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글에서 봤던 루카스아츠의 게임에서 봤듯, 영화를 게임화한 작품들은 나름의 성과를 키워갔다.
반면 게임을 영화화 한 작품들은 그만한 성과를 이루어내지 못했다. 특히 평단의 평가는 대체로 매우 좋지 않았다. 게임을 기반으로 한 영화들은 <툼 레이더>나 <레지던트 이블> 시리즈처럼 여배우의 성적 매력을 드러내거나, 호러 영화의 관습과 클리셰를 모방하는 방식으로 일정 이상의 상업적인 수익을 내는 데까지는 성공했다.
게임을 영화로 바꿀 때 생기는 문제점
박찬익은 논문 <게임 원전 영화의 흥행요소에 관한 연구>에서 게임을 기반으로 영화를 만들 때 기대할 수 있는 요소로 다음 5가지를 제시한 바 있다.
1. 이미 재미와 인지도에서 검증을 받았기에 마케팅 측면에서 유리하다.
2. 충성도 높은 게이머들이 있기 때문에 영화 개봉했을 때 초반 관객을 쉽게 확보할 수 있다.
3. 완결된 스토리를 가지고 있다.
4. 게임의 캐릭터나 서사구조에 영화적인 요소가 가미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5. 화려한 그래픽을 선도하는 컴퓨터게임의 비주얼이 이미 영화의 그래픽에 비견될 정도로 발달했다.
제작사와 배급사 입장에서는 이런 요소가 게임을 영화화하는데 중요한 참고 사항이 될 수 있겠지만, 실제로 개봉한 작품들에서 위의 조건을 꼭 장점으로만 작용하지는 않는다.
앞서 언급한 <슈퍼마리오 브라더스>의 예시에서도 유추할 수 있듯이, 게이머는 게임 속 캐릭터를 관찰의 대상으로 바라보지 않고 스스로 움직이며 가지고 놀 수 있는 일종의 상호작용적인 장난감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캐릭터의 일생에 대한 완벽한 전사(前史)가 없더라도 캐릭터에 대한 몰입을 방해하지 않는 편이다.
그러나 영화에서는 등장 인물의 과거에 대한 설득력 있는 설명과 행동에 대한 인과관계의 정합성이 관객의 몰입에 큰 영향을 미친다. 게임에 기반을 둔 영화가 영화적 관습에 따라 게임의 캐릭터와 서사를 변형시키려 하면, 게이머는 이러한 변화를 일종의 경직된 강박으로 인식되게 된다.
또한 게임 속의 공간 구조는 게임에 따라 자유롭게 그 공간을 탐험할 수 있는 오픈 월드 형태로 제공되는 경우도 많다. 오픈 월드 게임에서 서사는 플레이어가 어느 공간을 먼저 탐색하느냐에 따라 무수히 많은 갈래로 나뉘게 된다. 이러한 병렬식의 공간 구조는 영화의 선형적인 서사로 변형할 경우 본래의 공간구조가 가지고 있었던 플레이어가 지닌 공간 탐색의 자유는 사라진다.
이러한 게임적 특징을 간과한 채 무리하게 게임적 요소를 영화로 번안할 경우 기존의 충성도 높은 게이머들은 마케팅의 방해요소로 둔갑할 수 있다. <하우스 오브 더 데드>, <둠>, <얼론 인 더 다크> 같은 명작 게임들이 영화로 전환되었을 때 기존의 게임 팬들이 보인 무심함과 냉정함은 게임에 기반한 영화의 제작이 그리 간단하지 않음을 말해준다.
좋은 사례, <페르시아의 왕자: 시간의 모래>
<페르시아의 왕자: 시간의 모래>(2010)(이하 <시간의 모래>)는 게임 기반 영화 중 가장 높은 수익을 올렸으며, 메타크리틱 점수 역시 50점으로 게임 기반 영화 중 <모탈 컴뱃> 다음으로 높았다.
<시간의 모래>는 게임으로부터 몇 가지의 핵심적인 설정만 가져온 뒤 새로운 스토리를 구성한 경우에 해당된다. 게임 내의 주요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중세 페르시아의 왕자는 이웃의 마하라자를 침공하여 시간의 단도와 모래 시계, 그리고 마하라자의 공주 파라를 약탈해 온다. 왕자는 이를 아버지인 술탄에게 선물하는데, 이 과정에서 시간의 단도와 모래 시계의 쓰임새를 알고 있는 마하라자의 마술사 비셔가 모래 시계 안에는 인간들이 볼 수 없는 신비로운 것들이 있다면서 단도를 모래 시계에 꽂으라고 유혹한다. 왕자는 이 유혹에 넘어가 단도를 모래 시계에 꽂게 되고, 시간의 모래가 바닥으로 떨어져 마법의 봉인이 풀리며 사람들은 흉측한 괴물로 변하게 된다. 비셔는 시간의 모래를 가지고 도망치게 되고, 왕자는 유일한 생존자인 파라 공주와 함께 비셔가 있는 황혼의 탑 꼭대기를 찾아간다.”
영화 <시간의 모래>는 게임의 이러한 설정 중에서 게임의 핵심 역학적 요소에 해당되는 몇 가지를 가져온 뒤, 나머지는 게임과 유사하지만 다른 설정으로 변환시킨다. 우선 영화는 단도를 통해 시간을 뒤로 돌릴 수 있는 역학적 요소를 영화의 중심 플롯으로 도입한다. 단도 속에 시간의 모래를 넣고 칼자루 끝의 단추를 누르면 1분간 시간이 뒤로 돌아가는 것이다.
영화 속에서 출신은 미천하지만 술탄에 의해 입양되어 왕자로 키워진 다스탄은 재빠른 몸놀림으로 중세 페르시아의 건축물 벽을 날렵하게 뛰어다닌다. 이러한 다스탄의 설정은 게임 속에서 왕자가 벽을 옆으로 타면서 뛰어다니는 역학적 요소를 충실하게 반영한 것이다.
게임 내의 핵심적인 매커니즘이 충실하게 반영되면 사소한 형태의 변형은 오히려 영화적 합리성을 위한 연출적인 고려로 받아들여질 수 있게 된다. 마하라자의 파라 공주는 신성한 도시 알라무트의 공주이자 단검의 수호자 역할을 맡은 타미나로 바뀌고, 마하라자의 마술사 비셔가 맡은 역할은 페르시아 술탄의 동생인 니잠의 몫이 된다.
또한 게임이 초반부터 모래 시계가 깨져 흉측한 괴물과 싸우는 다소 어두운 분위기의 실내 액션이 주를 이룬다면, 영화에서는 비록 CG의 도움을 빌기는 했지만 광활한 페르시아의 사막과 이에 대비되는 신성한 도시 알라무트 곳곳을 조감도로 비추면서 그 사이사이를 호쾌한 액션으로 메우고 있다. 이러한 전환 작업이 기존에 나온 가족용 액션 영화에 비교해도 크게 손색이 없을 정도로 연출되면서 상당한 규모의 수익을 거두고 골수 게이머들의 비난도 피해갈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앞으로 쏟아질 '게임 기반 할리우드 영화'
최근 헐리우드는 한동안 잠잠했었던 게임 기반 영화를 대거 제작 중이다. 현재 자주 언급되고 있는 영화들만 꼽아보아도 <워크래프트>, <데드 라이징: 워치 타워>, <히트맨: 에이전트 47>, <어쌔신 크리드>, <앵그리 버드>, <언차티드>, <레지던트 이블 6>, <메탈 기어 솔리드>, <소닉 더 헤지혹>, <매스 이펙트>, <툼 레이더: 리부트>, <데우스 엑스: 휴먼 레볼루션>, <라스트 오브 어스>, <모탈 컴뱃: 리부트>, <그란 투리스모>, <마인크래프트>, <플랜트 앤 좀비>, <파 크라이>, <하프 라이프>, <와치 독스>, <메트로 2033>, <악마성 드라큘라>, <저스트 코즈>, <니드 포 스피드 2>, <포털>, <프레디의 피자 가게>, <더 심즈> 등 30여 편이 된다.
2010년대에 접어들면서 비디오 게임은 그래픽 재현기술이 발전하면서 게임의 전반부와 각 챕터 사이에 영화적인 연출이 가미된 컷신의 사용을 늘이는 한편, 방대한 오픈월드를 무대로 한 액션 어드벤처 게임의 비중을 높이고 있다.
앞서 언급한 제작 중인 게임 기반 영화 중 <파 크라이>, <와치 독스>, <라스트 오브 어스>, <어쌔신 크리드>, <언차티드> 등이 이러한 오픈월드 형태의 액션 어드벤처 게임들이다. 실제로 이 게임들은 원작 그대로 영화화 하더라도 크게 손색이 없는 스토리텔링을 보여주는 작품들이다.
문제는 <소닉 더 헤지혹>처럼 현실에 존재하기 어려운 판타지적인 특정 캐릭터에 지나치게 의존하거나 <마인크래프트>처럼 도트 피치가 도드라지는 디지털 게임의 재현 방식이 게임의 핵심적인 동적 요소가 되는 작품들이다. 혹은 <더 심즈>처럼 특정한 시나리오가 존재하지 않는 샌드박스 게임들의 경우도 기존 게임의 핵심적인 역학적 요소나 동적 요소가 영화의 기존 관습과 심각하게 어울리지 않는 경우에 해당된다.
물론 앞서 언급한 게임들은 상당 수의 고정 팬을 거느리고 있는 인지도가 높은 게임들이지만, 이러한 고정 팬들일수록 자신들이 사랑하는 게임의 핵심적 요소가 영화에 의해 파괴되거나 심각하게 변형될 때 그 영화를 외면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아직 국내에서는 게임 원작 영화나 영화 원작 게임을 만들려는 시도가 눈에 띄지 않는다. 그러나 앞선 해외에서의 실패 사례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각 장르의 관습과 역학적 관계를 무시한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은 성공하기 어렵다는 점을 주지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