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장 시절 누구나 한 번쯤 교과서 귀퉁이에 낙서를 하며, 펜으로 그린 그림이 입체로 튀어나와 움직이면 어떨까 상상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3D 드로잉 앱 '페더'는 어린 시절의 상상처럼 선만 그리면 손 쉽게 3D 데이터를 만들 수 있게 해준다.
시그래프 2023에 참여한 한국 업체 중 '창작 도구를 창작하는' 스케치소프트는 단연 눈에 띄는 스타트업 기업이었다. 디즈니, 픽사, 드림웍스, 유니티, 엔비디아 등 그래픽 분야에서 선두에 있는 기업들이 모두 모인 로스앤젤레스 컨벤션 센터에서 많은 아티스트들이 '페더'가 쉬운 입력 방식, 간결한 UI를 가진 무료 앱이라는 점에 놀라곤 했다. 웹앱도 지원해 디바이스에 관계 없이 누구나 사용해볼 수 있다.
이런 '페더'는 어떤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지 들어보기 위해, 시그래프 2023 현장에서 스케치소프트 김용관 대표와 단독 인터뷰를 진행했다. /로스앤젤레스= 디스이즈게임 김승준 기자
Q. 디스이즈게임: 스케치소프트가 만든 ‘페더’는 구체적으로 어떤 제품인가?
A. 스케치소프트 김용관 대표: 페더는 3D 드로잉 앱이라고 저희는 표현을 하고 있다. 펜 터치 같은 간단한 입력만으로도 3차원 곡선들을 그려서 3차원 그림을 만들수 있는 어플리케이션이다.
Q. 펜 터치와 더불어 선(Line) 입력이라는 표현도 쓰셨는데, 다른 방식보다 선 입력이 가지고 있는 이점이 있다면?
A. 일단은 지금까지 3차원으로 어떤 창작물을 만들 때 주로 다뤘던 것들은 곡면이나 부피였는데, 선을 다루게 되면 그림을 그리듯이 선으로 간단하게 외곽선 그리고 뼈대를 그려서, 훨씬 더 빠른 시간 안에 핵심적인 아이디어를 표현해내고 전달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Q. 3D로 작업물을 만드는 과정에도 여러 단계가 있는데, 페더는 머릿속에 있는 상상을 쉽게 3D로 만드는 초기 단계를 특히 강조하고 있다. 이쪽 파트를 타깃으로 한 이유가 있는지?
A. 지금까지 3차원 창작을 하게 하기 위해서 되게 많은 소프트웨어들이 만들어져 왔는데, 가장 병목 구간인 게, 처음 아이디어가 떠올랐을 때 머릿속에 있던 것을 어떤 형태로든 3D 데이터로 만들어내는 그 과정이었다. 이 부분을 사람들이 많이 어려워하고 있어서, 그 장벽을 좀 낮추기 위해서, 가장 먼저 선으로라도 최대한 빨리 아이디어를 꺼낼 수 있게 하는 것을 목표로 하게 됐다.
이런 병목이 풀리게 되면 다른 소프트웨어들이나 다른 방식으로도 빠르게 이어질 수 있고, 많은 사람들이 자기 아이디어를 더 3차원으로 표현할 수 있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
Q. 이번에 시그래프 2023에 참여해서 이루고자 했던 목표가 있다면?
A. 아무래도 영화나 게임 산업에서 주로 활동하는 분들이 바로 이 미국 LA에 많이 있고, 또 그분들이 어떻게 하면 컴퓨터 그래픽스나 인터랙티브 테크놀로지를 활용해서 영화나 게임, 애니메이션을 제작할 수 있는지 정보를 공유하는 장이 시그래프이기 때문에 참여했다.
3차원으로 아이디어를 빨리 낼 수 있는 방법들을 소개함으로서 게임이나 영화, 애니메이션 분야의 전문가들이 초기 단계에서 우리 제품을 쓸 수 있다는 것을 홍보하고 싶기도 했다.
Q. 김용관 대표는 시그래프하고 인연이 깊은 걸로 알고 있다. 관련된 이야기를 좀 들려주신다면?
A. 창업을 하기 전에는 카이스트에서 3D 스케칭 연구를 했다. 사실 그 당시 시그래프에 한 번도 논문을 내보지는 못 했었다. 항상 내고 나면 피드백을 많이 받곤 했었는데, 3D 스케칭 연구 내용을 사람들에게 잘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이 논문 발표뿐만이 아니라, 창업을 통해 산업계에서 전달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해준 곳이 시그래프 행사였다.
시그래프를 2019년에 처음 알았을 때, 한쪽에서는 논문을 발표하고 있고, 한쪽에서는 그 기술을 활용한 영화나 게임 제작 사례를 설명하고 있고, 이런 내용들을 주고받으며 발전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기술을 연구하는 것을 넘어 그 기술을 어떤 제품으로 만들어 커뮤니티에 많이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다.
Q. 이번에 여러 직원들과 함께 온 것으로 알고 있다. 시그래프에 몇 명이 온 것인지?
A. 실제로 부스를 같이 운영하는 출장팀은 5명이고, 동향 파악 및 기술 수집을 위한 견학팀이 4명이다. 그래서 총 9명이 왔다.
Q. 벌써 5일째로 컨퍼런스 마지막 날이 됐는데 좋은 소득이 있었는지?
A. 콘텐츠는 온라인으로도 다 경험할 수 있지만, 이 현장에 모여 있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사실 오지 않으면 절대 할 수 없는 일이다.
프로그램이나 행사에 드러나 있지는 않지만, 실제로 유명 게임사들이나 애니메이션 제작사들에서 아티스트, 테크니컬 아니스트로 일하시는 분들이 현장에 있고 반응도 많이 주고 있다. 이런 현장감을 얻는 게 앞으로도 커뮤니티를 이끌어가거나 제품을 보급하고 안내를 하는 측면에 있어서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Q. 네트워크 측면에서 많이 도움이 됐을 것 같다. 현장에서 페더를 직접 사용해본 분들은 어떤 장단점을 얘기해주셨는가?
A. 일단 전문가 집단이 맞다고 느낀 것이, 다른 곳에 항상 가면 스케치로 표현되는 형상이 너무 정교하지 못하다거나 결과물에 사용할 수 없다는 피드백이 많았는데, 오히려 이 장소에서는 자신의 프로세스의 초반 영역을 가속화할 수 있겠다, 초기 스케치 과정에 큰 도움이 된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또 현재 쓰고 있는 소프트웨어와의 호환성 등을 많이 요구하셨다. 지금 저희 제품으로 그려지는 그림이 정적인 스케치인데, 이것을 움직이거나 카메라 구도를 동원해서 짤막한 스토리보딩이 가능할지에 대한 요구도 있었다.
Q. 그래서 앞으로 이런 기능들을 추가하실 예정인지?
A. 네. 저는 3차원 공간에서의 어떤 형상도 중요하지만, 움직임도 스케치할 수 있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저희 페더라는 제품에서는 움직임까지도 구현해서 활용할 수 있게 할 생각이다.
Q. 이번에 기업 부스에 방문한 분들 중에 게임 업계 사람들도 있었을 것 같다. 게임 일러스트레이터들이 페더를 사용한다면 어떤 이점이 있을까?
A. 3차원으로 초반부터 많이 다뤄져야 하는 게 결국 캐릭터 디자인이기 때문에, 캐릭터 디자인에 대한 초안을 잡아나가는 측면에서 저희 페더의 활용성을 발견했고, 소규모 개발사에서는 에셋이나 스토리보딩까지도 저희 제품을 통해서 하고 싶다는 얘기도 있었다.
Q. 페더에 대해 "지금이 완성형이 아니다"라는 언급을 종종 해오셨던 걸로 알고 있다. 앞으로의 로드맵 내지는 발전 방향성이 궁금하다.
A. 저희가 진입 장벽을 낮추기 위해서 그동안 많이 노력해왔지만, 이후로 다른 소프트웨어들과의 연계가 끊어진다면 사실 그 효과는 또 반감되는 것이 현실이라서, 이제부터는 다른 소프트웨어들과의 호환성을 많이 늘려서 영향력을 확장하는 것을 생각 중이다.
이를 위한 핵심적인 기능들이 파일을 입력, 출력하는 포맷을 다양화하는 것인데, 최근에는 OpenUSD 규격을 많은 기업들이 채택하고 파이프라인을 일원화하려고 하고 있는 중이기 때문에, 저희도 USD 파일 폼도 지원해서 최대한 많은 생태계에 편입되는 것이 목표다.
Q. 쉬운 작업이 아닐 것 같은데, 어떤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예상하는지?
A. 일단 파일 포맷의 규격에 맞게 지원은 하겠지만, 실제로 각각의 스튜디오에서 쓰는 파라미터들이나 파이프라인의 디테일을 알기가 어렵다. 많이 협력하면서 수요를 파악해야 되는 게 제일 어려울 것 같다.
규격 자체로는 glTF로도 성공적으로 지원을 해서, USD도 기술적으로는 큰 어려움이 없을 것 같은데, 각 기업들이나 산업군에서 요구하는 사양이 어떻게 될지는 전문 분야의 지식을 동원하고 협력해서 알아가야 할 것 같다.
Q. 웹 앱으로도 사용할 수 있어서, 기자 본인도 페더로 그림을 그려봤다. 적응만 하면 여러 그림을 쉽게 그릴 수 있었지만, 처음에는 조금 낯설기도 했다.
A. 저희 유튜브 채널을 통해서 페더를 배울 수 있는 방법들을 많이 소개하고 있다. 저희가 지향하는 것은 처음에는 습득하는 데에 시간이 조금 걸리더라도, 한 번 습득하면 잊어버릴 수 없게 직관적으로 인터페이스를 만드는 게 목표라서 앞으로도 많은 지원을 할 생각이다.
Q. 영국의 그래비티 스케치나 미국의 멘탈 캔버스 같은 제품들을 언급했던 적이 있다. 페더하고는 또 다른 장단점들이 있던데, 이런 경쟁 제품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고 계시는지?
A. 일단 3차원으로 창작할 수 있는 도구들을 같이 만들고 있다는 점에서는, 어떻게 보면 저변을 늘리는 데 함께 할 수 있어서 사실 좋은 경쟁자이면서도 동반자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래도 각자 포인트가 다른 부분은, 멘탈 캔버스는 기존의 2D 일러스트레이터들이 좀 더 입체감 있게 표현하는 것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고, 그래비티 스케치는 VR 기기라는 하드웨어적인 제약을 가지고 있는데, 저희는 익숙한 인터페이스만으로도 3차원 그림을 그릴 수 있게 최대한 대중적인 타겟군을 가지고 가고 있다.
Q. 현장에서 사용하던 분들도 많이 하셨던 질문이고, 저도 처음 헤맸던 구간이 구(sphere)를 어떻게 그리느냐 하는 것이었다. 구를 포함해 일부 도형을 그리는 아이콘을 UI에 추가할 생각이 있는지?
A. 당연히 있다. 사실 프리미티브(primitive) 세트를 무분별하게 많이 제공하게 되면, 그것만 가지고 창작을 하는 사람들도 생겨서, 정말 필수적인 기본 도형들을 선별하는 과정이 꽤 오래 걸렸다. 실제로 데이터를 함께 보면서 그 판단을 해야 하는 측면도 있어서, 언급된 '구'는 바로 입력하고 키우고 늘리는 방식을 지원할 생각이다.
Q. 회사를 설립하고 벌써 3년 이상의 시간이 지난 걸로 알고 있다. 지난 3년 동안 가장 어려웠던 점과 앞으로 넘어야 할 중요한 산이 있다면?
A. 저는 3D 스케칭의 기반 기술 연구를 해왔었고 혁신적인 인터랙션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것을 많은 사람들이 안정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상용 퀄리티의 제품으로 만드는 것이 가장 어려웠다. 저 혼자 쓰는 데는 지장이 없었지만, 전 세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썼을 때도 안정적이게 하는 것은 제 전문성의 영역을 벗어나는 일이기도 해서, 많은 팀원들과 같이 일해왔고 출시에 2년 가까운 시간이 소요됐다.
그렇게 작년 말에 출시된 제품이고, 앞으로 남아있는 제일 큰 과제는 기업으로서 이것을 성공적으로 수익화할 수 있느냐인 것 같다. 지금 기본 버전을 무료로 제공하고 있고, 앞으로도 평생 무료로 제공할 생각이지만, 더 전문화된 기능을 통해 유료 플랜도 제공할 생각이기에 이것을 성공적으로 이뤄내는 게 과제다. 그래야 기능들을 더 추가하고 저변도 넓힐 수 있을 테니까.
Q. “메타버스, VR, AR 등의 시장이 아직은 공급자가 3차원 정보를 소비, 유통하는 것에 집중되어 있다면, 장래에는 일반 대중들도 3차원 정보를 제작, 생산, 공유하는 기술이 핵심이 될 것”이라고 작년에 언급했었다. 2023년 하반기에도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A. 이 부분은 계속 유효하다. 컴퓨터를 이용해서 만들어낸 수많은 도구들의 발전사를 보면 당연한 수순이다. 뭔가를 창작하고 편집하고 만들어낼 수 있는 도구 같은 경우에는 점점 더 고도화되면서 대중들이 접근할 수 있게 만들어지게 되고, 결국에는 모두 생산자가 되는 과정을 거친다.
방송이나 영상 촬영, 비디오 편집이 대중의 영역으로 간 것처럼, 3차원 콘텐츠도 이제 점점 더 대중의 접근성이 높아질 것이라고 본다.
Q. 플랫폼으로 기능하려면 창작자와 창작물이 모두 한 곳에 모여야 가능한데, 그간 많은 피드백들이 있었을 것 같다. 몇 가지 언급을 해주신다면?
A. 현존하는 플랫폼 중에 3차원으로 만들어진 창작물을 공유를 쉽게 할 수 있는 플랫폼이 많지 않다. 거대한 SNS는 문자나 이미지, 영상을 기반으로 하고 있고, 3D 데이터는 없는데, 이런 기술을 가져가는 것이 플랫폼으로 나아가는 핵심이라고 본다. 아이디어를 얹고 유연함을 가져갈 수 있는 플랫폼이 필요하다는 말을 많이 듣고 있다.
Q. 내년 시그래프 행사에도 직원들과 함께 올 예정인지?
A. 충분히 잘 된다면 참석하고 싶고, 다음 콘셉트도 이번 전시 중에 아이디어가 생겼다. 지금은 어떻게 보면 저희가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야 하는 상황이지만, 바라건대 내년에는 저희가 알리러 나오는 게 아니라, 저희 제품을 쓰는 유저들을 만나러 오는 자리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동안 우리 제품을 어떻게 써왔고, 직접 만나서 경험을 나누기도 하는 자리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