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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뉴스] "게임이 조금 올드하면 안 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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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현(다미롱) 2016-07-15 14:07:19

흥행이라는 것은 치밀한 계획과 절차에 의해 탄생하기 마련입니다. 몇 수 앞의 유행을 내다보고, 제한된 시간 동안 철두철미하게 자원을 쏟아 부어야 간신히 흥행작 비슷한 것이 나올 수 있죠. 하지만 때로는 창작자의 고집 하나가 이것을 만들기도 합니다.




# 장면 하나

"트랜디한 걸로 만들어봐요. 지난번에 꺼낸 올드한 게임들 말고."

2012년, 우리는 가라앉고 있었다. 피처폰 게임 시대를 주도했고 스마트폰 게임 여명기를 열였지만 거기까지였다. 한국은 카카오 게임의 시대였고 소셜 게임, 캐주얼 게임의 시대였다. 그리고 우리는 이 흐름을 놓쳤다.

대중을 사로잡을 작품이 필요했다. 누구나, 언제까지나 할 수 있는 작품이….

"트랜디한 걸로 만들어봐요."

회사는 그렇게 나에게 이 일을 맡겼다. 하지만 1년 뒤, 나는 유행과 완전히 동떨어진 기획을 들고갔다.

"게임이 좀 올드하면 안되겠습니까?"


# 장면 둘

어려서부터 RPG에 빠진 사람이 있었다. 그 RPG를 만들고 싶은 사람이 있었다. 드래곤퀘스트나 발더스게이트처럼 판단 하나, 명령 하나가 승패를 바꾸는 게임을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개발자가 되고 월급쟁이가 됐다.

허나 회사는 그에게 RPG가 아니라, 좋아하지도 않던 스포츠게임을 원했다. 스포츠 게임만 만들며 경력을 쌓았다. 어느샌가 흥행작도 생겼다. 이젠 이름 앞에 게임도 따라 붙었다.

'홈런배틀'의 정민영. 하지만 그는 그럼에도 여전히 옛날 그 RPG를 만들고 싶었다.

"트랜디한 걸로 만들어봐요."

2012년, 회사는 위기 속에서 신작을 얘기했고 그는 타협을 했다. 소셜이, 캐주얼이 인기니까 SNG를 선택했다. 게임이 복잡하면 안되니까, RPG는 유행이 아니었으니까 하고 싶었던 것은 구색만 맞췄다.

하지만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었다. 그렇게 탄생한 프로토타입은 SNG의 감성과 접근성도, RPG의 성장과 깊이도 찾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도, 팀원들도 그런 것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며칠을 옛 RPG를 추억하며, 그때 그게 왜 재미있었는지 생각하며 보냈다. 정신을 차려보니 바탕화면엔 RPG파트 기획만 잔뜩 쌓여 있었다.

절충안이란 이름 아래 이도 저도 아닌 아니게 된 프로토타입이 떠올랐다.

"나는 이런 게임을 만들고 싶었나?"
"이런 게임을 재미있게 즐길 수 있을까?"
"정말 이게 최선일까?"

2013년 초, 그는 1년 간 만든 SNG+RPG를 뒤엎었다. 


# 장면 셋

코어한 모바일 RPG를 시작했다. 옛 턴제 RPG처럼 판단 하나, 명령 하나가 승패를 가르는 어렵고 예스러운 게임을….

버프·디버프를 언제,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캐릭터 능력이 몇십 퍼센트씩 차이났다. 유저는 능력치를 직접 조율할 수 있었고, 이 능력치 1 차이로 동료 간 시너지가 극과 극으로 갈렸다. 고작 던전 드랍 2성 몬스터에 불과해도 공략에 따라, 파티 조합에 따라 얼마든지 OP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목표는 하나였다. 옛날 RPG처럼 유저가 매번 고민하고 선택해야 하는 모바일 RPG를 만들자.

이런 기획이 2013년 CCG 열풍이 한창일 때, 몬스터 길들이기는 나오지도 않았을 때, 당장 흥행작이 절실했던 회사에 보고됐다.

반대가 쓰나미처럼 덮쳐왔다. 스킬이 까다롭다, 유행과 맞지 않는다, 능력치 세팅 꼭 필요하냐 등등 너무 어렵다는 말이 끊이질 않았다. 게임을 복잡하게 하는 능력치 조율 시스템, 버프·디버프를 없애자는 말도 지겹도록 들었다.

그런 이야기와 1년을 싸웠다. 그는 언제 바뀔지 모르는 트랜드가 아니라, 십수년 간 즐긴 도전·공략의 재미만 믿었다.

2014년, <서머너즈 워>가 그렇게 출시됐다. 쉽고 빠른 모바일 RPG가 대세였던 시기, "우리는 어렵고 올드한 게임이다"라고 외치며…. 반대했던 이들의 말처럼 게임은 국내에서 대중적인 사랑을 받진 못했다.

하지만 마니아들은 달랐다. 게임은 106개 국 8,800만 유저의 사랑을 받았고, 컴투스는 다시 한 번 도약의 기회를 잡았다.

그리고 2년이 지난 지금, 어렵다고 삭제 의견까지 나왔던 시스템들은 <서머너즈 워>의 대표적인 특징이 되었고, 게임은 수시로 트랜드가 바뀌는 시장 속에서 꾸준히 매출 20위권을 유지하며 역대 구글게임 누적 매출 8위를 달성한다.

"시대에 걸맞은 재미도 분명히 있죠. 하지만 그렇다고 다른 재미가 사라졌을까요? 어딘가에는 저처럼, 저희 유저들처럼 옛 재미를 그리워하는 이들도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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