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지옥 모드에 버금가는 던전도 일주일을 못 버티고, 눈시울이 붉어지는 스토리도 스쳐가는 텍스트에 불과하다. 콘텐츠. 한국 온라인게임사에게 부여된 궁극의 과제다. 아무리 개발자가 수개월을 고민해도 코어 유저의 손에 걸리면 일주일도 우습다. 때문에 이제는 콘텐츠 소모를 막기 위해 PvP같은 유저가 만들어가는 콘텐츠는 기본이다.
<던전스트라이커>는 유저에게 직업과 직업의 조합이라는 다양한 선택지로 이를 풀려는 게임이다. 하지만 개발진의 야심 찬 계획은 전직·계승 시스템이 처음 등장한 2차 CBT부터 삐걱였다. 대부분의 유저는 게임의 '전직'을 이해하지 못했다. 패키지게임에서부터 지금까지 유저가 알아왔던 전직은 더 좋은 직업으로의 '승급'이었다. 전혀 다른 직업을 새로 육성하는 <던전스트라이커>의 전직(轉職)과는 다른 개념이다.
주력 콘텐츠의 첫 단추가 잘못 꿰인 만큼, 3차 CBT는 유저들이 가진 '전직'에 대한 인식 자체를 바꾼다는 만만치 않은 과제를 안게 되었다. 개발진은 어떻게 수십 년간 쌓인 인식을 바꾸려는 것일까? 패키지게임 시절부터 쌓인 '전직'에 대한 패러다임을 바꾸려는 <던전스트라이커> 개발진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디스이즈게임 김승현 기자
아이덴티티게임즈의 김태연 기획팀장(오른쪽)과 장중선 글로벌사업실장.
■ 전직은 업그레이드가 아니라 '체인지'
<던전스트라이커>의 전직은 일반적인 게임과 다른 의미를 가진다. 기존의 전직은 더 강한, 더 좋은 직업으로의 '승급'의 의미가 강했다. 전직 자체가 캐릭터 업그레이드와 동의어였다.
하지만 <던전스트라이커>의 전직은 그 이름처럼 그 이름처럼 다른 직업으로의 변경이다. 이전 직업의 기술은 몇개 사용하지도 못하고, 심할 경우 공격방식이나 주력 능력치도 달라진다. 말 그대로 업그레이드가 아니라 체인지인 셈이다. 게임의 이런 특이성 때문에 지난 2차 CBT에선 이를 이해하지 못한 유저도 많았다. 그간 알아왔던 전직과 달랐기 때문이다.
"직업선택(전직)과 계승이 처음 등장한 2차 CBT에선 이를 이해하지 못해 어리둥절해 하는 유저도 많았습니다. 패키지 게임 시절부터 쌓여온 인식을 정면으로 부정한 셈인데, 이에 대한 안내가 너무 부족했죠."
김태연 기획팀장은 2차 CBT 당시 유저에게 받은 피드백을 말하며 겸연쩍게 웃었다. 그 동안 '전직 = 강함'이라고 알아왔던 유저들에게 '새로운 직업을 다시 육성'해야 하는 <던전스트라이커>의 전직을 알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개발진 또한 게임의 주력 콘텐츠를 제대로 각인시키지 못해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때문에 3차 CBT의 가장 큰 목적은 많은 이들이 알고 있던 '전직'에 대한 개념을 <던전스트라이커>만의 것으로 바꾸는 것이다. 게임의 전직이 업그레이드 아니라 '체인지'라는 것만 전달돼도 CBT의 목적을 반 이상 달성한 셈이다.
아이덴티티게임즈는 이를 위해 전직이라는 용어부터 '직업선택'으로 바꿨다. 김태연 팀장도 인터뷰 내내 "전직이 아니라 '직업선택'이다"라고 거듭 강조했다. 단순히 용어만 바뀐 것이 아니다. 게임 안에는 <던전스트라이커>의 직업선택을 알려주기 위한 안내가 곳곳에 추가됐다. 또한 유저들이 직업선택 콘텐츠를 빨리·자주 접할 수 있게 성장구간도 조정했다.
"30레벨이었던 직업선택 가능 레벨을 20레벨로 앞당겼습니다. 개편된 퀘스트 동선까지 고려하면 굉장히 이른 시기에 직업선택 콘텐츠를 즐길 수 있는 셈이죠. 아무리 텍스트로 강조하는 것보다 직접 체험하게 하는 것이 훨씬 났죠. 3차 CBT에선 더 빨리, 더 많이 직업변경 콘텐츠를 즐길 수 있을 것입니다."
계열을 넘나드는 자유로운 직업변경이 게임의 주력 콘텐츠지만, 그렇다고 전직 직후 캐릭터가 약해지는 것은 유저가 선뜻 받아들이기 힘든 요소다. 이를 막기 위해 이전 직업의 스킬을 사용할 수 있는 계승 시스템이 존재하지만, 지난 테스트에선 지나친 제약과 캐릭터 주력 능력치가 달라지는 문제로 이를 온전히 사용할 수 없었다.
3차 CBT는 이런 단점을 고치기 위해 캐릭터 능력치를 다시 조정했다. 먼저 공격관련 능력치를 통합돼, 직업 간 주력 능력치의 차이가 약화됐다. 워리어(전사)가 메이지(마법사)가 되더라도 머리가 나빠(?) 마법이 약해지는 일은 없는 셈이다.
"개인적으로 성직계열을 좋아해 '클레릭'과 '하이 프리스트'를 육성했습니다. 전자는 단단한 근접클래스인 반면, 후자는 마법 기반의 원거리클래스죠. 이런 플레이 방식의 변화 그 자체가 <던전스트라이커>의 가장 큰 매력이 아닐까 합니다. 2차 테스트에선 주력 능력치가 달라 적응하지 못했던 유저도 있었는데, 3차 CBT에선 이 부분을 집중 수정했습니다. 이젠 마음 놓고 <던전스트라이커>만의 직업선택 콘텐츠를 즐길 수 있을 것입니다."
성직자 '장인'인 장중선 글로벌사업실장의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수십 년간 쌓인 전직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것이 어렵진 않을까? 두 사람의 표정은 자신만만했다. <던전스트라이커>의 직업변경을 잘 이해하고 퍼트려 주었던 일부 유저 덕분이다. 장중선 실장은 2차 CBT의 예를 들며 입을 열었다
"2차 테스트에서도 게임의 직업선택 개념을 혼란스러워 한 유저만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어떤 유저들은 이를 즐기고, 다른 유저에게도 적극적으로 자신의 노하우를 공유했죠. 게임의 기본기가 탄탄한 만큼, 저희가 안내만 잘한다면 유저 또한 <던전스트라이커>만의 직업선택 콘텐츠를 즐길 수 있을 것입니다."
3차 CBT에서 추가되는 테마 4의 콘셉트 아트
■ "액션에 불필요한 것은 모두 삭제했다"
3월 27일 3차 CBT, 그리고 상반기 OBT. 아이덴티티게임즈는 이번 '최종점검'에서 다시 한번 방망이 깎기를 선택했다. 게임 특유의 다양한 스킬은 통·폐합되었고, 한 차례 개편했던 던전도 다시 한번 잔가지를 쳐냈다. 3차 CBT는 그간 선보였던 콘텐츠의 압축 버전인 셈이다.
먼저 빠른 공격속도와 함께 게임의 액션을 책임지는 한 축인 '스킬'이 대거 통·폐합되었다. 특성이 겹치거나 포지션이 애매모호한 스킬은 없애고, 꼭 필요한 스킬만 살렸다. 스킬이 대폭 개편된 만큼 이번 테스트엔 기존에 공개됐던 9개 직업만으로 액션을 재점검 받는다.
"초고속 액션에 어울리는 소수정예의 스킬이 이번 개편의 모토입니다. 대신 몬스터나 캐릭터가 처한 상황에 따라 스킬 효과가 달라지거나, 추가조작으로 다른 액션을 취하는 등 스킬의 깊이가 더욱 깊어졌습니다. 게임패드의 적은 키로도 게임의 액션을 모두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입니다." 김태연 팀장은 웃으며 덧붙였다.
스킬 통·폐합과 함께, 기존 스킬도 특성에 맞게 9개 계열로 분류되었다. 이미지는 파괴와 절단 계열에 대한 설명과 사용가능 직업.
전투와 스토리의 중심이 되는 필드와 스테이지도 수술에 들어갔다. 재미없는 구간은 삭제했고 길었던 퀘스트 동선도 간결하게 조정됐다. 기존에는 캐릭터가 한꺼번에 많은 퀘스트를 받고 맵 전역을 돌아다녀야 했다면, 3차 CBT에선 퀘스트 중간중간 이벤트를 추가해 유저가 느끼는 지루함을 최소화했다.
한편, OBT에 선보일 콘텐츠도 이번 테스트에서 미리 유저들에게 점검 받는다. 설원을 배경으로 한 테마 4가 새롭게 공개되며, 2차 CBT에서 최초로 공개됐던 3종의 순환 콘텐츠도 새로운 콘셉트로 유저들을 찾는다.
테마 4 '프레덴방위진지'의 모습.
먼저 최상위 콘텐츠인 시공던전(=검은 시간의 탑)은 기존 타임어택 방식에서 지스타에서 호평 받은 웨이브 방식으로 변화했고, 웨이브가 매인 콘셉트였던 차원던전은 웨이브 대신 다수의 중형보스를 사냥하는 모드를 추가하는 방식으로 차별화를 꾀했다. 방대한 랜덤 맵을 내세웠던 악몽던전(=카오스 던전)도 맵의 너비를 줄이고 새로운 환경을 추가해 유저가 느끼는 피로를 줄였다
스토리와 캐릭터 개성 강화를 위한 '인 게임 영상'도 추가된다. 중요 퀘스트는 물론, 신규 테마(지역) 진입이나 보스 대면 시에도 적절한 영상을 추가해 캐릭터의 개성이나 스토리의 분위기를 한껏 살릴 계획이다. 유저의 분신인 주인공 또한 각종 영상과 연출 등으로 더욱 부각된다.
"OBT 전 최종점검인 만큼, 신규 콘텐츠의 검증보단 기존의 콘텐츠를 더욱 갈고 닦아 유저들에게 인정받는 것이 목표입니다. 기존에 선보였던 모든 콘텐츠를 완전히 새로 만든다는 느낌으로 분해하고 재조립했습니다. 3차 CBT에도 많은 관심과 의견 부탁 드립니다." 3차 CBT를 2주 앞둔 김 팀장의 부탁이다.
신규 차원던전 '코볼트의 보물창고'의 모습.
■ "라이벌 게임의 선전이 반갑다"
게임을 선보일 때 마다 호평 받았던 <던전스트라이커>지만 앞으로 나아갈 길이 만만하진 않다. 2월 OBT를 시작한 <마계촌 온라인>은 첫 대규모 업데이트를 통해 다시금 비상을 준비하고 있고, 같은 식구인 <크리티카>는 PC방 순위 9위에 안착했다. 하나같이 <던전스트라이커>와 같은 액션 MORPG다. 하지만 장중선 실장의 얼굴에서 걱정은 찾아볼 수 없었다.
"시장이 죽으면 신작이 나와도 시선을 모으기 힘듭니다. 상반기 OBT를 예정하고 있는 입장에선 오히려 라이벌 게임의 선전이 반갑습니다. 오히려 이 열기가 식기 전에 빨리 시장으로 나가고 싶을 따름입니다."
장 실장은 오히려 <던전스트라이커>는 '직업선택'과 '핵 앤 슬래시'라는 확실한 특징이 있기에 자신 있다는 입장이다. 게임을 하나만 즐기는 유저가 없는 만큼, <던전스트라이커>만의 매력으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것이 아이덴티티게임즈의 목표다.
게임을 직접 개발하는 입장에선 시장의 상황보다는 회사 안팎으로 받고 있는 기대감이 더 부담스럽다. 처녀작(드래곤네스트)의 기대 이상으로 성공한 덕에 차기작에 대한 기대와 부담도 클 수 밖에 없다. 김태연 팀장은 회사의 전폭적인 지원이 두렵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아이덴티티게임즈의 모토가 '잘 만든 게임은 인정받는다'입니다. 그렇기 때문인지 외부의 상황보다는 회사의 전폭적인 지원이 더 부담스럽네요. 우리가 윤택한 개발환경에서 일하고 있는 것이, 우리가 잘해서가 아님을 개발진 모두 잘 알고 있습니다. 형보다 나은 아우가 되기 위해 항상 노력하고 있습니다."
3차 CBT에서 복층 구조로 개편된 악몽던전 '얼어붙은 폐광'
<던전스트라이커>가 더 나은 아우가 되기 위해 개발진이 유저들에게 바라는 것은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재기 발랄한 플레이다. 최종점검이기에 예상치 못한 문제가 더 반갑다. 매도 먼저 맞는 것이 났다는 것이다. 김 팀장은 테스터들의 적극적은 참여를 부탁했다.
"특이한(?) 유저는 많을수록 좋죠. 정보가 많이 필요합니다. 테스트를 할 때마다 이번엔 어떤 유저가 어떤 직업조합으로 우리를 놀라게 할지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던전스트라이커>의 직업선택(전직)이 '승급'이 아니라 '변경'이라는 것도 널리 알려주면 좋고요."
아이덴티티게임즈가 개발하고 한게임이 서비스하는 <던전스트라이커> 3월 27일 마지막 CBT를 실시한 후 상반기 내 OBT를 시작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