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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사장님, 여기는 석유가 안 나오는데요?"

데어 윌 비 블러드, 터모일, 그리고 한국

에 유통된 기사입니다.
김재석(우티) 2024-06-05 18:29:59

# '데어 윌 비 블러드' (2008)

헐리우드의 명작 <데어 윌 비 블러드>는 일확천금을 노리는 석유 시추 사업가의 일생을 그리고 있다. 성공을 위한 적나라한 집착이 공동체 의식과 기독교 신앙와 충돌하면서 미국 자본주의에 대한 메시지를 던지는 그런 영화다. 유정을 뚫을 수만 있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주인공을 연기한 다니엘 데이 루이스의 연기가 두고두고 회자되곤 한다.

'조금만 더 파면 나올 것 같은데...'. <데어 윌 비 블러드>를 비롯해서 많은 미디어가 석유 시추를 도박에 빗댄다. 물론 21세기의 석유 시추는 환경 정보를 수집하고, 지질분석과 전자탐사 등을 동원해 채산성에 대한 검토를 하면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마냥 도박이라고 볼 수 없다. 그러나 '골드러시'의 뒤를 잇는 '오일러시'의 시대, 한 탕 땡기려던 미국 사업가들은 '될 것 같은 땅'에 냅다 관부터 꽂으며 작업을 시작했다. 고래기름 가격이 올라서 램프용 등유로 석유를 뽑기 시작한 것이 그 시작이었다고.

놀랍게도 미국은 예나 지금이나 축복 받은 땅이다. 미국에는 지상에 석유가 뿜어져 나올 정도로 자원이 많았다. 당대의 사업가들은 '이 근처에 꽂으면 터질 것 같은데' 식으로 시추를 시작했다. 그리고 거기에 진짜 석유가 나오면서 벼락부자들이 탄생했다. 석유 시추를 도박에 묘사한 이유는, 될 줄 알고 꽂았는데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 경우가 더러 있었기 때문이다. 사업가들은 석유가 나올 때까지 공을 뚫었다.

대한석유협회가 발간한 자료집에 따르면 "불과 1980년대까지만 해도 시추는 마구잡이식으로 이루어졌"다. 시추로 유전을 확인할 확률은 이 때까지만 해도 2% 수준이었다고 한다.

<데어 윌 비 블러드> (출처: 소니픽처스코리아)

# 인디게임 '터모일' (2015)

인디게임 <터모일>은 미국에서 석유를 시추해 돈을 버는 경영 시뮬레이션이다.

이 게임에서는 4명의 '돈미새'들은 미국의 시장의 부름을 받고 유전을 찾아 다닌다. 4명은 경쟁자로 최후의 1인이 되기 위해서 겨룬다. <터모일>은 채유장에서 수맥탐지가(다우저)를 고용해 '여기일 것 같은 곳'을 찾는 것에서 시작된다. 다우징 로드를 들고 다니는 다우저가 '여긴 거 같은데요!' 라고 알려오면 그곳에 굴착 장치를 놓는 방식이다. 찾아보니 그 옛날 미국의 석유 시추는 진짜 이런 방식으로 했다고 한다. 고증이라면 고증인 셈.

파보기 전까지는 모른다.


이렇게 먹을 게 많았는지

그 다음은 석유가 닿을 때까지 굴착 장치에 관을 연결하는 일이다. 관을 잇는 것은 당연히 돈이 들고, 석유를 찾을 때까지 관을 이어야 한다. 석유에 빨대를 꽂으면 그때부터 시추는 시작된다. 관에 석유가 충분히 쌓이면, 플레이어는 마차로 석유를 실어다 주식회사에 판매하는 것으로 수입을 거둘 수 있다. 석유의 시세는 계속 변동되므로 두 주식회사가 어떤 매매가를 제시하는지 확인하고, 거기에 따라서 물량을 맞췄다가 판매하는 것이 <터모일>의 묘미이다.

(비싸서 사기 꺼려지는) '스캐너'라는 특수 업그레이드를 해금하기 전까지 플레이어는 다우저의 판단하에 땅을 파야 한다. 다우너는 석유 매장량을 알려주지 않기 떄문에 깊은 곳까지 땅을 뚫었는데 석유의 양이 지나치게 적어서 관을 뚫는 비용이 더 많이 들 수도 있다. 또 암반이 있는 경우에는 드릴을 업그레이드하기 전까지는 빙 둘러서 석유를 캐야 한다. 암반까지 피해 가며 찾은 석유의 양이 적다면, 그 라운드는 조진 것과 다름 없다.

<터모일>이 흥미로운 점은 다른 미디어처럼 석유 시추를 도박처럼 느껴지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4명의 플레이어는 땅을 경매받는 것으로부터 시작해, 미지의 땅에서 매장량을 모르는 상태로 석유 시추를 해 돈벌기 경쟁을 하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온 도시에 관을 꽂았을 시점에서 해당 도시의 주식을 50% 이상 낙찰받아 차기 시장이 되는 것이 <터모일>이 제시하는 목표이다. 이 또한 높은 가격에서 시작해 점점 떨어지는 낙찰가를 가장 먼저 선택한 플레이어가 지분을 가져가는 '네덜란드식 경매'다.

관이 늘어나면 그만큼 비용도 늘어나는 구조다. 


수맥만 믿고 들어갔는데 저게 전부라면 손해를 보는 것이다.


<터모일>은 석유 시추 과정을 갬블링처럼 만들었다


도시의 지분을 놓고 경매도 벌인다.

# 한국 (2024)

6월 3일, 정부는 포항 앞바다에 석유와 가스가 매장되어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발표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직접 브리핑을 열고 "1990년대 후반에 발견된 동해 가스전의 300배가 넘는 규모이고 우리나라 전체가 천연가스는 최대 29년, 석유는 최대 4년을 넘게 쓸 수 있는 양이라고 판단된다"고 이야기했다. 

발표에 따르면 실제 매장규모를 판단하는 탐사시추 단계를 밟을 예정이며, 5개의 시추공을 뚫는 데 개당 1,000억 원 이상의 비용이 들어갈 예정이다. 최대 매장 가능성은 140억 배럴로 브리핑에 함께 참석한 안덕근 장관은 "석유·가스의 가치가 삼성전자 시총의 5배 정도"라고 예상했다. 삼전 5배? 석유, 가스 관련주는 이틀 연속으로 폭등했다. 그 말이 진짜라면 우리는 <데어 윌 비 블러드>와 <터모일>의 주인공처럼 웃을 수 있다. 진짜라면 정치 경제 사회 문화가 뒤집어질 대사건 아니겠나?

그런데 많은 이들이 발표를 "가짜대소동"이 될지도 모른다고 걱정하고 있다. 취재기자 출신 조갑제 옹의 반응이 대표적이다. 조 옹은 1976년, "박정희 대통령의 포항 석유 발견 발표로 증권시장이 과열하는 것을 본" 뒤에 추적 취재를 시작, 경제성이 없다는 판단을 내렸고, 이 일을 파헤치다가 결국 신문사에서 쫓겨났다고 한다.

당시 '영일만 석유 소동'의 결말은 다소 씁쓸하다. 당시 발견된 석유가 암반에 스며들었던 정유로 확인되었던 것이다. 안 살아봐서 모르지만, 오일쇼크를 겪으며 천연자원에 대한 국민적 욕망이 일었던 시기라고 한다. 조 옹의 말씀에 따르면 "1960~70년대 포항 일대는 여러 차례 국내외 전문가들과 외국회사들에 의해 탐사된 바 "있다. 그런데 "포항 앞바다 소규모 가스전은 20여 년 채굴한 뒤 폐쇄되었다. 약 20억 달러어치를 생산했는데 들어간 경비를 계산하면 수익은 미미하다"고 한다.

연초를 흥분시킨 용꿈낭보(朗報) "석유가 나왔다" (경향신문 1976년 1월 15일자)

오늘날 시추에 도박에 빗대는 것은 영화나 게임 이야기다. (20% 미만을 언급하는 전문가도 있지만) 산업부는 이번 시추의 성공률을 20% 수준이라고 밝혔다.

가이아나에 유전이 터져서 대박이 날 거라는데, 우리도 20%면 해볼 만한 건가? 모바일 MMORPG 강화 성공률 20%라면 '이 정도면 할 만한데' 할까? 게임 확률이 버젓이 공개가 되어도 못 믿는 판국인데, 지금 현실 속 땅밑의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뭔가 아득한 기분마저 든다.

우리 정부는 오는 연말 첫 탐사시추를 진행하고, 미국 기업에 분석을 맡길 예정이다. 기왕 이렇게 된 거 대박이 터져서 브루나이처럼 나랏님한테 세뱃돈도 받고 그랬으면 좋겠다. 하는 김에 상온 초전도체 실험도 성공해서 섬마을 보건지소에서는 3,800원에 MRI 검진도 받고.

'상온 초전도체가 상용화되면 벌어지는일' (출처: dogdrip.net/498656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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