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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클리어에만 7년 5개월이 걸린 게임- '도돈파치 대왕생' 데스 레이블

[연재] 김승주의 방구석 게임 (18)

에 유통된 기사입니다.
김승주(사랑해요4) 2021-02-02 09:31:29

발매일은 2003년 4월 10일. 클리어 날짜는 2010년 9월 18일.

 

홍보 비디오에서부터 플레이어에게 "죽어라"라고 말한 <도돈파치 대왕생>의 '데스 레이블' 모드는 결국 7년 5개월 만에 첫 클리어를 허용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데스 레이블을 클리어한 유저는 누구나 이름을 대면 알 만한 유명 슈팅 게이머가 아니었다.

 

극악의 난도를 극복한 사람은 단지 슈팅 게임을 좋아하며 취미로 밴드 활동을 즐겼던 한 평범한 게이머였다. /편집=디스이즈게임 김재석 기자

 

 

# 탄막 슈팅 게임, 이거 클리어는 가능한 건가요?

<도돈파치> 이야기로 넘어가기 전에 탄막 슈팅이라는 개념에 대해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탄막(彈幕, 탄의 장막) 슈팅은 마치 적들이 발사하는 탄환이 하나의 장막처럼 화면을 뒤덮는 것 같다는 모습을 보고 붙여진 이름이다.

화면을 시꺼멓게 뒤덮는 탄막을 보면 탄막 슈팅 게임은 도저히 클리어가 불가능한 게임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런 난관을 극복할 수 있는 시스템이 존재한다. 바로 피탄점과 적탄 판정이다.

피탄점이란 플레이어가 조작하는 기체가 적탄과 맞닿았을 때 사망하는 부분을 말한다. 탄막 슈팅 게임에서 플레이어 기체의 피탄점은 아주 작다. 적탄이 기체에 맞닿아도 피탄점에만 직격하지 않는다면 괜찮다. 그렇기에 탄막 슈팅 게임에서 게이머는 언뜻 회피가 불가능해 보이는 적탄을 요리조리 피할 수 있다. 여기에 적탄 판정이라는 개념까지 덧붙이면 금상첨화다. 적탄에도 판정이 있어 탄환의 그래픽과 판정이 정확히 일치하지 않는다.

 

<스트라이커 1945>의 피탄 판정. 기체 스프라이트가 아닌 그림에 표시된 네모 부분이 피격 판정이다.

<동방프로젝트>의 적탄 판정. 정확히 저 빨간 원 안에 플레이어의 피탄 판정이 닿아야 사망한다. (출처: touhou wiki)

그리고 슈팅 게임 공략은 절대로 직관에서 이루어지지 않는다. 아무런 설명 없이 초고수의 플레이를 본다면 무수히 쏟아지는 적탄을 엄청난 반사 신경을 통해 피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정교하게 계산된 플레이가 대다수다.

슈팅 게이머들은 수백 번 넘게 게임을 플레이하며 해당 스테이지에서는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 어떤 타이밍에 폭탄을 써야 할지 철저한 계획을 짜고, 수많은 연습을 통해 자신이 짠 계획을 몸에 체화시킨다.

물론 모든 일이 계획대로는 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슈팅 게임에서는 경험이 매우 중요하다. 실수로 적탄 속에 갇혀 의도치 않게 폭탄을 낭비하거나, 적탄에 맞아 목숨을 잃더라도 당황하지 않고 자신이 짠 계획으로 다시 돌아오는 능력은 고수와 하수를 가르는 가장 중요한 척도 중 하나다. 이는 오직 경험과 노력으로만 체득할 수 있는 능력이다.

 

 

# 도대체 무슨 게임이길래, 수년 동안 클리어를 한 사람이 없었나요?

이제 <도돈파치>이야기로 넘어가도록 하자.

케이브의 <도돈파치>는 탄막 슈팅이라는 장르를 정립한 게임으로 여겨진다. 해당 시리즈는 첫 작품인 <돈파치>만 하더라도 평범한 종스크롤 슈팅 게임이었다. 하지만 최초의 탄막 슈팅 게임으로 여겨지는 <배틀 가레가>의 성공을 보고 <돈파치>의 개발사 'CAVE'는 '총알이 엄청나게 많은' 슈팅 게임도 시장에서 충분히 먹힐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런 아이디어 속에서 탄생한 게임이 바로 <돈파치>의 후속작 <도돈파치>다.

 

<돈파치(1999)>

케이브의 로고. 케이브는 <도돈파치> 시리즈를 통해 탄막 슈팅 게임의 명가로 거듭났다.

<도돈파치>는 슈팅 게임의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기체의 피탄 판정을 획기적으로 줄이고, 다양한 보스의 패턴 등 후기 탄막 슈팅 게임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요소들을 최초로 정립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도돈파치>만 마스터할 수 있다면, <도돈파치>를 공략하면서 체득한 기술을 다른 게임에 똑같이 응용할 수 있었다. 덕분에 유명한 탄막 슈팅 게이머라면 누구나 <도돈파치>를 한 번쯤 공략한 경험이 있을 정도였다.

특히 2002년 발매된 <도돈파치 대왕생>은 케이브의 모든 역량이 아낌없이 발휘된 작품이었다. 마치 한 폭의 그림처럼 날아오는 적탄과 무지막지한 2주차 난이도. 그리고 유려한 OST와 그래픽까지. <도돈파치 대왕생>은 지금까지도 탄막 슈팅 게임의 최고봉으로 여겨지고 있다. 숨겨진 최종 보스 '히바치'의 어마어마한 난이도와 카리스마도 많은 게이머에게 강렬한 인상을 줬다.

 

<도돈파치 대왕생>(2002)

많은 게이머들을 경악시킨 히바치의 '돌개물살' 패턴

해당 글에서 설명할 '데스 레이블' 또한 <도돈파치 대왕생>의 플레이스테이션 2 이식판에 수록된 모드다. 데스 레이블은 필드전을 생략하고 스테이지의 보스들과 연속해서 싸우는 일종의 '보스 러시' 모드였다.

데스 레이블의 규칙은 다음과 같다. 먼저, 플레이어의 기체 선택에 따라 최소 0개에서 최대 4개까지 목숨이 주어진다. 그리고 폭탄은 최대 6개까지 지급한다. 하지만 폭탄을 남용해 보스를 손쉽게 격파하는 행위를 방지하기 위해, 폭탄을 사용하면 보스는 '봄 배리어' 모드에 돌입해 폭탄 대미지를 흡수한다. 그리고 스테이지를 돌파할 때마다 잔기가 하나씩 추가로 주어지며, 일시적으로 무적이 되며 대미지가 올라가는 '하이퍼 모드' 아이템은 시작부터 최대 5개가 지급된다.

언뜻 보면 평범해 보이는 보스 러시 모드였지만, 이윽고 최종 보스까지 도달한 슈팅 게이머들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혼자서도 버거운 최종 보스 히바치가 두 기나 등장했기 때문이다.
두 명으로 늘어난 히바치


그리고 모든 힘을 다해 두 히바치를 쓰러트리면, 본편이라 할 수 있는 2주차 모드로 넘어간다. 여기서 데스 레이블이 '말도 안 되는' 난이도를 가진 이유가 나온다. 2주차의 규칙은 다음과 같다.


- 이제 잔기는 단 하나도 주어지지 않는다. 한 번 실수하면 그대로 게임 오버다.

- 보스의 '봄 배리어' 회복량이 증가한다.

- 전체적인 보스의 패턴이 엄청나게 어려워진다.

- 하이퍼 모드 아이템이 지급되지 않는다. 하이퍼 모드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보스를 공격해 '하이퍼 게이지'를 채워야 한다. 

 

핵심은 잔기가 하나도 주어지지 않아, 한 번 실수하면 그대로 게임이 끝난다는 점이다. 대신 폭탄은 스테이지를 클리어할 때마다 전부 재충전해줬다.

 

극악의 난이도를 가진 데스 레이블은 발매 몇 년이 지나도 클리어 소식이 들리질 않았다. 자세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유명 슈팅 게이머들이 데스 레이블에 큰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는 점도 컸다. 

 

실제로 데스 레이블에 도전하다가 높은 난이도에 지쳐 그만둔 것인지, 아니면 데스 레이블이 그들의 흥미를 끌지 못해서인지 정확한 이유는 밝혀진 바가 없다. 그래도 아마추어계에서 내로라하는 유저들이 계속해서 데스 레이블 모드를 공략했지만, 진행은 지지부진했다. 

 

프로모션 비디오에서부터 대놓고 이런 말(死ぬがよい= 죽어라)을 하는 게임이었으니, 클리어가 쉽게 나올 리가 없었다.
(출처: Akira)

 

# MON의 7년 5개월 간 여정

 

이 글의 주인공인 슈팅 게이머 'MON'은 본래 유명한 슈터는 아니었다. 낮에는 일을 하고, 퇴근 후에는 취미 생활로 슈팅 게임을 즐기는 한 평범한 게이머였다.

 

어느 날 문득 MON은 데스 레이블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흥미를 느꼈다. 그는 자신이 개인적으로 운영하던 블로그에 데스 레이블 공략을 시작할 것임을 알리고, 틈틈이 공략 진행도를 올리기 시작했지만 본인도 클리어는 무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최선을 다했을 때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가 그가 공략을 시작한 주된 이유였다.


그렇게 데스 레이블과의 사투가 시작되었다. MON은 생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컨디션이 좋다고 여겨지는 날이면 항상 조이스틱을 잡았다. 노트에 공략 진행 상황을 꼼꼼히 기록하고 블로그에 진척도를 올렸다. 오프라인에서 다른 슈팅 게이머들과 만나 서로의 진행도를 묻기도 했다. 쉽지는 않았지만, 처음에는 공략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 했다.

이윽고 얼마 안 되어 난관이 찾아왔다. 가장 큰 난관은 2주차 3번째 스테이지였다. 3번째 스테이지 보스인 겐부(厳武)는 마지막 발악 패턴에서 침탄을 쏘는 포대를 쏘아 보내는데, 보스가 내보내는 원형 탄막과 조합하면 회피하기가 굉장히 까다로워서 하이퍼 모드나 폭탄을 사용해 재빨리 마무리하는 것이 정석으로 받아들여졌다. 문제는 데스 레이블 모드에선 침탄 포대까지 봄 배리어를 적용받아 폭탄 데미지를 무시한다는 것이었다.

폭탄을 사용하면 침탄 포대를 파괴할 수 없어져 무적 시간이 끝나는 순간 화면을 뒤덮은 탄막에 즉시 사망하게 될 확률이 높아진다. 겐부의 내구도도 엄청나게 높아 폭탄을 사용하면 봄 배리어로 회복하는 체력까지 무식하게 많았다. 즉, 최선의 방법은 최대한 폭탄을 사용하지 않고 보스를 격파하는 것뿐이었다.

덕분에 해당 스테이지의 돌파구를 찾는 데만 6년이란 시간이 소모되었다. MON도 겐부에게는 이상한 힘이 있다고 언급할 정도였다.

 

3번째 스테이지 보스 겐부(厳武). 대왕생 본편에서도 발악 패턴의 높은 난이도로 악명을 떨쳤다.

2009년에는 드디어 클리어에 대한 희망이 엿보이기 시작했다. 2회차 최종 보스인 히바치에 최초로 도달했기 때문.

하지만, 2주차 히바치는 말 그대로 지옥같은 난이도를 자랑했다. 두 마리로 나뉜 히바치는 플레이어의 기체를 향해 무자비하게 탄환을 쏘아댔다. 폭탄 아이템이 전부 떨어지면 단 몇 초조차 버틸 수 없었다.

1년이라는 세월이 다시 흘렀다. 그래도 이제 막바지까지 온 덕분인지, MON도 클리어에 대한 희망을 품고 끈기있게 히바치를 공략해 나갔다. 실제로도 몇 번은 히바치를 거의 쓰러트릴 뻔했다. 하지만, 격파까지 단 몇 초를 남기고 쓴 잔을 삼켜야 했다. 수백 번의 도전 끝에 얻어낸 기회였지만 히바치는 자신에 대한 도전을 끝끝내 물리쳤다.

 

클리어를 앞두고 사망한 사진 (출처: MON 블로그)

 

다시 몇 개월이 지난 2010년 9월 18일. MON은 클리어 소식만을 기다리던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했다. 드디어 히바치를 쓰러트리고 데스 레이블을 최초로 클리어한 것. 얼마나 기뻤는지 포스팅 제목도 '신의 부재증명' 이라고 작성했을 정도였다. 몇몇 사정으로 인해 MON의 클리어 동영상은 클리어 후 1년이 지난 2011년 9월 14일에 올라왔다.

 


 

공개된 동영상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MON은 신들린 사람처럼 보스를 하나하나 공략해 나갔다. 슈팅 게임을 잘 알지 못하는 시청자라도, MON이 해당 게임 클리어를 위해 얼마나 큰 노력을 기울였는지 보일 정도였다.

 

동영상 막바지 부분에서 MON은 다시 히바치와 대면했다. 철저히 숙지한 공략에 따라 폭탄은 히바치의 초반 공격을 버티기 위해 전부 소모했다. 이제 그에게 주어진 기회는 하이퍼 모드 발동 시 주어지는 약간의 무적 시간밖에 없었다. 이제 많은 슈터를 좌절시킨 히바치의 '돌개 물살 패턴'은 스스로의 힘으로 피해야 한다.

 

영겁 같았던 20초가 흘렀다. MON은 무언가에 홀린 듯, 무자비하게 날아오는 탄막을 기계처럼 피했다. 적막한 방에는 조이스틱이 삐걱거리며 움직이는 소리만 들렸다. 히바치가 쓰러지기 몇 초 전, MON은 승리를 직감한 듯 흐느꼈다. 이윽고 두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는 장면이 펼쳐졌다. 기나긴 세월 동안 수많은 슈팅 게이머들을 좌절시킨 히바치가 드디어 굉음을 뿜으며 쓰러진 것이다.

 

그렇게 시작일로부터 2,718일, 히바치와 대면한 지는 1년 4개월, 2주차 도전 횟수로는 1806번 째. 데스 레이블은 한 평범한 슈터에게 함락당했다. MON은 승리의 포즈를 취한 후, 자리에 엎드려 펑펑 울기 시작했다. 지난 7년간의 노력이 보답받는 순간이었다. 

승리의 포즈를 취하는 MON (출처: MON 블로그)

MON이 기록한 최종 전적. 무려 2주차에 1806번 도전한 후에야 히바치를 격파할 수 있었다.
게다가 이 집계는 2009년 4월부터 이루어졌기 때문에 실제로는 더 많으리라 추측된다. (출처: MON 블로그)

 

 

# 마치며

MON의 도전은 아직도 많은 사람에게 회자되고 있다. 동영상 조회수는 어느덧 100만을 기록했으며, 블로그에는 데스 레이블 모드 클리어 소식을 듣고 찾아온 게이머로 가득했다. MON 또한 사람들의 관심에 대해 감사하다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MON는 본래 유명한 슈팅 게이머가 아니었지만 그의 게임에 대한 열정과 근성은 누구보다 강했고, 결국 끈질긴 노력 끝에 얻어낸 업적 덕분에 자신의 이름을 슈팅 게임 역사에 길이 남길 수 있었다.

슈팅 게임은 마치 '장인 정신'과 같은 마인드가 필요한 게임이다. 슈팅 게임에서 최정점에 서기 위해서는 누구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 곳에서 혼자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니까. 도전은 결코 쉽지 않다. 20분이 넘어가는 기나긴 게임 플레이 속에서 한 번이라도 집중력이 흐트러진다면 그대로 끝이 난다. 계획을 잘 짜고, 아무리 연습을 많이 한 상태라도 순간의 방심이 공든 탑을 무너뜨린다.

하지만 슈팅 게이머들은 아직도 묵묵히 슈팅을 플레이하는 중이다. 슈팅 게이머들의 목표는 대단한 것이 아니다. 돈을 위해서도, 사람들의 관심을 원해서도 아니다. 그들이 도전을 멈추지 않는 이유는 자신의 한계를 돌파하는 순간이 무엇보다 즐겁기 때문이리라.

그렇기에 아직도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정진하고 있는 국내의 슈팅 게이머들에게, 그리고 굳이 슈팅 게임이 아니더라도 '최초'나 '최고'의 타이틀을 따기 위해 노력하는 세계의 모든 게이머들에게, 이 자리를 빌려 심심한 응원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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