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2년 12월 20일부터 올해 1월 9일까지 에이치투 인터랙티브는 <디스아너드>의 공동구매 이벤트를 실시했다. 당시 유저들의 눈길을 끈 것은 공동구매를 통해 한글패치를 제공한다는 것이었다.
<디스아너드>는 초능력을 가진 암살자가 주인공인 게임으로 유저의 선택에 따라 모든 적을 없앨 수도 있고 대화만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따라서 언어의 비중이 높은 만큼 한글화의 의미가 컸다. 덕분에 공동구매는 당초 목표였던 판매량 400장을 넘겨 추가 물량을 포함해 600장을 판매했다.
특히 이번 이벤트는 국내에서 점차 입지가 좁아져 가는 패키지 게임시장에서 유저가 능동적으로 직접 다른 유저에게 이벤트를 홍보하는 등 보기 드문 현상을 선보였다. 현재 국내의 콘솔 및 패키지 게임 시장의 정확한 사정도 궁금했다.
현장을 잘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듣고자 에이치투 인터렉티브의 이정환 라이선싱 팀장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눴다. /디스이즈게임 남혁우기자
■ 시간이 갈수록 줄어드는 콘솔·패키지게임 시장
현재 국내의 콘솔과 패키지 시장은 유명한 대작이나 인기 게임이 아니면 수익을 내기 어려울 정도로 작아졌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 유통사가 해외 퍼블리셔에게 무엇인가를 요청하기는 쉽지 않다. 속된 말로 그들에게 한국 시장은 보잘것없는 시장이기 때문이다.
해외 퍼블리셔들이 시장을 분석할 때 한국은 아시아에서도 가장 작은 시장 중 하나로 분류된다. 아이러니하게도 불법복제의 천국이라고 불리는 중국은 한국보다 큰 콘솔 게임시장으로 구분된다. 자연스럽게 한국 유저들을 위한 지원은 받지 못하거나 우선순위에서 밀리기 마련이다.
“확실히 콘솔게임 시장은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시장이 줄어드는 데는 많은 이슈가 있을 것 같은데요. 우선 사람들이 즐길 거리가 늘어났다는 점이 크게 작용한 것 같습니다. 최근 국내는 콘솔보다 온라인, 최근에는 모바일 게임이 강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아마도 자리를 잡고 장시간 플레이해야 하는 콘솔게임보다 지하철이나 버스 안 등에서 또는 길을 걸으며 간단히 즐길 수 있는 모바일 게임이 더 빠르고 바빠진 한국의 라이프 스타일에 어울려서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또 하나의 해결되지 않는 문제. 바로 불법다운로드는 여전한 걸림돌이다. 사회적으로 저작권법이 큰 죄가 아니라는 인식은 과거부터 지금까지 콘솔과 패키지게임 시장을 좀먹는 원인이다.
영화나 음악의 경우 굿 다운로더 등 활발한 캠페인과 VOD 서비스 등의 대안 마련으로 예전과 비교하면 불법다운로드가 상대적으로 많이 줄어들었다. 하지만 게임은 달라진 것이 없다. 여전히 주요 웹하드의 첫 페이지는 신작 게임들이 장식하고 있다.
“웹하드 업체를 상대로 조치를 하려고 해도 관련 정부부처에서 특별한 지원을 해 주지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나마 자체적으로 웹하드 사이트를 돌아다니며 해당 게임목록을 지워 달라고 요청을 하면 삭제를 해주긴 합니다. 하지만 일일이 웹하드 사이트를 돌아다녀야 하는 만큼 시간과 비용 소모되는 것에 비해 효과는 미미하죠.”
최근에 유저에게 환영받고 있는 스팀이나 아마존 등 디지털 서비스로의 전환도 패키지 시장의 설 자리를 점점 좁히는 이유 중 하나다. 같은 조건이라면 디지털 서비스가 편하고 가격도 저렴한 경우가 많다.
“글로벌 시장을 대상으로 타이틀의 가격을 대폭 낮춰서 판매하면 패키지를 판매하는 유통사는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차라리 지역 제한을 두고 한국 유통사에서 스팀 시디키를 판매하는 식이라면 괜찮겠지만, 스팀이 자체적으로 전 세계를 대상으로 운영을 하니 규모에서 상대가 안 될 수밖에 없죠.”
■ 경쟁 위한 차별화의 첫 번째는 ‘한글화’
가격이나 다른 부분에서는 경쟁력을 가질 수 없다. 결국 국내 유저들이 패키지를 구입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스팀 등과 확실한 차별화를 주는 것이 필요하다. 그중 첫 번째가 한글화다. 그동안 에이치투 인터랙티브도 다양한 이벤트를 실시했지만 반응이 좋았던 건 이번 한글화 패치 배포가 처음이었다.
“저희도 유저가 가장 원하는 것이 한글화라는 것은 충분히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국내 유통사는 개발사의 지원도 충분히 받을 수 없어서 한글화를 진행하기가 여러모로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또한 한글화를 할 타이틀 선정도 중요합니다.”
에이치투 인터렉티브가 <디스아너드>의 한글화를 결정한 이유는 해외에서 상을 받기도 하는 등 게임성이 인정을 받았고, 국내에서도 인기를 모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개발사에 요청하는 것이 아닌 유저 한글화를 추진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디스아너드> 공동구매 이벤트 기준을 400장으로 정한 건 이미 판매가 진행된 상황이기 때문이었다. 이미 국내에서의 열기가 한번 지나간 만큼 한글패치를 제공한다고 해도 판매가 많이 되지 않을 수 있다는 예상도 많았다.
그래서 에이치투 인터랙티브는 공동구매 당시 한글패치 제공한 것 외에도 구매 인원이 200명과 400명을 넘을 때마다 각각 15%와 25%의 구간별 할인 이벤트를 실시하고, 선착순 250명에게는 추가 다운로드 콘텐츠(DLC)를 제공했다.
“재미있었던 것이 유저들도 공동구매에 대해 많이 고민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판매수가 200개까지 채워지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는데, 200개를 넘어서자 400개까지는 순식간이었죠. 또 할인 구간인 400개 앞에서 주춤하다가 400개를 넘으니 또 600개는 순식간에 넘었습니다.”
공동구매와 함께 실시한 구간별 할인 이벤트.
에이치투 인터랙티브는 공동구매를 신청한 모든 유저에게 사은품을 제공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개발사에 추가적으로 지원받을 수 있는 부분이 없었기에 자체적으로 유저에게 제공할 DLC를 구매했다.
“유저들 전체에게 돌아갈 수는 없지만 그래도 한정된 재원과 자원 속에서라도 유저에게 최대한 주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구입한 DLC는 유저에게 선착순으로 제공했습니다.”
이렇듯 에이치투 인터랙티브는 패키지 판매를 활성화하고 유저에게 합당하다고 생각할 수 있고, 유저들이 스스로 뭉쳐서 패키지 구입을 활성화 시킬 수 있는 이벤트를 연구하고 실시할 예정이다.
“구간별 리워드 이벤트의 경우 일정 수준 이상으로 판매되면 그 후부터는 게임이 팔릴수록 오히려 손해가 발생합니다. 그래도 우리가 이벤트를 진행한 것에 호응해준 것만 해도 감사하고 성공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공동구매 유저를 위해 에이치투 인터랙티브가 직접 구입해 제공한 DLC.
하지만 일부 유저들은 스팀을 통해 정식으로 구매했는데 왜 한글패치 혜택을 못 받느냐며 문의하고 있다. 한마디로 같은 정품을 구입했지만 ‘국내 정식발매’ 제품을 구입한 유저들에게만 혜택을 주는 것은 부당하다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여기에는 이유가 있었다. <디스아너드>의 한글화는 한글 패치팀이 주가되고, 에이치투 인터렉티브는 그들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작업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배포 방법은 패치팀의 의견에 따르는 것이 옳다고 판단했다.
“한글 패치팀과 대화해 본 결과, 불법복제를 막고 국내 패키지 시장의 활성화를 위해서도 정식 발매 패키지를 구매한 유저에게만 제공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받았고 이러한 방식을 적용했습니다. 물론 공동구매 이전에 정식발매 제품을 구입한 유저들에게는 패치를 지원해야죠.”
한글 패치를 받기 위한 <디스아너드> 정품 패키지 인증 방법. 한글패치는 1월 안에 공개될 예정이다.
■ “간디의 유혈사태 같은 마케팅을 하고 싶다”
한국 시장은 게임이 출시된 후 한 달이 지나면 매출이 급감하고 세 달 지나면 거의 게임이 잊혀지는 상황이다.
“한 달 사이에 승패가 좌우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보더랜드 2>는 초반에 판매량이 치솟다가 한 달이 되자 매출이 확 줄었습니다. <디스아너드>도 초반에 판매되다가 한 번 주춤했는데, 한글패치가 나오면서 판매량이 다시 늘었죠.”
하지만 모든 게임이 출시 한 달 만에 매출이 줄어드는 건 아니다. <문명 5>는 2년이 지났음에도 꾸준히 판매되고 있다. 말 그대로 효자 타이틀이다. “문명하셨습니다”와 “유혈사태는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는 말로 대표되는 <문명 5>는 출시와 함께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워낙 유명한 타이틀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도 판매량은 꾸준했다. 여기에 <문명>은 3대 마약 게임 중 하나라는 독특한 타이틀과 합쳐져 ‘얼마나 재미있길래 그러지?’라는 유저들의 반응이 생기면서 여전히 지속적인 판매가 이어지고 있다.
<문명 5>의 인기에 큰 역할을 담당했던 간디.
“앞으로 출시할 타이틀도 <문명 5> 같은 마케팅을 해보고 싶습니다. 같은 개발사에서 제작한 <엑스컴: 에너미 언노운>(이하 엑스컴)도 비슷한 방식을 시도해 보려 했지만 <문명 5>처럼 하기는 어려웠습니다. 워낙 오랜만에 나온데다가 마니악하고 게임을 대표할 만한 간디 같은 인물이 없어서 알리기가 쉽지 않더군요.”
<엑스컴>을 판매하며 이벤트로 제공한 아트북도 <엑스컴> 시리즈를 모르는 유저에게 설명하기 위한 것이었다. 또한 게임 속에 추가되는 한국적인 요소도 유저들에게 구매를 어필하는 부분 중 하나인 만큼 이를 위한 노력도 지속적해서 이어가고 있다. <엑스컴>에서 등장하는 한국인 캐릭터도 그러한 노력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항상 개발사에게 끊임없이 한국을 어필합니다. <GTA 4>에 코리아타운이 나오면 왠지 기분이 좋지 않나요? 그래서 주인공 의상으로 한복을 추가하거나 다른 한국적인 요소나 콘텐츠를 요청합니다. 하지만 그중 얼마나 게임에 구현될지는 게임이 나와 봐야 알 수 있죠.”(웃음)
한국인 병사가 등장했던 <엑스컴: 에너미 언너운>.
이외에도 아마존이나 게임스톱 등 쇼핑몰마다 제공하는 DLC가 달라지는 방식을 한국에서도 도입하기 위해 옥션이나 11번가 등 주요 쇼핑몰과도 협의 중이다.
“해외의 경우처럼 쇼핑몰마다 다른 혜택을 제공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마켓별로 특색에 맞춰 서비스할 수 있습니다. 그만큼 마켓이 더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고 홍보의 효율도 높아질 수 있겠죠.”
과거에는 굳이 해외 대형 타이틀이 아닌, 국산 패키지게임도 5,000 장 이상 팔리는 규모의 시장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5,000 장을 판매하는 것도 힘든 목표가 됐다. 하지만 아직도 가능성은 남아 있다.
“<문명 5>를 보면 어떻게 이슈가 되느냐에 따라 충분히 국내시장에도 패키지게임의 영역을 가져갈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게임을 재미있는 이벤트와 함께 선보이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혹시 좋은 홍보 전략이 있다면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