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신>과 <우마무스메>가 세계적 인기입니다. 우리는 이미 서브컬처 시대에 살고 있어요. 덕후와 덕질을 주제로 보다 많은 이야기가 소통되고, 덕후가 능력자로 인정받는 사회가 되길 희망합니다. 지금 저희는 '덕후의 역사'를 쫓아가고 있습니다. 많은 관심과 지도편달 부탁드립니다. /스카알렛 오하라&디스이즈게임
처음 문명이 발생한 4개 지역에서 권력이 형성된 데에는 공통점이 있어요.
선주 농경민이 정착하여 마을들이 형성된 주변에 '지혜로운' 이들이 들어와 정착해요. 지혜로운 이들은 선주 농경민들과 네트워킹하며 생산, 기술, 경제적으로 큰 발전을 이뤄요. 이들은 주변 이민족들을 아우르는 보다 큰 규모의 사회를 만들게 돼요.
큰 규모의 사회가 안정적으로 유지되기 위해 규범(혹은 사회질서)가 발전하게 돼요. 규범의 발전을 토대로 지혜로운 자들은 권력을 발명하여 정치계급을 형성하고 국가를 이룰 수 있게 되어요. 이로 인해 규범은 보다 더 구체적이고 고도화되죠. 문자의 발달은 국가 내 농경인들의 교육수준을 빠르게 끌어올려요. 이로 인해 주요 문명사회는 훗날 교육으로 무장한 정착민 중심 권력사회로 바뀌게 되었어요.
배와 말, 문자와 질서, 그리고 국가 형성의 연대표
권력을 만들어낸 지혜로운 자들의 공통점은 이동하는 민족들이었다는 것이예요. 이들은 배나 혹은 말을 타고 이동하면서 견문을 넓혔어요.
칼 야스퍼스는 "역사의 기원과 목표"에서 말이 인간을 땅에서 자유롭게 했다고 했어요. 농경인은 모든 생산의 중심이 땅에 있었어요. 이때문에 땅은 이동 속도가 매우 느린 인간이 멀리 벗어날 수 없는 중력 같은 역할을 했던 것이죠. 토미노 요시유키 감독은 샤아 아즈나블의 입을 빌려 어스노이드를 "중력에 혼이 묶인 자들"이라고 비난하는데, 피 끓는 20대에 '우주 개척시대'를 경험한 토미노 감독이 칼 야스퍼스의 말에 자극받은 것이 아닌지 의심되네요.
우리나라의 대표적 석학 중 한 분인 고려대학교 김우창 교수는 이를 정신적 해방과 더불어 신체와 마음의 자유의 폭을 넓혀주는 효과를 갖게 하는 것으로 해석하셨어요. 말과 배는 사람들에게 좁은 터전에 붙잡혀 있지 않을 자유를 주었어요. 이러한 자유를 원하는 이들은 말과 배를 활용하게 되었고, 자유보다 미래의 안정을 더 원하는 이들은 정착하는 것을 더 선호했어요(이 '자유'는 '권력'과 함께 덕후의 매우 중요한 키워드 이기도 해요).
그런데, 이 선택은 또다른 결과도 낳았어요. 말과 배는 사람에게 강력한 '견문'의 기회를 가져다주었던 것이예요. 말과 배는 이동할 수 있는 거리의 증가와 함께 '휴대물'의 한계를 극복하게 해 줬죠.
기원전 수천년 전, 맨몸에 물과 음식을 지니고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는 거리는 극히 한계가 있었을 거예요. 그런데 말이나 배를 수단으로 이동하는 사람은 더 빠르게 이동할 뿐 아니라 물과 음식을 더 많이 싣고 이동할 수 있었어요.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는 거리는 비약적으로 늘어나요. 그 결과로 이동하며 만날 수 있는 다른 부족민, 민족들은 한결 많아지고 훨씬 더 많은 '견문'을 쌓을 수 있게 되는 것이죠.
실크로드를 오가던 대상들이야 말로 문명과 문명을 이어주는 역할을 했었죠.
책같은 기록매체가 없던 이 시기에 사람이 지식을 쌓을 방법은 부모로부터 듣는 지식과 이 '견문' 외에는 없었을 것이예요. 오늘날 우리는 유목민이나 수렵채집인은 지식이 모자랐을 것이고, 농경민은 더 많은 지식을 축적했을 것이라 생각해요.
일부 맞는 말이예요. '문자'가 발명되고 필경사에 의해 지식 묶음(혹은 책)이 생산이 된 이후에는 그렇게 되지요. 정착촌을 이루고 작물을 관리하면서 남는 시간에는 집에 들어앉아 문자로 된 책을 읽으면서 지식을 쌓을 수 있어요.
그러나, 문자가 발명되기 이전의 세계에서는 어떨까요?
한곳에 정착해서 주변과 크게 소통할 필요없이 자신의 밭에서 자라나는 곡식에 인생을 바치는 이들은 어디에서 여러가지 지식을 얻을 수 있을까요? 애초에 근본적으로 이러한 시대에 지식을 얻는 방법은 어떤 것들이 있었을까요?
본래 사람은 '견문'을 통해 지식을 얻고 지혜를 깨우쳤어요. 세상의 많은 것을 직접 보고 생각하고 깨닫죠. 다른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보고, 물어보고, 대화해요.
공자는 논어에서 三人行必有我師焉(삼인행필유아사언) 이라고 했는데, 길거리에 세사람이 걸으면 그중 한사람은 내 스승이라는 말이예요. 진짜 스승이 있을 거라는 말이라기 보다는 견문의 힘을 보여주는 격언인 것이예요.
오늘날 우리가 지식을 습득하기 위해 읽는 책 또는 인터넷 상의 정보들 역시, 어마어마한 견문을 작은 공간에 묶어 놓은 정제된 지식 묶음으로도 볼 수 있을 거예요.
농경민은 가까운 주변에 정착한 다른 농경민들과 접촉할 수 있었지만, 그들의 삶과 관심사는 서로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예요. 반면 말과 배는 더 멀리 있는 많은 곳을 보고 다양한 삶을 사는 많은 사람을 만날 수 있게 해 주었어요. 자연스럽게 말과 배를 타는 사람들은 농경민보다 훨씬 많은 견문을 보고 익히게 돼요. 더 지혜롭고 똑똑할 수밖에 없어요.
결과적으로 이동하는 민족들은 좁은 터전에 자리잡고 늘 땅과 씨름해야 했던 농경정착민에 비해 월등한 견문을 쌓고 풍부한 지식을 가질 수 있었을 거예요. 그러한 지식은 '권력'이라는 매우 복잡하고 창의적인 개념을 생각해 낼 수 있는 재료가 되었겠죠.
한편, 선주 농경민들이 없었다면 이 지혜로운 자들이 권력을 발명하여 국가를 형성하기 힘들었을 거예요.
이동하는 사람들에게는 권력을 행사하기 쉽지 않아요. 농경정착민과 달리 이동하는 사람들의 '재산'은 땅에 있지 않아요. 한곳에 정착하여 권력자의 수탈을 인내하고 있을 필요가 없죠. 그러나 농경민들의 '모든 것'은 땅에 있어요. 권력자의 수탈이 크지 않다면 그곳을 떠날 수가 없어요. 권력을 행사하기 좋은 대상이 되죠.
권력자가 권력을 안정적으로 행사하려면 피지배민족인 농경정착민이 필수였던 것이예요. 때문에 앞 도표에서와 같이 흑해연안이나 중앙아시아의 초원지대에서는 국가권력이 매우 늦게 형성되었어요. 유라시아 대초원의 사람들은 대부분 완전한 유목이었거나, 반농경 반유목하는 사람들이었거든요.
그리고 훗날 중앙아시아에서 권력을 쥐던 지도자들은 상당수의 한족 농경민을 납치하거나 회유하여 자신들의 영향권에 두고서야 안정적인 정치권력을 형성할 수 있었어요. 견문의 차이로 발생한 이동하는 민족과 농경정착민의 관계는 문자가 발명되고 나서부터 서서히 바뀌게 되어요.
문자 발명 이전까지는 오직 견문을 통해서만 지식을 쌓을 수 있었지만, 이후에는 지식 묶음, 즉 '기록'을 통해 견문을 대신할 수 있게 되었어요. 토판에, 파피루스에, 그리고 죽책 위에 견문이 담기게 된 것이죠. 문자의 발명과 세상의 지식이 기록 속에 쌓이게 되면서부터, 기록을 쓰고 보관하고 읽기 더 좋은 환경이었던 정착민들이 점차 더 지혜로울 수 있게 되었어요.
지혜의 역전은 긴 기간에 걸쳐 민족들 간에 기술의 역전을 가져오게 되었어요. 이전까지는 이동하는 민족들이 새로운 발견과 발명을 이어왔다면, 이후부터는 점차 정착민들이 새로운 발견과 발명을 많이 할 수 있게 되었어요.
문명의 여명기에 농경민들은 이동하는 민족들에게 지배를 받으며 국가라는 제도를 접하게 되었지만, 이들에게서 권력이라는 것을 배우고 문자와 기록을 통해 지혜로워지면서 스스로 권력을 쟁취하고 국가를 이루게 돼요. 4대 문명 지역에서도 처음 권력을 만들어낸 것은 이동하는 민족들이었지만, 이후에는 농경정착민들도 제국을 이루기 시작하게 되죠. 필경사들이 등장하고 이들이 기록하는 지식들이 특정 공간에 쌓이면서, 세상을 돌아다니며 견문을 쌓지 않아도 지식을 습득할 방법이 생긴 덕분이겠죠.
이제 처음으로 돌아가 권력의 정의를 살펴보죠. 권력의 정의를 '의지를 가진 누군가가 자신의 손해를 무릅쓰고 타인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도록 하는 것'이었어요. 리더의 폭력에 의해 피지배자를 움직이는 것은 동물들로부터 진화된 원초적 힘이예요. 이것은 국가 이전 원시 사회로부터 있어 왔어요.
직접 대면하는 개체 간에 예상 가능한 이익, 혹은 불이익을 소통하고 이를 원동력으로 리더가 움직이는 사회는 일부 사회화된 동물들로부터 관찰 가능해요. 인류의 부족사회에서도 이를 관찰할 수 있어요. 하지만, 이러한 사회는 일정 크기 이상으로 발전할 수가 없어요.
리더와 직접 관계되어 소통 가능한 소수 주변인들 만이 리더가 원하는 바를 예상할 수 있기 때문이예요. 리더가 원하는 바를 알아야 자신에게 가할 불이익을 피하거나 이익을 취할 수 있지 않겠어요. 사회 구성원 누구나 알 수 있는 규범 등을 통해 이를 지키거나 지키지 않으면 이익 혹은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예상 가능하도록 하면 더욱 큰 규모의 사회를 리더가 움직일 수 있어요.
이러한 규범은 종교교리, 도덕, 예절, 관습, 법률, 제도 등 여러가지 모습을 띄지만, 사회 구성원이 전반적으로 이해할 수 있어야 해요. 상기 4개 문명권이 모두 '문자'가 있었다는 것은 이들 사회가 빠른 시간 내에 큰 규모의 사회를 이루는 데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예요.
국가 정도의 규모가 되려면 이러한 사회적 규범이 보편적으로 정착이 되어야 했어요. 4개 문명권은 이러한 규범이 형성되어 정착되면서 국가의 형성을 도왔고, 그것이 고도화되어 문자로 표현된 것이 각각 이집트의 Maat, 수메르의 지침과 법률, 인더스의 베다, 중국의 삼경이에요.
권력은 이렇게 사회 전체를 아우르는 규범 위에서 작동하는 시스템으로 최초의 국가들로부터 시작되었어요. 권력이 규범 위에서 작동하게 되니, 권력자들 스스로도 이러한 규범을 무너뜨리기 쉽지 않아요. 권력자가 규범을 부정하면 그 규범은 사회에서 신뢰를 잃게 되고,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 혹은 불이익을 챙기기 위해 따라야 할 가이드가 없어지기 때문에 사회가 순조롭게 돌아갈 수가 없게 되죠.
이런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 권력자들은 권력을 행사하면서 자신의 권력 행사는 이러한 규범체계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것을 알릴 필요가 있었어요. 이를 우리는 '명분'이라고 불러요. 덕후와 그렇지 않은 사람은 권력에 대한 태도뿐 아니라 명분을 만드는 방향이 전혀 달라요.
덕후의 많은 개성이 여기에서 비롯되곤 해요.