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이즈게임은 ‘넥슨컴퓨터박물관’과 함께하는 새로운 연재를 준비했습니다. 넥슨컴퓨터박물관에 전시돼 있는 수많은 소장품의 사연이나 박물관에서 있었던 크고 작은 에피소드는 물론, 컴퓨터와 관련한 IT업계 인사들의 이야기가 담길 예정입니다. / 디스이즈게임 편집국
온라인 게임은 서비스가 종료되면 그 흔적을 찾기 어렵다. 서버가 닫힌 이상 게임 플레이의 재현이 어렵고, 패치와 업데이트로 누적된 방대한 개발 리소스의 보존도 용이하지 않기 때문이다. 남아 있는 자료들은 플레이어들의 기억처럼 주관의 영역에 있거나 혹은 업데이트 뉴스나 이벤트 기사처럼 개발사가 아닌 미디어를 통해 중계된 내용들이 대다수이다.
그나마 최근에는 유저가 거의 남지 않은 과거의 게임들이 리마스터 버전으로 재출시되거나 혹은 개인이 녹화한 플레이 영상을 자료로 보관하고 있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으며, 게임 회사나 기관에서 온라인 게임을 보존하려는 시도도 조금씩 등장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넥슨컴퓨터박물관의 ‘바람의나라 1996’ 복원 프로젝트, 작년 The Strong National Museum of Play가 기증받은 ‘LGBTQ Game Archive’, 그리고 실제 서비스 중에 플레이어들의 경험을 모아보고자 했던 ‘듀랑고 아카이브’등이 있다.
보존 방법은 각각 차이가 있지만 모두 변화하는 온라인 콘텐츠를 보존하기 위한 시도로서 유의미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위 사례에서 다루는 것은 모두 ‘출시’라는 과정을 거쳐 대중에게 공개된 이후의 콘텐츠로 한정된다.
2020년 기준으로 한 해 국내에서 102개의 게임이, 그리고 Statista에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작년 한 해 전 세계에서 약 10,260개의 게임이 스팀을 통해 출시되었다.
플레이어의 손에 닿는 게임의 수는 해마다 증가하고 있지만, 반대로 ‘출시’라는 마지막 허들을 넘지 못하고 세상에 공개되기 이전에 침전하는 프로젝트도 헤아릴 수 없이 많다. 플레이어와의 상호작용이 게임 매체의 중요한 특성인만큼 출시는 응당 거쳐야하는 창작 과정이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이 허들이 게임의 가치와 잠재적 가능성을 결정하는 절대적인 기준은 아니다.
하지만 인류의 역사에서 창작물의 문화적 가치는 시대적 관점에 따라 재해석되어 왔다. 한 때는 대중에게 외면 받았던 창작물이 새롭게 재평가를 받거나 또 다른 창의적 활동의 영감이 되기도 한다.
마찬가지로 미출시 게임은 비록 수면위로 드러나지 못했지만, 우리가 지금 플레이하는 게임들의 양분이자 미래의 새로운 프로젝트를 위한 유산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미출시 게임 데이터의 파편들을 찾아 아카이브하는 것은 개발 과정 자체를 새로운 도전을 위한 발판으로 인식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고, 아티스트로서 개발자의 창작활동을 고무하는 의미를 갖는다.
넥슨컴퓨터박물관은 4월, 온라인 게임을 아카이브 하기 위한 시도로서 새로운 전시 네포지토리 베타를 오픈했다. 넥슨(Nexon)과 저장소를 의미하는 리포지토리(repository)를 합성한 네포지토리(NEpository)는 앞으로 지속될 넥슨의 게임 아카이브 프로젝트의 이름이다. 이번 전시는 그 첫 번째 발돋움으로써 넥슨의 미출시 프로젝트를 소개한다.
2020년 하반기부터 넥슨컴퓨터박물관과 넥슨 개발전략기획실은 중단된 프로젝트의 데이터를 모으기 시작했다. 이미 지스타에서 소개된 적 있는 페리아 연대기와 드래곤 하운드를 비롯해, 단 한 번도 외부에 공개된 적 없는 프로젝트가 포함되었다.
각 프로젝트의 데이터는 개발 기간, 장르, 개발 툴 등 각 게임의 특성에 따라 모두 상이했다. 특히, 개발 기간은 짧게는 4개월부터 59개월까지 큰 차이를 보였고 개발 자료도 기획 문서부터 3D 렌더링 데이터까지 다양했다. 마치 퍼즐을 맞추듯, 총 30여 개의 프로젝트에 대한 방대한 자료가 모였다.
박물관은 네포지토리의 매니저로서 전시에 활용할 게임을 선정하고 데이터를 시각화 했으며, 전시를 관람하는 관람객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변화하는 데이터까지 저장하고자 했다.
전시는 7개의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미출시 게임의 개발 과정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도록 구성되었다. 관람객은 접근 권한을 받은 것처럼 네포지토리의 이곳저곳을 돌아보며 자유로운 체험을 할 수 있다.
전시장 중앙에 위치한 트리플 스크린에는 각 프로젝트의 핵심 콘텐츠를 영상으로 투사하고, 화면 색상의 변화와 공간 전체의 조명을 연동시킴으로써 데이터가 쌓여가며 변화하는 저장소의 내부를 연출하였다.
그리고 플로피 디스켓 모양의 카드를 꽂아 자료를 검색할 수 있는 키오스크 테이블에서는 기획문서와 영상, 원화 등 수많은 자료를 탐색해볼 수 있다. 또한, 미출시 게임의 한정판 아트워크를 직접 소장할 수도 있다.
이번 전시를 함께 기획하고 준비한 디지털 크리에이터 그룹, 더즈 인터렉티브는 “관람객이 마치 컴퓨터 속에 숨겨진 데이터를 들여다보는 기분을 느꼈으면 했다”고 이야기하며 “넥슨과 박물관의 가치, 미학을 기반으로 관람객들에게 재미를 줄 수 있는 상호작용을 구현하고자 했다”고 회고했다.
이제 온라인 게임은 단순하게 개발자가 만들고 플레이어가 즐기는 것을 넘어 복잡하고 다양한 층위의 상호작용을 통해 이 시대의 문화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네포지토리 프로젝트는 개발자와 플레이어 사이의 직접적이고 솔직한 상호작용이 이루어지는 기회가 되길 기대한다.
넥슨컴퓨터박물관은 미출시 게임을 아카이브하는 베타 버전을 시작으로 동시대의 문화로서 게임의 가치와 의미를 더 많은 이들과 함께 나누기 위해 향후 프로젝트를 지속적으로 확장할 예정이다.
[참고]
리포지토리(repository)는 물건들이 모이는 장소를 의미한다. 최근 들어, 컴퓨팅 환경에서 데이터의 메타데이터, 즉 자료의 구조를 포함하여 데이터가 수정되고 업데이트 되는 모든 과정을 기록하고 관리하는 장소라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