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선 이야기: 전 세계 모바일 매출 1위 '페이트: 그랜드오더'의 성공 이유 (上) (바로가기)
(이어서) 그렇다면 IP의 힘에 기대던 <페그오>는 어떻게 반등했나?
먼저 엉망인 스토리가 다듬어지기 시작했다. 1부 4막까지만 해도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던 스토리는, 5막부터 페이트 특유의 설정을 적절하게 풀어내면서 나쁘지 않은 반응을 이끌어 냈다. 특히 원작자 나스 기노코가 본격적으로 참여한 6막부터는 평가가 완전히 뒤집어졌다.
그리고 페이트 시리즈에 대한 신규 팬의 유입도 많아지고 있었다. <페이트 제로>를 제작한 유포테이블에서 만든 <페이트: 헤븐즈 필> 극장판이 많은 애니메이션 애호가들에게 호평을 받았고, 극장에서 페이트 시리즈를 접한 마니아들이 자연스럽게 게임으로도 유입되었기 때문이다.
IP의 힘과 다른 미디어 믹스와의 상호작용은 <페이트: 그랜드 오더>의 가장 큰 흥행 요인이 되었다. 먼저 세계관부터 각 서번트들이 총집합한 '올스타전'에 가까운 개념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페이트 시리즈는 게임, 만화, 애니메이션 등을 통해 수많은 스핀 오프로 파생되어 있었다.
그리고 여기에 다양한 설정을 덧붙임으로써 수많은 외전작들로 나뉜 캐릭터들을 게임으로 한데 모아 등장시켰다. 그러면서도 <페그오> 또한 하나의 외전이었기 때문에 새로운 캐릭터들 또한 자연스럽게 스토리에 녹여낼 수 있었다.
그리고 수많은 캐릭터들을 한데 모아 등장시킨다는 것은, 페이트 시리즈가 이전부터 역량을 집중하던 다양한 미디어 믹스화와 시너지를 이룬다.
특정 IP에 대한 마니아의 유입 경로는 다양하다. 원작 게임을 즐기면서 빠져든 사람도 있을 테고, 극장에서 상영되는 애니메이션을 보고 유입된 팬들도 있다. 휴대용 게임기로 발매된 <페이트: 엑스트라>와 같은 게임을 즐기다가 빠져들게 된 경우도 존재한다.
이토록 다양한 접근 방식을 통해 페이트라는 IP의 매력과 설정에 빠져든 사람들에게 수많은 캐릭터들이 총출동해 서로 싸우고, 상호작용하며 이야기를 진행하는 <페그오>가 매력 있게 다가오는 것은 당연했다.
<페그오> 또한 여기에 그치지 않고 게임의 스토리를 다룬 미디어 믹스를 전개했다. 드라마 CD, 성우들이 참여하는 공식 라디오, 아케이드 액션 게임, 소설과 공식 만화까지. 심지어 한국 공식 카페에서 연재된 웹툰도 있다.
가장 인기 있는 미디어 믹스는 게임 공식 코미디 만화, '만화로 알아보는! <페이트: 그랜드 오더>'다. 작가는 이전부터 게임 패러디 만화로 유명했던 '리요'.
이 만화는 공식 만화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의 개그 센스를 보여준다. 수많은 메타 발언은 기본이요, 주인공인 '구다코'는 아예 가챠에 미쳐 있는 캐릭터로 등장할 정도다. 그러면서도 불합리한 게임 시스템과 가챠를 신랄하게 비판한다. 어떻게 보면 <페그오> 플레이어들의 분신이고, 그들의 마음을 대변해 준다고 볼 수도 있다.
이런 미디어 믹스의 다양화는 계속해서 게임에 대한 흥미를 유지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된다. <페그오>가 사람들에게 어필했던 가장 큰 매력 요소는 캐릭터와 스토리고, 미디어 믹스의 확장은 이런 매력을 더더욱 강화시켜 주니까.
이런 구조는 게임의 엄청난 매출과 직결된다. 다양한 길을 통해 유입된 유저들은 애착을 두는 캐릭터들도 제각기 다를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좋아하는 캐릭터들이 또 다른 캐릭터들과 상호작용하며 싸움을 벌인다면 더더욱 좋다. 여기에 더해서, <페그오>는 캐릭터들을 등장시키는 데 있어 자신들의 강점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이런 방식이다.
그리고 글의 도입부에서 이야기했듯이 <페그오>에는 PvP가 없다. 깊게 파고들면 논란의 여지가 있겠지만 PvE의 난이도가 엄청나게 높지는 않다. 물론 처음 시작하는 플레이어들에게는 불필요한 반복 플레이를 줄여주고 게임을 쉽게 풀어나갈 수 있게 해주는 '공멀젤(공명+멀린+컬라이더스코프 예장)'이 권장되기는 한다. 그렇다고 해서 계속해서 출시되는 고등급의 캐릭터들을 무조건 뽑아야 게임의 스토리를 돌파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위에서 설명했듯이, 유저들이 가챠에 열중하는 이유는 말 그대로 캐릭터에 대한 애정이다. 이것만으로도 엄청난 매출을 뽑아내고 있으니 앞서 설명한 페이트라는 IP의 힘이 오타쿠 계층에게 어느 정도인지, <페그오>가 매력 있는 캐릭터 장사를 위해서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진 더 설명하지 않아도 되리라 생각한다.
지속적인 정보 노출은 게이머들이 계속해서 게임에 흥미를 가지고 플레이하는 동력이 된다. 업데이트 소식도 없고, 미디어에 노출도 거의 되지 않으며, 개발사의 근황도 감감 무소식이라면 유저들은 "게임이 망해가는구나"라고 느낄 것이다.
하지만 <페그오>가 가진 고질병들이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니다. 아무리 수많은 개선이 이루어졌을지라도 게임의 인터페이스와 그래픽 퀄리티는 너무나 조악하다.
위에서 말한 지속적인 정보 노출과는 별개로, 딜라이트워크스가 소통과 운영 부분에서는 많은 문제점을 보이고 있기도 하다. 버그를 사용한 계정을 대량 정지해 놓고 항의가 빗발치자 일관성 없이 다시 풀어준다던가, 게임에 대한 수많은 비판에도 불구하고 강연에서 보여주는 지나친 자신감 같은 문제까지.
특히 악랄한 가챠 시스템에 대한 비판은 끝이 없다. <페그오>의 가챠 시스템은 언뜻 본다면 그렇게까지 악질적이지는 않다. 기본적인 게임 시스템 구조가 가챠를 크게 권장하지 않으며, 많은 사람들이 과금을 투입하는 이유는 순전히 캐릭터의 매력 때문이다. 캐릭터 등장 확률 자체는 타 게임과 비슷한 축에 속한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다.
먼저 천장 시스템이 존재하지 않는다. 운이 정말로 나쁘다면 캐릭터 하나를 획득하기 위해 100만 원이 훨씬 넘어가는 금액을 투입하더라도 캐릭터를 얻을 수가 없다.
확률 보정마저도 존재하지 않아 5성 캐릭터를 얻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재화를 투입하는 것 외에는 별 수단이 없다. 무기명 영기라는 보상 시스템이 존재하긴 하지만 이미 '다섯 번 이상을 중복으로 획득한 캐릭터'에 대한 보상일 뿐이다. 게다가 다른 캐릭터와 교환하기 위해선 10장을 모아야만 한다.
미친듯한 한정 캐릭터들의 양산도 문제다. 5성 캐릭터들의 절반 이상이 한정 캐릭터다. 한정 캐릭터로 매출을 올리는 행태는 모바일 게임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지만 <페그오>의 경우에는 그중에서도 최고라고 할 수 있다. 한정 캐릭터가 이렇게 많은데도 천장 시스템이 없으니 운이 나쁘다면 수백만 원을 투자하고도 캐릭터를 못 뽑을 수도 있다.
<페이트: 그랜드 오더>는 일반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못 만든 게임처럼만 보인다. 하지만 다른 측면에서 본다면 오히려 잘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타입문이 15년이 넘는 기간동안 쌓아 올렸던 '페이트'라는 거대한 세계관과, 딜라이트워크스가 페이트라는 IP를 활용하기 위해 사용한 수많은 방법을 보면 <페그오>는 쉽게 넘겨짚을 게임이 절대 아니다. 캐릭터 '장사'라는 개념에서 보면 오히려 모범적이다.
하지만 앞서 말한 장점이 좋은 선례라면, 지나친 가챠와 엉망인 게임 구조는 악례라고도 할 수 있다. 이렇게 해도 엄청난 매출을 올릴 수 있으니 유사한 방식을 가진 과금 모델이 유행하기 시작한 것은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현재 모바일 가챠 게임이 직면한 극단적인 상업화라는 비판의 중심에 <페이트: 그랜드 오더>가 있음은 확실하다. 그렇기에 <페그오>가 페이트라는 굳건한 IP에 기대어 "팬들을 악독하게 빨아먹는다"는 비판을 피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어떻게 본다면 <페그오>는 일본에서 점점 몰락해가는 중인 '빠칭코'를 대체하는 새로운 도박을 대표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페이트라는 IP가 무너지지 않는 한 <페이트: 그랜드 오더>의 성공 신화는 계속될 것이다. 게임이 받는 수많은 비판에도 불구, <페그오>는 여전히 엄청난 매출액을 벌어들이며 흥행 신화를 써내려가는 중이다.
마차에 비유한다면, 마차(게임)는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만 같은데, 마차를 끄는 말(페이트)이 너무나도 강해서 미친 듯이 달려나가는 중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