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게임의 역사를 이야기하는 데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인 횡스크롤 슈팅 게임 <그날이오면>. 지난 90년대 한국 PC 패키지 게임 시장을 풍미했던 이 전설적인 작품이 근 20여 년 만에 부활을 예고하고 있다. 미리내소프트의 대표였던 정재성 대표가 지난 2012년 ‘미리내게임즈’를 설립하고 새롭게 모바일 플랫폼으로 <그날이오면: 드래곤 포스 2>(이하 그날이오면)를 선보일 예정이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0세대 개발자’라 칭하는 정재성 대표는, 다시 게임 개발에 도전하게 된 것에 대해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고 설명한다. 과거 한국 게임 시장을 처음 개척했을 때와 같은 ‘변화의 흐름’을 모바일 게임 시장에서 재현하고 싶다는 것이다. 디스이즈게임은 정재성 대표가 지금까지 무슨 고민을 했고 어떤 포부를 가지고 있는지 이야기를 들어봤다. /디스이즈게임 권정훈 기자
<그날이오면>, 3D 표현을 강화한 모바일 게임으로 부활한다
TIG> <그날이오면>을 모바일로 출시하는 이유가 궁금하다.
<그날이오면>은 모바일 게임 시대인 지금 봐도 훌륭한 IP(지적재산권, Intellectual property)라고 생각한다. 물론 다른 좋은 IP도 많지만, 아직까지 한국 게임 시장에는 이 게임을 기억하는 유저들이 많이 있다. 물론 당시 게임을 즐겼던 어린 유저들은 이제 30대 후반이나 40대 초반이 되었을 것인데, 사실 모바일 플랫폼의 유저층을 생각해보면 해당 유저들이야 말로 주요 결제고객이기도 하다. (웃음)
그리고 <그날이오면>은 특유의 게임성을 보면 모바일 게임 플랫폼에 정말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바로 <그날이오면>을 부활시키기로 한 계기라고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TIG> 다른 모바일 슈팅 게임들과 비교헀을 때 <그날이오면>만의 차별화 포인트가 있다면?
<그날이오면>은 과거 PC 패키지 게임 때도 그랬지만, 오락실에서 즐기는 슈팅 게임의 맛을 살리는 것에 가장 집중을 한 게임이다. 그런 만큼 모바일 버전 역시 오락실에서 즐기는 슈팅 게임의 느낌을 잘 살리고 있다고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그래픽은 2D가 아닌 3D이고, 게임의 형식도 일부 바뀐 점들이 있지만 과거 오락실에서 아케이드 슈팅 게임을 즐겨본 유저라면 정말 재미있게 즐길 수 있을 것이다.
모바일 3D 슈팅으로 부활한 <그날이오면: 드래곤 포스 2>.
TIG> 미리내게임즈는 지난 지스타 2013에서 부스를 냈다. 혹시 다른 모바일 프로젝트도 있나?
지스타에서는 <그날이 오면>과 완전 신작 IP의 온라인-모바일 연동 게임인 <NX>를 공개했다. 아마 내년 상반기까지는 이 두 개의 타이틀에 개발 역량을 집중할 것 같다.
하지만 그 이후로는 과거 미리내소프트가 가지고 있었던 IP 중에서 신작을 개발할 구상을 하고 있다. 아마도 글로벌 서비스를 노려볼만한 IP를 우선적으로 골라 게임을 개발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실제로 <망국전기>나 <고룡전기 퍼시벌> 등은 한국보다 외국에서 더 잘 팔렸던 작품들이었다. 이런 게임을 모바일 환경에 맞춰 선보인다면 굉장히 재미있지 않겠나 하고 생각은 하고 있다.
미리내게임즈 정재성 대표
0세대 개발자, 또 하나의 흐름을 만들고 싶다
TIG> ‘미리내’라는 이름은 참 오랜만이다. 어떻게 다시 돌아오게 되었나?
미리내소프트가 문을 닫은 이후 미국에서 약 7년 동안 다양한 일을 진행하고 있었다. 대학교수도 했고, 유명한 게임회사의 이사직도 맡았었다.
그러다가 한국에 약 7년 만에 돌아오게 되었는데, 마찬가지로 국내 0세대 개발자라고 할 수 있는 크레이지피쉬의 허진호 대표에게 붙잡혔다.(웃음) (허 대표는 과거 아이네트에서 현 XL게임즈 송재경 대표등과 함께 <리니지>를 만들었던 인물이다) 허 대표가 과거 패키지 PC게임 중심의 시장에 온라인게임이라는 변화를 만들었던 것처럼, 모바일 게임 시장에서도 새로운 변화를 일으켜보자고 설득을 해 결국 넘어가 버린 것이다.
다시 게임 시장에 복귀하기로 한 이후에는 일사천리였다. 이후 미리내게임즈를 설립하고 과거 미리내소프트가 가지고 있던 IP를 다시 확보해 <그날이오면> 개발도 시작했다.
TIG>1세대, 아니 0세대 개발자를 자처하고 있다.
87년에 대학교 다니면서 게임 개발을 시작했으니 벌써 25년도 더 전의 이야기다. 당시에는 게임을 개발하는 사람의 숫자가 한 손으로 꼽을 수 있을 만큼 적었고, 그나마 MSX로 개발했기에 유명하지도 않았고, 국내 출시도 거의 이루어지지 못했다. 이후 92년~93년도부터 PC 게임이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하면서, 이 때의 개발자들을 보통 1세대 개발자라 칭하는데. 그런 기준이면 나는 아마 0세대 개발자일 것이다. (웃음)
0세대는 정말 목숨을 걸고 게임을 개발했다. 그때는 게임을 만드는 것도 어려웠지만, 만들더라도 거의 국내보다는 일본에 출시할 수 밖에 없었다. <그날이오면> 시리즈도 3편 이전에는 국내에 출시하지 않았다. 또 당시는 PC 게임이 드물고 오락실 게임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게임 자체에 관한 법률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였다. 그래서 보건사회부(현재 보건복지부)의 유기장법(주1)을 적용받았다.
(주1) 당시 유기장법은 유기장업법과 공중위생법으로 나눠져 있었다. 법률 내용은 오락실 영업과 시설, 그리고 시설 내 국민 위생에 대한 것이다. 관할 부서가 국민 보건 위생에 저해되는 사항이 있다고 판단한 경우 벌금, 영업정지, 징역 등 처벌을 내릴 수 있었다.
소관 부서가 보건복지부다 보니 국민의 보건과 조금이라도 연관이 되면 바로 보건법을 적용할 수 있었다. 만약 게임을 만들었는데 그 게임을 하다가 한 명이라도 쓰러진다면, 게임을 개발한 회사 대표이사는 바로 구속되고 징역형에 처해질 수 있었다. 누가 게임 만들다가 감옥에 가고 싶겠는가. 정말 목숨을 건 각오 없이는 게임 만들기 어려웠다. 그래도 우리가 당시에 많이 노력했기 때문에 게임 산업이 지금 이 수준까지 성장한 것은 아닌가 하는, 일종의 자부심 같은 것은 조금 가지고 있다.
TIG> 당시와 비교하면 지금은 굉장히 개발 환경이 좋아졌다.
물론 그렇다. 하지만 솔직히 답답한 마음도 있다. 현재 한국 게임 시장은 굉장히 성장했고, 세계 5위 안에 들 정도로 회사들이 성장을 했다. 하지만 정작 개발자들은 과거 우리가 초기에 게임을 개발했던 시절과 비교해도 그닥 많이 돈을 번다고 하기가 힘들다. 개발자들에 대한 대우는 시장이 성장한 만큼 성장하지 못했다고 할까?
그래서 우리는 개발자가 돈을 버는 시스템을 만들고 싶어서, ‘매출의 5%’를 개발자들에게 지급하기로 했다. 매출은 속일 수도 없고 매출이 늘어날수록 개발자 본인의 몫도 늘어난다. 혹시 프로젝트가 잘 되지 않더라도 매출이 발생한 이상 몫이 0가 되지는 않는다. 그러다 보니 개발자 입장에서는 훨씬 책임감도 생기고 동기 부여가 된다.
이 시스템이 잘 돌아가면 따라오는 회사도 있을 것이고, 그러다 보니 게임 업계 전체의 흐름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변화를 한국 게임 시장에서 주고 싶었다.
TIG> 미국의 게임 문화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여러 차이가 있겠지만, 꼭 배웠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이 두 가지 있다. 바로 협의하는 문화와 창조하는 사람이 대우 받는 시스템이다.
우리나라에서는 1개월이면 완성될 수도 있는 게임이 1년을 끌기도 한다. 개발은 90%가 진척된 단계인데 마지막 의사 결정이 안 되는 것이다. 서로 자기 생각만 주장하면 발전이 없다. 많이 협의하고 도움이 되는 의견만 골라낼 수 있어야 한다. 말로만 하는 협의보다 객관적인 자료들을 문서화하면 굳이 싸우지 않고도 의견차를 좁힐 수 있는 경우가 많다.
미국에서는 토론 중에 원수처럼 싸우다가도 끝나고 나면 접합점을 찾고 넘어간다. 개발자 개인의 고집보다는 프로젝트의 성공이 더 중요하고, 그래야 본인에게 돌아오는 몫도 많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어느 쪽이 본인에게 이익인지는 자명하지 않나.
이런 문화는 창조하는 사람이 대우받기 때문에 만들어질 수 있다. 앞서 말했듯이 프로젝트가 성공하면 당장 본인에게 돌아오는 몫도 많아지므로 성공을 위해 갖은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미국은 우리나라보다 근무 환경도 좋고 다들 칼퇴근을 한다고 생각하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그들은 맡은 프로젝트는 시간 내에 어떻게든 끝내려고 하며, 스스로 새벽 2시가 될 때까지 일한다. 물론 프로젝트가 끝나면 본인에게 휴식 시간과 금전적 보상이 충분히 돌아온다는 것을 알아서다. 계속 쥐어짜기만 하면 능력이 있는 사람도 제대로 일할 수 없다. 하나가 끝나면 그만큼 재충전할 시간을 준다.
미국이 무조건 옳다고도 정답이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배워두면 충분히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할 것이라고 본다.
TIG>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나는 여전히 게임에 대한 애정이 엄청나다. 돈을 많이 버는 것보다도 한국의 게임 회사들이 잘 되고 발전하기를 바란다. 그래서 미래 준비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 너무 미래만 보면 당장 먹고 살기 어려울 수도 있어서 게임을 내고 있긴 하지만, 어찌되었든 미래 준비에 많이 신경쓰고 있다. (웃음)
<그날이오면>을 통해 다시 한국 게임 시장에 도전을 하게 된 만큼 앞으로 미리내게임즈는 다양한 게임들을 선보일 것일 것이다. 그리고 그 게임들은 미리내게임즈를 이끄는 개발자들이 모두 의지를 가지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통해 만들어내는 작품이 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그렇게 해서 한국 모바일 게임 시장에서 의미가 있는 변화의 흐름을 만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
그런 만큼 앞으로도 미리내게임즈가 선보이는 작품들에 대해 많은 관심과 애정을 부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