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일은 만우절이다. 재미있는 거짓말로 남을 속이는 날, 이 날 만큼은 다소 짓궃은 장난도 허용되곤 한다.
게임 업계도 다르지 않다. 만우절에는 늘 이용자를 깜짝 놀라게 하는 이벤트가 진행되곤 했다. <던전 앤 파이터>와 <메이플스토리>의 사이트를 맞바꿔 실제로 몇몇 유저가 속기도 했고, 오락실 이벤트를 개최한다고 작성한 다음 '찾아오는 길' 버튼을 클릭하면 <히어로즈 오브 더 스톰>이 강제 설치되는 경우도 있었다. 외에도 만우절에 진행한 이벤트가 실제 업데이트로 이어지는 등, 만우절은 생각보다 게이머를 위한 행사로 풍성한 날이었다.
그러나 이번 2022년 만우절은 생각보다 조용한 느낌이었다. 이벤트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단순 쿠폰 지급 같은 소소한 이벤트가 진행되거나 혹은 이전 만우절에 진행한 이벤트를 반복하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국내 게임 업계일수록 더욱 그렇다. 무언가 심심했던 2022년 만우절, 이유는 무엇일까? /디스이즈게임 김승주 기자
# "그런 거 만들 시간에 개발이나 더 해라!"의 의미
2021년에 국내 게임계를 강타한 가장 핵심 이슈는 무엇이었을까? 바로 <페이트 : 그랜드 오더> 트럭 시위로 촉발된 게임 업계 연쇄 파동이었다. 기존 국내 게임 업계의 관습에 지쳐 있던 유저들이 들고일어나며 수많은 게임이 홍역을 치렀고, 게임사와 게이머의 대립도 이전보다 심화됐다.
이에 많은 게임사가 2022년에는 "좋은 게임을 개발해 유저 마음을 되돌리겠다"고 선언한 상황이다. 엔씨소프트, 넥슨, 넷마블 등 대규모 게임사에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모습이다. 이용자와의 소통도 늘어났다. 개발자와 게이머가 직접 소통하는 '유저 간담회'도 이전보다 확실히 늘어났다.
최근 진행됐던 <바람의나라 : 연> 연택트 쇼케이스
"정말로 국내 게임업계가 바뀌었나?"에 대해서는 보다 깊은 논의가 필요하겠지만, 표면적으로 변화의 모습이 보이고 있는 것은 분명 사실이다. 이용자들도 이에 맞춰 자신이 즐기는 게임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할 경우 이전보다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장난'이 핵심인 만우절 이벤트를 진행하기는 어려운 분위기가 조성됐다. 1회성 이벤트에 공을 들였다가는 "그런 거 할 시간에 개발이나 더 해라"라는 지탄을 받을 수도 있는 싱황이다. 또한, 만우절의 핵심은 '거짓말'이다. 유저들을 깜짝 놀라게 하는 행위에만 집중했다가는 "조롱"의 의미로 곡해될 수도 있기에 더욱 행보를 조심할 수밖에 없다.
"그런 거 만들 시간에 게임이나 더 만들어라"는 의견의 속 뜻도 생각해 봐야 한다. 만우절 이벤트를 진행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거짓말이 허용되는 단 하루, 깜짝 이벤트로 자사 게임을 이용하는 유저들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해서다. 하지만 이런 이벤트가 유저들에게 즐거움이 아닌 불쾌감을 줄 수 있는 상황에서는 자제해야 하는 것이 맞다. 본래 의도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국내 게임계가 이번 만우절에 조용했던 이유로 풀이되는 원인이다. 만우절을 기념한 작은 이벤트를 진행하는 경우에도 반드시 유저들을 위한 보상이 지급됐다.
<던파 모바일>은 유저를 위한 피로도 쿠폰이 지급되는 선에서 마무리됐다.
아직 출시 초기이기에 대형 만우절 이벤트를 진행하기 어렵다는 점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 정말로 녹록지 않은 사정이 있었던 해외 게임사
해외 게임계도 주변 상황이 녹록지 않았던 경우가 많았다. 대표적으로 늘 "만우절에 진심"으로 여겨져 왔던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다.
이전부터 블리자드는 만우절 장난만을 위한 자체 사이트를 만드는 등 만우절 이벤트로 게이머를 놀라게 해 왔다. 그중 가장 기억나는 이벤트를 하나 꼽는다면, 2018년 블리자드 코리아가 진행했던 오락실 이벤트다. 블리자드의 각종 게임을 오락실 콘셉트로 녹여낸 이벤트였는데, 핵심은 '찾아오는 길' 버튼을 클릭했을 때 강제로 설치되는 <히어로즈 오브 더 스톰>이었다.
안돼! 멈춰! (출처 : 블리자드)
물론, 실제 설치되는 것은 아니었다. 녹화된 비디오 파일이 재생되는 형태였다. 블리자드에 대한 이미지가 좋았던 시절 팬들 사이에서 사용되던 밈(meme)을 이벤트로 녹여낸 것이다. 그러나 2022년에는 <오버워치>에서 등장 캐릭터의 눈동자가 장난스레 변하는 것 외에는 별다른 이벤트가 진행되지 않았다.
블리자드가 2022년 만우절을 조용히 보낸 이유는 대내외적 이슈가 많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대표적으로, 블리자드는 2021년 '사내 성차별 및 성추행' 논란으로 홍역을 치르며 전 세계 게이머의 지탄을 받았다. <오버워치 2> 등의 신작 출시도 계속해서 지연되고 있고, <WOW>의 최신 확장팩에 대한 평가도 긍정적이지만은 않아 블리자드를 바라보는 팬들의 시선이 곱지 않은 상황이다.
2022년 1월 18일 전 세계 게이머를 충격에 빠트린 마이크로소프트의 액티비전-블리자드 인수도 유념해야 한다. 블리자드에게 호재로 볼 수 있는 내용이지만, 전례 없는 거대 인수인 만큼 아직 절차가 완료되지 않았다. 다수의 전문가는 2022년 내에는 인수 절차가 마무리되지 않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으며, 일각에서는 이를 반독점법 위반으로 보는 시선도 있기에 해결해야 할 문제도 많다. 즉, 이런 대내외적 이슈로 인해 만우절 이벤트를 준비할 여력이 없었으리라 추측된다.
이런 모습이 포착된 해외 사례는 블리자드뿐만이 아니다. <월드 오브 탱크>의 개발사 워게이밍도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다. 달에서 전투를 진행하는 '월(月)탱 워즈'나 고전 탱크 게임 <탱크 바탈리온>을 패러디한 이벤트를 내놓는 등 만우절마다 이색 모드를 출시했던 워게이밍은 2022년에 만우절 이벤트를 진행하지 않았다.
(출처 : 워게이밍)
이 경우에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큰 영향을 미쳤기 때문으로 보인다. 워게이밍은 벨라루스 민스크에 설립된 개발사다. 현재 본사는 키프로스에 위치해 있지만, 자사의 게임을 개발하는 핵심 인력은 여전히 민스크에 남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워게이밍은 우크라이나 키이우에도 스튜디오를 가지고 있었다. 현재 우크라이나 현지 직원은 대부분 대피한 것으로 알려졌다.
워게이밍은 이번 러시아의 침공에 대해 직, 간접적으로 반대 의사를 밝히며 우크라이나에 성금을 기부했지만, 이와 별개로 벨라루스는 러시아의 침공에 협조적인 모습을 보이며 서방의 대러시아 제재의 영향을 받고 있다. 유럽 동구권에 핵심 팬층을 보유한 워게이밍에게 전쟁의 영향이 크게 다가오는 이유다.
그리고 4월 5일, 워게이밍은 벨라루스와 러시아에서 철수할 계획임을 밝혔다. 공식 성명을 통해 이례적으로 "많은 손실이 예상된다"고 밝힐 정도였다. 개발 핵심인 민스크 스튜디오는 폐쇄될 계획이다. 정말로 만우절 이벤트에 신경을 쓸 여력이 없었던 셈이다.
(출처 : 워게이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