을 죄다 모아 신규 계승자를 획득하거나, 스펙을 올려 새로운 보스에 도전하게 되는 시점이 충분히 빨리 찾아오지 않는다면, 즉, ‘새로움’이 공급되는 주기가 지나치게 길다면 유저들은 최초의 흥분과 재미를 빠르게 잊고, 게임 전체에 대한 흥미도 잃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입니다.
여기에 아직 확정되지 않은 BM까지 고려한다면, <퍼스트 디센던트>의 흥행 가능성을 가늠하기란 조금 더 어려운 일이 되고 맙니다.
베타에서는 BM 없이 새 콘텐츠를 빠르게 맛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만약 실제 서비스에서 이 모든 과정이 지나치게 감속된다면, 혹은 ‘가속’에 필요한 과금 요구가 지나치다면 어떨까요? 그 사이의 절묘한 절충안을 찾아낼 수 있는지가 <퍼스트 디센던트>를 ‘해볼 만한 게임’과 ‘지루해서 못 할 게임’으로 나누는 분수령이 될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