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매일은 2003년 4월 10일. 클리어 날짜는 2010년 9월 18일.
홍보 비디오에서부터 플레이어에게 "죽어라"라고 말한 <도돈파치 대왕생>의 '데스 레이블' 모드는 결국 7년 5개월 만에 첫 클리어를 허용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데스 레이블을 클리어한 유저는 누구나 이름을 대면 알 만한 유명 슈팅 게이머가 아니었다.
극악의 난도를 극복한 사람은 단지 슈팅 게임을 좋아하며 취미로 밴드 활동을 즐겼던 한 평범한 게이머였다. /편집=디스이즈게임 김재석 기자
<도돈파치> 이야기로 넘어가기 전에 탄막 슈팅이라는 개념에 대해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탄막(彈幕, 탄의 장막) 슈팅은 마치 적들이 발사하는 탄환이 하나의 장막처럼 화면을 뒤덮는 것 같다는 모습을 보고 붙여진 이름이다.
그리고 슈팅 게임 공략은 절대로 직관에서 이루어지지 않는다. 아무런 설명 없이 초고수의 플레이를 본다면 무수히 쏟아지는 적탄을 엄청난 반사 신경을 통해 피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정교하게 계산된 플레이가 대다수다.
물론 모든 일이 계획대로는 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슈팅 게임에서는 경험이 매우 중요하다. 실수로 적탄 속에 갇혀 의도치 않게 폭탄을 낭비하거나, 적탄에 맞아 목숨을 잃더라도 당황하지 않고 자신이 짠 계획으로 다시 돌아오는 능력은 고수와 하수를 가르는 가장 중요한 척도 중 하나다. 이는 오직 경험과 노력으로만 체득할 수 있는 능력이다.
이제 <도돈파치>이야기로 넘어가도록 하자.
케이브의 <도돈파치>는 탄막 슈팅이라는 장르를 정립한 게임으로 여겨진다. 해당 시리즈는 첫 작품인 <돈파치>만 하더라도 평범한 종스크롤 슈팅 게임이었다. 하지만 최초의 탄막 슈팅 게임으로 여겨지는 <배틀 가레가>의 성공을 보고 <돈파치>의 개발사 'CAVE'는 '총알이 엄청나게 많은' 슈팅 게임도 시장에서 충분히 먹힐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런 아이디어 속에서 탄생한 게임이 바로 <돈파치>의 후속작 <도돈파치>다.
<도돈파치>는 슈팅 게임의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기체의 피탄 판정을 획기적으로 줄이고, 다양한 보스의 패턴 등 후기 탄막 슈팅 게임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요소들을 최초로 정립했기 때문이다.
특히 2002년 발매된 <도돈파치 대왕생>은 케이브의 모든 역량이 아낌없이 발휘된 작품이었다. 마치 한 폭의 그림처럼 날아오는 적탄과 무지막지한 2주차 난이도. 그리고 유려한 OST와 그래픽까지. <도돈파치 대왕생>은 지금까지도 탄막 슈팅 게임의 최고봉으로 여겨지고 있다. 숨겨진 최종 보스 '히바치'의 어마어마한 난이도와 카리스마도 많은 게이머에게 강렬한 인상을 줬다.
해당 글에서 설명할 '데스 레이블' 또한 <도돈파치 대왕생>의 플레이스테이션 2 이식판에 수록된 모드다. 데스 레이블은 필드전을 생략하고 스테이지의 보스들과 연속해서 싸우는 일종의 '보스 러시' 모드였다.
그리고 모든 힘을 다해 두 히바치를 쓰러트리면, 본편이라 할 수 있는 2주차 모드로 넘어간다. 여기서 데스 레이블이 '말도 안 되는' 난이도를 가진 이유가 나온다. 2주차의 규칙은 다음과 같다.
- 이제 잔기는 단 하나도 주어지지 않는다. 한 번 실수하면 그대로 게임 오버다.
- 보스의 '봄 배리어' 회복량이 증가한다.
- 전체적인 보스의 패턴이 엄청나게 어려워진다.
- 하이퍼 모드 아이템이 지급되지 않는다. 하이퍼 모드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보스를 공격해 '하이퍼 게이지'를 채워야 한다.
핵심은 잔기가 하나도 주어지지 않아, 한 번 실수하면 그대로 게임이 끝난다는 점이다. 대신 폭탄은 스테이지를 클리어할 때마다 전부 재충전해줬다.
극악의 난이도를 가진 데스 레이블은 발매 몇 년이 지나도 클리어 소식이 들리질 않았다. 자세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유명 슈팅 게이머들이 데스 레이블에 큰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는 점도 컸다.
실제로 데스 레이블에 도전하다가 높은 난이도에 지쳐 그만둔 것인지, 아니면 데스 레이블이 그들의 흥미를 끌지 못해서인지 정확한 이유는 밝혀진 바가 없다. 그래도 아마추어계에서 내로라하는 유저들이 계속해서 데스 레이블 모드를 공략했지만, 진행은 지지부진했다.
(출처: Akira)
이 글의 주인공인 슈팅 게이머 'MON'은 본래 유명한 슈터는 아니었다. 낮에는 일을 하고, 퇴근 후에는 취미 생활로 슈팅 게임을 즐기는 한 평범한 게이머였다.
어느 날 문득 MON은 데스 레이블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흥미를 느꼈다. 그는 자신이 개인적으로 운영하던 블로그에 데스 레이블 공략을 시작할 것임을 알리고, 틈틈이 공략 진행도를 올리기 시작했지만 본인도 클리어는 무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최선을 다했을 때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가 그가 공략을 시작한 주된 이유였다.
덕분에 해당 스테이지의 돌파구를 찾는 데만 6년이란 시간이 소모되었다. MON도 겐부에게는 이상한 힘이 있다고 언급할 정도였다.
2009년에는 드디어 클리어에 대한 희망이 엿보이기 시작했다. 2회차 최종 보스인 히바치에 최초로 도달했기 때문.
1년이라는 세월이 다시 흘렀다. 그래도 이제 막바지까지 온 덕분인지, MON도 클리어에 대한 희망을 품고 끈기있게 히바치를 공략해 나갔다. 실제로도 몇 번은 히바치를 거의 쓰러트릴 뻔했다. 하지만, 격파까지 단 몇 초를 남기고 쓴 잔을 삼켜야 했다. 수백 번의 도전 끝에 얻어낸 기회였지만 히바치는 자신에 대한 도전을 끝끝내 물리쳤다.
다시 몇 개월이 지난 2010년 9월 18일. MON은 클리어 소식만을 기다리던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했다. 드디어 히바치를 쓰러트리고 데스 레이블을 최초로 클리어한 것. 얼마나 기뻤는지 포스팅 제목도 '신의 부재증명' 이라고 작성했을 정도였다. 몇몇 사정으로 인해 MON의 클리어 동영상은 클리어 후 1년이 지난 2011년 9월 14일에 올라왔다.
공개된 동영상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MON은 신들린 사람처럼 보스를 하나하나 공략해 나갔다. 슈팅 게임을 잘 알지 못하는 시청자라도, MON이 해당 게임 클리어를 위해 얼마나 큰 노력을 기울였는지 보일 정도였다.
동영상 막바지 부분에서 MON은 다시 히바치와 대면했다. 철저히 숙지한 공략에 따라 폭탄은 히바치의 초반 공격을 버티기 위해 전부 소모했다. 이제 그에게 주어진 기회는 하이퍼 모드 발동 시 주어지는 약간의 무적 시간밖에 없었다. 이제 많은 슈터를 좌절시킨 히바치의 '돌개 물살 패턴'은 스스로의 힘으로 피해야 한다.
영겁 같았던 20초가 흘렀다. MON은 무언가에 홀린 듯, 무자비하게 날아오는 탄막을 기계처럼 피했다. 적막한 방에는 조이스틱이 삐걱거리며 움직이는 소리만 들렸다. 히바치가 쓰러지기 몇 초 전, MON은 승리를 직감한 듯 흐느꼈다. 이윽고 두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는 장면이 펼쳐졌다. 기나긴 세월 동안 수많은 슈팅 게이머들을 좌절시킨 히바치가 드디어 굉음을 뿜으며 쓰러진 것이다.
그렇게 시작일로부터 2,718일, 히바치와 대면한 지는 1년 4개월, 2주차 도전 횟수로는 1806번 째. 데스 레이블은 한 평범한 슈터에게 함락당했다. MON은 승리의 포즈를 취한 후, 자리에 엎드려 펑펑 울기 시작했다. 지난 7년간의 노력이 보답받는 순간이었다.
게다가 이 집계는 2009년 4월부터 이루어졌기 때문에 실제로는 더 많으리라 추측된다. (출처: MON 블로그)
MON의 도전은 아직도 많은 사람에게 회자되고 있다. 동영상 조회수는 어느덧 100만을 기록했으며, 블로그에는 데스 레이블 모드 클리어 소식을 듣고 찾아온 게이머로 가득했다. MON 또한 사람들의 관심에 대해 감사하다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