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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뷰/리뷰

[리뷰]격투미학 ‘권호’를 말한다

러프 2006-01-20 11:20:11

 

세상 정말 많이 좋아졌다. 어린 기억 속 <버추어파이터>를 보고 얼이 빠져있던 사람들의 모습이 엊그젠데, 어느새 그 오락실의 충격이 온라인에서 그대로 이어지고 있으니 말이다.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버파>를 필두로 90년대 초반에 이뤄진 오락실의 대변혁이 불과 10년도 채 지나지 않아 사이버 세상에서 펼쳐지고 있는 광경을.

 

홍수처럼 쏟아지는 게임들 때문에 빛이 바래진 느낌은 없지 않지만, <권호>가 가지는 의미는 그래서 특별할 수밖에 없다.

 

어설픈 지식으로 미뤄봐도 구현이 결코 쉽지 않을 법한 동기화 문제에서부터 손맛에 이르기까지 온라인에서 격투게임이 탄생하기엔 풀어내야 할 매듭이 여간 복잡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금껏 대전액션을 경험해온 유저들의 눈높이가 결코 녹록하지 않다는 사실 또한 대전격투의 온라인화를 막은 거대한 장벽이기도 했고.

 

<권호>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이런 대부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대전격투게임을 즐겨 했던 유저들에게도 인정받을 만한 게임성을 온라인에서 제대로 구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권호>는 격투게임을 정말 잘 이해하는 사람들이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게임이다. 국내 개발사에선 이뤄내기 힘들 것이라 여겼던 장벽을 넘은 이 작품은, 그래서 단순한 캐주얼 대전으로 치부할 수 없는 의미를 갖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권호>만의 장점은 스스로의 발목을 붙잡는 아킬레스건으로 작용하고 있기도 하다. 무슨 이유에서일까?

 

 

▶ 붕권을 기대한 게이머는 가라

 

폴의 붕권이나 카자마진의 발차기 한방을 노리는 유저에겐 <권호>는 적응이 꽤나 어려운 게임이다. 기술 하나하나가 매우 짧고 빠르며 절묘한 타이밍을 노려야 하는 프레임단위의 싸움을 고수하는 <권호>는 그래서 <버파>에 가깝다는 느낌을 준다.

 

권호의 조작은 <버파>처럼 가드(G)와 펀치(P), (K)의 입력방식을 따르는 시스템이다. 가드키가 따로 존재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이미 게임스타일은 정해진 셈. 키보드로는 꽤 어려운 조작이지만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 짧은 패턴의 기술구사는 큰 어려움이 없다. 글쎄, 패드로는 경험해보지 않아서 이에 대한 평을 적긴 힘들다. 어쨌든 타겟팅은 키보드고 대부분의 유저가 키보드로 게임을 즐길 테니까.

 

<권호>의 튜토리얼 모드. 꽤 익숙하다. 아니 보편적인 것이라고 해야할까?

 

이러한 키를 조합해 펀치→펀치→펀치→킥 혹은 펀치→펀치→킥 스타일의 짧고 빠른 연계기 위주로 대결을 치러나가게 된다. 아키라의 이문정주 기술이라든가 철산고 등 <버파>를 즐겼던 유저들이라면 익숙할 만한 조합기술도 제법 눈에 띈다.

 

가령 태권, 태극계열의 유파는 <철권>의 화랑이라든가 <버파>의 잭을 연상시키는 느낌을 주고 팔극권은 <버파>의 아키라가 강하게 느껴지는 스타일이라고 설명하면 이해가 빠를 듯 하다. 물론 따지고 보자면 태극권이나 팔극권이라는 것 자체가 실존 권법이고 보니 무엇이 무엇을 닮았다는 건 무의미한 이야기일 수도 있고 캐릭터를 키워나가는 방향에 따라 플레이 스타일은 확연히 달라지는 것도 사실이다. 이 정도의 구현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럽지만 욕심을 부려보자면 좀 더 창의적이었으면 하는 바람이 남을 뿐. ^^

 

능력치와 스킬을 업그레이드하는 화면. 캐릭터를 성장시키는 재미가 제법 쏠쏠하다.

 

태권도나 태극권, 무에타이, 팔극권 등과 같은 유파는 각각의 특징이 있어 유저들은 자신의 플레이 스타일에 따라서 유파를 선택해 자신만의 캐릭터를 키워나갈 수 있다. 필연적인 선택일 수밖에 없었겠지만 레벨업을 해나갈수록 자신만의 스킬포인트를 쌓고 이를 토대로 플레이어의 능력치를 올리고 잠겨있는 기술을 오픈하는 형태의 성장개념은 독특하고 흥미로운 <권호>만의 특징이다. 이렇게 레벨을 올려간 유저들은 점차 능숙해지는 컨트롤로 제법 긴장감 넘치는 대결을 펼치기 시작한다.

 

캐릭터의 성장개념이라는 것은 분명 대전격투라는 특성상 분명 민감할 수도 있는 부분이지만 레벨대 별로 자신의 상대를 한정시킬 수 있는데다 게임의 승패자체가 플레이어의 역량에 달려 있는 만큼 현재까진 밸런스의 큰 무리가 느껴지지 않는 상태다.

 

물론 캐릭터의 성장개념이 동일한 조건에서의 승부가 관건인 대전격투의 미학을 저해할 수 있겠지만 달리 해석하자면 이것도 하나의 특징일 수 있을 테니까. 아무리 카드를 들고 다니면서 랭킹을 등록하고 대방동에서 날리던 경력이라도 자신의 실력을 제대로 검증할 수 없었던 격투게임 애호가들의 고민을 <권호>는 온라인이라는 특성을 활용해 해결해주고 있기도 하고 말이다.

 

 

단순한 대전 말고도 2 CBT에서 호평을 받았던 팀매치와 데스매치 역시 <권호>의 재미요소 중의 하나다. 각 상대 진영별로 세 명의 플레이어가 팀을 이뤄 상대의 플레이를 관전하고 바통을 이어받는 형태의 이 태그매치는 순서를 기다리며 주고받는 대화의 묘미가 꽤 쏠쏠하고 긴장감 넘친다. 후일 클랜전 개념의 시스템이 도입되면 더 즐거울 법한 시스템이다.

 

배경과 크게 이질감이 없는 캐릭터들의 외형이라든가 깔끔한 그래픽 그리고 타격감 등 게임의 겉모양 자체도 충분히 합격점 이상을 받을만한 퀄리티다. 클로즈베타 때보다 랙이 자주 느껴지기도 하지만 온라인으로 구현된 대전게임으론 느껴지지 않는 퀄리티만큼은 게이머를 붙잡고 있을 만한 매력이 충분하다.

 

 

▶ 무엇이 아킬레스건인가

 

휘발성 재미를 강조한 기존의 대전액션게임과 다르다는 <권호>의 실전격투가 강력한 경쟁력이긴 하지만 이것이 오히려 발목을 붙잡는 단점이 되기도 한다. 접근성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비교적 빠른 연타가 필요한 <권호> 스타일의 조작법은 유저들에게 다소 생소한 느낌을 주고, 이는 무작정 버튼연타플레이로 연결돼 제대로 기술을 구사해보려는 유저들을 오히려 좌절하게 만들기도 한다.

 

빈틈을 노려 하단기술을 넣고 카운터 공격으로 강력한 대미지를 가하며 빠른 공중 콤보로 다양한 기술을 선보이는 데서 <권호>의 재미가 느껴질 법하지만 이걸 제대로 만끽하는데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 필요하다. 물론 심각한 수준이라고 할 순 없겠지만 게임에 입문한 초반엔 막권에 당하다 짜증이 폭발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더욱이 <버파> <철권> 스타일의 게임을 즐겨보지 못한 유저라면 상황은 더 심각할 수도 있고 말이다.

 

 

기왕 <버파>에 근접해지려는 시도를 한 게임이 <권호>이고 보니 좀 더 욕심을 내 단점을 지적해보자면 캐릭터가 벌이는 기술의 리치(거리)가 짧다는 점이 아쉽다. 또 상단, 중단, 하단의 공격기술판정이 너무 애매모호하고 기술 자체도 너무 빠른 입력을 요한다는 점도 불만족스럽다. 자신의 실력이 제대로 발휘되고 있는 것인가에 대해 의문을 낳게 만드는 소소한 단점들이 눈엣가시처럼 여겨진다.

 

짧고 스피디한 잔기술을 모아 연계시키는 게 <권호>만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지만, 이 같은 단점들과 국내 유저들의 성향을 감안해 호쾌한 한방이라든가 보다 통쾌한 기술이 어느 정도 필요로 한다는 판단은 든다. 게임이 추구해나가는 방향 자체가 실전스타일의 격투라는 점엔 공감의 표를 던지지만 온라인이라는 특성상 어느 정도의 절충점은 필요하지 않을까.

 

 

▶ 보이지 않는

 

앞서 설명했듯 <권호>가 가진 장점이자 단점은 바로 온라인게임이라는 사실이다. 오락실에서의 경험처럼 옆 사람에게 이기겠다는 열망으로 동전을 조이스틱 옆에 산처럼 쌓아놓고 경쟁심리를 자극하는 의미가 온라인에선 아무래도 희석될 수밖에 없다.

 

즉 포인트를 올리고 싶다는 마음과 레벨에 능력이 좌우되는 <권호>의 온라인적 특징이 방어심리로 작용, 자신보다 강한 상대를 방에서 아예 쫓아버리거나 자신이 더 쉬운 상대를 찾아나가게 만드는 맹점이 되는 것이다. 격투게임의 특징을 퇴색시키는 점이자 <권호>가 앞으로 풀어나가야 할 숙제다.

 

 

 

앞서 언급한 내용에서처럼 게임에 입문한 단계에서부터 중급 이상의 유저로 이르기까지의 을 어떻게 해결하느냐가 <권호>의 성공여부를 가르는 핵심이 될 듯하다. 물론 90% 이상의 승률이 컨트롤로 판가름 나는 시스템인데다 자신이 쏟은 시간만큼 돌아오는 보상도 크지만 단련에 필요한 시간이 적지 않게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권호>는 근성을 갖고 끊임없이 도전해 볼만한 가치가 충분한 게임인 것만은 분명하다. 경험치와 레벨에 매달려 약체를 골라 뽑아먹는 꼼수를 부리다 보면 오히려 흥이 떨어지는 게임. 30번을 내리 져도 묵묵하게 카운터에서 동전을 포대로 담아와 건너편에 앉은 고수아저씨에게 웃어주는 센스를 가진 근성유저들에겐 더할 나위 없이 강추를 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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