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이즈게임은 ‘넥슨컴퓨터박물관’과 함께하는 새로운 연재를 준비했습니다. 넥슨컴퓨터박물관에 전시돼 있는 수많은 소장품의 사연이나 박물관에서 있었던 크고 작은 에피소드는 물론, 컴퓨터와 관련한 IT업계 인사들의 이야기가 담길 예정입니다. / 디스이즈게임 편집국
신축년의 해가 밝았습니다. 소의 해를 맞이한 만큼 2021년 첫 연재 글을 ‘소’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해보려 합니다. 일반적으로 아시아에서 ‘소’는 농사를 짓거나 짐을 나르는 역할을 하면서 사람의 고된 일을 대신해주는 순하고 듬직한 존재로 여겨집니다.
그렇다면 게임 속에서 소는 주로 어떤 이미지로 나타날까요? ‘소’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두 게임에서 그 이미지의 기원을 찾아보고자 합니다.
김웅현, <헬 보바인>, 2016
미노타우로스(Μῑνώταυρος)는 인간의 몸을 하고 얼굴과 꼬리는 황소 모습을 한 반인 반수로, 고대부터 오늘날까지 다양한 모습으로 재해석되며 사랑받는 신화 속 등장 인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미노타우로스 이름의 뜻은 그리스어로 ‘미노스의 황소(Bull of Minos)’를 의미하는데, 자신을 도운 포세이돈에게 거짓말을 한 미노스 왕의 비극적인 이야기에서 처음 등장하게 됩니다.
미노타우로스의 도상은 그리스의 도기에서도 발견되며, 그 이후 근대의 회화, 현대 미술작품에도 등장하기도 합니다. 게임도 예외는 아닙니다.
<디아블로>의 헬 보바인은 유저들에게 ‘카우 레벨’, ‘카우방’이라는 명칭을 얻을 만큼 게임 속에 등장하는 가장 대표적인 소 이미지 중 하나입니다. <디아블로 1>에서 트리스트럼 맵에 울음 소리만 내던 젖소는 1999년 만우절 블리자드가 공개한 스크린 샷을 시작으로 핼버드(창)를 든 소가 되어 등장합니다.
개발자가 숨겨놓은 카우 레벨에 들어가는 상징적인 빨간색 포털은 <디아블로>의 이스터에그와 같은 존재가 되었고, 시리즈마다 카우 레벨을 기대하는 플레이어뿐만 아니라 다른 게임에서도 언급될 만큼 상징적인 존재가 되었습니다.
‘카우 레벨’에 등장하는 소를 보고 국내 플레이어들은 대부분 ‘젖소’라고 부릅니다. 또 헬 보바인이라는 이름에 Bovine(소 과)라는 애매한 이름을 붙였기 때문에 정확하게 어떤 소라고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게임에 등장하는 이미지를 보면 ‘힘’과 ‘에너지’를 대표하는 황소의 이미지와 유사합니다.
그리고 몸의 색이나, 뿔의 형태, 무기를 들고 있는 모습으로 봐서 공격적인 미노타우로스와 닮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붉은 색의 소가 창을 들고 두 발로 서 있는 모습은 미노타우로스의 대표적인 도상으로, 과거 그리스의 도기나, 피카소의 작품에서 발견되는 이미지들이 대표적인 사례 입니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이하 와우)의 플레이어라면 대표적인 소 캐릭터를 또 하나 떠올릴 수 있습니다. 바로 평화의 종족 ‘타우렌(Tauren)’입니다. 게임 속 설정에서 타우렌은 종족을 수호하는 여신인 대지모신의 뜻을 받들고 자연을 사랑하는 부족입니다.
종종 타우렌이 미노타우로스에서 따 온 모습이라고 오해를 하는 경우가 있는데, 타우렌의 ‘tau’는 미노타우로스가 아닌 황소자리를 뜻하는 ‘taurus’에서 파생된 이름입니다. 어원적으로 따지면 ‘taurus’에서 미노타우로스가 만들어진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어원적 의미를 떠나서도 게임 속에 묘사된 캐릭터의 성격은 앞 서 보았던 헬 보바인과 차이가 있어 보입니다.
게임 속에서 묘사된 타우렌은 아메리카 원주민 부족인 수우 족(Sioux)의 문화와 많이 닮았습니다. 수우족은 문화 매체에서 가장 빈번하게 다뤄지는 아메리카 원주민의 모습인데, 일반적으로 ‘인디언’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떠오르는 이미지인 깃털로 장식과 천막 생활 등이 모두 타우렌의 모습과 생활 양식의 대표적인 예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블리자드는 더 긴밀한 이야기를 하나의 캐릭터에 담았습니다. 수우족의 역사에는 대 추장인 타탕카 이오타케가 있습니다. 수우족은 백인들과의 항전을 전개하고 여러 차례 부족을 지켜낸 그에게 관대하고, 용기 있고, 인내하는 인디언으로서 최고의 미덕을 가진 자라는 의미로 ‘앉은 소(Sitting Bull)’이라는 또 다른 이름을 붙여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